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녀석은 마치 뱀의 몸통을 연상시키는 긴 하반신을 이용해 좌우로 꿈틀대며 빠르고, 그러면서도 부드럽게 주위를 헤집고 돌아다녔다.
그러나 이 정도는 놀라운 것 축에도 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런 종류의 생명체는 지구에도 얼마든지 존재했으니 말이다.
문제는 이 녀석의 머리와 팔이라고 생각되는 기다란 2개의 촉수, 그리고 완전 투명에 가까운 피부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 존재의 머리….
이것의 머리는 비정상적으로 거대했다. 머리에 비한다면 그 아래의 몸통은 왜소하게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머리에는 의례 달려 있어야 할 눈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이 머리에 있는 것이라고는 머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거대한 입뿐이었다.
이 입에는 마치 상어의 치아를 연상시킬 정도의 날카로운 이가 톱니처럼 들어차 있었다.
이것은 곧 녀석이 육식성이며…. 또한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었다.
“이, 이리로 온다!”
이미 재가 되어 버린 시체를 헤집던 이 몬스터는 그것에 흥미를 잃었는지 라르고가 있는 쪽으로 그 큰 머리를 돌렸다.
라르고는 몬스터의 이러한 행동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이성으로는 제어가 불가능한 본능적인 공포였던 것이다.
이 몬스터는 새로운 희생양을 라르고와 루시로 결정한 모양인지 천천히 몸을 틀었다.
그 녀석의 몸에는 아직도 파이어 볼의 불길이 이글거리고 있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움직임이 멈추는 그 순간, 녀석은 마치 쏘아진 화살처럼 빠르게 라르고와 루시에게로 다가왔다.
“만능…. 제기랄. 마나실드!”
스펠을 외울 시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되든 안 되든 라르고는 강제로 마나를 재구성했다.
스펠이란 마나를 안정시키기 위한 일종의 닷 같은 것이었다.
마나란 매우 불안정하며 시전자의 생명을 일순간 앗아갈 정도로 치명적인 것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이를 안정시키기 위해 언력을 통한 마나의 재구성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스펠이었다.
스펠의 영창 없이 마법을 사용한 라르고는 온몸이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그는 이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마나의 재구성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지금 멈춘다면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으므로….
파지지직.
라르고의 몸을 기준으로 둥글게 형성된 반투명한 마나실드는 저 끔찍한 존재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가로막았다.
녀석의 채찍과 같은 긴 촉수는 마나실드와 격돌하자 눈부신 스파크와 함께 밖으로 목표와는 정반대로 튕겨져 버렸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녀석의 공격에 그대로 노출될 뻔한, 그야말로 위험한 순간이었다.
자신의 공격을 막아내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안 녀석은 조금은 놀란 모양인지 그 자리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나 이내 촉수를 치켜든 녀석은 사정없이 마나실드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최아악 츄아악-!
공격은 너무나 빠르고 정확했다. 육안으로는 확인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무서운 속력으로 자신의 촉수를 휘둘렀지만 단 한 번도 목표물을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더군다나 이 채찍처럼 생긴 팔은 신축성까지 지닌 모양인지 좌우로 정신없이 휘몰아치다가도 한순간 뒤로 물러나더니 찌르기 공격까지 해 왔다.
그리고 이 공격의 하나하나의 위력 역시 장난이 아니었다.
라르고가 사용한 마나실드는 구경이 20mm가 넘는 레일건의 공격도 막아낼 수 있는 최상급 방어 주문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뛰어난 성능의 마나실드조차도 녀석이 공격을 지속하자 그 충격의 여파가 마나실드의 내부까지 몰려 들어왔다.
라르고는 공포와 절망에 심장이 멎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녀석이 공격을 시작한 지 수초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실드가 붕괴될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대로라면 마나실드의 붕괴는 시간문제였다. 그렇다고 라르고에게 다른 방어 주문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는 더욱 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마법’이란 지금은 멸종했다고 알려진 전설상의 신수 ‘드래곤’에 의해 체계화된 것이었다.
그 때문에 이것은, 인간이 사용하기에는 여러모로 까다로운 점이 많았다.
드래곤이야 워낙 튼튼한 신체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생명 에너지를 지녔기 때문에 간단히 마나를 재구성할 수 있었지만…. 다른 종족들은 전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마나란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한 가장 원초적인 생명 에너지와 정반대되는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 때문에 평범한 인간이 마법을 사용하기 그야말로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이러한 마법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메모라이즈’란 의식이었다.
메모라이즈란 마법을 사용하기 전에 마나를 재구성하여 자신의 몸에 암호화시켜 놓는 의식을 말한다.
이런 의식을 거친 마나는 마법을 시전하기 위한 기초적인 힘을 지닌 채 시전자의 육체에 저장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법을 사용할 때는 이 암호화된 마나와 외부의 자연적 상태의 마나를 충돌시켜 이를 통해 발생하는 힘으로 마법력을 생성시키는 것이다.
물론 이것에도 어느 정도 한계는 있었지만, 이것을 통해 마법사들은 드래곤들이나 쓸 수 있다는 7클래스 이상의 마법까지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라르고에게는 메모라이즈한 마법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전쟁을 하러 가는 것도 아닌데, 강력한 공격 주문을 메모라이즈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번 여행은 무려 3일 동안 이벤트 호라이즌 안에서 보내어야 했다.
그 때문에 이곳에서의 지루한 시간을 메모라이즈나 하며 시간을 때우려 했던 것이다.
그러한 라르고의 판단이 이런 어이없는 결과를 부르고 만 것이다. 라르고는 뼈저린 후회를 했지만, 이미 때는 너무 늦고 말았다.
