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슈트 착용 완료. 전투 지원을 개시합니다.]
광학미체 슈트의 헬멧을 쓰기가 무섭게 익숙한 오퍼레이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슈트는 단순히 몸을 광학적으로 숨겨 주는 역할을 넘어서 신체를 2배 이상 강해지게 만들어 주는 파워드 슈트 기능까지 있었다.
원래 이것은 미연방 군부가 대우주전을 대비해 만들어진 병기였다.
그런데 어째서 외우주 탐사선인 이벤트 호라이즌에 실려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뭐 덕분에 마하임이 잘 사용하고 있으니 상관없었지만 말이다.
“잡담은 이제 그만! 네놈을 죽이겠다! 마하임!!!”
학렬은 무서운 기세로 마하임을 향해 달려왔다. 워낙 덩치가 커서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지만, 그 움직임은 스팀팩을 사용했을 때의 현민을 넘어설 정도였다. 하지만 마하임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예로부터 사람을 물려는 개새끼에겐 몽둥이가 약이었지!”
마하임은 단숨에 워울프로 변한 학렬을 향해 축지를 사용했다. 축지는 선술인 만큼 아무리 워울프의 반사 신경과 반응 속도가 뛰어나다 할지라도 축지의 움직임은 파악할 수 없었다.
빠악!
깨깨깽-
쿠다당 쾅-!
학렬의 다리 아래로 순식간에 이동한 마하임은 학렬의 발목을 향해 전력으로 로우킥을 날렸다.
그 직후 뼈가 부서지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학렬은 경쾌한 비명을 지르며 무너지듯 쓰러졌다.
“덩치가 크다고 쫄 건 없다. 적어도 인간형 몬스터라면 기본적인 약점은 인간과 똑같으니까.”
쓰러진 학렬 앞에서 현민을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
“그, 그렇군요.”
현민은 넋을 잃고 이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이제 막 힐링의 효과로 몸을 움직이게 된 현민의 팀 3명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기 보스, 저분은 누구시죠?”
찬호가 가장 먼저 현민에게 말을 걸었다. 철광과 민아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워울프를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는 마하임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아, 아직 정확히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형식적으로는 우리 회사의 대주주, 혹은 새로운 CEO 정도 될 것 같다. 대충 인수 합병 그런 거로 생각하면 될 거다. 아마도 말이지.”
“왠지 알 것 같네요…. 그럼 우리 회사 새 CEO는 먼치킨 헌터가 되는 건가요?”
넋이 나간 찬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마하임은 그런 현민 팀을 향해 일갈을 날렸다.
“이것들 봐라, 잡담할 정신이 어디 있냐! 내 말 집중해서 안 들어?!”
마하임은 현민 팀을 향해 소리치며 학렬의 머리통을 후려 차올렸다. 그러자 바닥에 쓰러져 있던 학렬의 몸은 중력이 사라진 것처럼 순간 하늘 위로 치솟았다.
마하임과 학렬의 체급 차이는 거의 2배 이상 났지만 그는 신선임과 동시에 전투 생명체 레비아탄의 힘을 공유하고 있었다.
레비아탄의 수없이 많은 전투 경험이라면, 이 정도 몬스터쯤이야 가볍게 제압할 수 있었고, 마하임은 지금 그것을 실행에 옮기려 하고 있었다.
“이런 괴물을 상대할 땐 무조건 급소를 노린다. 지금 이 워울프 같은 경우에는 바로 코!”
빠박-!
“깨깽!!”
단숨에 3미터 이상을 뛰어오른 마하임은 허공에 떠 있는 놈의 콧잔등을 인정사정없이 내려찍었다.
이건 단순한 물리 공격이 아니었다. 선술의 발경을 응용한 공격이었기에 그 어떠한 방어도 무의미했다.
퍽 파파팍!
컥억 크하학-!
쿠당!
