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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129화 (129/194)

129화

6개월 뒤. 목성 궤도.

지구에서 약 6억 3000만km 떨어진 목성.

목성의 하늘은 오늘도 거대한 대적반을 형성시키며 맹렬히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적반이 선명히 보이는 궤도에 우주선 한 대가 소리 없이 나아가고 있었다.

이 우주선은 다름 아닌 인류 최초의 심우주 탐사선, ‘이벤트 호라이즌’이었다.

지구에서 이곳까지 오는 데는 약 3개월.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마지막 절차를 진행하고 있었다.

“하아~ 선장이란 생각보다 어렵군요.”

마하임은 자신의 짙은 검은색 머리칼을 쓸어 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시간 동안 ‘초공간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특이점’이란 글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앉아 있는 선장 지휘석 아래에 배치된 좌석에 앉아 있는 두 명의 사람들 역시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의 극비! 이런 건 나사 직원이라면 다 아는 사실인데 그걸지금 줘서 또 읽으라니, 에혀.”

그의 오른편에 위치한 금빛 광택이 흐르는 콕핏에 않아 있던 작은 키에 비쩍 마른 마카가 말했다.

그의 겉모습은 골방에 처박혀 야한 애니나 볼 것 같은 오타쿠였지만 이 우주선 이벤트 호라이즌의 전체 하드웨어 시스템을 담당하는 메카닉이었다.

지나치게 말이 많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그와 함께 있으면 적어도 심심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 때문에 또 한 명의 선원인 아루시안과 잦은 말싸움이 벌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말이다.

“투덜거리지 마라, 마카. 형식이란 반드시 지켜야 하기 때문에 형식이란 거다.”

마카의 옆에 앉아 있는 건장한 덩치의 금발 머리의 청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는 이 좁고 협소한 우주선보다는 탁 트인 대평원에서 말을 타고 소를 모는 카우보이가 훨씬 더 어울려 보였다.

하지만 그는 겉모습과는 달리 나사의 엘리트급 인재라면 한 번쯤 꿈꾸는 항해사라는 직책을 맡고 있었다.

우주 공간상의 항로 계산과, 좌표 설정 등의 항주(航宙)에 필요한 거의 모든 작업이 자동화되긴 했지만 이 모든 것이 ‘완벽하다.’라고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특히 초공간을 통한 이동은 유사 이래 처음 시도되는 실험적인 것이었다.

물론 무인 우주선으로는 이미 몇 차례 성공했지만, 유인 우주선으로는 이벤트 호라이즌이 처음이었다.

초공간상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사람의 손길은 무조건 필요했고, 그를 담당하는 사람이 바로 아루시안 이었다.

“오오! 웬일이야 아루시안. 평소엔 사적인 이야기라곤 단 한마디도 안 하던 과묵한 엘리트님께서. 뭘 잘못 먹은 것 아냐? 내가 항상 말하는 건데 음식은 잘 가려서 먹어야 한다구.”

‘모든 시스템 정상 작동 중’이라고 표시된 10개가 넘는 모니터 사이에서 마카는 과장된 표정으로 놀란 듯 말했다.

또 장난기가 발동한 모양이었다. 마카의 말을 들은 아루시안은 애써 화를 억누르며 마카의 말을 되받았다.

“표현을 분명히 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군. 내가 과묵한 것이 아니라 네놈이 수다스러운 거다. 그리고 이 우주선의 음식은 절대 상하지 않게 제조된 완전식품이다. 메카닉씩이나 되면서 그 정도도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마카.”

“오옷, 기록 경신!! 아루시안이 이렇게 말을 많이 하다니. 이건 기적이야! 암~ 그런 의미에서 오늘 불침번 네가 서.”

나름대로 멋진 반격을 시도했던 아루시안은 결국 패배의 쓴잔을 들이켜야 했다.

