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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141화 (141/194)

141화

“숨 좀 돌리고 하자구, 이러다가 정말 길을 잃어버릴지도 몰라.”

“시끄러. 격벽 하나 여는 데 20분 이상 걸리잖아. 이렇게 느려서야 어느 세월에 주조종실에 도착하겠어?”

“난 문 따개가 아니란 말야.”

“아아, 난 문 따개인 줄 알았는데…. 아참, 근데 말야. 왜 이 격벽…. 그러니까 오리하르콘로 만든 것은 왜 초진동 나이프로도 부술 수 없는 거지?

초진동이란 물질계에 존재하는 그 어떠한 물체의 고유 진동도 붕괴시킬 수 있잖아? 그런데 왜 이 격벽에는 물질 붕괴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거지?”

마하임은 자신의 초진동 나이프를 통로의 막고 있는 거대한 격벽에 가져다대며 말했다.

검신에서는 확실히 초진동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지만, 거무틱틱한 격벽은 미동도 않고 그 자리에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미쳤어? 부수다니, 이 격벽 반대편의 선체에 균열이라도 생긴다면 어떻게 할 거야? 저 격벽은 장식용이 아니란 말이야!”

호운은 마하임의 말에 깜짝 놀랐다. 격벽을 부수다니…. 그것은 실로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일단 격벽이 작동했다는 것은 배가 치명적인 손상을 입어 어딘가 균열이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벤트 호라이즌’은 헤비크루저급의 우주선인 만큼 그 규모는 실로 엄청났다. 그 때문에 치명적 손상을 입었을 경우 각 구역 간의 격리는 필수였다.

만약 이것이 작동되지 않아 선체의 자그마한 균열 하나라도 생길 경우, 급격한 기압의 손실로 인한 돌풍 현상에 의해 선내는 초토화를 면할 수 없었다.

이것을 막기 위해 선내의 각 구역에는 어김없이 격벽이 존재했다.

이 격벽은 구역을 완벽하게 격리할 뿐만 아니라 ‘오리하르콘’ 재질이었으므로 마하임의 초진동 나이프로도 파괴는 불가능했다.

“흠…. 그리고 네가 궁금해하는 걸 설명하려면 오리하르콘의 특성부터 말해야 하는데, 그건 극비라서 말이지….”

“극비? 날 웃기는군. 오리하르콘의 특성 따위는 이미 알려질 대로 다 알려진 거잖아. 더 이상 숨길게 어디 있어.”

“그럼 왜 넌 그 알려질 대로 알려진 것도 모르는 거지? 무려 이 배의 선장이면서 말이야.”

“…….”

“악! 왜 때려! 말로 해, 말로!”

“한 대 더 맞을래? 아님 순순히 이야기할래?”

마하임은 끝까지 자기의 속을 뒤집어 놓는 이 꼬마에게 결국 일격을 날리고 말았다.

나름대로 힘 조절을 한다고 했지만 꽤나 아픈 모양인지 호운은 머릴 감싸 안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녀석의 입은 여전히 마하임의 속을 뒤집어 놓는 단어를 끊임없이 쏟아내었다.

“말로 하자구! 이건 명백히 아동 학대야!”

“큭, 너 지금 자신이 아동이라고 생각해?”

“당연하지! 난 겨우 9살이란 말이야!”

“…….”

“씨이, 왜 또 때려!”

“한 대 더 맞을래?”

“악. 그만. 우선 해킹 윔을 컴퓨터에 침투시키고 나서 이야기해도 되잖아!”

호운은 마하임의 일격으로 제법 큰 혹이 솟아오른 머리를 부여잡고서는 격벽으로 툴툴대며 걸어갔다.

그리고 허리춤에 차고 있던 자신의 핸디 양자 컴퓨터를 펼쳐들었다.

문자 그대로 한 손에 딱 잡힐 만큼 작은 초소형 컴퓨터였지만, 성능과 기능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물건이었다.

미연방은 10여 년 전 양자의 중첩 간섭 현상을 유지시켜 복합 연산이 가능한 양자 컴퓨터(quantum computer)를 만들어 냈다.

이것은 수백만 자리의 부동 소수점 계산도 단 몇 초 만에 끝낼 수 있는, 실로 혁명적인 기기였다.

