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접근 불가. 접근 불가. 돌아가라. 이곳은 ‘인간’만이 들어올 수 있다. ‘아바타’ 따위가 들어올 곳이 아니다.”
그것의 모습은 벌거벗은 인간이었다. 키는 약 2미터 정도. 머리칼도 없었고 생식기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외모만 보면 누가 봐도 인간의 형태였다.
그러나 그것을 인간으로 보기에는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난 인간이다. 당장 거기서 비켜라. 그렇지 않으면 힘으로라도 뚫겠다.”
성큼성큼 ‘인간’에게로 다가가는 마하임. 그 인간은 그런 마하임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파워드 슈트, FS-8987-엑스칼리버. 아바타 주제에 과분한 걸 입고 있군.”
인간은 히죽거리며 웃었다. 마하임은 불쾌한 감정이 저도 모르게 올라왔다.
‘아바타’가 무엇인지 뜻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리 좋은 뜻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거기서 비켜라. 마지막 경고다.”
“훗, 아바타 주제에 못 하는 소리가 없군. 그 말 그대로 돌려주겠다. 아바타, 당장 돌아가라. 그럼 죽이지는 않겠다.”
협상은 결렬됐다. 이렇게 되면 싸울 수밖에 없었다. 마하임은 힘차게 땅을 박찼다.
“강제로라도 뚫겠다!”
쏘아진 활처럼 ‘인간’에게로 돌진하는 마하임. 그런 마하임을 인간은 공중으로 뛰어올라 가볍게 피해 버렸다.
“네가 이길 확률은 0.1204%. 여기서 돌아간다면 눈감아 주마. 지구 연합의 비품을 부쉈다가는 이유야 어쨌든 시말서를 제출해야만 한다. 귀찮으니까 꺼져라. 아바타.”
“닥쳐! 난 아바타가 아니라 인간이다!”
마하임의 연이은 공격. 하지만 인간은 스치듯 피해 버렸다. 엑스칼리버를 탄 상황이라 민첩성은 떨어졌지만, 그 힘과 순간적인 스피드는 맨몸일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저 인간은 엑스칼리버의 공격을 너무나 간단히 회피했다.
“파워드 슈트를 타더니 간덩이가 부었군. ‘인간’이 탄다면 몰라도 아바타 따위가 탄 엑스칼리버는 두렵지 않다.”
인간은 성큼성큼 마하임에게 다가왔다. 마나도, 기도, 오러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 인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형의 기운은 마하임을 절로 뒤로 물러서게 만들었다.
“호오, 그래도 어느 정도 감각은 있군. 허나 이미 늦었다. 난 너를 폐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바타는 얼마든지 있다. 미션은 계속될 것이며, 넌 폐기되어 버려질 것이다.”
인간은 순간 마하인 앞으로 이동했다. 그것은 축지를 능가하는, 그야말로 순간이동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무로 돌아가라. 아바타!”
인간의 주먹이 엑스칼리버를 강타했다. 엑스칼리버는 인간의 공격을 맞고 튕겨지듯 하늘로 떠올랐다.
“파워드 슈트에 의지한 것이 네 패인이다!”
다시 순간이동한 인간은 엑스칼리버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강렬한 킥이 엑스칼리버를 내리쳤다.
쾅-!
바닥에 처박히는 엑스칼리버. 엑스칼리버는 마치 경련하듯 부르르 떨었다.
[경고. 손상률 32.4%. 적 생체 병기 모델 확인 불가. 승률이 마이너스 영역으로 넘어갔다. 즉시 전장에서 이탈하는 것을 추천한다.]
엑스칼리버의 메시지가 마하임의 머리를 울렸다. 엑스칼리버에 탄 상태였지만, ‘인간’의 공격에 마하임은 온몸이 부서지는 것과 같은 충격을 느꼈다.
‘이길 수 없다. 이 엑스칼리버를 탄 상태에선!’
물론 엑스칼리버는 강했다. 하지만 그것은 마장기나 일반적인 적에나 통하는 것이었지, 저 인간에게는 손끝 하나 댈 수 없었다.
