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마하임!”
“알고 있어.”
갑작스러운 레비의 부름에 마하임은 짧게 답하며 헬멧을 다시 썼다.
방금 초진동 나이프로 쓰러트린 고블린 로드가 회복을 끝내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고블린 로드의 회복력은 우주 제일은 아닐지라도 열 손가락 안에는 들었다. 완전히 죽이려면 놈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코어를 날려 버려야만 했다.
물론 지금의 마하임이라면 간단히 놈의 코어를 날려 버릴 수 있었지만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일단 적인 고블린에 대한 디테일한 정보가 필요했다.
“하지만 넌 좀 다른 용도로 써야겠다.”
마하임은 막 몸을 일으키는 고블린 로드의 얼굴 앞으로 ‘축지’를 사용했다.
“크어?!”
몸을 막 일으키던 고블린 로드는 갑자기 자기 얼굴 앞에 나타난 마하임을 보고 깜짝 놀라 손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딴 공격에 당할 마하임이 아니었다.
마하임은 놈이 휘두른 손을 발판으로 고블린 로드의 얼굴을 향해 돌진했다.
“내 노예 1호가 된 걸 축하한다!”
난 이렇게 외치며 붉게 빛나는 날카로운 침을 고블린 로드의 미간에 박아 넣었다.
“쿠아아아아!”
고블린 로드는 엄청난 고통에 자신의 얼굴을 부여잡고 울부짖었다.
이것 역시 이벤트 호라이즌에 실려 있던 무기 중 하나였는데, 동물과 같이 지능이 낮은 생명체를 마음대로 조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아마도 나사에서는 초공간 내에 서식하고 있는 레비아탄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침으로 레비아탄을 제어해 보려고 한 모양이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몇 발 남지 않았지만 말이야.”
이벤트 호라이즌이 추락하면서 적재되어 있던 이 침도 대부분 못 쓰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지금 저 고블린 로드에게 사용하기에는 조금 아깝긴 했지만, 실전 테스트용이라고 생각하면 그리 나쁘지도 않았다.
“노예 1호, 너에게 첫 임무를 주겠다. 저기 서쪽 산 언덕에 쥐새끼처럼 숨어 있는 놈들을 몽땅 잡아 와!”
세뇌 침의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멍한 얼굴로 마하임을 바라보던 고블린 로드는 그가 정해 준 목표물을 정확히 인지했다.
사실 저 ‘쥐새끼’들이 숨어 있는 것은 여기 도착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단지 지금 여기서 벌어지는 일들이 외부에 새어 나가지 않기 위한 약간의 준비를 위해 내버려 둔 것뿐이었다.
“쿠어어어어어!”
고블린 로드는 목표를 인식하기가 무섭게 괴성을 지르며 서쪽 언덕의 울창한 숲을 헤치며 돌진하기 시작했다.
뜬금없이 고블린 로드가 자신들에게 돌진해 오자 그제야 쥐새끼들은 자신들의 위치가 노출된 걸 알아차렸다.
쥐새끼들은 즉시 가진 화력을 총동원해 고블린 로드를 향해 난사하기 시작했다.
쾅 콰콰쾅-!
투타타타타타-
포성과 총성이 일제히 터져 나오며 고블린 로드를 향해 무시무시한 화력이 쏟아졌다.
그러나 현민 팀이 그랬던 것처럼 그 어떤 무기도 고블린 로드에게 통하지 않았다.
쥐새끼들에겐 무려 4세대 주력 전차까지 있었지만, 고블린 로드를 쓰러트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쯧쯧, 그 정도 화력으론 어림도 없지. 레일건 정도 된다면 또 몰라도.”
마하임은 필사의 저항을 하는 쥐새끼들을 보며 혀를 찼다.
무려 천 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한때 레비아탄의 섬멸 부대도 저 고블린 로드와의 전투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물며 인류의 문명은 레비아탄 일족보다 만 년 단위는 뒤처져 있었다. 그런 인류의 무기가 고블린 로드에게 통할 리 없었다.
