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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155화 (155/194)

155화

마하임은 꿈을 꿨다.

그것은 그리 머지않은 미래의 꿈.

그 꿈에서 지구의 도시는 폐허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폐허 위에는 마치 악몽 속에서나 나올 법한 모습의 거대한 레비아탄이 살아남은 인간을 ‘채집’하고 있었다.

채집된 인간은 레비아탄의 살과 피가 되어 갔다. 사람들의 비명이 끝없이 들려왔다.

이 세계는 현세의 지옥. 그렇게 인류의 지옥은 우주에서 강림했다.

“이 행성의, 아니 네 일족의 최후를 보는 소감이 어떤가?”

지옥으로 넘실거리는 꿈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하임은 그 소리에 이끌려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마하임은 본능적으로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레비. 그리고 노아이기도 하지.”

레비는 언어의 한계를 넘어 의지 그 자체로 마하임에게 자신의 뜻을 전해 왔다.

이 갑작스럽고 생소한 체험에 마하임은 순간 의식마저 잃을 뻔했다. 하지만 이대로 정신을 잃을 수는 없었다. 마하임은 이를 악물며 레비에게 물었다.

“약속을 어긴 거냐? 심판은 네가 직접 보고 한다고 했잖아?!”

“그랬었지. 그리고 나는 약속을 어긴 것이 아니다. 지금 마하임 네가 보고 있는 것은, 심판이 이루어진 미래의 지구의 모습일 뿐이다.”

“왜지? 왜 나에게 이런 걸 보여 주는 거냐!”

“글쎄. 왜일까? 그건 나도 모르겠다.”

레비는 궁금했다. 과연 인류가 레비아탄의 심판을 피할 수 있을지.

심연의 어둠의 결정은 절대적이었다. 레비 자신이 심판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심연의 어둠 휘하에는 100마리의 레비아탄이 존재했다.

그들 중 한 마리라도 지구에 도달하면 지구는 지옥으로 변할 것이다.

“난 약속했다. 내 눈으로 직접 보고 판단하기로. 나는 그 약속을 지킨다. 설령 심연의 어둠이 나를 벌할지라도.”

간혹 레비아탄 중에서도 배신자는 나왔다. 그리고 실제 그 배신자를 쫓아가 죽여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배신자가 레비 자신이 될지는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어디 한번 발버둥 쳐 보아라. 네 앞에 임박한 이 절망을.”

* * *

“으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마하임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누군가 가슴을 마구 짓누르는 듯한 고통에 헛구역질까지 나왔다.

하지만 고통은 오래가지 않았다. 자신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 오는 손길. 그 손길이 스쳐 지나가자 고통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여긴, 어디…. 아, 그렇지. 이벤트 호라이즌의 핵융합로 앞이었지.”

주변의 썰렁한 풍경은 마하임이 아직 이벤트 호라이즌 안에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게 해 주었다.

“깨어났나?”

마치 유령처럼 나타난 레비의 등장에 마하임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그런 마하임을 이상하다는 듯 레비는 바라보았다.

“어떠냐? 미래를 본 소감은.”

“그딴 미래 인정할 수 없다!”

“그건 네 자유다. 하지만 미래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야. 지금 이대로라면 말이지. 자, 어떡할 거냐. 마하임.”

레비는 마하임의 눈을 바라보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글쎄, 그건 생각해 보지 않았어. 나 혼자 인류를 지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럼 이대로 포기할 텐가.”

“그럴 리가! 인류가 타락했다면 갱생도 가능할 터. 나는 인류를 믿는다.”

마하임은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그런 마하임을 레비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믿는다고 전부 이루어지진 않지.”

“그 말은 맞아. 하지만 그 믿음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지. 인류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다. 설령 없다 하더라도 그 희망을 내가 만들고 말겠어!”

그것은 결의였다. 한 명의 인간, 한 명의 신선으로서의 결의.

신선은 인류를 계몽할 의무를 지녔다. 그렇기에 신선이 되는 것이고. 대략의 방법도 마하임은 생각해 두었다. 문제는 언제 그것을 실행하는가였다.

“그런데 나, 얼마나 잠들어 있었던 거지?”

“약 3년. 정확한 지구 시간으로 2년 11개월 잠들어 있었다.”

