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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136화 (136/194)

136화

그녀의 노래는 또다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연속되는 성력소비는 곧 육체적인 대미지로 이어졌다.

마법과는 달리 신성력을 사용할 때는 생명 에너지는 소비하지 않지만 그 대신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일개 성직자가 하루에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1시간이 채 되지 못했다.

더군다나 그가 부르고 있는 희망의 노래는 하이 프리스트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고급 신성력이었다.

그런 것을 성직자로 임명된 지 8개월이 채 못 되는 루시가 사용하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이미 체력이 한계에 다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목도 이제 갈 데로 가 버려서 말 한마디 하기가 두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루시는 또다시 노래를 불렀다. 자신의 몸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만 있다면, 이들의 고통을 잠시 남아 줄여줄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루시는 목숨을 걸 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루시의 낭낭한 목소리는 죽음으로 가득한 이 공간에서 ‘희망’으로 변해 또다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가 부른 노래는 전투의 신 ‘릴루’가 내린 신성력 중에서 최고의 라 일컬어지는 것이니 만큼 그 효능은 정말 탁월했다.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들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평안을 누릴 수 있었다.

원래 이 희망의 노래는 전투 시 아군의 사기를 진작시키며 죽음의 공포를 없애기 위한 신성력이었지만, 의외로 지금 이러한 상황에서 너무나 잘 어울렸다.

하지만 생각해 본다면 당연한 일일지도…. 지금 이들은 죽음과 공포란 적과 처절히 싸우고 있는 너무나 나약한 병사들이었으니 말이다.

“쿨럭. 쿨럭쿨럭. 크윽.”

영원히 울려 퍼질 것만 같은 루시의 노랫말은 그녀의 갑작스러운 기침 소리와 함께 중단되었다. 그리고 그 기침 속에는 검붉은 피가 잔뜩 묻어나 있었다.

루시의 의지는 아직도 활활 타오르고 있었지만, 그의 육체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이미 한계를 넘어선 루시의 육체는 이미 쇼크 직전의 상황까지 몰려 있었던 것이다.

노래가 멈추기가 무섭게 루시는 무너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특별히 먹은 것도 없지만 뒤이어 찾아온 극심한 구역질로 인해 호흡마저 곤란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점점 루시의 의식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아직 쓰러져서는 안 돼.’라고 루시의 이성은 끊임없이 자신의 육체를 채찍질했지만, 그의 몸은 그저 차갑게 식어만 갈 뿐이었다.

“정신 차리십시오, 루시 님. 루시 님!”

루시의 희미해져 가는 의식 사이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 듣기 좋은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이 목소리에는 나름대로의 연륜과 인자함이 느껴지는 그런 목소리였다.

그녀가 기억하기로는 이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라르고…. 비록 첫인상은 그리 좋지 못했지만,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누어 본 결과 의외로 좋은 사람이라고 루시는 생각했다.

자신을 그저 이름 없는 마법사 정도로만 소개한 라르고였지만, 그의 연륜과 마법을 다루는 능력을 볼 때 상당한 수준의 마법사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녀가 알고 있기로는 마법사들은 깊은 상처를 입거나 위급한 순간을 만나면 당황해서 마나의 제어에 실패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라르고는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서도 단 한 번도 마법의 시전에 실패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지금 이곳에 그가 띄워 놓은 라이트닝 마법만 해도 6개….

초급 마법사라면 이틀은 꼬박 걸려야 사용할 수 있는 분량이었다. 하지만 라르고는 이 분량을 단 몇십 분 만에 이곳에 퍼부었던 것이다.

“안 되겠군,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해 보는 거다.”

한눈에 루시가 위급하다고 판단한 라르고는 즉시 마나를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비록 치료 계열 마법은 자신의 전공이 아니었지만, 이렇다 할 진통제도 하나 없는 상황에서는 이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만능의 힘 마나 그 목적 없는 강대한 힘이여. 지금 그대 힘을 바라는 자 있으니 그 영혼을 정케 하는 능으로 지금 여기에 화하라, 홀리 마인드!(Holy Mind)”

사실 이 마법 역시 치료 계열은 아니었다. 굳이 따진다면 정신 계열 마법이라 할 수 있겠다.

원래 마법이란 것은 생명과 반대되는 성향이 강했기 때문에 마법으로서 상처를 치료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가 소속되어 있는 빛의 탑의 3천여 명의 마법들 중에서도 치료 계열의 마법사는 100명도 채 되지 못했다.

그리고 이 치료 계열 마법사들은 공격 계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단점까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치료 계열 마법사의 수가 적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라르고가 재구성한 마나는 미세한 입자가 되어 마하임의 몸속에 순식간에 흡수되었다.

그 마나의 입자 하나하나는 그의 뭉친 근육들과 비정상적인 호흡을 바로잡으며 루시의 몸 전체로 퍼져 나갔다.

피로에 지칠 대로 지쳐 있던 루시는 이 마법의 효과를 즉시 체험할 수 있었다.

무언가 상쾌한 느낌이 라르고의 스펠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온몸을 두들겼다. 그것은 마치 시원한 물로 샤워를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비록 체력의 완전 회복 정도는 아니었지만 약간의 피로 회복과 아득해져만 가는 의식을 한순간에 회복시켜 주었다.

“겨우 살 것 같군요. 감사해요. 라르고 님….”

루시는 천천히 안정을 되찾아 가는 자신의 호흡을 느끼며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몸에서는 끊임없이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몸은 거동이 어려울 정도로 탈진한 상황이었다.

