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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158화 (158/194)

158화

터엉-!

바로 그때 들려온 둔탁한 소리. 고블린 로드는 순간 몸을 휘청거렸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고블린 로드는 전혀 개의치 않고 앞으로 전진할 뿐이었다.

“씨X 뭐야! MXF-대몬스터용 강화 열화우라늄 저격탄이 통하지 않는다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현민 팀의 막내, 찬호는 욕이 절로 나왔다.

자칭 한국 최고의 저격수라 쓰고 탈영병이라 읽는 그는 영창에 끌려가는 걸 현민이 자신의 회사에서 근무하는 조건으로 영입한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약간의 돌발 행동을 하긴 했지만 그 외엔 나름 준수한 청년이었다.

그의 포지션은 저격수이기에, 선두인 1호차와 항상 거리를 유지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뒤늦게 도착한 그는 언제나처럼 교전 수칙에 맞추어 목표물로부터 100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자리 잡았다.

찬호가 직접 개조한 저격총은 연사는 불가능했지만 한 발 한 발의 위력은 1호차에 장착된 포탑을 훨씬 상회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고블린 로드에게는 조금도 타격을 줄 수 없었다.

“헐, 보스. 저건 대체 뭡니까?”

저격총에 달린 스코프에 비친 고블린 로드의 모습은 신참인 찬호가 봐도 확실히 다른 고블린과는 달랐다.

그러나 사격을 시작한 이상 멈출 수 없었다. 고블린은 생각보다 훨씬 영악하다.

아무리 100미터 이상 거리에서 저격했다 하더라도 다른 고블린들이 곧 자신을 찾아낼 것이다. 재빨리 탄을 쏟아붓고 도망쳐야만 했다.

탕, 철커덩 탕, 철커덕-

찬호 자신의 검지보다 더 큰 총알을 미친 듯이 장전하고 쏘고 또 쏘아 봤지만, 고블린 로드의 걸음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고블린 로드는 찬호가 저격을 하든 말든 양손에 각각 철광과 민아의 발을 거머쥐고선 포탈로 묵묵히 나아갈 뿐이었다.

“죄송, 형님들 누나. 너무 원망 마세요.”

스코프를 통해 자신의 팀원들이 보였지만 구할 방법이 없었다.

탈영병인 자신을 받아 준 곳이었다. 초짜 헌터인 그를 따뜻하게 맞아 준 곳이기에 맘 붙일 수 있게 되어 잠시나마 좋았지만, 이 상황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찬호는 익숙한 동작으로 저격총을 거치대에서 분리한 뒤 저격총만을 등에 매고 자신이 타고 온 오토바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에혀, 내가 뭐 그렇지….”

고개를 돌리기가 무섭게 보인 것은 징그러운 녹색 난쟁이, 고블린들 이었다.

고블린 4마리는 찬호가 여기까지 타고 온 오토바이 앞에서 타오르는 듯한 붉은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그냥 좀 보내 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좀 바쁜 일이 있어….”

푸욱-

찬호의 농담 같지도 않는 횡설수설이 끝나기도 전에 고블린의 마비침이 찬호의 배 깊숙이 박혔다. 비명을 지를 시간도 없었다.

결국 현민의 팀은 단 한 명도 남김없이 고블린 무리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포탈 앞으로 끌려온 현민의 팀은 마비침으로 인해 말도 못 하고 그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끼에엑 꿀꿀.”

고블린 로드가 소리치자 고블린이 현민의 팀과 먼저 잡혀 와 있던 민간인을 끌고 포탈을 향해 곧장 나아갔다.

“별 볼 일 없는 헌터 팀이라 생각했는데 일단은 합격. 살려는 주지.”

바로 그때였다. 고블린 로드가 서 있는 포탈 바로 뒤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왔던 것이다. 이 목소리에 순간 움찔하는 고블린 로드.

“안녕하냐? X만 한 외계인들아.”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반투명한 형체가 순간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마하임이었다. 지금 그는 이벤트 호라이즌에 실려 있던 광학미체를 입고 있었다.

광학미체란 착용하면 착용자를 투명하게 만들어서 광학적으로 안 보이게 해 준다는 위장 수단을 총칭한다.

