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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140화 (140/194)

140화

“크르르르.”

녀석은 약간의 숨소리만을 뺀다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미묘한 움직임조차 없었다. 그리고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이 녀석을 뺀 다른 몬스터들은 이제 극에 다다른 축제를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배가 어느 정도 찬 녀석들은 먹기 불편한 사람들의 머리만을 모아서 장난까지 치고 있었다.

그리고 서열이 낮아 구경만 하고 있던 다른 녀석들은 이때가 기회다 싶은 모양인지 자그마한 살 조각도 남김없이 깨끗하게 먹어 치우고 있었다.

“크르, 크르르르, 크르르르.”

마치 죽은 것처럼 누워 있던 녀석이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아직도 고통의 여파가 남아 있는 모양인지 그 움직임은 영 석연치 않았다.

그러나 녀석은 온몸을 몇 번 부르르 떨더니 한 번에 자세를 바로잡았다.

녀석이 몸을 일으키자, 형광빛 체액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나 이 녀석은 얼마 전과는 전혀 다르게 차분히 몸을 움직였다.

“우르. 우르르르. 우르르르르르.”

나지막한 녀석의 울음소리. 하지만 이 소리는 곧장 잦아들었다. 녀석은 곧바로 몸을 틀었다. 그리고 자신이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두 마리의 몬스터를 향해 머리를 들었다.

그리고 녀석은 몸을 잔뜩 웅크리기 시작했다. 마치 독이 오를 대로 오른 뱀이 공격을 준비하는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그르륵 그으으윽!”

몸을 한껏 웅크린 녀석의 긴 촉수에서는 새하얀 액체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흘러내린 이 투명하고도 새하얀 액체는 바닥과 조우하기가 무섭게 심한 악취를 뿜어내며 바닥을 일순간 녹여 버렸다.

티타늄 합금으로 만든 이 객실의 바닥을 이처럼 가볍게 녹인 것을 볼 때, 황산 따위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강산성을 띤 액체인 것 같았다.

“크르….”

녀석은 소리를 최대한 줄인 다음 한참 피의 축제를 즐기고 있는 몬스터들에게 다가갔다.

녀석의 움직임은 이전의 것과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절제되면서도 무언가 차분한 느낌의 움직임.

그 모습은 이전과 전혀 다른 별개의 존재를 보는 듯했다. 녀석은 순식간에 목표로 삼은 2마리의 몬스터와의 거리를 무로 돌렸다.

그리고 자신의 긴 촉수를 사정없이 몬스터들에게로 날렸다.

위이잉!

대기를 가르는 울림. 녀석들이 촉수로 공격을 할 때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것이었다.

소리는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리고 이 뒤를 이어 객실 전체가 진동할 정도의 커다란 포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쿠아아앙. 크악 크에엑!”

이제 그 효력이 다해 희미해져 버린 라이트닝의 불빛 아래서 형광빛 액체는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푸르스름하게 발광(發光)하는 이 빛은 언뜻 보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었지만 실상은 이 몬스터들의 체액이었다.

예리하면서도 강산성을 띤 녀석의 촉수는 단 일격에 두 마리의 몬스터들을 베어 버렸다. 검술에서 말하는 일도양단이었다.

2마리의 몬스터들은 자신들이 누구에게 공격당한 것인지도 모른 채, 가슴부터 시작해서 허리 아랫부분까지 깨끗하게 양분되어 버렸다.

“쿠엑 쿠에에엑!!”

“케에에에에엑!!”

갑작스러운 동료들의 비명 소리에 그제야 몬스터들은 자신들의 동료 중 한 명이 배신해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통 이 정도 상황에 직면하면 그 어떠한 생명체라도 당황하기 마련인데 녀석들은 그렇지 않았다.

놈들은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하고 곧바로 대응에 들어갔다. 비록 한 번에 2마리가 죽고 말았지만, 아직도 몬스터들은 3마리가 남았다. 1대 3…. 아무리 보아도 불리한 상황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케엑…. 쿠르르르르.”

단번에 2마리를 베어 버린 녀석은 곧바로 남은 3마리에게로 머릴 돌렸다.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속전속결뿐이란 것을, 녀석은 알고 있었다.