“역시나 저 쥐새끼들. 내가 아는 놈들이었네.”
저 쥐새끼들이 입고 있는 전투복과 장갑차에 두르고 있는 능동 위장 장비, 다시 말해 ‘광학미체’는 마하임과 아주 인연이 깊었다.
주변 환경에 0.01초 안에 반응해 착용자를 주변 환경과 완벽하게 동화시켜 주는 최첨단 재료공학이 적용된 장치였다.
9년 전, 마하임은 나사에 근무하면서 틈틈이 신무기 개발에도 참여했는데, 그때 세계 최초로 실용화 직전의 광학미체를 만든 것이 마하임이었다.
“그나저나 9년이 지났는데 조금도 개량이 안 됐잖아? 아니 오히려 퇴보했군. 적외선으로 보니 훤히 다 보이는데, 저게 무슨 광학미체야?”
마하임이 개발한 광학미체는 적외선까지 완벽하게 투과시켜 완전 위장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 저건 마하임이 입고 있는 광학미체의 적외선 감지 센서를 활성화하기가 무섭게 쥐새끼들의 모습이 훤히 다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의 노예 1호는 저 쥐새끼, T사의 헌터들을 인정사정없이 유린했다.
“뭐 어쨌거나 장관은 장관일세. 이거 영화관에 온 기분인걸?”
마하임은 노예 1호의 활약상을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이건 뭐 웬만한 할리우드 영화보다 더 재밌었다.
마하임은 노예 1호에게 저 헌터들을 모두 마비침으로 제압해서 생포하라고 명령했다.
“뭐 하는 거야?! 본사에 연락해서 증원 불러!”
“안 됩니다. 단파 무전기, 위성 통신기, 단거리, 중거리 양자 통신기, GPS 장치 모두 불통!”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다시 해 봐. 다시 해 보라고!!!”
당황한 T사의 헌터들을 머리를 부여잡고 소리를 질렀다.
다른 건 몰라도 양자 통신기는 양자 터널 효과를 응용하기 때문에 절대 끊어질 리가 없다고 알려진 신기술이었지만, 그것마저 완벽히 차단된 상태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마하임이 왜 아슬아슬한 순간까지 저 녀석들이 활보하게 놔뒀겠는가?
지금 이곳은 나사의 최첨단 기술로 제작된 ‘필드’가 펼쳐져 있었다.
작동시키는 데 시간은 좀 걸렸지만 이 필드는 반경 100km 안의 외부로 향하는 정보를 완벽한 차단해 그 어떠한 정보도 보낼 수도, 받을 수도 없었다.
“아아악 사, 살려 줘!”
“퇴각하라. 전차는 뭐 하는 거야! 저 괴물을 막아!”
“싸워라! 시간을 버는 거다. 도망치는 자는 내가 직접 사살하겠다!”
타탕 탕탕-
바로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총소리와 뒤섞여 들려왔다. 한때 마하임의 절친이자, 마하임을 배신하고 T사에게 나사의 1급 비밀 정보를 팔아넘겨 버린 장본인. 유학렬의 목소리였다.
“노예 1호. 저놈은 마비침을 사용하지 말고 죽지 않을 정도로만 만져 준 뒤 생포해 내 앞으로 데려오도록.”
아마도 마하임은 영원히 그 일을 잊지 못할 것이다.
마하임은 그를, 학렬을 믿었다. 같은 나이로 나사에 입사한 천재 재료공학도인 녀석은 그의 라이벌이자 절친이었다.
나사는 철저한 실적제 시스템을 차용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얼마나 실적을 올렸나가 매우 중요했다.
그 때문에 같은 나사 소속이라고 해도 서로 적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래도 둘은 절친이었다. 아니, 절친이라고 생각했다. 항상 같이 공부했고,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함께했다.
