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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157화 (157/194)

157화

쾅-!

땅을 박차고 현민은 달리기 시작했다.

스팀팩의 효과는 신체 모든 기능을 5배, 아니 지금의 현민이라면 10배 이상의 힘을 끌어내게 해 주었다.

더는 고블린 감지기도 필요 없었다. 스팀팩의 영향으로 극도로 예민해진 현민의 후각은 고블린이 이동하며 남긴 불쾌한 체취를 정확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스팀팩의 유지 시간이 비록 2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정도면 고블린 한 무리 정도를 소탕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었다.

“훅, 훅.”

규칙적인 호흡을 내쉬며 현민은 고블린이 남긴 자취를 따라 거침없이 달렸다.

평균 성인 남성의 전력 질주했을 때의 속력은 시속 25km 정도. 올림픽 메달리스트라 하더라도 40km를 넘기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 땅 위를 날듯이 뛰어가는 현민의 속력은 무려 시속 100km에 육박했다.

사실 현민 자신도 이 정도 속도까지 달리기는 처음이었다. GPS를 통해 현민을 모니터링 중인 그의 팀원들도 모두 경악을 금하지 못했다.

“미쳤어?! 보스! 아무리 스팀팩을 썼더라도 그렇게 달리면 근육이 찢겨 버린다고!”

“제발 그만두세요! 사장님은 초인도 아니잖아요!”

“제길! 제기랄! 당장 멈춰! 곧 도착한다니까?! 교전 수칙 몰라? 혼자 가서 뭘 어쩌자는 거야!”

시속 100km로 달린다니! 치타 말고는 이 정도 달리는 동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치타조차도 이 속도로 달릴 수 있는 것은 고작 3분이 전부였다.

그런데 지금 현민은 10kg이 넘는 대몬스터용 자동 소총까지 등에 짊어지고서 벌써 10분째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미국에 나타난 초인, 코드네임 ‘슈퍼맨’과 동급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페이스로 달린다면 사망은 확정이다. 아무리 스팀팩의 효과가 탁월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사용하고 살아남았다는 사람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게다가 자신은 이미 너무 많은 스팀팩을 사용했다. 신체 노화도는 이미 60대 노인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죽음은 이미 확정된 상황, 어차피 이번 사냥이 실패하면 파산이다. 지금 같은 시대에 파산한 헌터가 재기할 방법은 없었다.

“미안하다. 나의 무모한 도전에 끌어들여서. 이번 사냥은 나 혼자서라도 반드시 성공해 보이겠다. 그래야 너희 퇴직금이라도 챙겨 주지. 그동안 너희와 함께 사냥할 수 있어 행복했다. 통신 종료.”

현민은 동료와의 통신 채널을 껐다. 가슴은 아팠지만, 마음은 더없이 가벼웠다. 비록 아버지의 원한은 갚을 수 없겠지만, 그는 전력을 다해 여기까지 왔다.

아버지의 파산과 자살, 그리고 어머니의 가출. 그야말로 흙수저를 넘어선 똥수저 출신인 자신이 헌터 회사까지 세워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 기적도 여기까지인 듯했다. 남은 것은 이제 동료를 위해 마지막으로 자신을 불태우는 것뿐이었다.

“찾았다!”

스팀팩의 영향으로 9.0 이상으로 향상된 그의 시력에 보인 그곳에는 고블린 5마리와, 고블린의 마비 침에 맞아 굳어 있는 민간인 3명. 그리고 새하얗게 빛나는 포탈이 열려 있었다.

“시간이 없어! 젠장, 어쩌지?!”

포탈의 크기를 볼 때, 얼마 지나지 않아 고블린들은 포탈을 통해 도망칠 것이 분명했다.

시간이 없었다. 고블린과의 교전 원칙은 완전 엄폐한 상태에서 원거리 저격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촉박했다.

이렇게 되면 남은 방법은 단 하나. 스팀팩의 힘을 믿고 돌진하는 것뿐이었다.

“으아아아아!!!”

대몬스터용 자동 소총을 풀 오토로 맞춘 뒤 현민은 있는 힘을 모두 짜내어 고블린 무리를 향해 돌진했다.

