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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133화 (133/194)

133화

퉁 퉁 퉁.

지독하리만큼 고요한 적막 속에서 들려온 이 둔탁한 소리는 마하임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가뜩이나 긴장하고 있었던 마하임은 자신도 모르게 쥐고 있던 초진동 나이프의 스위치를 눌렀다.

부드러운 진동음과 더불어 어느 사이엔가 허리띠로 변해 있던 초진동 나이프는 검의 형상으로 순식간에 변형되었다.

“저곳은 화장실 방향인데? 뭐지.”

마하임은 이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조심스럽게 몸을 돌렸다. 마치 금속 통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는 조금은 불규칙적이었지만 연이어 들려왔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그는 이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남자 화장실인가? 나 같은 녀석이 한 명 더 있나 보군.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대충 상황을 파악한 마하임은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왔다.

아마도 그 자신처럼 영문도 모른 채 화장실에 처박혀 버린, 운이 좋다면 좋고 나쁘다면 나쁜 그런 사람일 터였다.

마하임은 그제야 여유가 생긴 모양인지 쥐고 있던 초진동 나이프를 조금은 느슨하게 쥐었다.

“이봐. 문에서 비켜, 문을 부술 테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부수는 것이 아니라 분해한다고 말하는 것이 옳았다. 뭐 결과는 같으니까 상관없겠지만 말이다.

마하임은 가벼운 걸음으로 그 자신이 빠져나온 화장실 바로 옆의 남자 화장실로 다가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런 후 마하임은 양손으로 초진동 나이프를 잡고서는 천천히 남자 화장실의 금속제 문에 가져다 댔다.

나이프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초진동은 곧이어 문을 이루고 있는 원자들 간의 고유 진동을 붕괴시키며 빠른 속도로 허물어져 갔다.

문이 완전히 무너진 것을 확인한 마하임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아무도 없는 듯했지만 안으로 채 몇 걸음도 옮기기 전에 마하임은 그곳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거기 누구?”

곧바로 인기척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플래시를 비춘 마하임은 자그마한 키의 꼬마를 한 명 발견했다.

1미터를 겨우 넘기는 작은 키에 말끔하고 호감이 가는 얼굴의 남자애였다.

“괜찮아? 그런데 너 같은 꼬마가 왜 여기에….”

마하임은 최대한 상냥한 표정을 지으며 꼬마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꼬마는 정말 놀라울 정도의 순발력으로 마하임에게서 벗어났다. 그리고 구석에 웅크린 채로 입을 열었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랏.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꼬마야, 그건 내가 더 알고 싶어. 어쨌든 여기서 벗어나자. 지금 이곳은 매우 위험한 듯하니까.”

“난 꼬마 아냐. 그리고 네 정체부터 밝혀라! 어서!”

“정체라. 난 이 배의 선장인 마하임이다. 왜 이곳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헉! 저, 정말? 이 배의 선장인 거야?”

꼬마의 물음에 마하임은 고개를 끄덕였다. 꼬마는 마하임이 지금 입고 있는 옷을 위아래로 찬찬히 훑어보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믿을 수 없어. 지금 같은 비상사태 때 왜 선장이 여기에 있는 거지?”

“나도 몰라. 지금 그 이유를 찾고 있는 중이야.”

“거짓말! 너처럼 어린놈이 이런 중요한 임무를 맡은 우주선의 선장이라니, 믿을 수 없어!”

날 선 꼬마의 목소리가 이 싸늘한 공간을 울렸다.

꼬마의 말에 순간 발끈한 마하임은 성큼성큼 다가가 자신의 키에 절반도 못 되는 꼬마의 멱살을 잡고선 번쩍 들어 올렸다.

꼬마는 도망치려는 생각조차도 해 보지 못하고 꼼짝없이 마하임의 손에 붙들리고 말았다.

“그런 넌 누구지? 네 정체부터 밝혀라! 이 우주선에 어린애가 탔다는 정보는 들은 적 없다.”

그것은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이벤트 호라이즌은 관광용 여객선이 아니었다. 그 존재 자체가 극비인 이 우주선에 어린애라니, 만약 어린애가 탑승했다면 선장인 마하임이 모를 리 없었다.