아루시안은 더는 마카의 수다에 휘말리기가 싫었던 모양인지 그에게 대꾸하는 대신 마하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선장님. 목성의 중력권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초공간도약 예정 지점입니다. 도약 준비 시퀸스에 들어갈까요?”

아루시안의 물음에 마하임은 미안한 얼굴로 머리칼을 다시금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굳이 저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지 않은가요? 전 그냥 낙하산이니까요.”

사실이 그랬다. 이번 미션을 총지휘하는 선장 선발에는 무려 수천 명의 사람이 신청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선장으로 선택된 사람은 이제 갓 20이 넘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전혀 엉뚱한 사람이었다.

그것도 서양인도 아닌 동양인. 아무리 인종 차별이 사라졌다고 하지마는 불만이 없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수천 대 일의 경쟁을 뚫고 임명되신 분이.”

“하지만 아무도 인정하지 않지 않습니까? 심지어는 나사 총책임자도 이해를 할 수 없다고 했으니….”

마하임은 씁쓸하게 웃었다. 나사에 입사한 마하임은 입사 초기부터 그 뛰어난 역량으로 모든 사람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나사에서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고 있던 유사 블랙홀을 응용한 우주선 개발 계획에 바로 참여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외부인인데다 그것도 동양인이었던 것이다. 중국의 산업 스파이짓으로 인해 동양인의 신뢰도는 미국에서 매우 낮다.

그 덕분에 마하임은 뛰어난 역량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사의 핵심 인력이 되지 못했다.

마하임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초공간의 문이 열리면 인류는 멸망할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미합중국 대통령이라는 인맥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미합중국 대통령, 마이클은 자신의 대장암을 치료하기 위해 선계의 도움을 받았던 것이다.

마하임은 그 빚을 이용해, 이 미션을 총괄하는 선장으로 발탁되었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내부의 반발은 물론했고, 이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이미 다 알았고 있었다.

“난 그 소문이 사실이라도 신경 안 써. 대통령도 무슨 생각이 있으니까 선장님을 기용하신 거겠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마카는 중얼거렸다. 하지만 마하임의 얼굴은 여전히 어두웠다.

“이봐, 선장. 힘내. 인상 구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잖아. 우주선에서의 생활은 처음이지? 이 생활도 익숙해지면 꽤나 재미있다고.

게다가 저 돌덩어리 아루시안을 놀려 먹으면 그 재미는 배가 되지. 어때. 내 말에 동의하지, 아루시안?”

아루시안은 마카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끝까지 자신을 걸고넘어지는 그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그동안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이 이상은 위험하다는 판단이 선 마카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이미 출항 전 점검을 끝내 놓은 관성 제어, 중력 제어, 초공간도약 좌표 설정 시스템으로부터 시작하여 선내 생명 유지 시스템의 상태까지 처음부터 다시 확인을 하며 딴청을 피웠다.

마하임은 그런 마카를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여기까지 온 이상 할 수밖에 없었다.

마하임의 마음이 착잡한 이유는 다름 아닌 이 우주선을, ‘초공간’ 다시 말해 지옥으로 향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하임이 나사의 초공간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이벤트 호라이즌 계획, 즉 초공간도약 외우주 항해 프로젝트를 무산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하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가 아무리 천재성을 발휘해도, 심지어 미합중국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도 시류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었다.

게다가 미국이 하지 않으면 결국 다른 나라가 먼저 초공간 항해법을 시도할 것이 확실했기에, 결국 마하임이 이 미션을 지휘하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인상을 구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역시 그렇겠죠? 좋습니다. 마카. 유사 블랙홀 생성 미사일 준비 부탁드립니다.”

“호오. 이제야 선장 같군. 블랙홀 생성 미사일 발사 준비 완료. 모든 안전 장치 이상 무!”

“제1탄 발사.”

“제1탄 발사!”

마카는 자신이 메카닉이란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선장의 말을 그대로 되뇌며 선미에 장착된 미사일 포트를 작동시켰다.

