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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128화 (128/194)

128화

전설상의 무예, 신선을 추구하는 시현류 유도 유선술의 본가가 위치한 어느 고찰.

마하임은 현 시현류의 당주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당주의 손에는 한 장의 종이가 들려 있었으니 그것은 마하임의 NASA 입사 합격 통지서였다.

“정녕 갈 것이냐?”

당주는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마하임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네, 당주님.”

“그리 우주가 좋더냐? 그리 과학이 좋더냐?”

숨을 몰아쉬며 당주는 말을 이었다.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했던 마하임이 이렇게 선계를 떠나려고 하다니 그는 아직도 믿을 수가 없었다.

당주의 말을 들은 마하임은 잠시 침묵하다 무겁게 입을 열었다.

“NASA는 블랙홀을 이용한 초공간도약 우주선을 개발했습니다. 필시 그 우주선은 재앙 덩어리가 될 것입니다. 우주니 과학이나 하는 것은 핑계에 불가합니다. 전 저의 고향을 지키고 싶습니다.”

“아직도 그 미신을 믿느냐? 오로치 아니, 멸망의 동물 레비아탄은 그저 전설에 불과하느니라.”

그것은 시현류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오래된 전설이었다.

때와 기한이 차면 인류의 호기심이 심연의 검은 틈을 열지니, 그 심연에서 오로치라 일컬어지는 멸망의 동물 레비아탄이 신의 명을 받아 강림하리라.

절망할지어다, 인류여. 절망할지어다, 지성을 지닌 모든 생명체여. 그대가 연 심연의 문은 지옥의 문이니, 저주받을지어다. 인류의 호기심이여.

심판은 피할 수 없으리니, 그때를 두려워하고 또한 준비하라. 그것이 생을 위한 유일한 기회이니….

처음 마하임이 그 전설을 들었을 때는 그저 그런 옛날이야기로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었다.

신선으로 각성한 마하임이 본 것은 다가올 미래의 파국, 즉 레비아탄에 의한 인류 멸종이었다.

“아뇨, 레비아탄은 존재합니다. 선이 있기에 악도 존재하는 법. 우리 시현류의 존재가 그들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마하임의 결의는 확고했다. 시현류의 당주는 머리를 감싸 안았다.

10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천양단정맥을 지닌 천재 마하임. 당주는 무려 2000년의 역사를 지닌 시현류를 이끌어 갈 차기 당주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의 믿음은 오늘 산산이 부서졌다.

시현류의 당주는 마하임을 말리고 또 말려 보았지만 그의 결의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대로 나가면 파문이라는 것은 알고 있겠지?”

“네, 두 번 다시 선계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구나. 가거라, 파문이다. 두 번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말거라.”

“감사합니다. 부디 만수무강하시길.”

곧장 몸을 일으키는 마하임. 그는 미련 없이 낡고 오래된 골동품과 같은 여닫이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하늘은 대낮인데도 흐렸고 눈발이 희미하게 날리고 있었다.

끼이-

바닥에 펼쳐진 오래된 마루. 마하임은 조심스럽게 발을 움직였다. 마루를 밟을 때마다 기분 좋은 울림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한옥도, 그렇다고 일본식 저택도 아닌 뭔가 조금씩 뒤섞인 이 집은, 무려 백제가 존재할 때 지어진 고찰이었다.

이 오래되고 고풍스러운 저택에서 마하임은 태어나서 지금껏 살아왔다.

할 수만 있다면 마하임 역시 이곳을 떠나기 싫었다. 하지만 다가올 비극이 손에 잡힐 듯 느껴졌기에 마하임은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파국은 내가 막는다. 반드시!!!”

마하임은 다시금 각오를 다졌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겠지만, 그의 천재성은 미래마저 꿰뚫고 있었다.

이대로는 인류는 멸종한다. 아니 지구상 모든 생명체가 놈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신선이 된 마하임은 본능적으로 아카식 레코드에 접속해 그 절망적인 미래를 보고야 만 것이다. 그것은 최고의 축복이자 또한 저주 그 자체였다.

저벅저벅.