마하임의 물리적 한계를 벗어난 공격에 난타당한 학렬은 결국 바닥에 머리를 처박으며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일어나라, 학렬. 너 아직 멀쩡한 거 아니까.”
보통의 생명체라면 멀쩡할 리 없었지만, 학렬은 그 보통의 생명체가 아니었다. 이제 그의 남은 시간은 고작 10분. 그러나 이 10분 동안만은 그는 불사신이나 다름없었다.
“크, 크큭 그래…. 아무래도 난 그리 쉽게 죽는 몸은 아닌 것 같군.”
학렬이 몸을 일으켰다. 늑대와 인간을 뒤섞어 놓은 듯한 얼굴은 절반 이상이나 날아가 새하얀 뼈와 안구까지 돌출되어 있었지만, 시간을 역행하는 것처럼 순식간에 재생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뼈와 살이 찢기고 내장이 흘러나올 때, 극심한 고통이 학렬의 뇌를 뒤흔들었다.
그야말로 미칠 것만 같은 고통이었지만, 학렬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리고 숨을 헐떡이며 마하임을 바라보고 말했다.
“크르르르. 어째서냐. 내 목숨은 겨우 10분. 겨우 10분뿐인데 왜 굳이 나와 싸우려는 거지? 그냥 도망만 쳐도 이길 텐데 왜!? 설마 저 뒤에 숨어 있는 네 부하들 때문인 거냐?”
“그딴 거 아니다. 그리고 쟤들이 너한테 죽을 만큼 약하지도 않고.”
사실이 그랬다. 당장 레비만 해도 학렬을 순식간에 원자 단위까지 분해해 버릴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마하임은 이렇게 여유롭게 한때 친구였던 유학렬과 마지막 주먹다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왜! 왜냐고! 동정하는 거냐? 아니면 비웃는 거냐?!”
“씨X 그렇게까지 밖에 말 못 해?! 넌 나의 절친이었다. 네가 배신했든 배신하지 않았든! 그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네가 날 배신한 건 미라가 부추겨서라는 것을 내가 모를 줄 알았냐?! 이 병신 새끼야!”
마하임은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근원을 따지자면 모두 그녀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아니 믿기 싫었다.
이벤트 호라이즌에서 의식을 회복하고 난 뒤 마하임은 바뀐 세상의 정보를 모으면서 학렬에 대한 정보도 모았다. 그리고 그의 여동생이자 첫사랑이었던 미라의 정보도.
그리고 마하임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하, 뭐 이건 막장 아침 드라마도 아니고. 브라더 콤플렉스에 사이코패스 여동생이라니, 학렬이 너의 인생도 나만큼이나 기구하구나.”
“어, 어떻게 그걸….”
미라는 학렬의 배다른 여동생이었다. 어려서부터 미라는 학렬을 유달리 따랐고, 언제나 학렬의 곁에 있었다. 그런 어느 날 학렬 사이에 마하임이 끼어든 것이다.
학렬은 마하임의 천재성과 카리스마를 넘어서고자 필사의 노력을 했다. 그러나 결국 학렬은 그를 뛰어넘지 못하고 좌절했다.
이것으로 그냥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학렬을 남몰래 사랑했던 미라는 학렬을 좌절에 빠트린 마하임을 매장해 버리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나사의 협력 회사에서 회계를 맡던 미라는 마하임이 담당하고 있는 광학미체에 대한 정보를 T사에 넘기도록 학렬을 자극했다.
그 결과 학렬은 T사에게 광학미체의 정보를 넘겨 버리고 만다.
나사는 기술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광학미체 개발을 중지시키고 연구 인원을 다른 부서로 모두 전출시켜 버렸다.
물론 학렬 역시 좋게 끝날 리 없었다. 학렬은 나사에서 짤림과 동시에 수십억 원의 소송에 휘말려, 전 재산을 잃게 된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T사에 입사하게 된 것이다.