이미 순간 속력은 무려 120km가 넘었다. 그 가속력을 견디지 못하고 다리 근육이 파열되는 불쾌한 소리가 연이어 들렸지만 현민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죽을 각오를 한 그였기에 지금 현민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이대로 고블린을 놓치는 것이 전부였다.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

투타탕 투타타탕-!

순식간에 고블린 무리와의 거리를 줄인 현민은 녀석들을 향해 주력 전차도 잡을 수 있는 화력의 열화우라늄탄을 난사했다.

발생한 반동은 상상을 초월했지만 현민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조금만 겨냥이 어긋나면 고블린에게 사로잡힌 민간인도 몰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헉, 헉. 헉.”

순식간에 탄창 하나를 비워 버린 현민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대몬스터용 자동 소총을 바닥에 버렸다.

열화우라늄탄의 강력한 열과 화력에 총열이 비틀어져 버려 총열을 교체하기 전엔 더는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제발 다 죽어 줬으면 좋겠는데….”

순간 고블린 무리가 있었던 곳은 열화우라늄탄이 남긴 연기와 먼지로 시계는 제로에 가까웠다.

현민은 허리에 차고 있던 대검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그의 날카로운 본능을 자극하고 있었다.

이 바닥에서 현민이 굴러온 3년 동안 이보다 더 불쾌하고 기분 나쁜 적은 없었다.

분명 놈들을 향해 열화우라늄탄을 퍼부었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이상했다.

이 정도 거리에서 열화우라늄탄을 난사했을 경우, 보통 고블린은 산산조각이 나 녹색 점액질 살과 피, 그리고 고약한 악취가 나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정황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설마, 빗나간 건가?’

현민이 사용한 열화우라늄탄은 고블린을 쓸어버리는 데에 최적화된 녀석이었다. 그럼에도 고블린이 죽지 않았다면 자신이 쏜 열화우라늄 탄이 빗나갔음이 분명했다.

이 정도 가까운 거리에서 열화우라늄 탄을 난사했는데 빗나갔다니,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렇게 된다면 근거리 전투까지 각오해야만 했다.

물론 그것은 말 그대로 자살 행위 그 자체였다. 고블린은 1m도 안 되는 작은 키의 몬스터였지만 맨손으로 사람의 팔다리를 간단히 뽑아 버릴 정도로 근력이 엄청나다.

그래서 고블린을 잡을 땐 원거리 저격으로 처리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현민은 스팀팩을 쓴 상태였다. 다른 때라면 몰라도 스팀팩을 과다 투여한 지금이라면 승산이 없으리라는 법도 없었다.

“역시, 죽지 않았군.”

현민은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다. 연기가 사라지자 보인 것은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은 고블린 무리였다.

심지어는 자신이 알고 있던 고블린도 아니었다. 덩치도 인간만큼이나 컸고 머리에 한 쌍의 뿔까지 달려 있었다.

그제야 현민은 영국에서 출몰했다는 ‘고블린 로드’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었다.

‘함정이다. 우릴 기다린 거야!’

고블린 로드에게 통용되는 화기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영국에 처음 출현한 코드네임 ‘고블린 로드’ 무리는 열화우라늄탄은 물론, 127mm 철갑탄을 연사하는 함포 사격조차 유유히 뚫고 100명 이상의 사람을 생포해 포탈로 끌고 갔다고 한다.

“안 돼! 팀원들에게 알려….”

현민은 재빨리 통신기를 작동시켰다. 아니, 작동시키려고 했다라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다.

푸우욱-!

고블린 로드가 토해낸 1m가 넘는 길이의 마비침이 현민의 오른쪽 어깨뼈에 깊숙이 박혔다.

바닥에 무너지듯 주저앉는 현민. 마비침의 독은 단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현민의 중추 신경계를 완전히 마비시켰다.

아직 스팀팩의 효과가 남아 있었기에 집중만 하고 있었다면 고블린의 마비침 공격은 충분히 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통신기를 켜기 위해 한눈을 판 사이에 벌어진 이 사태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다.

“꾸엑 꾸엑 꾸에에엑!”

선두에 선 고블리 로드가 외치자 그 뒤편에 서 있던 고블린들이 바닥에 쓰러진 현민을 사로잡힌 다른 민간인들과 함께 눕혔다.