바닥에 눈이 제법 쌓여 걸을 때마다 푹신한 풀밭을 걷는 느낌이었다.

이대로 고향을 떠나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마하임이 선택한 길이자 사랑하는 가족을, 나아가 인류를, 지구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었다.

“멈춰 주십시오. 오라버니.”

누군가 마하임의 앞에 나타났다. 그는, 아니 그녀는 다름 아닌 마하임의 배다른 동생 시아라였다.

“못 가십니다. 설령 그 전설이 사실이라도 우리랑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시현류의 가문이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은 선계. 지구와는 차원적으로 단절된 공간이었다.

설령 지구가 통째로 폭발하더라도 이곳은 전혀 상관이 없었다.

애초에 위상마저 다른 선계였기에 ‘문’을 열지 않는다면 영원히 고립된 채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설령 멸망의 짐승 레비아탄이 우주를 멸망시킨다 하더라도 이곳만은 안전할 것이다.

“아니. 상관이 있어. 지구는 우리의 고향이잖아. 고향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거야.”

“우리의 고향은 여기 선계입니다. 지구 따위 우리의 선조가 시작된 곳일 뿐입니다.”

이를 악물고 시아라는 외쳤다.

그것은 2000년도 지난 옛날 이야기였다. 시현류의 신선들은 인류를 교화시키고 나아가 신선의 길로 이끌기 위해 지구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멸시와 천대, 그리고 괴물이라는 오명뿐이었다.

신선들은 마교라 불리우며 온갖 탄압을 받고 결국은 지구를 떠나 이 선계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인류는 어차피 멸망할 것입니다. 굳이 레비아탄이 아니라도 말이죠. 오라버니도 아시잖아요. 저들의 어리석음과 아둔함을. 그렇기 때문에 지옥의 문조차 스스로 열려는 것이고요.”

“나도 알고 있어. 인류의 어리석음을. 하지만 그 이전에 나도 인류의 한 명인걸?”

“아닙니다. 우린 인류라는 거추장스러운 몸을 초월한 신선입니다.”

“하지만 그 기원이 지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

마하임은 발길을 뗐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마하임이 NASA에 입사하고 요직에 오르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못 갑니다! 오라버니.”

다시금 마하임 앞을 막아서는 시아라. 그녀의 눈에는 눈물까지 고여 있었다.

“왜 이렇게 저의 마음을 몰라주시는 건가요? 제가 오라버니를 사랑하는 거 아시잖아요.”

시아라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하지만 마하임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넌 내 사랑스러운 동생이야. 나를 사랑해선 안 돼.”

“알아요. 저도…. 하지만 오라버니를 볼 수 없다는 건, 저 참을 수 없어요! 저를 사랑하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미워하셔도 괜찮아요. 그냥 제 앞에만 계셔 주세요. 제발 부탁드려요….”

시아라는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마하임은 씁쓸히 시아라를 바라볼 뿐이었다.

“비켜 줘, 동생아. 난 가야 해.”

“허락 못 합니다. 가시려면 저를 쓰러트리고 가세요! 절대 그냥은 못 비켜 드립니다.”

시아라의 몸에서 푸르스름한 기운이 일렁였다. 싸움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마하임은 그런 시아라를 바라보다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알잖니. 넌 나를 이길 수 없어.”

“오늘만은 다를 겁니다!”

“하아…. 어쩔 수 없나.”

허리를 살짝 굽히며 자세를 잡는 마하임. 그리고 시아라를 향해 말했다.

“먼저 올래? 아님 내가 갈까?”

“선수 필승!”

시아라는 땅 위를 날 듯 마하임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쏟아지듯 마하임을 향해 날아드는 정권.

그 움직임이 어찌나 빠른지 잔상조차 잘 보이지 않았다.

팟 파파팟! 퍽 퍼억.

둔탁한 소리가 고요한 선계의 하늘을 울렸다. 오가는 공방, 하지만 밀리는 쪽은 시아라였다.

마하임은 그의 모든 공격을 한손으로 다 막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시아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이를 악물었다.

‘힘의 차이가 너무 커!’