“젠장, 마나실드가 사라지려고 한다!”
마나실드는 천천히 그 위력을 잃어 갔다. 이제는 방법이 없었다. 그와 이곳에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의 운명은 이미 죽음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크르르르르.
마나실드가 거의 붕괴하기 직전, 이 괴물은 갑자기 공격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마나실드 바로 앞까지 자신의 커다란 머리를 가져다댄 상태로 기분 나쁘게 으르렁거렸다.
아마도 마나실드에 의해 자신의 공격이 계속 차단되자, 이것에 대한 흥미를 잃은 듯했다.
몬스터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머리를 갸우뚱거리더니 한참 살육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객실의 상단부로 방향을 틀었다.
지지직, 파아앙.
녀석이 방향을 트는 그 순간, 마나실드가 소멸되는 요란한 충격음과 함께 라르고와 루시는 허공으로 튕겨졌다.
녀석은 보통의 방법으로 되지 않자 방향을 틀면서 자신의 긴 하반신으로 라르고의 마나실드를 후려쳐 버린 것이다.
이것은 이전의 그저 날카롭기만 하던 녀석의 공격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그 길고 육중한 꼬리로 뒤로 돌 때의 원심력을 이용한 이 일격은 마나실드가 감당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마나실드는 수초도 견디지 못하고 소멸해 버리고 말았다.
마나실드가 이 모양이 되었으니 라르고와 루시가 아무렇지도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녀석의 꼬리 공격에 직격한 둘은 무려 3미터 이상 떨어진 객실 하단부까지 날아가 버렸다.
“…라르고 님! 괜찮으십니까?!”
“루시 님, 정신 차리세요.”
“저 녀석이 못 오도록 막아! 저기 굴러다니는 좌석으로 바리케이드라도 치란 말이다!”
라르고와 루시가 나가떨어지는 것을 본 객실의 하단부에 있던 생존자들이 둘에게 몰려들었다.
비록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몬스터의 잔혹함에 완전히 얼어붙어 발조차 떼지 못한 그들이었지만 라르고와 루시가 몬스터에게 공격을 당하자 돌연 자세를 바꾸었다.
죽음의 공포 따위는 일순간 날아가 버렸는지 그들은 마치 잘 훈련된 병사들처럼 질서 있게 방어진을 급조했다.
비록 부서진 좌석과 선내의 부서진 금속 파편으로 대충 만든 것이긴 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큭…. 도망, 도망가세요. 어디라도 좋으니…. 이곳에서 도망가야….”
루시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지는 잘 알 수 없으나 마치 온몸이 산산이 부서지는 듯한 고통이 그녀를 연이어 뒤흔들어 놓았다.
그녀가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는 통증. 혼란, 그리고 시끄러운 소음뿐….
솔직히 자신이 아직 살아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점점 흐려지기 시작한 의식.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신의 실낱같은 의식을 놓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 루시의 도움을 애타게 구하는 그 사람들의 잔상이 그녀를 편안히 놓아 두지 않았던 것이다.
돕고 싶었다. 지켜 주고 싶었다. 만약 자신의 이 목숨으로 그들을 구할 수만 있다면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으련만….
그러나 그것은 모두 덧없는 생각뿐이었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힘겹게 의식을 붙잡고 있는 것이 다였으니까.
“루시 님…. 당신을 보니 제 아들놈의 며느리가 생각이 나군요. 참 착한 앤데…. 다시는 못 볼 것을 생각하니 조금은 섭섭하군요. 하지만 이제는 상관없습니다.
이 한 몸 죽어 루시 님을 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전 만족합니다. 그리고 감사드립니다. 당신 덕에 우린 사람다움을 잃지 않고, 사람으로서 죽을 수 있으니까요.”
귓가에 들려온 라르고의 목소리에 루시는, 아득해지던 의식을 한순간 추슬렀다.
그의 목소리, 그의 말. 이것이 뜻하는 것은 결의였다.
그것은 타인을 위해 죽음을 각오한 사람의 결의!
눈물이 났다. 그는 자신의 무능함을 저주하고 또 저주했다. 무어라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입마저 움직이지 않았다.
미칠 것 같은 절망감만이 그녀를 끝없이 분노케 할 뿐이었다.
“이봐, 반드시 살아남으라고. 우리들 몫까지 살아 달라고.”
“그래요, 루시 님…. 살아남으셔야 합니다. 저희들은 여기서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 하지만 루시 님은 다릅니다. 살아남으셔야 합니다. 반드시!”
“라르고 님. 부탁드립니다. 반드시 루시 님을 구해 주세요. 저희들이야 아무래도 좋습니다. 루시 님을…. 루시 님을 부탁드립니다.”
사람들의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아마도 아직 생존해 있는 몇몇 사람들의 소리인 듯했다.
이미 거의 의식을 잃은 상태인지라 제대로 들을 수조차 없었지만…. 이 소리들은 단 한마디도 빠짐없이 그녀의 마음을 뜨겁게 적셔 왔다.
“아아악!”
“젠장, 바리케이드가 부서져 버렸다. 크윽, 막아! 몸으로라도 막으란 말이다! 라르고 님의 주문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안 돼! 막을 수가…. 이리로 온다. 크아악!”
또다시 사람들의 비명이 연이어 들리기 시작했다. 루시는 이제 더 이상 괴로워할 힘조차 없었다.
모든 것이 아득해지기만 했다. 기어코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필사적으로 잡고 있던 의식도 이제는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었다.
라르고가 마지막 기도를 올리듯 그렇게 말했다.
“작별 인사는 길게 못할 것 같군요. 그럼 안녕히…. 시작의 빛. 그 성스러운 7개의 검이 그대와 함께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