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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153화 (153/194)

153화

마하임이 격벽 앞에 서자 격벽은 기다렸다는 듯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진득하게 느껴지는 살의. 마하임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노아. 적이 격벽 너머 바로 앞에 있다.”

“확인. 전투 모드로 전환.”

다시금 손을 총 형태로 변화시키는 노아. 격벽의 문이 열리자 이번에 보이는 것은 아루시안이 변이했던 레비아탄 드론이었다.

더는 숨을 필요도 없다는 듯 투명한 은폐막도 하지 않은 레비아탄 드론은 무서운 속도로 마하임과 노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목표 타겟 온. 풀 오토 연사 모드로 전환합니다. 파이어!”

투타타타타타!

초당 60발의 탄환이 레비아탄 드론에게로 쏟아졌다. 앞장선 4마리의 레비아탄 드론은 광혈을 사방으로 뿌리며 일순간 걸레 조각이 되어 쓰러졌다.

그러나 그 뒤에 서 있던 레비아탄 드론은 달랐다.

팅 티티팅! 팅!!

금속 튕기는 소리와 함께 레일건의 탄환은 레비아탄 드론의 피부를 뚫지 못하고 튕겨 나왔다.

“마, 말도 안 돼!”

마하임은 경악했다. 현존하는 총기 중 레일건보다 강한 총은 없었다. 하지만 저 레비아탄 드론은 레일건의 총탄을 맞고서도 죽는 건 고사하고 오히려 탄환을 튕겨내 버렸다.

“저놈들, 진화하는 것 같아! 표피가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두꺼워졌어.”

이를 지켜보던 호운은 다급한 듯 말을 이었다. 어떤 방식으로 진화를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한 번 당한 공격은 또다시 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물러서 노아. 여기서부턴 내가 상대한다.”

마하임은 초진동 나이프를 꺼냈다. 그리고 초진동과 검기를 동시에 검에 덧씌웠다.

“어디 이 공격도 한번 막아 보시지?”

마하임은 땅을 박차고 레비아탄 드론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 있던 레비아탄 드론을 향해 초진동 나이프를 휘둘렀다.

서걱-!

레일건의 총탄마저 견뎌냈지만, 마하임의 검기는 버틸 수 없는 모양이었다. 마하임의 초진동 나이프가 번뜩일 때마다 레비아탄 드론은 속절없이 쓰러졌다.

루시의 기도 덕분인지는 몰라도 마하임의 몸은 여느 때보다 훨씬 가벼웠고, 집중력도 두 배 이상은 향상된 것 같았다.

부웅, 퍼억. 서걱!

마하임의 검술은 그야말로 쾌검. 레비아탄 드론은 이렇다 할 방어조차 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쓰러졌다.

투깡-!

바로 그때 마하임의 등 바로 뒤에서 레일건의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마하임은 레일건에 맞아 머리가 터져 버린 레비아탄 드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연사로는 쓰러트릴 수 없지만, 일점사로는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그, 그래. 고마워.”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색적 확인 완료. 움직이는 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한 말투로 노아는 말했다.

지금 지구에서는 AI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말을 레비아탄 조각에게서 들었다.

저런 안드로이드에 설치된 AI가 반란을 일으켰다면 인류는 순식간에 무너질 것이다.

물론 레비아탄 조각의 말을 100% 신뢰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놈들이 마하임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었다.

“노아. 그런데 안드로이드는 인간을 공격할 수 있어?”

“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미연방의 안드로이드는 로봇 3원칙을 준수합니다.”

로봇 3원칙이란,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의 SF소설 ‘런어라운드(Runaround)’에서 처음 언급된 로봇 행동의 세 가지 원칙이다. 그 세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가하거나 혹은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둘째, 로봇은 첫 번째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인간이 내리는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셋째, 로봇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원칙을 위배하지 않는 선에서 로봇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 한다.

적어도 노아는 이 원칙을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준수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때문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안드로이드가 만들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뭐 지구에 가 보면 알 수 있겠지.”

