125화
“해보자. 할 수 있다!”
마하임은 자신을 다독였다. 한 번도 사용해 본 적 없는 기술이긴 했지만, 요령은 대충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알고 있는 것과 실전에서 사용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하지만 마하임에게는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탓!”
마하임은 연이어 쏟아지는 창을 피한 뒤 하늘을 날고 있는 오우거를 향해 점프했다.
그러나 엑스칼리버의 최대 점프력은 5m가 고작이었다. 다시 하강하기 시작한 엑스칼리버.
마하임은 온 힘을 다해 단전에 힘을 모았다. 그리고 힘찬 기합과 함께 외부로 발산했다.
“허공답보(虛空踏步)!”
시현류 유도 유선술 중 하나인 허공답보. 그것은 허공을 대지처럼 걸을 수 있는 기술이었다.
실제 시문은 이 기술로 제페쉬의 저택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마하임의 미숙한 실력으로는 잠시나마 허공을 대지처럼 만들어 발을 디딜 수 있는 수준이 고작이었다.
“충분하다!”
마하임은 허공답보를 사용한 뒤 곧장 축지를 사용했다. 그러자 공중에서 날고 있는 오우거와의 거리를 단숨에 무로 만들었다.
“죽어랏! 선기발경!”
투깡-!
피할 여유 같은 것은 주지 않았다. 마하임은 다시 한번 힘을 끌어모아 오우거의 몸에 발경을 구겨 넣었다. 오우거는 기괴한 비명을 내지르며 땅에 처박혔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오우거의 몸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히 바닥에 짓이겨졌다. 그것으로 전투는 끝났다.
[적 반응 소멸. 미션 클리어.]
나지막한 엑스칼리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법 아슬아슬했지만, 어쨌건 승리했고, 또한 살아남았다.
땅에 착지한 마하임은 엑스칼리버를 다시 양자 세계로 돌려보냈다.
계속 타고 있는 것이 안전하기는 하지만, 엑스칼리버에게는 한계 사용 시간이 있었기에 최대한 아껴 써야만 했다.
“제법 화끈한 환영 파티였다. 그럼 가 볼까? 뭐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마하임은 비와 어둠을 벗 삼아 소리 없이 황성으로 향했다. 멀리서 천둥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오늘 밤은 비가 그치지 않을 모양이었다.
* * *
시오니아 제국의 황성. 이 황성은 은밀히 말하자면 시오니아 제국이 만든 것이 아니었다.
이 성 역시 가르샤의 연구 기지처럼 고대인의 유적을 개축해서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여느 나라의 황성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직사각형 모양의 지상 12층의 건물. 그 건물은 고대 유적답게 엄청난 위용을 자랑했다.
그리고 밤이면 화려한 조명이 황성 전체를 비춰. 마치 거대한 빛의 탑처럼 보였기에 시오니아 황성은 ‘빛의 탑’이라는 별칭까지 붙어 있었다.
하지만 오늘 밤은 뭔가 달랐다. 탑을 비추는 조명은 전부 다 꺼져 있고 인적마저 없었다. 마치 아무도 없는 폐허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왜 아무도 안 보이는 거지?”
마하임은 시오니아 황성의 정문에서 멈춰 섰다. 오우거를 물리치고 시오니아 황성으로 들어온 이후 단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바닥 여기저기 남겨져 있는 핏자국 전부였다.
“엑스칼리버, 생체 반응을 확인해 줘.”
‘생체 감지 센서 온라인. 검색 중…. 검색 중…. 200m 내에 살아 있는 생명체는 감지되지 않음.’
마하임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황성에 사람이 없다니, 이 정도 규모의 황성이라면 경비병을 포함한 사람들이 족히 수백 명은 있어야 했다.
그런데 200m 안에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니,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먼저 온 손님이 있나? 그렇다 하더라도, 시오니아 제국의 엠페러 포스는 쉽게 무너질 리 없을 텐데.”
‘생화학 병기 검출. 긴급사태 발생. 파워드 슈트 강제 장착.’
갑작스러운 엑스칼리버의 말과 함께 엑스칼리버가 물리 세계에 소환됐다. 그리고 순식간에 마하임의 몸을 감쌌다.