마하임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 황궁의 사람들…. 네놈의 짓이냐?”
“그렇다. 그러나 분노하지 마라. 그들은 ‘클론’일 뿐. 아바타보다 더욱 질 떨어지는 소모품이다.”
“하! 소모품?”
“그렇다.”
“그래, 좋아. 네놈을 반드시 죽여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는 것 같군.”
마하임은 엑스칼리버를 양자 세계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오페라를 빼 들었다.
“엑스칼리버가 없다 해도, 나에게는 오페라가 있다.”
“호오, 전투 보조 나노 AI 시스템인가? 아바타치곤 제법이군. 그건 길들이기 꽤나 까다로운데.”
“오페라 x12!!!”
[x12 이행. 오버클럭 발동.]
마하임은 쏘아진 활처럼 인간에게 달려들었다. 인간은 순간 당황했지만 몸의 중심을 살짝 옮기는 것만으로 마하임의 공격을 피했다.
“그래 봤자 아바타는 아바타일 뿐. 카테고리 s1급인 나와 상대가 될 리 없다.”
인간은 마하임의 배에 짧은 끊어치기를 박아 넣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하임 역시 호락호락 당하지 않았다.
마하임은 오페라의 손잡이로 놈의 주먹의 궤도를 비틀어 버렸다. 그리고 인간의 얼굴에 강렬한 어퍼컷을 날렸다.
퍼억-!
인간은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마하임은 차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과연. 엑스칼리버로 싸울 때 맞추지 못한 이유를 알겠군.”
놈의 움직임에는 그다지 특이한 점은 없다. 그저 민첩성이 한없이 높다는 것뿐이었다.
엑스칼리버가 아무리 전천후 만능 마장기라고 하지만, 저놈처럼 민첩성이 높은 적에게는 맹점이 있었다.
“2라운드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끝내도록 하지.”
“아바타 주제에 자각이 없군. 넌 네가 진짜 인간이라 생각하는가?”
“개소린 집어 치워! 뭐가 인간이란 말이냐! 두 발로 걷고 말을 하면 다 인간인 거냐?! 인간은 말이야 인간다운 행동을 해야 인간인 것이다.
죄 없는 사람들을 아무 이유 없이 몰살시키는 짓을 하는 놈한테 인간이니 아니니 하는 소리를 듣는다니 어처구니가 없군.”
“이유는 있다. 네가 이해를 할 수 없을 뿐이지.”
“이해할 필요도 없고 이해할 생각도 없다. 넌 그저 잔혹한 대량 학살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마하임은 땅을 박찼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발경을 날렸다. 하지만 인간은 이번에도 너무나 간단히 마하임의 공격을 피해 버렸다.
“넌 인간이 아니다. 아바타 주제에 인간을 죽인다? 그건 물리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은 마하임의 배를 걷어찼다. 마하임의 눈에는 잔상밖에 보이지 않았다. 배를 걷어차인 마하임은 바닥을 굴렀다.
“커억!”
입에서 피가 울컥 올라왔다. 오버클럭으로 조금이나마 피했기에망정이지, 이 일격으로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강력한 공격이었다.
“아바타여, 너의 임무는 이제 끝났다. 조용히 잠들어라. 금기를 범한 대가를 치러라!”
인간의 공격은 계속 이어졌다. 마하임은 필사적으로 몸을 굴려 놈의 공격을 피했지만, 모두 피할 수는 없었다.
순식간에 넝마처럼 변해 버린 마하임의 몸. 상황은 절대적으로 마하임에게 불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하임은 다시금 몸을 일으켰다.
“크크큿 금기라고? 웃기고 있군. 무엇이 금기라는 말이냐!”
그것은 분노였다. 심층 의식 바닥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가 의지가 되어 마하임의 온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모든 것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일 뿐이다. 아바타? 클론? 그게 어쨌단 말이냐? 나는 인간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의지는 곧 마하임의 힘이 되어 그의 몸속 1만 2천 개의 나노머신이 하나가 되어 갔다.