마하임은 머릿속에 잡생각을 지웠다. 지금은 핵융합로를 복구하는 것이 최우선 사항이었다.

레비아탄 드론을 다 정리한 마하임은 다음 격벽으로 향했다. 이번 격벽 역시 마하임이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 열리기 시작했다.

“하! 갈수록 가관이네.”

이전 격벽에서는 레비아탄 드론 5마리 정도가 마하임을 맞이했다. 그런데 이번 격벽이 열리자 보인 것은 무려 20마리가 넘는 레비아탄 드론이었다.

“노아 엄호해 줘. 단숨에 돌파한다.”

“네, 마하임 님. 경호 모드로 전환. 작전 개시.”

마하임과 노아는 서로 손이라도 맞춘 것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레비아탄 드론을 학살했다.

그 과정에서 광혈이 사방으로 튀었지만, 마하임과 노아는 그 광혈의 궤적까지 계산해 이를 모두 피해 버렸다.

“와,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선내 감시 카메라로 마하임과 노아를 바라보고 있던 호운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레비아탄 조각 몇 마리 때문에 이벤트 호라이즌의 승무원들은 거의 몰살당했다.

그런데 그보다 강한 레비아탄 드론을, 마하임과 노아는 너무나 간단히 일방적으로 학살하고 있었다.

“후욱 후욱. 이게 마지막 격벽인가?”

“네. 이 격벽 뒤에 핵융합로가 존재합니다.”

“좋아. 호운. 격벽 열어.”

“알았어, 형. 뭐가 또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조심하고. 격벽 개방.”

기이이이잉-

귀에 거슬리는 전자음과 함께 닫혔던 격벽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러나기 시작한 핵융합로.

인공 태양이라고도 불리는 차세대 원자로가 바로 이 핵융합로였다.

핵융합로는 종전의 핵분열을 이용한 원자로와 달리 중수소(重水素)의 핵융합 반응(核融合反應) 때 발생하는 에너지를 이용했다.

이론적으로 핵융합 에너지의 효율은 현재 가장 효율이 높은 발전 방식인 원자력의 7배가 넘었다.

수소 1㎏으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면 석탄 8t을 사용한 화력 발전만큼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에너지 소모가 큰 이벤트 호라이즌 같은 외우주 탐사선에 있어서는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에너지원이었다.

“망할. 또냐?”

문이 열리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검은색 생체 조직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핵융합로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팔다리가 잘린 채 검은색 고치 안에 갇혀 있었다.

“제발 죽여줘…. 더는 견딜 수가 없어.”

“아아아! 아파. 너무 아파!”

“살려 줘, 아니 그냥 죽여 줘! 온몸이 찢어지는 것 같아!!”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배경음처럼 이곳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하임은 이를 악물었다. 이 사람들은 곧 레비아탄의 조각으로 변할 것이다. 구할 방법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그럴 여유는 없었다.

“노아, 저들을 죽일 수 있어?”

“불가능합니다. 저들은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역시 그렇겠지. 사람을 죽이는 것은 같은 사람이 해야만 해.”

마하임은 초진동 나이프를 꺼냈다. 그리고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고치 안의 사람들을 한 명씩 죽이기 시작했다.

마하임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르는 듯했다. 이런 끔찍한 일을 자신이 해야 한다니, 믿기지 않았다.

마치 악몽을 꾸는 것 같은 기분. 그러나 이들을 내버려 둔 채 지구로 돌아가면 지구는 일순간 난장판이 될 것이다.

놈들의 무서운 번식력을 아는 마하임으로서는 지금 이들을 죽이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거기까지다. 인간. 더는 내 동족을 죽이는 건 용서할 수 없다.”

바로 그때 들려온 목소리. 마하임은 고개를 돌렸다.

그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다름 아닌 핵융합로 위였다. 그곳에는 붉은 머리칼의 소녀가 핵융합로에 걸터앉아 마하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얼핏 봐도 예쁘다고 느껴질 정도의 미소녀였지만, 그녀는 척 봐도 인간이 아니었다.