“뭐야? 명령도 하지 않았는데.”
[치사율 99%의 강력한 생화학 병기가 사용된 흔적이 있다. 이 병기에 노출되면 3분 내에 사망. 죽은 자는 생체 병기로 각성. 적 진영을 초토화시키기 위해 특화된 병기다. 즉시 이곳을 이탈을 권고한다.]
엑스칼리버의 말을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아주 위험한 상황임만은 확실했다.
그러나 마하임의 목적지는 바로 이곳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물러설 수 없었다.
“강행 돌파할 수밖에.”
마하임은 굳게 닫힌 문을 엑스칼리버의 힘을 이용해 강제로 열어젖혔다.
끼이이이-
마치 신음 소리와 같은 소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문 안쪽에도 사람의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바닥에 드문드문 고여 있는 피와 칠흑처럼 어두운 공간뿐이었다.
그어어어어!
바로 그때 들려온 소리.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엑스칼리버의 내부 화면에는 소리가 들려온 위치가 표시되었다.
그 위치는 황성의 안쪽 그리고 그 소리를 낸 것은….
“가르샤의…. 언데드인가?”
시오니아의 황성 경비 병력, 엠페러 포스의 갑옷을 입고 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느리지도, 그렇다고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마하임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산 사람이 아니었다. 눈알이 빠져 덜렁거리는 사람부터 팔다리가 역으로 꺽여 있는 사람들까지.
한눈에 보기에도 생존 자체가 불가능해 보이는 사람들이 걸어서, 혹은 기어서 마하임에게로 다가왔다.
“누가 이런 짓을!”
마하임은 순간 분노가 치밀었다. 그들이 설령 많은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이렇게 최후를 맞이한다는 것은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있어선 안 되는 일이 지금 일어났고, 이건 돌이킬 수 없었다.
저 언데드는 마법도 저주도 아닌 고대인의 병기로 인해 만들어진 재앙.
모두 쓰러트리는 것 말고는 마하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플라즈마 방사기 충전이 완료되었다. 대생화학전 대응 무기로 추천한다.]
엑스칼리버의 말과 함께 플라즈마 방사기의 정보가 마하임의 머릿속에 입력되었다.
약간의 두통이 있었지만, 마하임은 이내 플라즈마 방사기의 사용법을 인지할 수 있었다.
“1500만 K(켈빈)의 초고온 플라즈마라…. 고대인의 지옥불인가?”
엑스칼리버의 등 뒤의 장갑이 열리며 플라즈마 방사기의 포탑이 정면을 향해 포신을 고정했다.
“부디 편히 눈감길.”
팟, 츄하하하학-!
마하임의 명령에 태양만큼이나 뜨거운 플라즈마가 다가오는 언데드를 향해 뿜어져 나왔다.
죽음의 두려움을 모르는 언데드였지만 초고온의 플라즈마 앞에서는 허무할 정도로 간단히 쓰려져 갔다.
수백 명에 달하는 언데드가 한 번에 불타는 광경은 끔찍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마하임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들을 불태우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기에.
화르르륵 화르르륵-
언데드는 플라즈마에 불타오르면서도 마하임에게 끊임없이 다가왔다. 마하임은 이를 노려보며 플라즈마 방사기의 불꽃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하지만 언데드의 수가 너무 많았다. 어디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수많은 언데드가 꾸역꾸역 마하임에게로 몰려들었다.
“젠장, 너무 많아!”
플라즈마 방사기의 위력은 뛰어났지만, 언데드의 수는 이것을 압도할 만큼 많았다.
지금 마하임의 플라즈마 방사기의 화력으로는 이 모두를 불태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플라즈마 방사기 과부하 발생. 긴급 작동 중지.]
플라즈마의 불빛이 잦아들었다. 언데드들의 수는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근접 전투는 피할 수 없었다.
“최악이로군.”
마하임의 얼굴이 굳었다. 아무리 그가 전장에서 수없이 뒹굴었다 하더라도, 이런 식의 전투는 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가르샤에서 한 번 이 언데드를 본 적 있었지만 그때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많은 수의 언데드였다.