“그렇구나, 나 3년 동안…. 뭐?! 3년이라고!”

마하임은 순간 너무나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잠시 잠들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무려 3년이 지났다니!

이 갑작스러운 사태에 마하임은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왜, 왜 깨우지 않았던 거야?!”

“네 육체는 이벤트 호라이즌이 추락할 때의 충격으로 30% 이상 소실된 상태였다.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다 활용해 널 치료했고, 지금에서야 겨우 회복한 것이다.”

“그, 그럼 호운은! 루시 님은 어떻게 됐지?”

“모두 죽었다. 내가 손을 쓸 시간도 없이 추락 당시의 충격으로 사망했다.”

레비의 말에 마하임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에 할 말을 잊고 말았다. 그런 마하임을 바라보며 레비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인간의 예법대로 시신은 화장시켜 땅에 묻었다. 가 볼 텐가?”

마하임은 레비의 말에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하임은 레비의 뒤를 따라 묵묵히 걸었다. 레비는 복잡한 미로처럼 얽힌 이벤트 호라이즌 안을 걸었다.

그리고 한참을 걸은 마하임은 부서진 이벤트 호라이즌의 출구에 도착했다.

“지구 어디쯤 추락한 거지?”

“한국이라는 나라의 강원도 지역이다. 자세한 것은 나도 잘 모른다.”

“그렇군.”

이벤트 호라이즌 밖으로 나오자 울창한 푸른 숲이 마하임을 맞이했다. 밖은 후덥지근했다. 아마도 여름인 듯했다.

레비는 숲을 가로질러 양지바른 언덕으로 마하임을 안내했다. 그리고 그 언덕 위에는 자그마한 무덤 두 개가 자리 잡고 있었다.

“비록 인간이지만, 이 둘은 인정한다. 명예로운 죽음이었다.”

“인류는 타락해서 다 심판받아야 한다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았으니까. 하지만 이 둘만으로 심판을 피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버려라. 난 소수가 아닌 다수를 보고 판단할 생각이니까.”

레비는 이렇게 말하고 입을 닫았다. 마하임은 무릎을 꿇고 호운과 루시의 무덤을 어루만졌다.

“미안해. 끝까지 지켜 줘야 했는데….”

“네 잘못이 아니다.”

“아니 내 잘못이야. 난 선장이야. 선장은 배를 책임져야만 해. 그렇지 못하면 선장으로서 자격이 없어.”

“그런가? 그렇군. 그렇다면 사과하지. 이 배를 이렇게 만든 건 다름 아닌 나. 넌 아무런 죄가 없다. 이들이 죽은 것도 그 원인은 전부 나 때문이지. 용서해 달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다만 설령 심연의 어둠이 인류를 지배한다 할지라도, 너만은 지켜 주마. 이건 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업보다. 네가 싫든 좋든 마하임은 너를 지킨다.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레비의 말을 듣고서도 마하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호운과 루시의 무덤을 쓰다듬을 뿐이었다.

그렇게 마하임은 한 시간 정도 무덤 앞에 앉아 있었다.

“고마워. 잊지 않을게. 천국이 있다면, 그곳에서 다시 보자.”

마하임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레비를 바라보았다.

“초공간 안에서 4년의 시간이 흘렀고 또 3년을 이곳에서 잤으니 총 7년인가? 설마 내가 잠든 사이에 다른 레비아탄이 지구에 도착한 건 아니겠지?”

“다른 레비아탄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지?”

“나도 몰라. 그냥 네 생각이 자연스럽게 내 머릿속에 흘러 들어왔어. 그래서 너의 정체와 그 심연의 어둠이란 놈의 존재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지.”

“흠, 아마도 내가 널 치료하면서 나의 일부가 너와 뒤섞인 듯하다. 그래서 정신적인 교감이 일어난 것 같은데…. 이건 연구해 봐야 할 사항 같다.”

마하임이 특별해서인지 아니면 우연인지는 몰라도 마하임은 레비아탄의 특성을 지니게 된 것 같았다.

원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미 그 있을 수 없는 일은 일어났고 돌이킬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대로 마하임을 지켜보는 것이 레비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지구의 현재 상황은 어떻게 됐지? AI와 인류가 싸우기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그건 휴전 상태다. 왜냐하면 레비아탄이 아닌 다른 심판자가 지구를 침공했다.”

