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시시각각 변화는 상황은 최악이라는 결과를 향해 지체 없이 달려가고 있었다.
마카를 비롯하여 마하임, 냉정하기로 이를 데 없는 아루시안마저도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스스로 좌표를 수정하는 미티어라니…. 지금까지 이런 예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마하임은 미연방과 적대시하는 테러 집단의 소행일까도 의심해 보았지만 그것은 저 미티어만큼이나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초공간의 존재는 극비 중의 극비. 설령 이 정보가 유출되었다 하더라도 웹6이란 속력을 초공간상에서 구현할 만한 기술력을 가진 존재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다.
“1급 비상사태 발생. 현 위치 심연…. 으악! 이건 또 뭐야!”
마카가 긴급 사태를 선포하기 직전, 한순간에 모든 선내의 컴퓨터가 정지해 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동력 전달 체계에도 무언가 이상이 생겼는지 주조종실을 밝혀 주던 조명마저도 그와 함께 빛을 잃어버렸다.
순식간에 이곳은 바로 코앞도 구별할 수 없는 암흑으로 뒤덮이고 말았다.
이에 놀란 마카는 비명을 지르며 날뛰었음은 말할 것도 없고 아루시안 역시 원인 불명의 사태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아루시안, 마카, 모든 항해 장치를 수동으로 전환합니다.”
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가장 먼저 이성을 회복한 사람은 마하임이었다.
모든 상황은 최악으로만 치닫고 있었으나, 마하임은 이미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그 예상이 너무 빨리 전개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마하임은 곧장 선장석에서 뛰어내려 칠흑같이 어두운 주조종실을 더듬어 가면서 보조 동력 장치의 강제 작동 스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원래 이 보조 동력 장치는 주동력 장치에 이상이 발생할 경우 그와 동시에 자동적으로 작동되어야 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나마도 작동하지 않았다.
부우웅.
귀에 거슬리는 전자음과 함께 멈춰 버린 컴퓨터가 하나둘씩 재부팅이 되기 시작했다. 마하임이 수동으로 보조 동력 장치를 강제로 작동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상당수의 컴퓨터와 항해 장치들이 정상적인 작동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히 초공간 항해 시 없어선 안 될 가장 중요한 초공간 항해도는 동력이 돌아오자 곧바로 복구되었다.
“회피 가능하겠습니까?”
“핵추진 엔진 작동 불능, 자세 제어 및 방향 제어 불능, 크으윽, 이벤트 호라이즌의 제어 시스템이 이렇게 허무하게 망가져 버리다니! 이건 꿈일 거야. 말도 안 돼,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우린 다 죽을 거야! 다 죽을 거란 말이다!”
마카의 절규가 처절하리만큼 이 주조종실을 가득 채우며 울려 퍼졌다. 평소 같다면 이렇게 날뛰는 마카를 아루시안이 가만히 놔두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아루시안 역시 어쩔 도리가 없었기에 그저 묵묵히 자신의 콕핏만을 지키고 있었다.
구구구구.
마카의 외침이 채 사라지기도 전.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주조종실 전체가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분명 관성 제어, 중력 제어 장치는 아직 별문제 없이 가동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듯, 이 흔들림은 순식간에 이벤트 호라이즌을 강타했다.
그나마 작동되고 있던 센서들은 이 흔들림에 의해 회백색의 스파크와 함께 영영히 빛을 잃어 버렸다.
그리고 화재 진압 시 사용되는 스프링쿨러가 일제히 가동되면서 주조종실은 일순간 물바다를 이루었다.
콰아앙-!
초공간을 뛰어넘어 통상 공간까지 진동시킬 정도의 엄청난 폭음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이 셔틀에 타고 있는 그 누구도 이 소릴 들은 사람은 없었다.
이 소리 이전에 이벤트 호라이즌은 신화 속에 나오는 거인, 타이탄에게 걷어차인 것처럼 아무렇게나 튕겨져 버렸던 것이다.