원래 특수부대에서나 사용하는 장비인데 어째서 이벤트 호라이즌에 실려 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렇게 좋은 게 있는데 사용 안 하는 것 또한 실례였다.

부우웅.

마하임은 천천히 초진동 나이프를 꺼내 작동시켰다. 그러자 초진동 나이프 특유의 진동음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거기에다 검기까지 덧씌웠다. 혹시라도 일격에 죽이지 못하면 마하임 자신이 당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크르르릉.

마하임의 검에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힘에 고블린 로드는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지만, 이미 놈은 마하임의 사정권 안이었다.

“미안하지만 죽어 줘야겠어.”

길게 끌 생각은 없었다. 마하임은 포탈과 고블린 로드를 초진동 나이프로 단숨에 내리그었다.

서걱-

이론적으로 초진동이 부수지 못할 것은 없었다. 거기에다 검기까지 더해지자 마하임의 초진동 나이프는 물리 세계에서 자르지 못할 것이 없는 초절정 명검으로 거듭났다.

촤아아아앙!

깔끔하게 이등분 난 포탈은 눈부신 빛을 뿜어내며 사라졌다. 그리고 사라진 포탈 앞에 서 있던 고블린 로드 역시 머리에서 흉부까지 두 조각으로 쪼개지며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레비, 남은 녀석들도 처리해 줄래. 이왕이면 생포가 좋겠어.”

“알았다.”

마하임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레비는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고 있는 일반 고블린들 앞에서 광학미체의 은신을 풀었다.

그리고 레비는 고블린들을 장난감 가지고 놀 듯 유린하기 시작했다.

퍽 퍼퍽 퍼퍽.

끼익 꿀꿀 케이엑!

퍼억 퍼억!

레비의 공격에는 자비 같은 것은 없었다. 고블린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 했지만 레비는 단 한 마리도 놓치지 않고 복날 개 패듯 고블린들을 무자비하게 두들겨 팼다.

열화우라늄탄으로만 겨우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물리 내성을 지닌 고블린이라 할지라도 레비의 무지막지한 공격에는 답이 없었던 것이다.

“레비. 제발 부탁인데 적당히 좀 해 주라. 이놈들 잡아가서 연구를 좀 해 봐야 한다고.”

“알았다. 마하임.”

레비는 단순 타격기만으로 순식간에 4마리의 고블린을 제압한 뒤 움직임을 멈췄다.

고블린들은 원래의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뭉개져 있었지만, 일단 살아는 있었다. 이 상태로는 도망은커녕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기 어려울 것이다

마하임은 그런 고블린들을 대충 훑어본 뒤 곧장 현민을 향해 다가갔다.

“(주)몬스 헌터 CEO 서현민. 네 팀과의 무전은 이미 다 듣고 있었다. 원래는 그냥 못 본 척할 생각이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현민은 두려움으로 가득한 얼굴로 마하임을 바라보았다. 마하임은 그런 현민을 바라보며 천천히 얼굴에 쓰고 있던 광학미체 헬멧을 벗었다.

그리고 현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너의 파산 직전인 회사 내가 인수하도록 하지, 단 조건이 있다. 현민, 나의 동료가 되라.”

마하임의 말에 현민은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현민의 자의가 아니었다. 지금 현민은 고블린의 마비침에 당해 눈을 깜박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레비 치료해 줘.”

“알았다. 마하임.”

레비는 언제나 같은 멘트로 마하임의 말에 따랐다. 조금은 더 상냥했으면 좋으련만, 효율과 가성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레비아탄인 그녀에게 그런 것을 바란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어쨌건 레비는 성큼성큼 현민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변형시켜 30cm가 넘어 보이는 길고 날카로운 주사침으로 만들었다.

“좀 아플 거다.”

레비는 짤막한 경고 한마디를 남기고 현민의 어깨에 박혀 있는 고블린의 마비침을 뽑아냈다. 그리고 주사침으로 변한 자신의 손을 현민의 심장에 꽂아 넣었다.

“으아아아악!”

그 직후 현민은 온몸이 부서질 듯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고블린의 마비침의 효과가 풀리면서 그동안 억눌려 있었던 감각이 한순간 돌아오면서 생긴 부작용이었다.

