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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151화 (151/194)

151화

라르고는 자신 품에 안겨 있는 루시의 등을 촉수로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후유, 이번 방화벽은 꽤 까다롭네. 다음 구역에 주조종실이 있어서 그런가?”

호운은 격벽 앞에 설치된 콘솔을 붙잡고 한참 씨름을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격벽 보안 프로그램들은 비교적 단순한 것들이라 쉽게 해제할 수 있었지만, 이번 격벽은 달랐다.

이중 삼중 방화벽으로 보호되고 있었고, 심지어는 선장의 생체 정보까지 요구했다.

“형, 아무래도 여기로 좀 와 줘야 겠는걸? 이 문을 열려면 형의 생체 정보가 필요해.”

“알았어. 지금 그리로 가지.”

마하임은 곧장 호운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격벽 옆의 콘솔에 생체 정보 입력기가 눈에 들어왔다.

“각막이랑 홍채, 거기에다 DNA 정보까지 요구하네. 이렇게 보안이 철저한 문은 처음이야.”

“나사의 최고 기밀을 제어하는 곳이니까 보안이 철저한 것은 어쩔 수 없지.”

마하임은 생체 정보 입력기에 눈과 손을 가져다댔다. 그러자 생체 정보 입력기의 AI가 즉시 마하임을 알아보고 말했다.

[각막, 홍채. DNA 검출. 확인 중…. 확인 완료. 어서 오세요. 마하임 선장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이 격벽을 열어 줘.”

[지금은 비상 상황입니다. 격벽 반대쪽 상황이 모니터링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격벽을 열까요?]

“상관없다. 열어.”

[네, 알겠습니다. 시스템 온라인. 격벽을 개방합니다. 지금은 비상사태입니다. 선내의 안전장치가 완벽하게 동작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의를 요망합니다. 카운트다운 시작하겠습니다. 3, 2, 1.]

[격벽 개패.]

쿵!

육중한 울림과 함께 격벽이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과연 마카와 아루시안은 살아 있을까? 자신이 주조종실이 아닌 일반 탑승 구역에 있게 된 이유도 궁금했다.

잠시 후 격벽은 완전히 사라졌다. 마하임은 주조종실 안으로 달려가며 마카와 아루시안을 찾기 시작했다.

“마카! 아루시안! 어디 있습니까?”

주조종실 안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메인 전원이 나가서 어두웠다.

이 어두운 공간을 밝혀 주는 것은 벽에 드문드문 붙은 발광석이 전부였다.

탕-!

바로 그때 들려온 총소리. 마하임의 뺨에 총알 한 발이 스치듯 지나갔다. 마하임은 고개를 돌려 총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아루시안?!”

그곳에는 아루시안이 실오라기도 하나 입지 않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몸에는 검붉은 피로 기묘한 모양의 도형들이 그려져 있었다.

마하임은 전에도 이러한 것을 한 번 본 적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교도 토벌 때 본 사교도의 우두머리의 모습이었다.

“네놈! 사교도였던 것이냐?”

“오, 이게 누구야? 선장이잖아? 약까지 먹여서 레비아탄의 조각들이 우글거리는 곳에 던져 놨는데도 살아오다니, 일단은 칭찬은 해 주마.”

아루시안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마하임을 향해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마하임은 발끈하며 아루시안을 향해 외쳤다.

“다 네놈 짓이었나!! 마카는 어디 있지? 왜 이런 짓을 하는 거냐!”

“아, 마카? 마카는 여기에 있다.”

허리를 숙인 아루시안은 바닥에 굴러다니던 마카의 머리를 집어 들었다. 이를 지켜보던 호운과 루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레비아탄님을 위한 첫 희생 제물이었지. 순혈이 아닌 잡종인 네놈은 제물이 될 가치조차 없다!”

광기로 번뜩이는 아루시안의 눈. 마하임은 그를 바라보이 이를 악물고 외쳤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아냐!”

“그건 내 알 바 아니지. 모든 것은 레비아탄님의 의지. 나는 그분의 종일 뿐이다.”

“큭, 크하하하하!”

