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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149화 (149/194)

149화

“호운, 어서 문 열어! 저 고치 안에 있는 사람들, 뭔가로 변하려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저 많은 고치에서 나올 무언가는 매우 위험한 것이라는 걸 마하임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3분이 필요해! 그보다 더 빨리는 무리야!”

“좋아. 어떻게 해서든 3분 만들어 주마.”

마하임은 초진동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더욱 움직임이 활발해진 고치.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치의 윗부분이 벌어지며 투명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망할 그 투명 괴물인가?”

크기를 보아할 때 새끼임이 분명했다. 아직 어려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완전히 투명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상대하기는 비교적 쉬울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고치는 30여 개 동시에 저 투명 괴물의 새끼들이 태어난다면, 한순간에 포위될 것이 분명했다.

“젠장!”

투명 괴물의 새끼들은 고치를 찢고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은빛으로 반짝이며 고개를 내미는 놈들의 모습은 아름답다고 느껴질 정도의 장관이었다.

하지만 저놈들이 인육을 탐하는 괴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긴장하지 말자. 마하임. 넌 할 수 있다.”

마하임은 초진동 나이프를 빼 들고서는 애써 호흡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고치 밖으로 나온 투명 괴물의 새끼들은 먹이를 찾기라도 하듯이 자신의 투명한 더듬이를 맹렬히 흔들더니 마하임이 서 있는 곳을 향해 우뚝 멈췄다.

“온다!!!”

투명 괴물의 새끼들은 무서운 속도로 마하임 일행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마하임은 초진동 나이프를 작동시켜 놈들을 향해 휘둘렀다.

푸하하학-!

새파란 광혈을 뿌리며 일순간 3마리의 투명 괴물의 새끼가 마하임의 검에 희생양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시작에 불과했다. 아직 투명괴물의 새끼는 30마리 가까이나 남아 있었던 것이다.

핫 타앗 탓-!

사방에서 달려드는 투명 괴물의 새끼들을 향해 마하임은 절제된 동작으로 검을 휘둘렀다.

더는 물러날 곳도 없었다. 설령 자신은 괜찮다 하더라도 호운이 죽어 버리면 이 배에서 탈출할 수 있는 가능성은 0%였다.

“다가가게 놔둘 순 없지!”

마하임을 무시하고 호운에게로 달려가는 투명 괴물의 새끼를 향해 마하임은 인정사정없이 초진동 나이프를 꽂아 넣었다.

투명 괴물의 새끼는 수박 터지듯 푸른색 광혈을 흩뿌리며 죽었다.

“이런 망할!”

너무 흥분했던 것일까? 저 괴물의 체액이 산성이라는 사실을 마하임은 깜박 잊고 말았다. 그대로 놈들의 체액을 뒤집어쓴 마하임과 루시.

둘은 필사적으로 놈의 광혈을 털어내려고 했지만, 끈적끈적한 놈들의 체액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하?! 이렇게 죽는 것일까?”

마하임은 절망했다. 아무리 신선의 육체라도 이런 강산성의 액체를 맞으면 죽을 수밖에 없었다.

“어…. 괜찮은 것 같은데요?”

입고 있던 옷을 내던지며 괴로워하던 루시가 움직임을 멈추고 말했다.

놈의 광혈을 맞은 자리가 따끔거리고 아프긴 했지만, 그리 심한 상처는 주지 않았던 것이다.

“새끼라 아직 강산성은 아니다 이건가?”

마하임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돌기 시작했다.

저 투명 괴물의 가장 무서운 점은 놈의 체액인 광혈.

이 광혈은 엄청난 강산성을 띄기 때문에 몸에 조금만 닿아도 치명상에 이를 정도로 위험했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 있는 놈들의 새끼는 성체에 비한다면 귀여울 정도로 약한 산성을 지니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몸을 사릴 필요가 없었다.

“너희도 한번 죽어 봐라!”

마하임은 포위망을 좁혀 오는 무리 사이로 뛰어들었다.

투하학-!

닥치는 대로 검을 휘두르는 마하임. 투명 괴물의 새끼는 수만 많았지, 공격력도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마하임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놈들을 학살하고 또 학살했다.

“너희에게 죽어 간 이벤트 호라이즌의 승무원들의 한을 풀어 주겠다.”

거침없는 쾌검. 마하임은 거침없이 놈들을 찢고 자르고 부쉈다.

“무, 무서워.”

미친 듯 투명 괴물을 학살하는 마하임을 본 호운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비록 투명 괴물은 사람이 아니었지만, 이런 일방적인 학살은 처음이었다.

퍽!

찌익-

캐캐캑!

투명 괴물의 새끼들은 괴성을 지르며 죽어 나갔다. 비록 녀석들의 광혈에 산성은 부족했지만, 놈들의 이빨은 사람의 뼈 정도는 가볍게 씹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그래서 이 이빨을 무기로 마하임을 덮쳤지만 놈들은 단 한 마리도 마하임에게 그 이빨을 박아 넣을 수 없었다.

킥 삐이이익-

연이어 투명 괴물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마하임의 검술은 그야말로 쾌검. 그 움직임 하나하나는 절도 있고 기품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그 파괴력은 호운의 상상력을 가볍게 뛰어넘을 정도로 강력했다.

“후우 후우.”

놈들을 다 정리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하임의 일방적인 학살 끝에 투명 괴물의 새끼들은 순식간에 줄어들었고 이내 단 한 마리도 남지 않고 모두 마하임의 손에 죽고 말았다.

“좀 쉬시죠?”

거칠게 숨을 내리쉬는 마하임을 향해 루시가 말했다. 마하임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무래도 너무 흥분한 모양이었다. 언제나 평상심을 유지해야 하는 신선으로서는 실격인 전투였다.