“으으…. 으아앙!”

꼬마는 갑자기 울먹거리더니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마하임은 당황해 꼬마를 바닥에 다시 내려놓았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10살을 막 넘긴 꼬마의 멱살을 잡아 허공에 매달다니, 마하임 자신이 생각해도 과한 대응이었다.

게다가 긴장한 나머지 살기마저 마구잡이로 뿜어댔으니 울음을 터트리는 것은 당연했다.

난처한 듯 인상을 찡그린 마하임은 몸을 구부리고 꼬마를 달래기 시작했다.

“그만…. 착하지? 울지 마. 지금 비상사태라구. 내가 다 잘못했으니 그만 울어.”

“으아아앙.”

마하임은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꼬마는 마하임이 달래든 말든 목청이 터져라 울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 다루는 것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그로서는 정말 난감한 일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의 막내로 귀여움만을 받아 온 마하임인지라 아이를 다뤄 본 일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가사일보다도 검을 들고 산이나 들로 쏘다니는 것을 더 좋아한 그였기에 더욱이 이런 것에는 자신이 없었다.

“아악! 어떻게 하면 그만 울겠어? 내가 자결이라도 하리?”

생각 같아서는 다시는 울고 싶지 않을 정도로 이 꼬맹이를 두들겨 놓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이랬든 저랬든 마하임은 선장이었고, 어린애를 때릴 만큼 상식이 없지는 않았다.

“훌쩍…. 저기 신분증 좀 볼 수 있을까요?”

“응?”

마하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방금 전까지 목이 터져라 울고 있던 꼬마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 왔던 것이었다. 그것도 반말이 아닌 존댓말로 말이다.

“아, 그래. 울지만 않는다면야. 자, 여기 신분증.”

마하임은 손에 차고 있던 건틀릿에서 자신의 신분증을 끄집어냈다.

일반적으로 건틀릿 하면 파워드 슈트를 입을 때나 사용하는 거지만 마하임이 가지고 있는 이것은 용도가 조금은 달랐다.

기본적으로는 손을 보호한다는 점에서 같았지만 이 건틀릿은 초진동을 중화시켜 주는 역할을 했다.

초진동은 모든 물질을 붕괴시키는 역할을 했으므로 생명체라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때문에 초진동 나이프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런 중장갑이 필요했다.

하지만 말이 중장갑이지, 이 건틀릿은 보기에는 여느 가죽 장갑과 별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기능성 면도 이 건틀릿은 정말 뛰어났다.

조금 무거운 것이 옥에 티였지만 부드럽게 감싸 주는 손목 보호대, 그리고 손가락의 움직임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만들어진 인체 공학적 설계는 마하임이 착용해 온 그 어떠한 건틀릿보다 뛰어난 것이었다.

“와…. 정말 선장님이었어. 역시 그 옷은 선장 전용 슈트였네.”

“그러게, 내가 선장이라고 했잖아.”

“그치만 이렇게 어린 선장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거든요.”

“오호 꼬맹이치곤 꽤 많이 알고 있는데…. 그래 맞아. 이전에는 없었지. 하지만 이젠 있어. 내가 첫 번째거든.”

마하임의 말을 들은 꼬마는 여전히 믿기는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신분증에 적혀 있는 내용은 아무리 보아도 사실인 듯했다.

마하임이 건네준 신분증의 회색빛 표면에는 분명히 나사 마크가 찍혀 있었고, 이벤트 호라이즌 선장 ‘마하임 대령’이라는 각인이 선명히 찍혀 있었다.

나사의 신분증은 특수 재질에다 레이저로 표면에 3차원적 구조로 글자를 새겨 넣기 때문에 위조라는 것이 일체 불가능했다.

즉 마하임이 진짜 이 우주선의 선장이라는 말이었다.

“하아. 이제 됐지? 그럼 네 이름부터 가르쳐 줄래? 언제까지나 꼬마라고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내 이름은, 호운….”

퉁 퉁 퉁.

그러나 호운은 체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때마침 들려온 이 둔탁한 소리가 둘의 대화를 가로막았던 것이다.