무려 10만 톤에 달하는 헤비 크루저급 우주선이 이 모양이 될 정도니 이로 인해 선내에 가해진 충격은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충격파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선 외부 장갑의 일부는 초합금 재질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형체도 없이 소멸하고 말았다.
2121년 7월 12일 오전 3시 40분.
이벤트 호라이즌은 나사의 감시 시스템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것은 앞으로 다가올 대살육을 예고하는 시작점이었다.
* * *
쏴아아
‘뭐지?’
쏴아아
‘차가워….’
쏴아
“차갑다니까!”
무언가 온몸을 감싸는 차가운 느낌…. 아무 생각 없이, 그야말로 무(無)의 공간에서 방황하던 마하임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 감각에 반사적으로 눈을 떴다.
그러나 눈을 떴다고 해서 달라 진 것은 없었다. 아니 심지어는 자신이 눈을 떴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눈을 뜬 마하임에게 보인 것은 어디가 아래고, 어디가 위인지조차 구별할 수 없는 지독한 어둠뿐이었다.
“제길! 젠장할!”
그는 신음하듯 소릴 질렀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아무것도 느낄 수도 없는 어둠….
그러나 그것은 여느 때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무어라 설명할 길은 없었지만 이 어둠에는 어둠 이상의 무엇인가가 분명히 느껴졌다.
“그, 그럴 리가! 그럴 리 없어!”
외치고 또 외쳐 보았지만 그는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음습한 기운을…. 마하임이 처음 각성하여 아카식 레코드에서 본 그 어둠, 그 참혹한 것들의 존재를!
마하임은 완전히 공포에 질려 미친 듯이 주위를 더듬었다. 그러나 그 무엇도 그의 손에는 잡히지 않았다.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어둠과 이 증오스러운 기운뿐…. 그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마하임은 느낄 수 없었다.
“정신 차려! 넌 시현류의 계승자다!”
시현류…. 그렇다. 마하임은 선계 최고의 문파인 시현류의 직계 계승자였다.
비록 운명에 떠밀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얻은 명예이긴 하지만 그 명예는 이제 하나의 의지가 되어 이 어둠으로 뒤덥힌 허수(虛數)의 공간을 헤쳐 나가게 할 힘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래…. 침착하자.”
그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 양손을 단전으로 모은 뒤 천천히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침착하라.
이것이 시현류 선술의 가장 기본이 되는 강령이었다.
그러나 어둠에 대한 공포는 아무리 극복하려 해도 그때마다 그에게 절망만을 안겨 주었다. 그러던 와중에 떠올린 것이 바로 이 ‘단전호흡’이란 것이었다.
항상 일정한 패턴 호흡을 통해 체력과 정신력을 단련하는 것이 목적인 이것은 조금은 샤머니즘적인 점도 없지 않아 있지만 나름대로의 효과는 분명히 있었다.
특히 지금과 같이 히스테리와 같은 공포를 진정시키기에는 이 방법 이상의 것이 없었다.
“들이쉬고, 내쉬고…. 그리고 한 번의 호흡 멈춤. 왜 잊었을까? 가장 기초적인 시현류의 기본 호흡법인데.”
이 단전호흡을 행하면서, 조금 전 패닉에 빠진 일이 떠오르자 마하임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단전호흡은 시현류의 기술 중 가장 기초적인 것이었기에 실제 사용할 일이 매우 드물었다.
하지만 그 기초적인 것도 잊고 공포에 떨었다는 생각을 하면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도 잠시…. 단전호흡은 그의 불규칙한 호흡을 정상적인 패턴으로 바꾸면서 붕괴 직전인 자아를 바로 잡았다.
그리고 그 안정된 호흡은 혼란스러운 마하임의 사고력을 패닉 상태에서 천천히 정상 상태로 회복시켰다.
“자아…. 우선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잠시 혼란이 있긴 했지만 기억은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주선…. 그것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억들. 초공간에서 갑자기 나타난 미티어와의 충돌. 그리고 의식을 잃기 직전까지의 기억들이 연이어 떠올랐다.
“알파센타우리로 가고 있었지. 초공간 항주식 우주선 이벤트 호라이즌…. 크흑. 머리가 아파….”