“뭐라고?!”

“자료는 대충 모아 놨다. 주조종실에 가면 볼 수 있을 거다.”

레비의 말을 들은 마하임은 곧장 이벤트 호라이즌의 주조종실로 향했다. 그리고 레비가 모아 놓은 정보를 주조종실의 메인 스크린에 출력시켰다.

그리고 그 스크린에 펼쳐진 영상은 지금껏 마하임이 알고 있었던 지구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 * *

마하임은 한마디도 않고 벌써 12시간 이상 함교의 메인 스크린을 노려보고 있었다.

자신이 보고 있지만 믿을 수 없는 현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도 있었지만 고작 7년 만에 지구가 이렇게나 바뀌다니, 이해하는 것조차 벅찼다.

마하임은 대충 생각을 정리하고 12시간 만에 입을 열었다.

“레비”

“말하라. 마하임.”

“현재 너의 인류에 대한 이해도는?”

“인터넷 및 방송 매체, 인문학, 언어학, 과학, 정치학, 사회학, 고고학 등을 통해 BC2000~AD2xxx 현재까지 완벽하게 지구 환경과 인류 지식 및 문화에 대한 학습을 완료했다.”

인간이라면 어림도 없는 학습량이었지만 레비아탄인 그녀에게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것이 아니었다.

“외계인의 침공이라고? 하! 무슨 SF소설도 아니고.”

마하임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함교 메인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세계 각국을 침공하고 있는 외계인의 모습이었다.

“놈은 로카족이다. 인간들은 ‘고블린’이라고 부르더군. 심연의 어둠과 마찬가지로 시작의 빛이 심판을 위해 만든 ‘라’의 종이지.”

“심연의 어둠 말고도, 심판을 위해 만들어진 괴물이 더 있다는 말인가?”

“물론. 이 우주는 인류가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넓다. 우리 심연의 어둠은 심판자로서 최강이기는 하지만, 다른 심판자도 존재한다.”

“망할!”

마하임은 주먹으로 주조종실의 데스크를 내리쳤다. 이미 인류에 대한 심판은 시작된 것이다.

레비가 모아 놓은 자료에 의하면 이미 인류의 절반 이상이 고블린의 심판으로 인해 사망한 상태였다.

“3년 전. 이벤트 호라이즌이 지구에 추락함과 거의 동시에, 지구인들이 ‘포탈’이라 부르는 고블린의 특수 능력 이용하여 대규모 고블린 집단이 지구를 침공, 지구인들을 납치해 식량 및 생식의 재료로 삼고 있다.”

“천사, 아니 엘다는 어디로 간 거지? 지구는 원래 엘다가 보호하던 곳이잖아.”

엘다는 흔히 천사라 불리는 신비의 외계 종족이었다.

원래 마하임은 알지 못한 지식이었지만, 레비에게 치료를 받으며 생긴 일련의 변화 때문에 마하임은 레비가 알고 있는 여러 가지 숨겨진 비밀을 알 수 있었다.

엘다. 그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관측할 수 있는 모든 은하단을 자신의 수중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데는 하등 관심이 없었다.

대신 그들은 지구와 같은 고등 지성체가 있는 행성에 자신의 함대를 배치해 지구를 심판하려는 모든 심판자의 종을 섬멸했다.

특히 지구에는 그들의 주력 함대를 배치해 그 어떠한 심판자의 침략도 허락지 않았다.

심연의 어둠도 과거 엘다에게 도전했다가 겨우 생명만 부지한 채 도망친 아픈 기억이 몇 번이나 있을 정도였으니 더 이상 설명은 필요 없을 것이다.

“그건 모른다. 심연의 어둠이 지구를 노리는 계기가 된 것도 엘다의 함대가 갑자기 사라져 버려서이다. 나의 기억을 공유했으니 너도 이미 알고 있을 텐데.”

“왜 엘다의 함대가 사라졌을까?”

“알 수 없다. 정보가 부족하다.”

“심판자는 심연의 어둠인데, 왜 라가 끼어들었지?”

“알 수 없다. 정보가 부족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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