광학미체를 개발하기 위해 같이 수도 없이 날밤을 까고, 실패해서 상사에게 욕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그의 여동생과는 장래에 결혼을 약속한 사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광학미체가 완성 직전의 단계에 이르자, 학렬은 본색을 드러냈다.
“저기…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겨우 움직이게 된 현민이 마하임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내가 왜?”
“헌터 규칙 제11조. ‘같은 헌터가 위험해 처하면 즉각 도와준다.’ 이를 어길 시 헌터 라이센스를 박탈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 그럼 네가 가서 도와주면 되겠네. 난 헌터도 아니니까. 아직은 말이지.”
아무것도 모르는 현민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저 엄청난 고블린 로드를 상대로 자신이 무슨 힘으로 도와준단 말인가?
마하임은 그런 현민을 향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 멍청아. 머리가 있음 생각 좀 해라. 저 헌터들이 왜 저기에서 쥐 죽은 듯 숨어 있었겠냐?”
현민은 마하임의 말을 듣고선 입을 닫았다. 생각해 보면 지금 저 헌터들이 있는 위치는 방금 전 고블린이 연 포탈을 관찰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자리였던 것이다.
“그럼 저 헌터들은 우리가 당하는 걸 그냥 보고만 있었단 말입니까?!”
“당근. 실시간 동영상 촬영까지 해 본사에 보내고 있었을걸? 너희 팀을 미끼로 고블린 로드의 능력을 알아보기 위해서 말이지.”
“…….”
그의 말에 현민은 입술에 피가 배어 나올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솔직히 처음부터 이 사냥은 이상한 감이 없지 않았다. 보통은 대기업 헌터들이 선수를 치기 마련인데 이번엔 한 팀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왜 너희 회사를 선택한 줄 아나?”
마하임은 현민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먼 거리에서 활약하는 노예 1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희 회사의 실적은 거의 최하위인데….”
현민은 마하임의 정체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우선 그의 헌터로서의 실력은 자신이 본 그 어떠한 헌터, 아니 그 어떠한 초인보다 뛰어났다.
게다가 마하임은 아직 치료할 방법이 없는 고블린의 마비침을 치료하는 약품마저 사용하고 있었다.
현민의 상식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장비와 실력. 마치 판타지 소설에서나 등장할 만한 ‘먼치킨’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런 엄청난 실력을 지닌 마하임이 자신의 회사를 인수함은 물론 자신과 자신의 동료들까지 살려 주었으니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넌 너희 팀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려고 했다. 다른 팀원들 역시 널 구하기 위해 무모한 짓을 거침없이 했지.”
예전의 마하임에겐 그런 동료가 없었다. 전부 그를 이용하려는 도둑놈 같은 놈들뿐. 그러나 현민과 그의 팀은 달랐다.
그는 자신의 팀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려고 했고 그의 팀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하임은 그런 현민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그렇기에 마하임은 그의 팀을 구해 주었다.
“팀의 장비와 육체는 얼마든지 강화해 줄 수 있다. 그러나 팀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릴 정도의 ‘의리’를 지닌 사람은, 찾기 어렵거든.”
단순히 찾기 어려운 정도가 아니었다.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 그러한 사람을 찾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라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물론 현민의 팀 모두 ‘별의 수호자’, ‘초인’의 자질이 있어서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 이전에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린단 말인가?
그러나 현민과 그의 팀은 요즘 세상에선 씨가 마른 그 ‘의리’로 똘똘 뭉쳐진 팀이었다.
“나는 그 의리를 보고 너의 회사와 사원을 인수하기로 했다. 현민 네가 그 ‘의리’를 지키는 한, 나 역시 너희와 생과 사를 함께할 것이다. 그것만은 약속해 주마.”
이것이 바로 거짓 한 점 없는 마하임의 진심이었다. 현민은 그런 마하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심경이 복잡할 것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민에게는 이미 선택의 여지 같은 것은 없었다.
마하임이 그를 구해 주지 않았다면 이미 그의 팀은 모두 죽은 목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