갑작스러운 두통에 마하임은 잠시 생각하는 것을 보류해야만 했다. 마치 누군가가 머리를 망치로 두들기는 듯한 고통에 그는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두통은 한동안 계속되다가 어느 순간 천천히 잦아들었다. 그리고 그 두통이 사라지자, 잊었던 기억이 하나둘씩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노운 미티어와의 충돌과 대혼란. 제길 그렇다면 비상사태잖아!”
그제야 조각난 기억들이 모조리 되살아났다.
초공간 안에서 우주선이 미티어와 충돌했다. 이것은 재앙이었다. 원래라면 우주선 자체가 박살 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아야만 했다.
그러나 마하임은 아직 살아 있었다. 이것은 기적인가? 아니면 또 다른 재앙의 시작인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삭신이 다 쑤시는군. 보통 사람이라면 분명 죽었을 거야.”
미티어와 충돌 직후의 주조종실의 상황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아루시안과 마카는 콕핏에서 튕겨 나와 주조종실 벽에 부딪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마하임은 그 혼란의 와중에서도 그들을 구하려고 해 보았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주조종실은 지구상에서 발생한 그 어떠한 지진보다 강력한 진동이 강타했던 것이다.
마하임은 그들을 구하기는커녕 이 진동에 휘말려 의식을 잃고 말았다.
“다행히 부러진 데는 없는 것 같은데…. 왜 이리 아프지?”
어느 사이에 돌아온 마하임의 감각이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하긴, 이 좁은 공간에서 그토록 강력한 충격을 받았으니 몸이 성할 리 없었다.
오히려 죽지 않은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마하임은 벽을 더듬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여기저기 타박상은 심하게 입은 것 같았지만 뼈가 부러지거나 하진 않은 것 같았다.
“동력이 완전히 나갔나? 아냐. 아직 중력이 있는 것을 보면 그건 아니고, 통상 공간으로 튕겨져 나왔다고 보는 것이 옳겠지.”
정상적인 절차는 아니었지만, 분명 유사 블랙홀은 생성됐다. 그렇다면 블랙홀의 중력에 이끌려 통상 공간으로 튕겨져 나왔음은 분명했다.
문제는 지금 이곳의 위치가 어디냐였다.
“마카 살아 있습니까? 아루시안?!”
마하임은 소리 질렀다. 마하임의 기억이 맞다면 주조종실에는 자신 말고도 마카와 아루시안이 함께 있었다.
비록 첫 충돌 때 꽤 심각한 부상을 당한 듯했지만, 그 정도로 죽을 만큼 나사의 파일럿은 약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하임이 아무리 불러 보아도 마카와 아루시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젠장. 지독하게 어둡군. 우주도 여기보단 밝겠다. 비상등이 어딘가가 있을 텐데, 그것부터 찾아야 하나? 하지만 이렇게 어두워서야…. 고생 좀 해야겠군.”
마하임의 밤눈은 결코 어둡지 않았다. 게다가 마하임은 이미 인간이라는 클래스를 벗어난 신선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하지만 미크로 단위의 광자(光子)조차 찾아보기 힘든 이런 곳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멍하니 있을 수 없는 일. 마하임은 오로지 손끝의 감각을 의지해 벽을 더듬어 갔다.
“이상해…. 여기 주조종실 맞나? 지나치게 넓어.”
볼 수는 없었지만 느낄 수는 있었다. 주조종실은 생각보다 좁다. 하지만 이곳의 넓이는 주조종실의 2배는 되어 보였다.
뭔가 확실히 이상했지만, 지금은 그런 데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마하임은 온 신경을 집중해 벽을 더듬을 뿐이었다.
“찾았다!”
한참을 어둠 속에서 헤매던 마하임은 이곳의 구석진 곳 바닥에서 비상등이라 생각되는 둥그스름한 물체를 찾아낼 수 있었다.
아마도 처음의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진 듯했다.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부서졌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마하임은 내심 걱정이 됐지만, 다행히 비상등을 작동시키자 정상 작동을 알리는 새하얀 빛이 쏟아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