초당 10여 발을 발사할 수 있는 이 미사일 터렛은 마카의 명령이 하달되자 약 3초 동안 30여 발의 유사 블랙홀 생성 미사일이 굉음을 울리며 발사되었다.

우우우웅-!

은빛의 긴 꼬리를 내며 발사된 이 미사일은 이벤트 호라이즌 정면 약 1000미터가량 떨어진 곳에서 푸른색의 찬란한 오오라를 일으키며 연쇄적으로 폭발했다.

폭발과 동시에 발생한 푸른색의 오로라는 서로 대전을 일으키면서, 그 영역을 빠르게 확장해 나갔다.

그리고 수초도 지나지 않아서 이벤트 호라이즌을 다 감싸고도 남을 만큼 거대하고도 검은 블랙홀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우! 저게 정말 블랙홀이구나. 살아서 직접 볼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어.”

마카는 모니터로 보이는 구 모양의 새까만 공간을 바라보았다.

빛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블랙홀의 특성상 인간의 눈으로는 그저 검은 공간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블랙홀은 인위적으로 만든 유사 블랙홀이었기 때문에 사건의 지평선도, 그리고 상식을 초월하는 중력장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 블랙홀이 가진 특성은 단 하나, 물리 세계에서 초공간으로 이어지는 게이트 역할을 할 뿐이었다.

“반경 300킬로미터 내의 공간은 모두 안정적입니다.”

침묵을 지키고 있던 아루시안이 자신의 콕핏 상단의 모니터에 표시된 차원도를 재차 확인하고 말했다.

블랙홀 내부에 형성된 특이점, 즉 초공간은 들쑥날쑥한 한여름의 날씨만큼이나 불안정했기 때문에 항주 시 주변 공간의 안정은 필수적이었다.

“유사 블랙홀 활성화 상태 확인. 중력장 발생 수치를 확인 바랍니다.”

“블랙홀 안정화 진행 중. 이벤트 호라이즌 외부 장갑 진동 저항 지수 100. 실드 정상 작동 중입니다.”

“원자로 풀가동.”

“원자로 작동, 문제 없음. 내부 핵융합 반응 이상 무!”

담담한 목소리로 명령을 마하임과 달리 마카는 신이 난 아이같이 활달한 목소리로 마하임의 명령을 되뇌었다.

이벤트 호라이즌의 핵융합 엔진은 엄청난 양의 방사능을 뿜어내며 천천히 유사 블랙홀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원래 블랙홀이란 강력한 중력장을 발생시켜 빛조차 통과할 수 없는 재앙과 같은 것이었지만, 지금 이벤트 호라이즌이 만든 저 유사 블랙홀은 그러한 블랙홀의 특성을 1만분의 1로 줄인 유사 블랙홀이었기에 이벤트 호라이즌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

“‘유사 블랙홀’과의 접촉 예상 시간 앞으로 5초.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겠습니다.”

4. 3. 2. 1. 0.

아루시안의 묵직한 목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이벤트 호라이즌은 블랙홀과 접촉했다.

파아앗-!

바로 그 순간, 초신성 폭발에 필적할 만큼의 강렬한 빛이 폭발하듯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뒤를 이어 태양계 전체에 영향을 줄 정도의 엄청난 자기 폭풍이 이벤트 호라이즌을 유린했다.

하지만 자장 중화 실드가 풀로 전개된 이벤트 호라이즌의 선체에는 조금도 타격을 주지 못했다.

“유사 블랙홀 내부로 진입합니다!”

푸르스름한 자장 중화 실드에 블랙홀의 표면의 공간 왜곡 현상이 발생하자 이벤트 호라이즌의 모습은 점점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어느 한 순간, 이벤트 호라이즌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리하여 총 탑승 인원 120여 명에 달하는 최초의 초공간 도약 외우주 탐사선, 이벤트 호라이즌은 인류 외계 탐사 역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될 항주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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