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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134화 (134/194)

134화

“게다가 시공간 왜곡…! 제길!”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일부 불법으로 유통되는 안드로이드 중에 시공간 왜곡 장치를 이용해 빛을 굴절시켜 자신의 모습을 감출 수 있는 녀석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들은 거의 모든 감지 장치로 찾아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기동성을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한 번도 집적 보지는 못했지만, 마하임은 한눈에 이것이 소문으로만 듣던 그 전투용 안드로이드라고 단정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질 순 없지! 이래 봬도 난 선계의 신선이라고.”

마하임은 온 신경을 집중했다. 전투용 안드로이드는 주력 전차와 싸워도 밀리지 않을 만큼 강했다.

맨몸으로 안드로이드와의 정면 승부는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었지만 그에게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하임은 어려서부터 신선으로 키워졌고, 시현류의 선술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에게는 초진동 나이프가 있었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안드로이드라고 할지라도 초진동 병기 앞에서는 별 의미가 없었다.

초진동은 말 그대로 원자 단위의 진동을 통해 물질 붕괴를 초래했기에, 정확히 공격만 들어간다면 일격으로도 안드로이드를 제압이 가능했다.

물론 그 일격을 어떻게 가하느냐가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스르르륵-

미동도 없이 허공을 노려보던 마하임은 무언가 이상한 것을 목격했다.

그것은 마치 공간 자체가 출렁인 것 같은 정말 기묘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놀라운 속도로 마하임이 서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극도로 예민해진 오감은 무언가 강력한 존재의 공격을 예고하고 있었다.

망설일 여유는 없었다. 움직여야 했다. 그리고 마하임은 움직였다.

“크흑!”

뒤로 한껏 도약한 마하임의 귓가에서 등골이 서늘할 정도의 공기의 흐름이 느껴졌다. 그의 볼에서 순간적으로 상당한 양의 피가 스며져 나왔다.

확실히 피했다고 생각했지만, 볼에 약간 스친 것 같았다. 스친 것만으로도 이 정도인데, 만약 직격을 당했다면 이 일격만으로도 마하임은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을 터였다.

마하임은 순간 움찔했지만 반격하려면 지금뿐이었다.

그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발이 채 바닥에도 닿기 전에 초진동 나이프를 녀석의 본체가 있으리라 생각되는 곳으로 던져 넣었다.

쿠에에에엑!

예상치 못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은 비명 소리. 분명 살아 있는 생명체의 비명 소리였다.

그리고 그것이 생명체라고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점액질의 형광빛 액체가 초진동 나이프 중심으로 터지듯 흘러나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서 뿜어져 나온 것이라 적지 않게 위화감이 느껴졌지만, 그곳에는 분명 무엇인가가 존재했다.

마하임은 초진동 나이프가 확실히 박혔다는 느낌이 들자 곧바로 몸을 날려 몸을 피했다.

만약 이 존재가 생명체라면 고통에 못 이겨 발작에 가까운 공격을 퍼부을 듯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예상은 또다시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허공에서 뿜어져 나오던 액체는 이내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얼마 안 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이 기분 나쁜 액체의 원천이라고 생각되는 곳에 박혀 있던 초진동 나이프도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맙소사! 뭐야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텅 빈 통로 구석에서 떨고 있던 호운은 울부짖듯이 외쳤다. 하지만 마하임은 아무 말 없이 바닥에 떨어진 초진동 나이프를 주워 들 뿐이었다.

그의 손에서 벗어난 것을 감지한 초진동 나이프는 이미 본래의 허리띠의 형태로 돌아가 있었다.

마하임은 묵묵히 그것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안드로이드가 아니었어. 후후, 재밌군. 정말 재미있어. 후후후, 하하하하!”

마하임은 갑자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일반적인 웃음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호운은 이런 마하임의 모습에 온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발광석의 희미한 불빛 아래서 울려 퍼지는 마하임의 웃음소리는 그야말로 영혼마저 얼려 버릴 듯한 차가움이 깃들어 있었다.

호운은 생각했다. 어쩌면 방금 여기를 습격한 그 존재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바로 저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 * *

AD2121년 7월 12일. 04시 20분. 이벤트 호라이즌 기능 정지 후 40분 뒤.