만약 이것의 도움이 없었다면 초공간 도약은 고사하고 미연방의 세계 패권 유지 역시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뛰어난 양자 컴퓨터에게도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했다.

”핸디 양자컴퓨터라…. 말로만 들었지만 실제 보기는 처음이네? 이거 아직 파는 것도 아니잖아.”

마하임은 신기한 듯 호운의 컴퓨터를 바라보았다. 양자 컴퓨터는 최근까지만 해도 기술상의 문제 때문에 소형화가 불가능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양자 컴퓨터의 핵심을 이루는 촉매 장치의 소형화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양자 컴퓨터의 핵심 기술인 양자의 중첩 간섭 현상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상당한 크기의 촉매가 필요했다.

이것을 아무리 소형화시키려고 해도 중첩 간섭이란 복잡하고도 미스터리한 현상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이르러서 어느 무명의 과학자가 이것의 소형화에 성공을 거두었다.

지금까지의 양자 컴퓨터의 촉매 장치는 오리하르콘의 반도체적 특성을 이용한 수직적인 중첩 현상을 이용한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무명의 과학자가 만든 촉매 장치는 기존의 촉매의 개념을 완전히 무너트리는 새로운 것이었다.

기존의 방법이 우연히 일어나는 중첩 현상을 강력한 자장을 이용해 강제로 유지시켜 복합 연산을 하는 것이라면, 이 새로운 방법은 오리하르콘의 전자기적 저항을 극소화시킴으로써, 일종의 초전도체로서 중첩 현상을 유도하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촉매의 개념이 사라지자 양자 컴퓨터의 크기는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줄어들었다.

바야흐로 한 손에 쥘 수 있는 핸디 양자컴퓨터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존재했다. 핸디 양자 컴퓨터의 핵심을 이루는 특수 정제된 오리하르콘 역시 그 특성상 대량 생산이란 것 자체가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이거…. 아빠가 선물로 주신거야. 생일 선물로….”

“아….”

마하임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닫았다. 호운은 기술자 출신인 아버지와 함께 이 배를 탔다. 호운이 얼버무리듯 대충 이야기했기 때문에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이 배에 탈 정도의 사람이라면 그의 아버지 역시 상당한 수준의 기술자였을 것이다.

아직 시신을 확인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상황을 고려해 보았을 때 그의 아버지지가 생존해 있을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했다.

마하임은 뭐라고 위로라도 해 주려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침묵이 더 어울릴 듯했으니까….

호운 역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자신의 양자 컴퓨터를 조작할 뿐이었다.

“쳇, 시간이 걸리겠는걸. 보안 장치가 모조리 작동해 버렸어. 후우. 다른 방법을 사용해볼 수밖에…. 아, 그리고 이 격벽이 왜 초진동 나이프로도 부서지지 않는지 물었지?”

“그, 그래. 하지만 무리할 건 없어.”

“동정은 사양하겠어. 그런다고 달라질 건 없으니까.”

“하아. 꼬맹아. 언제까지 툴툴거릴 거냐. 그러니 키가 안 크는 거야.”

“뭐, 뭐라구!?”

그렇지 않아도 자기 또래에 비해 키가 작아서 고심 중인 호운은 마하임의 말에 저도 모르게 그만 발끈하고 말았다.

“아아, 미안. 미안. 자아, 어서 이야기해 줘. 뜸들이지 말고.”

마하임은 이전부터 오리하르콘이란 금속에 무척이나 관심이 많았다. 그 때문에 나름대로 조사해 보고 책도 뒤져 보았지만, 마하임은 신선이었지 과학자가 아니었다.

게다가 오리하르콘의 정보는 극비라 일반인들에게는 공개되지 않았다.

이미 널리 쓰이고 있었지만, 미연방은 여전히 극비로 이것을 취급하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합법적인 경로로 오리하르콘에 관한 자료를 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렇다 보니 어렵게 구한 자료 역시 그리 속 시원한 설명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질도 매우 떨어졌다.

덕분에 현재까지 마하임이 알아낸 것이라고는 이 금속이 ‘시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정도가 다였다.

“쳇, 미안할 것 없어. 하지만 또 내 키를 가지고 놀리면 용서 못 해! 음…. 그럼 어디서부터 설명을 시작해야 할까? 어렵게 말하면 못 알아들을 게 뻔하고…. 아아, 이게 좋겠다. 먼저 하나만 묻지. 넌 시간을 어떻게 생각해?”