지금에서야 안 것이지만 고블린 로드는 한 마리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이 늦고 말았다. 고블린의 마비 침에 맞은 이상 눈을 뜬 채 숨 쉬는 거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부아아아앙-!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요란스러운 차량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볼 것도 없이 현민 팀의 차량일 것이다.

현민은 있는 힘을 다해 몸을 움직여 보려 발악해 보았지만, 석상처럼 굳은 그의 몸은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 내 잘못이야. 내가 다 망친 거라고! 젠자아앙!!’

현민은 절망했다. 동료들의 말을 들었다면 적어도 이런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최소한 교전 수칙만 지켰더라도 상대가 고블린 로드인 것을 알아냈을 것이다. 당연히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음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현민의 판단 미스로 인해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현민을 구하기 위해 그의 동료들 역시 고블린들에게 달려들 것이고,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험비를 개조해 대전차 포탑을 장착한 1호차였다.

1호차는 현민 팀이 가진 가장 강력한 화력을 지닌 동시에 정밀 타격을 할 수 있는 포탑이 장착된 차량이었다.

탑승자는 현민의 수족과도 마찬가지인 전직 UDU(미 해군 비밀첩보대) 출신인 철광과 MIT 출신 헌터 민아.

둘은 현민이 사로잡힌 것을 확인하기가 무섭게 정면의 고블린 로드를 향해 대전차포를 발사했다.

쾅-!

주력 전차도 일격에 분쇄할 수 있는 대전차용 강화 열화우라늄탄이 고블린 로드에게 번개처럼 내리꽂혔다.

원래라면 무차별 난사를 해 벌집을 만드는 것이 정석이었겠지만 현민이 사로잡혀 있기에 그럴 수 없었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이 화력이라면 고블린 한 마리 정도는 일격으로도 걸레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 상대하고 있는 몬스터는 그냥 고블린이 아니라 고블린 로드였다.

“쿠어어어어어!”

강화 열화우라늄탄을 맞은 고블린 로드가 포효했다. 물론 영국에서 처음 출몰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대미지는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화가 난 고블린 로드는 헐크처럼 1호차를 향해 달려들었다.

“악! 씨X 뭐야 저건!”

1호차를 향해 미친 듯 달려오는 고블린 로드를 보고 철광은 비명을 지르며 핸들을 꺾었다.

그러나 고블린 로드의 움직임은 일반 고블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순식간에 1호차와 거리를 좁힌 고블린 로드가 거침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투깡-!

급선회하는 1호차의 측면에 놈의 주먹이 박히자마자 1호차는 마치 장난감처럼 허공에 잠시 떴다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렇게 한 10바퀴쯤 구른 1호차는 뒤집어진 상태로 겨우 멈춰 섰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현민이 전 재산을 털어 넣다시피 해 개조한 차라서 그런지 몰라도, 차는 망가졌지만 탑승자인 철광과 민아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다행일까?

“뭐…죠, 저 괴물…은.”

안전벨트를 맨 상태로 조수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민아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녀는 여자 헌터 중에선 상당한 미녀 축에 들었지만 1호차가 부서지며 생긴 크고 작은 파편이 박혀 시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운전석에 탄 건장한 체격의 철광 역시 다를 게 없었다.

“그걸 알면, 내가 대장… 하게. 큭, 젓같이 아프네.”

둘은 부서진 1호차에서 빠져나가려 발버둥 쳤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짓이었다. 고블린 로드의 공격으로 망가진 1호차는 안전벨트를 포함해서 성한 곳이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고블린 로드가 유유히 1호차에 다가왔다.

우지끈!

고블린 로드는 단숨에 1호차의 문짝을 뜯어냈다. 그런 다음 철광과 민아에게 마비 침을 사이좋게 나누어 꽂아 넣었다.

큭-!

꺅-!

둘의 단말마와 같은 비명이 짧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철광과 민아는 현민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마비된 상태로 고블린 로드의 손에 이끌려 새하얗게 빛나는 포탈을 향해 질질 끌려갔다.

철광과 민아는 절망했다. 그저 이 모든 것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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