마치 땅 위를 날듯 녀석은 3마리에게로 접근했다.

몬스터들은 너무 밀집된 상태라서 가장 위협적인 촉수 공격이 여의치 못한 상태였다.

단 일격에 모든 것을 정리해 버리려는 듯 녀석은 자신의 촉수를 길게 늘어트려 몬스터들에게로 향했다.

위이잉.

푸화앗!

또다시 파랗게 빛을 내뿜는 액체가 이 공간을 수놓았다.

신비스럽기까지 한 이 액체는 다름 아닌 라르고의 마인드 컨트롤에 사로잡힌 몬스터의 것이었다.

녀석들의 공격 형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하나는 자신의 촉수를 좌우로 휘둘러 베어 버리는 것과, 또 한 가지는 마치 창처럼 자신의 촉수를 변화시켜 적에게 찔러 넣는 것이었다.

3마리의 몬스터들은 녀석이 다가오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촉수를 뾰족하게 변화시켜 찌르기 공격을 해 왔다.

불행 중 다행히 몬스터들의 촉수 중 단 한 개만이 녀석의 몸에 적중하였지만, 그 상처는 생각보다 컸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곧이어 3마리의 몬스터들이 모두 자신의 촉수를 녀석에게 뻗어 왔다.

피해야만 했다. 만약 이것을 모두 직격당한다면 생존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자신에게 뻗어 오는 촉수들의 수는 6개. 그것을 다 피해내기란 불가능했다.

“크르르.”

녀석은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그대로 2개의 촉수를 몸에 박히도록 내버려 뒀다.

촉수들은 그대로 몸을 관통하는 듯했지만,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녀석은 몸을 비틀었다. 그러자 촉수들은 녀석의 몸에 약간의 상처만을 입힌 채 허공을 갈랐다.

“키에에엑!”

천재일우의 기회. 녀석은 이것을 놓치지 않았다. 곧장 몬스터들에게로 파고든 녀석은 그 촉수들부터 단숨에 잘라 버렸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라르고의 마인드 컨트롤에 의해 잠재 능력을 100% 이상 끌어올려 사용하는 이 녀석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몬스터들의 공격은 끝난 게 아니었다. 녀석들의 촉수는 아직 4개나 남아 있었다.

“케에에에엑!”

녀석은 힘찬 포효와 함께 자신의 육중한 꼬리를 휘둘렀다. 2개의 촉수를 막으면서 튼 몸을 그대로 360도 회전시키며 녀석들에게 공격을 날렸다.

놀란 몬스터들이 순간 자신들의 촉수를 모두 녀석에게로 집중시켰지만 녀석은 조금도 동요 없이 공격을 구겨 넣었다.

퍼퍼퍼퍽-!

투악!

“쿠에엑!”

여기까지 오면서 탄력을 받은 데다 몸을 회전시키면서 발생된 원심력에 의해 녀석의 꼬리 공격의 위력은 실로 가공할 정도의 위력을 뿜어냈다.

녀석의 꼬리에 직격당한 몬스터는 그 자리에서 절명한 것은 물론하며 꼬리에 직격당한 부위는 산산이 터져 나갔다. 그러나 녀석의 꼬리는 전혀 힘을 잃지 않고 나머지 2마리를 유린했다.

“케에엑 케엑!”

몬스터들은 공격을 막기 위해 몸을 웅크려 방어 자세를 취해 보았지만 그 정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정확하게 날아든 녀석의 꼬리 공격은 남은 2마리를 허공으로 날려 버렸다.

다행히 방어를 한 덕분에 즉사는 피할 수 있었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이곳은 우주선 안…. 바닥과 천장과의 거리는 겨우 4미터 남짓이었다.

이런 곳에서 위로 튕겨져 버렸으니 천정에 부딪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쿵, 퍼퍼퍽! 쿠쿵!

2마리는 몬스터들은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녀석들이 천정과 충돌하면서 머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상반신이 한꺼번에 터져 나갔다.

이로 인해 녀석들의 체액과 지금껏 먹어 치운 인육의 파편들이 객실 안으로 퍼부어졌다.

