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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150화 (150/194)

150화

이벤트 호라이즌은 유사 블랙홀을 이용한 초공간 도약을 시도했다.

유사 블랙홀에 원래 특이점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타임 트래블(time travel)이 발생하지 않는 게 맞았다.

하지만 초공간에서 미티어와 접촉하면서 알 수 없는 이유로 타임 트래블이 발생한 모양이었다.

“너희 말을 어떻게 믿지? 막상 지구에 네놈들이 도착해서 반란을 일으킨 AI와 함께 인류를 공격할 수도 있잖아? 아니 애초에 AI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 자체를 믿을 수 없어.”

“믿어라. 믿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네놈이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모두를 상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약속하지, 지금 이 시간부로 이 배에 탑승한 사람들 모두를 지켜 주마. 우리는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레비아탄의 조각은 차갑게 말했다. 마하임은 갈등했다. 과연 저들의 말을 믿어야만 하는 것일까?

혼란스러웠다. 저들의 목표는 분명 지구로 가는 것이었다. 놈들의 말로는 지구인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는데, 마하임은 믿을 수 없었다.

이 배에서 일어난 대살육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저 레비아탄의 조각들이었다. 그런 살육자의 말을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난 너희의 말을 믿을 수 없다.”

“그리 결론이 난 것인가? 네 선택에 인류는 멸종할 것이다.”

“흥! 웃기지 마라. 인류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체조차 알 수 없는 네놈들을 지구로 끌어들이느니 차라리 반란을 일으킨 AI와 싸우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그래? 그럼 죽어라!”

레비아탄의 조각들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마하임을 향해 촉수를 내뻗었다.

그 공격은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을 입을 수 있었다. 마하임은 재빨리 뒤로 물러서며 초진동 나이프를 휘둘렀다.

서걱!

놈의 촉수는 초진동 나이프에 단숨에 잘렸다.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서는 레비아탄의 조각들. 하지만 이 녀석들 말고도 레비이탄의 조각은 아직 많이 있었다.

“크르르르! 우리의 주인을 위해, 걸림돌은 말살한다!”

마하임을 향해 사방에서 밀어닥치는 레비아탄의 조각들. 마하임은 이를 악물고 초진동 나이프를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하지만 놈들의 수는 끝이 보이지 않았고, 무엇보다 마하임은 호운과 루시를 지키며 싸워야 했다. 그야말로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

“사자후(獅子吼)!!!”

크허허헝!

다시 한번 사자후를 사용하는 마하임. 그의 입에서 찢어지는 듯한 초고음의 음파가 레비아탄의 조각들에게 쏟아졌다.

레비아탄의 조각들은 순간 움찔하며 공격을 멈췄다. 마하임은 망설이지 않고 놈들 속으로 파고들었다.

“선기발경!”

투깡!

놈들에게 다가간 마하임은 곧장 선기발경을 레비아탄의 조각들에게 꽂아 넣었다. 그 위력은 확실했다.

선기발경을 맞은 레비아탄의 조각은 입과 코 할 것 없이 광혈을 흩뿌리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마하임은 이 기세를 몰아 연이어 선기발경을 난사하며 레비아탄의 조각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쓸데없는 저항이다. 우리는 많다. 우리는 강하다. 우리는 레비아탄의 조각이다.”

마하임의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레비아탄의 조각들은 끊임없이 마하임에게로 몰려왔다.

육안으로 잘 보이지도 않는 적과의 싸움. 그것은 마하임의 피로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그리고 사자후와 선기발경의 난사는 마하임의 내공을 급속도로 고갈시키고 있었다.

‘이대론 다 죽을 거야. 여길 뚫고 나가야만 해.’

이를 악무는 마하임. 이미 단전에 모여 있던 기는 고갈 직전이었다.

그러나 지금 멈추면 모두 죽는다. 적어도 그것만큼은 사양하고 싶었다.

“난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아! 여행도 많이 하고 싶고, 결혼도 하고 싶어! 그런데 여기서 죽는다니 절대 용납 못 해!”

마하임은 마지막 힘을 다 끌어내어 초진동 나이프에 검기를 덧씌웠다.