누군가가 시전한 라이트닝(Lightning) 마법의 희미한 불빛 아래 드러난 이곳은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였다.

이벤트 호라이즌의 중앙 부분에 위치한 객실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피해가 적은 곳이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피해일 뿐이었다.

첫 충격으로 이 구역의 승객 중 절반에 해당하는 20명 정도가 자신의 좌석 사이에 끼어 압사당하거나 혹은 충격에 견디다 못한 좌석과 함께 맞은편 벽으로 날아가 버렸다.

몇 운 좋은 사람은 팔이나 다리가 한두 개 정도 날아가 버리는 것으로 끝났지만, 그 외의 대부분 사람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삶을 마쳐야만 했다.

“만능의 힘 마나, 그 목적 없는 광대한 힘이여. 지금 그대 힘을 바라는 자 여기 있으니, 찬란한 밝음으로 나에게 답하라. 라이트닝!”

아찔한 두통을 동반한 현기증. 이것은 마법을 시전할 때라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느끼는 고통이었다.

하지만 지금 마법을 시전하고 있는 그는 평소의 고통보다 몇 배나 더 심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이마에는 5cm는 족히 되어 보이는 날카로운 창상 자국에서 피가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법이란 우주에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는 미지의 가변성 에너지, ‘마나(mana)’에 자신의 생명력을 촉매로 하여 일으키는 이적이었다.

그 때문에 시전자가 다치거나 생명력이 약해지면 사용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제대로 서 있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극심한 현기증이 그를 괴롭혔지만 그는 마법의 시전을 멈출 수 없었다.

원래 마법 사용은 민간인 앞에서는 금지된 일이었지만, 그가 지금 마법 시전을 멈추어 버리면 이곳은 또다시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여 버릴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제 겨우 시작한 생존자들의 구조 작업은 물론,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사람들마저 또다시 히스테리에 빠질 것이 분명했다.

“라르고 님, 이제 좀 쉬세요. 라이트닝은 저 정도면 충분할 거예요.”

마법 시전에 열중하고 있는 그에게 누군가가 다가와 말했다. 그러고는 수건으로 보이는 것으로 그의 땀과 피로 얼룩진 얼굴을 닦아 주었다.

마법사는 굳이 눈을 돌리지 않고도 자신에게 이런 친절을 베푼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절망과 광기로 가득 찬 죽음의 공간에서 유일하게 따스한 이성을 지닌 자는 이 사람뿐이었다.

“감사합니다, 루시 님. 하지만 저쪽에 하나는 더 라이트닝을 띄워야 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더는 무리예요. 더 이상의 마법 시전은 생명에 지장을 줄지도….”

“제가 원해서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 1클래스 마법 따위를 좀 남발했다고 스러진다면, 그야말로 수치입니다.”

마법사 라르고는 자신을 염려해 주는 루시가 고마웠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지금은 멈출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설령 마법을 시전을 하다가 죽더라도 말이다.

라르고 그는 마법사 길드 ‘빛의 탑’의 수석 마법사였다. 빛의 탑은 전설적인 기사왕, 아더 왕의 마법사 멀린을 시초로 하는 마법사 집단이었다.

그들은 현세에 개입하지 않고 아공간 아발론에서 마법 연구에만 전념했기에 그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매우 적었다.

그렇게 수천 년을 역사의 그림자 뒤에서 살아오던 그들에게 몇 년 전 신탁이 내려왔다.

어둠의 때가 도래하리니, 심연의 구멍 속에 잠들어 있는 용, ‘레비아탄’이 지옥의 경계를 넘어 현세에 강림하리라.

레비아탄은 약속된 죽음으로 이 땅을 지옥으로 오염시키리니, 절망만이 세상을 가득 채우리라.

허나 때와 기한이 차면, 아발론에 잠든 아서가 다시 엑스칼리버를 들지니…. 인류 최후의 전쟁이 시작되리라.