마하임은 다른 길이 있나 살펴보았지만 사방은 이미 언데드들로 가득했다. 아마도 이 황성에 일하던 사람 전부가 언데드로 변한 것 같았다.
“강행 돌파할 수밖에 없나?”
마하임은 이를 악물었다. 엑스칼리버라면 간단히 언데드를 제압할 수는 있을 것이다.
단지 두려운 것은 저 많은 시체를 쓰러트리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뿐.
“내가 선택한 길이다. 미안하지만 돌파하겠다.”
어쩌면 저들이 죽은 이유는 마하임 자신 때문일지도 몰랐다.
시오니아 제국 황제 신시아가 이런 짓을 할 리가 없었다. 이런 짓으로 황제가 얻을 것이 없었으니까.
분명 신시아 황제 외에 제3의 세력이 있음이 틀림없었다.
파팟-!
마하임은 힘껏 도약했다. 엑스칼리버에는 마하임이 이미 입력해 놓은 황성 지하로 향하는 방향이 표시되고 있었다.
엑스칼리버는 확실히 믿을 만한 병기였지만, 한계 기동 시간이 정해져 있었기에 최대한 빨리 상황을 정리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단 거리로 단숨에 저 언데드를 뚫어야만 했다.
축지-!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마하임은 땅을 박차며 축지를 사용했다.
파팟!
퍼퍼퍽! 퍼억!
순간 앞으로 돌진하기 시작한 엑스칼리버. 엑스칼리버는 언데드로 가득한 황성을 가로질러 달렸다.
언데드들은 엑스칼리버의 몸체에 부딪히며 검붉은 체액을 흩뿌리며 쓰러졌다.
내장과 뼈, 형체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처참히 짓이겨진 시체 조각이 마하임의 눈에 생생히 들어왔다.
“우욱-!”
그 처참함에 마하임은 저도 모르게 구토가 쏠렸다. 참을 수 없는 불쾌함에 마하임은 분노하고 또 분노했다.
그 빌어먹을 진실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여야만 했는지 마하임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해를 하든 못하든 마하임의 앞에는 수많은 시체들이 다가오고 있었고 마하임은 이를 쓰러트려야만 했다.
퍽 퍼어억 퍼석!
마하임 죽이고 또 죽였다. 아니 이미 죽은 시체를 또 죽였다고 말할 수도 없었지만, 본질적으로 다를 건 없었다.
마하임의 손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많은 사람들이 자신 때문에 죽어 가고 또 앞으로도 죽을 것이다.
‘멈춰야 하나? 여기서 그만둬야 하나?’
이대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윈드시크릿으로 돌아가는 방법도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동료들과 함께 여생을 마치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답이 아니었다. 지금 돌아간다고 자신 때문에 죽은 사람들이 되살아나는 것도 아닌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하임은 진실을 알 책임이 있었다. 그 진실 때문에 죽어 간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마하임은 그 진실을 알아야만 했다.
“난 멈추지 않는다. 내가 선택했으니,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마하임은 달리고 또 달렸다. 언데드의 파편으로 엑스칼리버가 수도 없이 더럽혀진 뒤 마하임은 겨우 언데드의 포위를 벗어날 수 있었다.
“하아, 하아.”
[비정상적인 심장 박동이 감지되었습니다. 즉시 안정을 취할 것을 권고합니다.]
마하임의 몸을 체크하던 오페라의 말이 조용히 들려왔다.
속이 여전히 울렁거리고 머리도 어지러웠지만 마하임의 몸속의 나노머신은 신속하게 마하임을 정상 상태로 되돌렸다.
곧이어 호흡이 안정되고 시야도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후우, 이제 시작이다.”
크게 심호흡을 한 마하임은 엑스칼리버를 움직여 곧장 지하로 향하는 통로로 향했다.
통로는 상당히 컸다. 엑스칼리버보다 훨씬 큰 마장기도 지나갈 만큼 거대한 통로였다.
“여긴…. 아무것도 없나?”
텅 빈 통로. 그러나 마하임의 본능은 속삭였다.
이곳에도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무언가는 이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