아루시안의 말을 들은 마하임은 갑자기 미친 듯 웃기 시작했다.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이 배의 사람들을 학살하다니, 마하임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레비아탄이 뭐 그리 대단한 존재라고 이 배에 탄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해야만 했는지 마하임은 이해도 납득도 할 수 없었다.

잠시 후 광소를 멈춘 마하임은 아루시안을 노려보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

“아루시안,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죄의 결말은 죽음이라는 말이 있지. 난 널 반드시 죽일 거다.”

“어이쿠 무서워라. 무서워서 온몸이 다 떨리네. 근데 너 따위가 날 죽일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아루시안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찍, 우지직-

그의 피부는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한순간 찢겨졌다. 그리고 그 찢어진 살 아래에서 투명한 레비아탄 조각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내 아루시안의 모습은 사라지고 그곳에는 일반적인 레비아탄 조각의 2배 이상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레비아탄 조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너희 미연방 정부를 용서치 못한다. 그들은 우리 조상인 인디언을 내쫓고 우리들을 마치 동물처럼 사육했다. 그리고 우리 인디언은 이제 그 명맥조차 끊어져 버렸지. 나의 복수는 정당한 것이다!”

레비아탄의 조각으로 변한 아루시안은 피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는 미연방 인디언 보호 구역에서 살고 있는 인디언족 중 한 사람이었다.

미연방은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면서 수많은 인디언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자기 입맛대로 이주시켰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인디언 보호 구역을 만들어 그곳에서 미연방 정부가 뿌려 주는 사료만을 먹으며 겨우 멸족만은 피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적인 대공황과 더불어 미연방 정부의 재정난이 겹치자, 인디언을 위한 지원도 끊어졌다.

이로 인해 인디언들은 오갈 곳 없는 신세가 되어 죽음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미연방 정부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 위대하신 레비아탄님께서 전 인류를 지배하실 것이다. 피와 죽음으로!!!”

아루시안의 변신은 끝났다. 투명했던 놈의 몸은 이내 검붉은 피부로 바뀌었다.

그 모습은 마치 촉수가 달린 거대한 코브라처럼 보였다. 물론 키가 2m가 넘는 코브라 따위는 존재할 리 없겠지만 말이다.

“어떠냐. 이것이 우리의 완전체다. 이름하여 레비아탄 드론. 내가 지은 이름이지.”

자랑스러운 듯 아루시안은 자신의 변해 버린 몸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마하임은 이를 보며 역겨운 듯 바닥에 침을 뱉었다.

“웃기시네. 레비아탄 따위의 종이 된 게 그렇게 기쁘냐?!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너희들을 절대 지구로 가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다.”

“하하하! 할 수 있으면 해 보시지? 감히 인간 따위가 레비아탄 드론에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건 싸워 보면 알겠지!”

마하임은 다시금 초진동 나이프를 깨웠다. 전투는 피할 수 없었다.

이대로 놈을 내버려 두면 레비아탄은 지구에 침투해 자리를 잡을 것이다.

마하임쯤이나 되니까 레비아탄과 싸울 수 있는 거지, 일반인이 이 레비아탄과 맞닥뜨린다면 도망은 고사하고 일방적인 학살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앞 구역에서 본 것 같이 놈들의 번식 능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지구에 레비아탄이 떨어지면 인류는 물론하며 지구 대다수 생명체들은 멸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좋아. 선장. 난 당신이 좋다. 뭐랄까? 나쁜 남자 같은 느낌이 있어서 말이지.”

“난 네놈이 싫으니까, 닥치고 싸우자. 피차 시간이 없지 않나?”

“좋아. 그럼 죽여 주지. 이 하등한 인간아!”

아루시안은 육중한 몸체를 이끌고 마하임에게 돌격했다. 마하임은 뒤로 재빨리 물러서며 초진동 나이프를 휘둘렀다.

촤라락-!

초진동 나이프는 정확이 놈의 얼굴에 스치며 긴 상처를 만들었다. 순간 광혈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그 상처는 치료되어 버렸다.