[오페라 싱크로율 104%, 110%, 120%. 물아일체(物我一體) 모드 기동 조건이 성립되었습니다.]
그것은 과학으로 밝혀낼 수도 없고 계산조차 할 수 없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 존재하는 기적 그 자체. 인간을 넘어선 초인의 영역이었다.
“있을 수 없다. 고작 아바타에 물아일체라니!”
인간은 비명과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마하임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목표를 파괴하는 것에 집중한 채, 마치 흔들리는 갈대처럼, 소리 없이 흘러가는 구름처럼 놈을 향해 내달렸다.
“지옥이 있다면 그곳에서 참회하라!”
마하임은 주먹을 내질렀다. 인간은 몸을 비틀어 재빨리 공격을 피했다.
인간의 순간적인 움직임은 음속에 근접했다. 하지만 인간은 마하임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마하임의 공격에는 실패라는 조건이 삭제된 절대적인 인과율로 묶여 있었다.
그것이 바로 물아일체의 진의. 그 진의를 사용하는 한 마하임의 공격은 물리적인 법칙마저 초월했다.
콰직-!
마하임의 공격이 인간의 몸을 꿰뚫었다.
인간은 믿을 수 없었다. 이 경지에 오르기 위해 그는 500년의 시간 동안 끝을 알 수 없는 ‘개조’ ‘변조’에 모든 것을 내맡겨야만 했다.
그리고 현자의 돌까지 몸에 박아 넣고 나서야 그는 ‘인간’이 될 수 있었다.
“이건 있을 수 없다. 고작 아바타 따위에게 내가?! 내가!!!”
인간의 몸속에 있는 코어, 현자의 돌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한줌의 재가 되어 원래의 형상을 잃고 사라졌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하아, 하아.”
마하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세를 바로 잡았다.
주위는 조용했다. 적으로 보이는 존재는 느껴지지 않았다. 죽음과 같은 고요한 정적이 황성 안에 흘렀다.
마하임은 오페라의 네비게이션을 의지해 쥐 죽은 듯 조용한 황성을 가로질러 지하로 이어지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삑, 여기서부터는 통제 구역입니다. 통행증을 제시해 주십시오.”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하임이 서자, 알타베르나의 엘리의 목소리와 흡사한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마하임은 주머니에 있던 윈디의 추천서를 내밀었다.
“통행증 확인. 목적지를 설정해 주십시오.”
“지하 최하층까지 부탁한다.”
“네, 알았습니다. 탑승해 주십시오. 3초 후 문이 닫힙니다.”
마하임이 엘리베이터에 타자 소리 없이 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 안은 상상외로 넓었다. 이 넓이라면 마장기 2, 3대는 충분히 탈 수 있는 넓이였다.
“최하층으로 이동을 시작합니다. 약간의 진동이 있을 수 있으니 손잡이를 꼭 잡아 주세요.”
기이이잉-
엘리베이터는 급속 하강하기 시작했다. 마하임의 목적지는 지하 20층. 고대인의 묘지라 불리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은 레비가 말한 진실이 잠자고 있었다. 그 진실이 무엇인지 마하임은 아직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진실을 숨기고 싶어 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었다.
“후우, 도착해 보면 알겠지.”
마하임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나노머신 시류 덕분에 ‘인간’에 의해 다친 몸은 빠른 속도로 치료되고 있었다.
그리고 지하 20층에 다다를 무렵에는 모든 치료가 끝나있었다.
“띵~ 도착하였습니다. 즐거운 여행되시길.”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마하임은 천천히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마하임의 눈에 보인 것은 천장마저 아득히 보이는 거대한 동공이었다.
“이 전체가 고대인의 유적인가?”
이 거대한 동공 안에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형태의 건물들이 무수히 솟아 있었다.
그 건물들은 대부분 망가져 있었지만 으스스한 푸른빛을 내뿜고 있어 동공은 그다지 어둡지 않았다.
마하임은 천천히 이 거대한 동공 안을 살펴보았다. 너무 넓어서 어디로 가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마하임은 바닥에 나 있는 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얼마 후, 마하임은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과 조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