잘은 알 수는 없었지만 이 소리의 진원지는 호운이 방금 빠져나온 남자 화장실 바로 위인 것 같았다.

“저기 말이지, 저 소리…. 네가 낸 게 아니었어?”

소리는 점점 크게 들려왔다. 처음에는 간혹 그칠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리는 가까워졌고 또한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요. 저 정도 소리가 날 정도로 벽을 두들긴다면 손이 으스러져 버릴걸요?”

“그럼 뭐지? 저 소린….”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마하임은 어느 사이인가 본래의 모양으로 돌아가 있는 초진동 나이프를 깨웠다

“예감이 좋지 않아. 할 수 없지. 아직 익숙하진 않지만…. 초진동 나이프 기동.”

부우웅

흐느적거리는 끈으로 변해 있는 마하임의 허리띠는 즉시 굳어지면서 검의 형태로 모습을 바꾸었다.

중력에 이끌려 바닥에 닿아 있던 나이프는 초진동이 발생하기가 무섭게 바닥의 일부를 증발시켜 버렸다.

마하임이 재빨리 검을 위로 들어 올렸으니 망정이지, 단 몇 초만 지속되었으면 바닥은 급격한 물질 붕괴 현상에 의해 통째로 증발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우아악, 뭐예요? 그 검은. 방금 건 물질 붕괴 현상인데. 설마 초진동 나이프?”

“그러는 넌 정체가 뭐지? 초진동 나이프는 기밀이라고.”

쿵 쿠아아앙.

“젠장 또 뭐야!”

점점 커지던 소리는 남자 화장실을 중심으로 터지듯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단순한 소리인 듯했지만 그 소리 속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일순간에 화장실 안을 갈가리 찢어 버리고 밖으로 단번에 뚫고 나왔다.

“없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화장실 안에서 무언가 튀어나왔지만 그곳에는 텅 빈 허공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곳에는 분명 무언가가 있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마하임은 온몸으로 이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끈적끈적한 살기를 폭풍과 같이 뿜어내는 무언가의 존재를….

“비켜! 꼬맹이. 안드로이드다.”

마하임은 긴장감에 숨이 탁탁 막히는 것 같았다. 녀석이 뿜어내는 살기도 살기지만, 이 존재의 힘은 정말 경악할 수준이었다.

우주선 내부의 재질은 최소한 티탄 합금과 같은 경도 10 이상을 자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보이지 않는 존재는 그것을 마치 종잇장 찢듯이 너무나 가볍게 찢어 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마하임은 이것을 보고서도 크게 동요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이 존재가 무엇인지 대충은 짐작이 갔기 때문이었다.

만약 저것이 최신의 전투용 안드로이드라면 모든 것이 설명이 가능한 것이었다.

최첨단 과학의 집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안드로이드는 원래 우주 개발용으로 만들어진 무인 탐사 로봇의 총칭이었다.

하지만 이것의 뛰어난 신뢰성과 범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용도는 다양해져 갔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간단히는 가정용 안드로이드로부터 시작해서, 복잡하게는 테라포밍용 안드로이드까지 그 종류만 해도 수백이 넘고 있었다.

그러나 미연방은 이 안드로이드를 단 한 가지 용도로는 절대 사용할 수 없도록 엄격히 규제하고 있었다.

그 한 가지 용도란 바로 전투용으로서의 안드로이드였다.

만들기만 한다면 기존의 전투 양상을 완전 뒤엎을 정도의 혁명적인 것이 되겠지만, 연방 정부는 ‘전쟁은 사람만으로도 충분하다’라는 주장을 되풀이하며, 전투용 안드로이드는 설계조차도 금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요가 있으면 공급도 있는 법.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표방하는 연방으로서는 전투용 안드로이드의 유통을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었다.

전투용 안드로이드 한 대면 웬만한 기계화 보병 1개 소대보다 뛰어난 위력을 발휘했으니 무리도 아닌 것이다.

이러다 보니 연방법상 금지된 것이라도 비밀리에 건조된 전투용 안드로이드는 얼마든지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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