“나를 보통의 레비아탄 조각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런 것 같군. 나 혼자는 너를 상대하는 것은 조금 어려울지도 모르겠어.”

“하하 포기가 빠르군. 그럼 얌전히 죽어라!”

기다렸다는 듯 마하임을 향해 자신의 촉수를 날리는 아루시안. 그러나 그 촉수는 마하임에게 닿지 않았다.

푸우욱!

“컥! 뭐냐?!”

바로 그때 아루시안의 몸을 관통해 2개의 촉수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것은 다름 아닌 라르고가 마인드 컨트롤한 레비아탄 조각의 촉수였다.

마하임이 아루시안의 시선을 끄는 와중에 은신한 상태로 뒤돌아간 라르고의 레비아탄이 아루시안의 몸에 촉수를 박아 넣은 것이다.

“큭! 이 정도로 내가 쓰러질 것 같은가!”

몸을 비틀며 아루시안은 라르고의 촉수를 자신의 촉수로 절단해 버렸다.

“배신자! 우선 네놈부터 죽여 주마!”

땅을 미끄러지듯 라르고의 레비아탄 조각에게 다가간 아루시안은 자신의 촉수를 무서운 속도로 라르고의 레비아탄을 향해 뻗었다.

퍽 퍼퍼퍽-!

아루시안의 촉수는 단숨에 라르고의 몸을 관통했다. 사방으로 튀는 광혈. 라르고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흥! 되다 만 혼종이. 완전체 앞에서 까불어.”

연이어 자신의 촉수를 라르고의 레비아탄의 몸에 박아 넣는 아루시안. 그러나 아루시안은 이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너, 무슨 짓이냐?!”

라르고의 레비아탄 조각 몸에 박힌 아루시안의 촉수를 다시 뽑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촉수를 뽑으려고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촉수는 마치 빨려 들어가기라도 하듯 라르고의 레비아탄 조각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크르르르, 지금이 기회…입니다, 죽여 주십시오. 선장님….”

광혈로 뒤범벅이 된 라르고의 레비아탄 조각이 힘겹게 말했다. 마하임은 두말할 것도 없이 땅을 박찼다.

“젠장! 죽어, 괴물!!!”

마하임은 단숨에 아루시안의 몸에 초진동 나이프를 꽂아 넣었다.

“컥! 네, 네놈!”

“만나서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

푸하학-!

마하임은 초진동 나이프에 검기까지 덧입혀서 단숨에 아루시안의 몸을 두 동강 내 버렸다.

“하아, 하아. 이겼나?”

마하임은 숨을 몰아쉬며 두 동강 나 바닥에 쓰러진 아루시안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크으으, 내가 진 건가….”

어깨에서 허리까지 긴 검상을 입고 상하로 절단된 아루시안은 힘겹게 입을 열어 중얼거렸다. 마하임은 그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어때. 죽어 가는 기분이.”

“좋아. 아주 좋아. 이런 기분은 처음이야.”

“어처구니없는 놈이군.”

“그래, 지금은 승리를 만끽해도 좋아. 하지만 머지않아 지구에 레비아탄님이 강림하신다. 그날이 오면 모든 생명체들은 레비아탄님께 무릎을 꿇을 것이다.”

아루시안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마하임은 그런 아루시안이 측은해 보이는지 짧게 혀를 찼다.

“네 헛소리는 들을 만큼 들었다. 이제 죽어라. 배신자여.”

푸욱-!

마하임의 초진동 나이프가 아루시안의 머리에 꽂혔다. 그 직후 초진동이 작동되어 아루시안의 머리는 수박 터지듯 터져 나갔다.

그리고 한동안 정적히 흘렀다.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라르고의 마인드 컨트롤된 레비아탄의 조각도 더는 움직이지 못했다.

살아남은 사람이라고는 마하임과 호운, 그리고 루시가 전부였다.

“이젠, 어떡하죠?”

루시가 마하임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하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는 듯 그녀의 말에 답했다.

“지구로, 고향으로 돌아가야죠.”

그렇게 최악의 우주 재앙이라고 일컬어지는 이벤트 호라이즌의 첫 항주는 끝나 가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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