천 년 이상 신탁이 없는 상황에서 뜬금없이 내려온 이 신탁 때문에 빛의 탑의 마법사들은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이 신탁은 인류 최후의 전쟁, 성경에서 말하는 하르마게돈 전쟁을 언급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현세와 등지고 살던 그들이었지만, 레비아탄의 지구 강림을 두고만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예언을 철저히 해석하고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아낸 것은 멸망의 용 ‘레비아탄’의 서식지가 블랙홀 속 초공간이라는 결과를 도출했다.

이에 빛의 탑은 나사에서 진행 중인 유사 블랙홀을 통한 초공간 항법이 적용된 외우주 탐사용 이벤트 호라이즌을 주시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혹시나 모를 레비아탄과의 조우를 대비해, 수석 마법사인 라르고를 나사에 잠입시켜 이벤트 호라이즌에 탑승시켰다.

“이제야 한숨을 돌리겠네요.”

루시는 이제 조금씩 수습되어 가는 객실 안의 상황을 살피며 말했다.

그녀는 나이는 좀 어렸지만, 전쟁의 신 ‘릴루’의 사제였다.

릴루교는 빛의 탑만큼이나 보수적이며 폐쇄적인 교단이었기에 그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특히 릴루교는 여성 사제만 선택했기 때문에 금남의 종교라고 불렸다.

이토록 패쇄적이고 독특한 종교였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최근에 폭발적으로 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여기에 있는 성녀 ‘루시’의 존재 때문이었다.

“네, 루시 님. 루시 님이 아니었다면, 우린 모두 광기에 휩싸여 죽었을 겁니다.”

“아닙니다. 전 별로 한 게 없어요.”

씁쓸히 미소를 짓는 루시. 그녀 역시 라르고와 마찬가지로 레비아탄의 강림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릴루교에서 파견된 성직자였다.

릴루교단에도 빛의 탑에 전해진 신탁과 똑같은 신탁이 내려왔다. 이 때문에 루시가 의사 신분으로 위장하여 이벤트 호라이즌에 타게 된 것이다.

비록 지금은 눈이 다쳐 앞은 볼 수 없었지만, 그녀에게서 풍겨 오는 사제다운 면모와 박력은 이 모든 것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어쨌건 라르고와 루시는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랜 친구처럼 가까워졌다.

그도 그럴 것이 성직자와 마법사는 그 성향이 유사했고, 이 둘이 이벤트 호라이즌을 탄 목적마저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둘은 이벤트 호라이즌이 미티어와 충돌하기 직전까지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이들의 대화는 그리 정상적으로 끝날 수 없었다. 곧이어 닥쳐온 폭풍과 같은 시련이 그들이 타고 있는 이벤트 호라이즌을 마구 뒤흔들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럽게 엄습한 정전으로 시작된 이 시련은, 뒤이어 닥친 엄청난 충격으로 말미암아 객실 전체를 완전히 뒤엎어 버렸다.

라르고와 루시는 그나마 객실의 하단부에 타고 있었기에 충격을 덜 받았지만 상단부와 중단에 타고 있던 사람은 이 충격을 고스란히 다 받아야만 했다.

우주선이 미티어와 충돌 직후, 충격을 견디다 못한 객실의 상단과 중단 부위의 좌석들은 승객들과 함께 순식간에 공중으로 튕겨졌다.

조밀하게 밀집된 좌석의 일부는 승객들과 함께 마구 뒤엉켜 버렸는가 하면 심한 곳은 좌석의 상단부와 하단부가 절단되어 완전히 두 동강 나 버린 곳도 있었다.

좌석이 이 모양이 될 정도였으니 승객들이 온전하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좌석과 함께 허공으로 튕겨 오른 일부 사람들은 그대로 천정과 충돌하였고, 이로 인해 그들의 몸은 처참히 부서졌다.

시신의 일부는 부딪힐 때의 압력으로 인해 천정에 그대로 남아 그야말로 ‘지옥도(地獄道)’ 아닌 지옥도가 연출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 지옥도를 연출한 살과 핏덩이들의 나머지는 혈우(血雨)로 변하여 객실 내부에 그대로 쏟아져 내렸던 것이다.

다행히도 선내는 모두 정전 상태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승객들이 이것을 보지 못했기 망정이지, 만약 보았다면 쇼크로 죽기 딱 알맞은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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