“더 이상의 노래는 제가 허락지 못합니다. 우선은 체력을 회복하셔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는 저 사람들을 구하는 건 물론하며 루시 님의 생명조차 잃게 됩니다.

자중하십시오, 루시 님. 지금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루시 님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느껴지지 않습니까? 사람들의 마음들이….

그런 루시 님이 무슨 일을 당한다면 저들은 말할 수 없는 절망에 빠질 것입니다. 부디, 부디 자중해 주십시오.”

라르고의 간곡한 어조의 말에 루시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 누운 상태로 주변을 바라보았다.

그의 주변에는 생존자들과 중상자들이 하나같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 그의 존재는 이미 이곳 사람들에게 희망이라는 의미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들은 루시의 말이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정도로 잘 따랐으며, 마치 신을 대하는 것처럼 그에게 극진히 대해 주었다.

이런 그들의 대우에 루시는 얼굴이 다 화끈거릴 정도였다. 만약 그들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루시에게 호응하지 않았더라면, 그나마 살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조차도 구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여러분, 전 괜찮으니 어서 구조 작업 진행해 주세요. 지금도 사람들은 죽어 가고 있답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비록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우리는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살아만 있다면…. 반드시, 반드시 무언가 방법이 있을 거예요. 모두 힘을 내세요.

신의 가호는 스스로 노력하는 자, 자신의 사명을 성실히 이행하는 자에게 내리는 것입니다. 하늘의 평화가 그대들과 함께하기를….”

그의 기도와 같은 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화답했다.

이것은 원래 시작의 빛을 섬기는 릴루교의 인사법이었지만 너무나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자주 쓰이는 인사법이었다.

그들은 루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행 중인 구조 작업에 모두 복귀했다.

라르고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다시금 루시의 신성력에 혀를 내둘렀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짐승과 다름없는 폭도에 불과했다. 그런 이들을 루시는 한순간에 진정 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들로 하여금 구조 작업에 참여토록 만든 것이다.

마법으로는 꿈도 꿀 수 없는 정말 기적과 같은 능력이었다.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자, 마셔. 물이다. 얼마 없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거야.”

눈만 놔두고 얼굴 전체를 붕대로 감싸고 있는 나이 든 아저씨 한 명이 루시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의식을 잃고 있다가 약 10여 분 전에 겨우 의식을 회복한 사람이었다.

“가, 감사해요. 하지만 아저씨도 물을 마셔야….”

“신경 쓰지 말라고. 어서 마시고 힘이나 내. 그게 날 위하는 거다.”

“예…. 그럼, 감사히 먹겠어요.”

루시는 이름 모를 아저씨가 건네준 투명한 재질의 물통을 받아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얼마 쥐고 있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손이 떨려 물건을 제대로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을 본 라르고는 떨어진 물통을 주워 들어 루시의 입에 가져다 댔다.

“마시세요. 루시 님.”

“하아, 아기가 된 기분이네요.”

“아기라…. 그러고 보니 고향에 손자들이 생각나는군요. 지금쯤 루시 님만큼이나 컸을 텐데.”

“후우, 부럽군요. 우리 릴루교도의 신관은 결혼을 할 수 없거든요.”

“하하, 부러울 것 없습니다. 얼마나 사고를 쳐 대는지….”

라르고는 고향에 있는 자신의 아들이 갑자기 생각났다.

그는 자신의 아들도 자신과 같은 마법사로 키우려고 했지만, 아들은 그런 자신의 기대와는 달리 경찰관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거기에 한술 더 떠서 불법 이민자를 단속하다 구출된 이국 여자와 결혼까지 한다는 것이었다.

라르고는 아들의 이러한 아들의 결정에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아무리 사랑은 국경을 뛰어넘는다고 하지만 아무런 배경도 없는 불법 이민자와 결혼을 한다니…. 라르고는 억장이 무너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동거 아닌 동거를 하는 아들과 그 여성을 언제까지 박대만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 라르고는 아들의 이러한 결정을 승낙하고야 만 것이다.

“후우, 어쨌든 저도 좀 지치네요. 루시 님이 어느 정도 회복할 때까지 쉬어야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저도 좀 쉬다가 다시 노래를 불러야 할 테니까요.”

둘 사이에는 잠시 정적이 찾아 들었다.

30여 명의 생존자들은 여전히 좌석 사이에 끼어 있는 승객들을 구조한다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만약 처음의 그 폭동만 없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생존했을 텐데, 하는 생각에 루시는 아직도 마음이 무거웠다.

“과연 저들 중 몇 명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글쎄요. 구출한다 하더라도 치료할 방법이 없으니…. 어쩌다 이벤트 호라이즌이 이 꼴이 되어 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답답한 노릇이군요. 언제까지 구조만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라르고는 머리를 감싸 쥐며 말했다. 구조를 기다린다는 명목으로 이렇게 죽치고 앉아 있긴 하지만 사실 그 구조라는 것이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다른 구역으로 간다는 것은 사실상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선내의 거의 모든 전자 기기가 마비된 지금 다른 구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던 것이다.

만약 이곳처럼 폭동이라도 일어났다면, 사태는 말할 수 없이 심각해진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도 더 신경 쓰이는 일이 있습니다. 저는 아직 성직자로서의 경험이 별로 없어서 잘은 느낄 수 없지만 지금 이 객실의 위 구역과 아래 구역 할 것 없이 무언가 기분 나쁜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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