“크르르르….”

녀석은 이 폭우를 그대로 뒤집어썼다. 웬만하면 피할 법도 한데 녀석은 마치 그것을 즐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폭우는 멈췄다.

객실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라르고의 라이트닝 마법마저 이제는 그 효력을 다하여 그 빛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칠흑 같은 어둠이 객실 안을 점령해 갔다.

녀석은 객실 안이 완전히 어두워지자 그제야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케에에에엑!”

커다란 포효 소리…. 녀석은 이 포효 소리를 마지막으로 녀석의 모습은 처음과 같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녀석의 몸을 뒤덮고 있는 불순물들은 마치 초가 녹아내리는 것처럼 녀석의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녀석의 몸에 난 자잘한 상처도 곧이어 사라졌다.

완전히 자신의 몸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을 확인한 녀석은 처음 자신이 이곳을 습격하면서 만들어 놓은 구멍으로 향했다.

녀석의 목표는 이제 단 하나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라르고가 자신에게 남겨 준 의지를 실행하는 것.

그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녀석은 끝없이 펼쳐진 이 어둠을 헤쳐 나가기 시작했다.

* * *

사람들의 주검으로 가득 찬 객실을 벗어난 마하임과 호운은 곧바로 이 배의 주조종실로 향했다.

이곳에 생존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마하임은 우선 이 배의 현 상황을 알 필요가 있음을 절실히 느꼈다.

지금 이 배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상식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일들뿐이었다.

사인마저 추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처참하게 찢겨진 탑승객들의 주검들 하며, 뒤이어 나타난 ‘투명 괴물’의 출몰….

이 모든 것은 가히 초자연적 현상이라 말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게다가 지금 선내는 거의 8할 이상의 전자 기기가 작동을 중지한 상태였다.

그 때문에 다른 곳과의 통신은 고사하고 발광석 없이는 걷는 것마저 힘들 지경이었다.

“정말 엄청나군. 크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나 넓었다니….”

“당연하지. 이벤트 호라이즌은 전장 1km가 넘는 헤비크루저급 우주선이란 말이야. 최대 탑승인 수는 1200명. 현재 미연방에서 운영하고 있는 탐사선 중 가장 큰 녀석이지. 잘못하면 이 안에서 길도 잃을 수 도 있다구.”

“네가 선장보다 낫구나. 어째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흥, 이건 상식 중의 상식이야. 선장이나 되면서, 부끄러운 줄 알라고.”

이 꼬마는 ‘호운 랑케로트’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울고불고 난리를 치더니 이제 좀 진정이 되고 자신이 아는 분야가 나오니 반말을 찍찍 뱉으며 맞먹으려 했다.

그러나 꼬마의 신분증을 살펴본 후 마하임은 이 녀석의 건방짐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이 꼬마는 그 유명한 나사의 핵융합로 개발부 소속이었다.

나사 내에서도 엘리트 중의 엘리트만으로 구성된 이들의 명성은 익히 알려진 것이기에 더 이상 언급할 가치도 없는 거였지만…. 그래도 놀라웠다.

이런 꼬마가 핵융합로 개발부 소속이 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말이다.

“그래, 너 잘났다. 그냥 네가 선장 하시지? 헛소리는 그쯤하고 저 격벽이나 열어 줄래?”

어느 사이에 둘은 또다시 나타난 격벽 앞에서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이것으로 두 번째 격벽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무려 3개의 객실을 지나왔지만 단 한 명의 생존자, 아니 온전한 시체조차도 보기 힘들었다.

마치 무너진 도미노처럼 엉망으로 뒹구는 좌석들 사이에는 엄청난 출혈의 흔적과, 팔이나 다리로 보이는 시체 조각들이 전부였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잘된 일인지도 몰랐다.

만약 그곳들이 마하임이 처음 보았던 곳처럼 사람들이 산산조각 나 널려 있었다면 이렇게 걷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터였다.

마하임 혼자라면 크게 어려울 것도 없었지만, 지금은 호운과 동행하고 있었다.

아무리 당찬 꼬맹이라 할지라도 그런 참혹한 광경을 헤쳐 나가기에는 아직 호운은 너무나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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