순간 머리가 어찔했지만, 마하임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여기까지 와서 쓰러질 수는 없었다.

이 구역만 지나면 이제 곧 주조종실이었다. 그거까지만 갈 수 있다면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부우우웅!

검기가 덧씌워진 초진동 나이프가 기묘한 진동음을 내며 떨리고 있었다. 레비아탄의 조각들도 저 검이 위험하다는 것을 느낀 모양인지 더는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나의 배에서 꺼져라. 그럼 모른 척하고 보내 줄 수는 있다.”

“크르르르. 그건 곤란하다. 우린 사명이 있다.”

“괴물 주제에 무슨 사명! 당장 거기서 비켜라! 우린 시간이 없다.”

“크릉,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자, 죽어라 인간. 우린 이 배를 타고 인류를 구원할 것이다.”

“흥! 퍽이나!”

마하임은 초진동 나이프를 곧추세웠다. 그러자 초진동 나이프에서 2미터에 가까운 검기가 치솟았다.

“단숨에 뚫는다.”

검기로 덧씌워진 초진동 나이프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했다.

레비아탄의 조각들은 나름 방어를 한다고 미친 듯이 자신의 촉수를 휘둘렀지만, 마하임의 검기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검기의 날카로움은 단분자 절단기를 능가했다. 검기에 스치기만 해도 레비아탄의 조각들의 몸은 광혈을 뿜어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키에엑. 강하다. 모든 인간은 이렇게 강한 것인가?”

“싸울 생각이 없다면 비켜라! 네놈들과 시간을 죽일 여유는 없다.”

“크르르릉. 안타깝지만 너흰 여기서 죽는다. 아직 우리는 많다. 네놈이 아무리 강해도 결국은 인간. 인간은 빨리 지친다. 지금이야 버틸 수 있다고 쳐도, 그것이 얼마나 갈까?”

레비아탄의 조각의 말에 마하임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레비아탄의 조각의 말은 사실이었다. 지금 마하임의 단전에 모여 있던 기는 얼마 없었다.

앞으로 길게 봐도 10분 후면 더는 검기 사용이 불가능해진다. 그렇게 되면 패배는 기정사실이었다.

“흥! 그전에 네놈들을 모두 쓰러트려 주지!”

거침없이 초진동 나이프를 휘두르는 마하임. 그의 검술은 신선들 중에서도 최고라고 일컬어질 정도의 달검(達劍)이었다.

마하임의 검이 한 번 번뜩일 때마다 두어 마리의 레비아탄 조각이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광혈을 뿌리며 쓰러졌다.

“큭!”

광혈을 나름 피한다고 했지만, 사방에서 몰아치는 레비아탄의 공격을 피하면서 놈들이 죽으며 뿜어내는 광혈을 모두 피할 수는 없었다.

결국 마하임의 어깨와 팔에 레비아탄의 조각의 광혈이 튀었다.

그러자 심한 악취와 함께 마하임의 어깨와 팔이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마하임은 극심한 고통 속에 저도 모르게 초진동 나이프를 놓쳤다.

“크르르릉. 끝이다.”

레비아탄의 조각들은 단숨에 마하임을 덮쳤다. 그리고 그의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려는 듯 촉수를 날렸다.

슈칵-!

퍼어어억!

바로 그때 들려온 둔탁한 소리. 그 소리와 함께 마하임을 덮치던 3마리의 레비아탄 조각들이 두 동강 나 바닥으로 무너졌다.

“뭐지? 또 뭐가 나타난 거야!”

통로 구석에서 몸을 부들부들 떨며 이걸 지켜보던 호운이 중얼거렸다.

여전히 레비아탄의 조각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 사이에 미묘한 변화가 있었다.

“키에에엑!”

“크르릉!”

“케엑 키에에!”

혼란스러워하는 레비아탄의 조각들. 그들 사이에 뭔가 트러블이 발생한 모양이었다.

레비아탄 조각들은 마하임을 버려 둔 채 광혈을 뒤집어쓰고 있는, 방금 전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레비아탄 조각에게로 촉수를 내뻗었다.