마하임이 예상한 대로 호운의 설명은 ‘시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시간…. 간단히 생각하면 한없이 간단한, 그러나 어렵게 생각한다면 한없이 어려운 것이 바로 이 시간의 개념일 것이다.

일부 말장난을 좋아하는 철학자들의 말처럼 ‘시간이란 것이 과연 실존하느냐?’라는 물음조차 재대로 답하기가 어려웠으니 말이다.

그렇다. 시간이란 것은 물질계를 살아가는 이성을 지닌 자들이 임의로 정한 ‘흐름’의 개념일 뿐이었다.

그 흐름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검출할 수도 없었다.

어쩌면 이 시간이란 것은 마나보다 더 미스터리한 것일지도 몰랐다. 적어도 마나는 물리적이고 즉각적인 힘을 보여 주는 반면…. 시간이란 것은 그저 흘러갈 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과학자들, 특히 양자역학을 전공자들은 이 견해에 정반대의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시간이란 것은 검출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분명 존재한다고 그들은 주장하였다.

그리고 철학자들이 말한 그 ‘시간의 흐름’에도 상당히 부정적인 견해였다. 그 근거로 과학자들이 제시하는 것이 바로 시류(時流)론이었다.

“시간이라…. 시간이란 흘러가는 것이 아닐까? 과거에서 미래로. 그 흐름이 바로 시간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이지. 하지만 시간이란 단순히 흐르는 게 아냐. 시간처럼 불규칙한 것도 드물걸? 시간이란 공간과 중력자장의 미묘한 변화에도 반응하는 섬세한 녀석이니까.”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모든 현상의 추이시간(推移時間)은 그 현상이 놓여 있는 공간의 상태(중력장의 영향)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또한 이 시간이란 것은 관측자에 대한 상대 운동 속도에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즉, 시간이란 것은 주위 환경이나 상태에 따라 그 흐름에 상당한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타 실험을 통해 충분히 밝혀진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과학자들도 인정한 정설 중의 정설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만 흐르는 것이 아냐. 시간의 흐름이란 안정된 바다가 아닌 협곡의 급류와 같은 것, 미래가 불확실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지.”

“이해가 잘 안 돼. 너무 어려워.”

“하아…. 답답한 노릇이군. 예를 하나 들게. 물살이 아주 센 강이 하나 있어. 우리는 그 위에 배를 타고 가는 중이야. 그런데 우리들이 타고 있는 이 배는 무조건 전진만 할 수 있도록 설계된 거야.

그 때문에 강의 흐름은 급류이기 때문에 수시로 바뀌지만…. 우린 절대로 강을 거슬러 올라갈 수 없어. 그저 앞으로 전진하며 그 방향만을 정할 수 있을 뿐이지.”

“나라면 그 배엔 안 탈 거다. 세상에 방향 전환밖에 못 하는 배라니…. 죽으려면 무슨 짓을 못 해?”

“…….”

“아, 말하다가 어디 가? 끝까지 이야기해 줘야지!”

주위의 온도를 급강하시키는 마하임의 썰렁한 말을 들은 호운은 두말하지 않고 격벽 쪽으로 걸어가 버렸다. 당황한 마하임은 얼른 뛰어가 호운을 붙잡았다.

“농담 한 번 한 거 가지고 꽁해 있냐. 이제야 이해가 되는 듯하니까. 자, 이 형님이 특별히 예뻐해 줄 테니 어서 이야기해 주렴.”

“집어치워. 난 꼰대 형 두기 싫어.”

“그러니? 좋아. 그럼 앞으로 너랑 나랑 각자 행동하자. 넌 너 갈 길 가고, 나는 나 갈 길 가고….”

“치사해. 그러고도 이 배의 선장이라고 할 수 있어?!”

“지금은 비상사태. 그 정도는 감수해야겠지? 자아, 형님 해 봐.”

마하임의 격조 높은 협박에 호운은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호운은 지금 무서워서 죽을 지경이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그가 본 것이라고는 수로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정도의 죽음뿐이었다.

더군다나 자신의 아버지조차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 지금 호운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저 조금은 이상한 이 배의 선장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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