마하임은 천년에 한 번 날까 말까 한 기공술사. 시아라 역시 천재의 반열에 드는 기공술사이긴 했지만, 진정한 천재인 마하임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실제 수없이 많은 대련 속에서 그가 마하임을 이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만하자. 이건 아무런 의미도 없어.”

“아뇨. 저에게는 의미가 있습니다! 전 오라버니를 잃기 싫어요! 절대로!”

시아라의 움직임이 더욱더 빨라졌다. 하지만 마하임의 얼굴은 평온하기만 했다.

실력 차는 명백했다. 하지만 시아라는 포기할 수 없었다. 여기서 포기하면 자신의 사랑하는 단 한 명밖에 없는 오라버니는 영원히 이곳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만큼은 반드시 막고 싶었다.

“선기발경!!!”

모든 힘을 끌어모아 시아라는 묵직한 일격을 마하임에게 날렸다. 그러나 마하임은 다른 한손을 사용해서 간단히 시아라의 선기발경을 흘려 버렸다.

“너무 힘이 들어가 있구나. 흐트러진 마음으로 선기발경을 사용해 봤자 맞지 않아.”

“문답무용!”

시아라는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빼 들었다. 그러자 검에서 날카로운 검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 드디어 검기 발현의 경지에 이르렀구나.”

“오라버니보단 10년은 느리지만 말이죠.”

마하임은 그야말로 천재였다. 8살이라는 약관에 검기를 구현했고 10살이 되면서부터는 선술의 극에 달해 고수라는 칭호까지 얻었다.

그런 마하임에게 시아라 자신이 얼마나 저항할 수 있을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시아라는 망설이지 않았다.

부웅-!

번뜩이는 검기가 일렁거리는 시아라의 검이 마하임을 스치듯 지나갔다.

마하임은 여전히 여유롭게 시아라의 검을 피해냈다. 그 움직임이 너무나 여유로워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다급해진 시아라는 더욱더 강렬하게 검기를 흩뿌리며 마하임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공격은 허공을 가를 뿐, 마하임의 몸에 닿지 않았다. 마치 그녀의 진심처럼….

“제법 날카롭지만…. 살기가 없구나.”

“오라버니를 죽일 순 없잖아요!”

“손속을 봐줘서 날 이길 수 있다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야.”

마하임은 매섭게 날아오는 시아라의 검을 맨손으로 붙잡았다. 그것도 검기가 뿜어져 나오는 검을 말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손과 함께 몸까지 잘려 버려야 정상이겠지만, 시아라의 검은 마하임의 손에 붙잡힌 채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이대로 질 순 없어요!”

자신의 검을 놔 버리고 마하임의 품에 파고드는 시아라. 그리고 마하임의 복부에 필살의 일격을 날렸다.

“파동권!”

콰앙-!

내공이 응축된 푸른 섬광이 마하임의 배에서 폭발했다. 시아라는 자신이 사용한 파동권의 반발력에 밀려 뒤로 튕겨졌다.

파동권의 위력은 거대한 바위조차 일격에 형체도 남기지 않고 박살 낼 정도로 강했다.

그 위력이 얼마나 강했던지 시아라는 바닥을 몇 바퀴나 뒹군 뒤 겨우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시아라는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의 파동권을 정통으로 맞았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서 마하임은 여유롭게 서 있었다.

마하임은 절망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아라를 향해 말했다.

“이제 끝내자꾸나. 안녕, 시아라. 언젠가 인연이 닿으면 다시 보자.”

마하임이 사라졌다. 시아라는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마하임이 나타난 것은 시아라의 등 뒤. 마하임은 그녀의 몸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점혈.”

퍼억!

시아라는 무너지듯 쓰러졌다. 의식은 있었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마도 기혈을 제압당한 듯했다. 마하임은 쓰러져 있는 시아라의 뺨에 가볍게 키스했다.

“부디 하늘의 축복이 함께하길.”

이 말을 남기고 마하임은 눈 덮인 선계의 경계로 향했다. 그리고 그는 인간계, 다시 말해 지구로 향했다. 마치 운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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