“크르르르, 정신 조작인가? 그렇다 하더라도 배신자는 용서할 수 없다.”

레비아탄의 조각들은 방향을 돌려 광혈을 뒤집어쓰고 있는 레비아탄 조각을 향해 달려들었다.

슈각-!

하지만 광혈을 뒤집어쓰고 있는 레비아탄의 조각의 움직임이 훨씬 더 빨랐다. 놈의 촉수는 날카롭고도 치명적이었다.

광혈을 뒤집어쓴 레비아탄의 조각은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놈들을 향해 일말의 자비도 없이 촉수를 날렸다.

쯔억!

스걱!

키에에엑!

살과 뼈가 찢기는 소리와 레비아탄의 조각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일순간 이 좁고 어둠으로 가득한 공간에 울려 퍼졌다.

광혈을 뒤집어쓴 레비아단의 조각은 다른 레비아탄의 조각들과 차원이 다른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었다.

놈의 촉수가 한 번 번뜩일 때마다 레비아탄의 조각들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히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에 모여든 수십 마리의 레비아탄의 조각들은 모두 산산이 찢겨 전멸하고 말았다.

“넌 뭐냐! 왜 동족을 죽이는 거지?”

레비아탄의 조각들을 학살한 광혈을 뒤집어쓴 레비아탄은 꼼짝도 않고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단숨에 이 수많은 레비아탄 조각을 죽여 버린 괴물에게 다가갈 만한 용기는 없었다.

“크르르르.”

마하임의 물음에 광혈을 뒤집어쓰고 있는 레비아탄의 조각은 낮게 울부짖었다. 그리고 천천히 루시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크르릉, 다행입니다. 살아 있어서.”

“설마…. 라르고 님?”

광혈을 뒤집어쓰고 있는 레비아탄의 조각의 말에 루시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녀석의 입에서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던 마법사 라르고의 목소리가 흘러나온 것이다.

“네, 맞습니다. 정확히는 마인드 컨트롤 마법으로 제 기억을 덧씌운 정도이지만 말입니다.”

“그럼 라르고 님은….”

“아마도 죽었겠죠. 이 마법은 금단의 마법. 사용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니까요.”

둘의 대화를 듣던 마하임과 호운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야 어찌 되었건 저 광혈을 뒤집어쓴 레비아탄은 루시와 아는 사이인 듯했다.

“죄송해요. 혼자 살아남아서….”

“크르르르.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루시 님. 이것도 전부 운명. 마법사의 길이란 그 운명을 더듬어 가는 것. 비록 운명을 바꿀 수는 없다 하더라도, 당신만큼은 지켜 드리겠습니다.”

레비아탄의 조각, 아니 이제는 라르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녀석은 루시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루시는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라르고의 품에 안겼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괜찮습니다. 전 괜찮아요.”

둘은 안긴 채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하지만 마하임에게는 이렇게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라르고 님이라고 했던가요? 우린 주조종실로 가야 합니다.”

“크르르르, 알겠습니다. 대충의 위치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보호해 드리겠습니다.”

라르고는 자신의 몸을 소리 없이 움직여 다음 격벽까지 이동했다.

가는 길은 조용했다. 더는 레비아탄의 조각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뭐가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 또 문이나 따야지. 뭐.”

호운은 아직도 라르고가 무서운 모양인지 쭈뼛거리며 격벽의 콘솔로 향했다.

“두 분은 어떻게 알게 된 겁니까?”

마하임은 분위기가 너무 서먹서먹해지자 라르고와 루시를 향해 말했다. 그러나 루시는 방긋 웃으며 마하임에게 답했다.

“여기 라르고 님은 마법사 길드, ‘빛의 탑’의 수석 마법사님입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레비아탄에 대해 조사 중이셨죠. 하지만 제가 타고 있던 구역에 레비아탄의 조각들이 습격을 해서, 라르고 님의 도움으로 저만 겨우 탈출할 수 있었지요.”

씁쓸한 미소를 짓는 루시. 그런 루시를 향해 라르고는 부드럽게 말했다.

“루시 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저의 죽음은 제가 선택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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