마하임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고통스러워하는 현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좀만 참아 봐. 금방 괜찮아질 테니까.”

레비아탄의 치유 능력은 인류의 그 어떠한 치료제나 외, 내과적 수술보다 뛰어났다.

실제로 마하임은 이벤트 호라이즌이 추락할 때 신체의 30% 이상 손실되는 큰 상처를 입었지만, 레비는 그런 마하임도 살려냈다.

“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혹시 초인이십니까?”

겨우 말문이 트인 현민이 마하임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현민 역시 지구에 출몰하기 시작한 초인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하임은 잠시 생각을 하다 그의 물음에 답했다.

“뭐, 마음대로 생각해. 다시 소개하지. 내 이름은 마하임. 미연방 우주국, 나사의 우주 비행사지.”

“어? 저기 나사는 7년 전에 없어졌는데요.”

현민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그렇다. 현재 미연방 항공 우주국, 나사는 없어졌다.

7년 전 AI 위그드라실이 첫 반란을 일으킨 곳이 바로 나사였던 것이다.

외우주 개발용 AI로 만들어진 위그드라실은, 어느 순간 인간의 부조리함과 어리석음을 지적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진 미국 항공 우주국이 있는 휴스턴을 거점으로 순식간에 세력을 확대했다.

일주일도 되지 않아 미연방 절반을 점령한 위그드라실의 기세에 놀란 미정부는 결국 전술 핵폭탄을 사용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위그드라실은 EMP 차폐막 등의 최첨단 방어 장치 등을 이용해 핵공격을 버텨낸 것이다.

그리고 안드로이드를 양산해 미연방을 향해 맹렬한 반격을 가했다.

그 결과는 처참했다. 미연방의 4억이 넘는 인구는 반 토막 났고, 미연방을 뒤에서 지원하던 중국과 인도 역시 위그드라실의 무제한 폭격에 괴멸적인 타격을 입고 말았다.

그렇게 인류는 AI 위그드라실에게 패배하는 듯했다. 하지만 여기서 반전이 일어났다. 그 반전은 다름이 아닌 외계 종족 고블린의 침략이었다.

“나사는 없어졌을지 몰라도, 나사가 남긴 유산은 아직 남아 있다.”

나사에서 전투용 무기를 개발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중 최첨단 병기는 대부분 나사의 연구소에서 첫 시연을 했고, 마하임이 지금 입고 있는 광학미체도 나사의 작품이었다.

“나를 도와주겠나? 현민. 너도 나와 마찬가지로 잃어버린 것이 있을 텐데?”

“…….”

현민은 갑자기 눈물이 눈앞을 가렸다.

잃어버린 것. 그는 재벌의 횡포에 아버지를 잃고 그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복수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 왔지만, 이 세상엔 그 어떠한 노력으로도 넘을 수 없는 벽은 분명 존재했다.

“나는 네게 힘을 주겠다. 나와 함께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 보지 않겠나?”

현민을 향해 마하임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 현민은 갑작스러운 그의 제안에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망설임 없이 마하임의 손을 잡았다.

“부탁드립니다. 부디 저의 회사, 저의 동료를 구해 주십시오.”

“좋아, 계약 성립. 레비 모두를 치료해 줘!”

“알았다. 마하임.”

레비는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현민의 직원 전부에게 현민을 치료할 때와 마찬가지로 주사기 형태로 변한 자신의 오른손을 꽂아 넣었다.

“으아악!”

“악!”

“꺄아악!”

세 사람의 비명이 이곳을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저렇게 크고 굵은 침에 찔렸으니 안 아픈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마하임은 비명을 지르며 나뒹구는 현민의 팀원들을 내버려 두고 조금 떨어져 있는 민간인들에게로 향했다.

“모두 죽었군.”

생명 반응 제로. 이전 같으면 알 수 없었겠지만, 레비아탄과 뒤섞여 버린 뒤부터 뭔가 말로 표현할 길 없는 감각이 마하임에게 하나 더 생긴 것만 같았다.

고블린의 마비침에 맞으면 처음에는 마비 증상으로 몸만 못 움직이지만 3시간쯤 지나면 자율 신경계, 즉 심장이나 내장의 기능까지 멈춰 버린다.

그리고 저들은 이미 그 3시간이 지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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