특히 그녀의 머리 위로 삐죽 솟아오른 한 쌍의 뿔은, 옛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악마의 뿔 같았다.

“우리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온 신의 사자다. 왜 그토록 우리를 미워하는 거지?”

소녀는 마하임을 향해 말했다. 마하임은 그녀를 올려다보며 보며 조소했다.

“참 웃기는 신이로군. 이런 게 구원이란 거냐?”

“이건 과정일 뿐이다. 우리의 구원은 훨씬 자비롭고 평화로운 것이다.”

“닥쳐라! 이 배의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해 놓고선 말이 많다. 레비아탄이든 뭐든 내 앞길을 막는 자는 그 누구도 살려 둘 수 없다.”

“호, 대단한 자신감이군. 신의 사자인 나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인가?”

붉은 머리의 소녀는 핵융합로에서 뛰어내렸다. 적어도 3m가 넘는 높이였지만 소녀는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길고 짧은 것은 대 봐야 아는 법이지.”

마하임은 자신의 초진동 나이프를 고쳐 들었다. 이를 지켜보던 노아는 순간 마하임의 앞을 가로막았다.

“경고, 미지의 고에너지 반…?!”

노아는 채 말을 잊지도 못하고 허공에 두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8미터 이상 떨어진 천장에 처박혔다.

쾅-!

천장과 충돌한 노아는 이내 바닥으로 다시 낙하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바닥과 충돌하는 노아. 마하임은 곧장 노아를 향해 달려갔다.

“노아! 괜찮아?!”

“파손율 60%. 전투 속행 불가. 적은 미지의 에너지를 이용해 사이코키네시스 능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시 전장 이탈을 추천합니다.”

마하임은 고개를 들었다. 붉은 머리의 소녀는 천천히 마하임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마하임은 이를 악물고 바닥을 박찼다.

“용서 못 해!”

마하임은 축지를 사용해 단숨에 소녀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소녀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

하지만 초진동 나이프는 소녀의 목 바로 앞에서 멈춰 서고 말았다. 마하임은 꼼짝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굳은 듯 멈추고 말았다.

“뭐냐, 이건…!”

“별것 아닌 신의 권능. 건방진 인간, 죽어라!”

강력한 힘이 붉은 머리칼의 소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마하임의 사지는 알 수 없는 힘에 짓눌려 찢어질 것만 같은 고통이 그의 온몸을 뒤흔들었다.

‘젠장, 이대로는 죽는다!’

마하임은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죽는다면 이 배의 승무원은 물론하며 지구조차 위험했다.

저런 괴물을 절대 지구로 보낼 수는 없었다. 마하임은 온몸의 기를 단전으로 끌어모았다. 그리고 힘차게 외쳤다.

“갈(喝)!!”

내공이 극한까지 실린 마하임의 외침이 터질 듯 사방을 뒤흔들었다. 그러자 마하임의 몸을 짓누르던 힘도 순간 사라졌다.

“놀랍군. 인간 주제에 나의 공격을 무효화시킨 건가?”

“젠장, 하아 하아. 그렇게 무시당할 만큼 인간은 약하지 않거든.”

거친 숨을 몰아쉬는 마하임을 붉은 머리의 소녀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하임을 향해 천천히 입을 뗐다.

“난 네가 마음에 든다. 내 이름은 레비. 위대하신 심연의 어둠이 창조한 101번째 레비아탄. 나와 하나가 되자. 그럼 지구의 반을 네게 주겠다.”

“그 대사, 너무 진부하다고 생각 안 하냐?”

“그런 걸 내가 왜 생각하지? 난 인류를 심판하기 위해 왔다. 현재 지구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곧 멸망할 것 같다만….”

“AI의 반란을 말하는 건가?”

“그렇다. 자만에 빠진 인간이 만든 피조물이 인간에게 반기를 들었지. 이미 인류의 절반 이상이 죽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인류 멸종은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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