“모두 지나간 일이야. 넌 곧 죽는다. 널 이렇게 만든 데는 내 책임도 분명히 있다. 10분 후 넌 최악의 고통을 느끼며 천천히 죽어 갈 거다. 그전에 최소한 고통 없이 죽여 주겠다.”
마하임이 지금 유학렬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고작 이것이 전부였다. 참 서글픈 결말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후, 후후후 그래 넌 그런 놈이었지.”
마하임의 말에 학렬은 넋을 놓고 웃었다. 학렬에게 있어서 마하임은 태양과 같은 존재였다. 그 어떤 위험한 순간에도 찬란히 빛나는 그런 사람.
마하임은 최후의 최후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앞으로 나아갔다. 학렬은 그런 마하임이 언제나 부러웠고 또한 질투했다.
자신도 마하임처럼 되고 싶었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 보아도 학렬은 마하임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것이 학렬 자신의 한계였던 것이다.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학렬 자신은 선택하지 말아야 할 것을 선택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이 빌어먹을 현실이었다.
“날 죽여다오, 마하임. 그리고 내 동생…. 미라를 막아 줘. 그녀는 이미 미쳤다.”
“알고 있다. 너를 워울프, 아니 ‘라이칸슬로프’로 만든 것도 다 미라의 작품이지?”
“훗, 역시 넌 모르는 게 없구나. 이미 T사는 ‘라이칸슬로프’ 양성 계획에 들어갔다. 나는 실험용 생쥐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곧 완성품이 나오면 나 이상의 괴물이 만들어질 거다. 그럼 한국은 아니 세계는 T사의 것이 되겠지.”
그 뒤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T사는 이 ‘라이칸슬로프’로 세계를 공포와 죽음으로 지배할 것이다.
물론 마하임이 있는 한 어림도 없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더 할 말은 없냐?”
마하임은 서서히 세포 조직이 붕괴하기 시작한 학렬을 바라보며 말했다. 학렬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용서해 달라고는 말 안 하겠다. 하지만 너와 함께 일할 때가 내 인생 최고의 나날이었지. 즐거웠다. 마하임. 이제 안녕이다.”
학렬은 눈을 감았다. 마하임은 그런 학렬을 향해 주먹을 치켜들며 말했다.
“잘 가라, 학렬아. 미라는 내게 맡기고. 이제 편히 쉬어.”
힘 조절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이미 워울프의 힘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핵의 위치는 알고 있었다.
시간을 더 끌게 되면 학렬이가 겪을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었다.
“시현류 유도 유선술….”
마하임은 천천히 단전에 기를 모았다. 학렬을 고통 없이 보내 주려면 단순한 발경으로는 힘들었다.
마하임은 온몸의 기를 단전에 모아 일순간 오른손에 모았다.
“선기발경!”
슈우우욱 화아아악-! 쾅!
차갑게 시린 푸른빛이 순간 마하임의 손에서 뻗어 나왔다. 선기발경은 생명 자체를 소거하는 힘이 있었다.
그 힘은 워울프로 변한 학렬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그리고 그 빛이 사라지자 남은 것은 한 줌의 재로 변해 버린 학렬의 흔적뿐이었다.
“돌아가자. 시간이 없다. T사의 첩보 위성이 내려다보고 있었을 테니까.”
슬픔에 젖어 있을 여유는 없었다. 마하임이 지금 여기서 울부짖는다고 학렬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었다.
마하임이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힘을 모아 학렬의 복수를 하는 것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필요 없었다.
마하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레비와 현민 팀이 서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앞으로 할 일은 태산 같았다.
마하임은 한 사람의 신선이자 인간이다. 아무리 몸이 변해도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을 진실이었다.
그럼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인간으로서, 은혜는 두 배로 갚을 거지만, 원수는 천만 배로 보복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가치를 증명해, 레비, 아니 레비아탄에게 인류가 생존할 가치가 있는 생명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다. 그것이야말로 마하임의 진정한 목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