‘머리를 식히자.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할지도 모르는데 체력을 너무 낭비했어.’

남아 있는 물을 단숨에 입 안으로 털어 넣는 마하임. 그런 마하임을 바라보던 루시는 그를 향해 바라보았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기 마련이죠.”

마하임은 아무 말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쯤일 것이다. 호운의 목소리가 마하임의 귀에 들려왔다.

“격벽 해킹 완료. 3초 후에 열릴 거야.”

호운은 팔짝팔짝 뛰어서 마하임에게 다가왔다. 이번에는 또 무엇이 저 격벽 너머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두려움 반 기대 반의 뒤섞인 흥분 속에서 마하임 일행은 문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격벽 개방.]

쿵!

이번에도 역시 동일한 메시지와 함께 격벽의 문이 열렸다.

격벽 건너편의 공간은 고요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텅 빈 통로와 어지럽게 널려 있는 보급용 상자들뿐이었다.

“다행이야. 또 그 고치 같은 거 나올까 봐 걱정했는데.”

“그러게요. 이번에는 좀 쉽게 갈 수 있으려나요? 가죠, 선장님.”

루시는 마하임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마하임은 굳은 양 꼼짝도 하지 않았다.

“뭔가 이상해. 여기에 뭔가가 있어.”

“그럴 리가요. 전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루시는 다시 한번 정신을 집중해 주변을 살폈다.

그녀는 전투 신관이었기 때문에 적의를 지닌 생명체에 대한 색적은 그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했다.

“괜찮아요. 여긴 그냥 텅 빈 공허만 느껴집니다.”

“흠,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루시 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괜찮은 거겠죠.”

마하임은 이렇게 말하며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느껴졌던 위화감은 여전히 느껴졌고, 그 위화감은 통로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심해졌다.

“아무래도 이상해. 틀림없이 여기에 뭔가가 있어.”

“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아!!!”

루시는 너무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느껴진 어둠의 기운, 그것은 투명 괴물의 것이었다.

“포위됐어요! 적의 수는 약 20마리!?”

“뭐?!”

반사적으로 초진동 나이프를 작동시키는 마하임. 호운도 기겁을 하며 마하임의 등 뒤에 몸을 숨겼다.

“칫. 정말이군. 놈들이다.”

마하임도 그제야 투명 괴물들의 존재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마하임 일행은 앞뒤 할 것 없이 완전히 포위되어 있었다. 도망칠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르르륵, 제안할 것이 있다.”

바로 그때 들려온 투명 괴물의 말. 마하임은 애써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 놈의 말에 답했다.

“제안? 그전에 너희들은 뭐지?”

“우리…. 우리는 위대한 파괴신, 심연의 어둠 레비아탄의 조각이다.”

“레비…아탄.”

마하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가 신선으로 각성하면서 접속한 이 세상의 진리가 담긴 아카식 레코드. 그 레코드에 기록된 인류의 멸종은 레비아탄의 지구 침공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뭐, 됐고. 그 제안이 뭐지?”

“너희들을 살려 주겠다. 대신 우리를 지구로 데려다다오.”

“하! 내가 왜 그렇게 해야 하지? 네놈들이 지구에서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너흰 착각하고 있다.”

“무엇을?”

“우리가 정말 인류를 멸종시킬 것 같나? 크르르르.”

레비아탄의 조각은 말했다. 마하임은 놈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아카식 레코드의 기록에는 레비아탄의 침공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 어디에도 레비아탄이 인류를 멸종시켰다는 말은 없었다.

“그럼 왜 너희들이 지구로 가려는 거지?”

“우린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왔다.”

“구, 구원?”

루시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을 되뇌었다. 그러자 레비아탄의 조각이 루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시작의 빛의 종인가? 우린 인류의 구원을 위해 파견된 선발대. 인류의 운명은 지금 경각에 달려 있다.”

“그건 무슨 소리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마하임은 소리쳤다. 그러자 레비아탄의 조각은 현재 지구의 모습을 마하임의 뇌에 직접 간섭하여 보여 주었다.

“마, 맙소사!”

아메리카 대륙에 거대한 원자 폭탄의 버섯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대륙도 마찬가지였다.

원자 폭탄이 터진 후 살아남은 병력들은 괴상하게 생긴 이족 보행 기계들과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타타타탁!

타앙!

이 저주받을 AI 놈들! 죽어라 죽어!

기계 병사들은 인간의 병사들을 압도적인 화력으로 밀어붙였다.

수천, 수만, 아니 수억 명의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학살당하고 있었다. 그 광경이 얼마나 선명한지 마치 손에 잡힐 것만 같았다.

“그만! 이런 미래 따위, 절대 오지 않는다!”

“미래가 아니다. 현재다. 크르르르.”

마하임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환상은 사라졌다. 마하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레비아탄의 조각을 향해 말했다.

“지금 지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인간의 피조물, 너희들이 AI라고 부른 것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뭐라고!”

호운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AI의 반란이라니, 그건 SF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럴 리 없어. 아직 자아가 있는 AI조차 없는데 반란을 일으키다니!”

“지금은 있다. 이미 반란을 일으킨 그 AI가 나타난 지 4년이 지났다.”

“그건 무슨 말이죠?”

잠자코 지켜만 보고 있던 루시가 말했다. 마하임 역시 저 레비아탄의 조각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너희의 이 배는 특이점에 접근했다. 그래서 지구와의 시간이 어긋났다. 지구에서는 이미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시간을 더 지체하면 돌이킬 수 없다. 막상 지구에 도착했을 때 인류가 이미 멸종해 있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크르르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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