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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162화 (162/194)

162화

성남시 판교 중앙에 있는 새하얀 타일로 도배된 100층이 넘는 거대한 빌딩.

원래라면 그 높이 때문에 지을 수조차 없는 위치의 빌딩이었지만, T사는 로비를 통해 간단히 이곳에 이 건물을 당당히 건축했다.

물론 여러 시민 단체가 결사반대를 외쳤지만, 정부 요직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T사로부터 거액을 챙겨 먹은 상태라 전혀 소용이 없었다.

결국 이 건물의 건설은 감행되었고 이로 인해 각종 사건사고, 예를 들자면 싱크홀 등이 생겨 주변의 건물 지반이 내려앉는 등 문제가 극심했다.

하지만 T사는 압도적인 자금력으로 이걸 모조리 입막음을 해 버려서 지금도 아무런 문제 없이 이곳에서 당당히 영업을 하고 있었다.

한국에는 T사 말고도 H사 S사 L사 등의 재벌 기업이 헌터 사업에 뛰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매출액을 따지면 3회사 다 합쳐야 겨우 T사와 비슷할 정도로 T사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물론 처음부터 T사가 이렇게 영향력이 강했던 것은 아니었다.

고블린 침공 이후 국제 헌터연맹이 생기고 나서 그들은 정체불명의 기술, 속칭 ‘블랙 테크놀로지’라 불리는 기술로 ‘강화제’라 쓰고 ‘스팀팩’이라 불리는 약물의 개발에 성공했던 것이다.

처음 스팀팩이 나왔을 때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인간의 체력을 무려 5배나 20분 이상 뻥 튀겨 주었으니, 무슨 말이 필요하랴.

스팀팩 한 팩당 100만 원에 육박하는 고가였지만, 헌터들과 각국의 특수 부대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물론 잠깐 인기가 주춤할 때도 있었다. 스팀팩의 부작용이 발견된 것이다.

일주일에 한 팩 정도만 사용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이 한 팩을 넘길 경우 사용자에게 급속한 노화 현상이 발생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내용은 스팀팩을 팔 때 T사가 이미 고지했던 내용이었다. 사용 설명서 최상단에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절대 사용 금지라고 붉고 진하게 쓰여져 있었던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이것을 과다 사용한 사용자 측의 과실이랄까?

게다가 그러한 부작용이 있더라도 스팀팩 말고는 고블린을 대항해 인류가 꺼내 들 수 있는 카드는 몇 가지 없었다.

특히나 핵폭탄이나 초인이 없는 한국 같은 국가에서 더욱이 그랬다.

이후 스팀팩의 가격은 급격히 내려갔고, UN 산하 국제 헌터연맹 ‘이지스’에서 가격 조정을 공식 요청해서 가격은 더욱 저렴해졌다.

그래서 요즘은 헌터 라이센스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다니는 필수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가격이 아무리 싸졌다 하더라도 스팀팩 한 팩의 가격은 개당 10만 원이 넘었다.

거기다 이를 만들 수 있는 기업은 오직 T사뿐. 말할 것도 없이 T사는 막대한 이윤을 챙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러한 이유로 한국에서 승승장구하던 T사에, 오늘 전혀 예상치 못한 비상이 걸렸다.

그 이유는 한국에 새로 출현한 몬스터, 코드네임 ‘고블린 로드’를 추적 및 감시하던 T사의 특수 부대 ‘고스트’ 1개 소대가 모두 행방불명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게 어디 말이 돼요?! 어디 설명 좀 해 보시죠!”

화가 난 T사의 한국 지사장 ‘미라’는 자신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고스트 팀의 총지휘관인 강 팀장의 허벅지를 힘껏 짓누르며 소리쳤다.

“큭, 면목이 없습니다. 당시 모든 통신이 두절돼 버린 상태라….”

“누가 그걸 몰라요?! 그 원인을 찾아내란 말이에요. 위성이든 뭐든 다 이용해서!”

“죄, 죄송합니다. 그날 날씨가 흐려서 아무리 해상도를 높여도 제대로 된 영상이 나오지 않습니다. 부디 자비를!!!”

“이 씹어 먹어도 모자랄…. 아아악!”

히스테리에 빠진 듯 비명을 지르는 미라. 그녀는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그녀가 T사 한국 지부장으로 발령난 이후 이런 대형 사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거기다 더욱이 그녀를 열받게 만든 것은 이번 행방불명된 고스트 팀의 리더가 자신의 오빠 ‘학렬’이었던 것이다.

자신을 걸레짝 취급하는 오빠를 울컥하는 심정에 좌천시켜 ‘라이칸슬로프’ 시술까지 시켜 버렸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오빠를 잃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오빠는 내가, 내가 죽여야 해. 최대한 고통스럽게! 근데 당신이 모두 망쳤어! 모두 망쳐 버렸단 말이야!!!”

자신의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미라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렇게 자신을 분노케 한 것은 자신의 오빠 학렬을 빼앗아 간 ‘마하임’ 그놈 말고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미라는 인터폰 호출기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미라의 전속 여비서의 차가운 목소리가 인터폰에서 흘러나왔다.

“네, 지사장님.”

“강 팀장을 라이칸슬로프 프로그램에 참가시켜. 팀장 직위도 지금부터 박탈해! 이제부터 그는 실험체 ‘G’다.”

“네, 알았습니다. 시술팀을 곧 그곳으로 보내겠습니다.”

미라의 비서는 마치 로봇처럼 말하고 인터폰을 끊었다. 이 말을 들은 강 팀장은 미라의 다리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외쳤다.

“지사장님,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제겐 아직 어린 아들과 아내가…!!!”

“오, 그래? 그거 잘됐네. 그 아들과 아내를 위해서라도 라이칸슬로프가 되어서라도 끝까지 잘 싸우는 게 좋을 거야. 만약 배신하거나 도망친다면, 네 아들과 아내까지 라이칸슬로프로 만들어 버릴 테다. 알아들었어?”

미라의 말을 들은 강 팀장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미라는 자신의 한 말은 반드시 지켰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녀가 말한 것은 반드시 해냈고, 그렇기에 지금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라이칸슬로프 시술을 한다는 것은 곧 강 팀장 자신의 목숨이 하루도 안 되는 시한폭탄이 된다는 이야기와 같았다.

보통 이러한 상황까지 오면 반항하기 마련인데, 강 팀장은 모든 것을 체념하기라도 한 듯 아무런 반항 없이 순순히 사로잡혔다.

강 팀장은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미라를 향해 말했다.

“약속은 지켜주실 거죠? 지사장님.”

강 팀장의 말에 미라는 살며시 웃으며 강 팀장의 어깨를 매만지며 강 팀장의 귀에 속삭이듯 말했다.

“물론이죠. 그러니 끝까지 잘 싸워 주세요. 전직 고스트 팀장님. 당신 아내와 아들은 내가 직접 챙겨 줄 테니까요.”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흑흑….”

강 팀장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미라를 향해 경례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시술팀의 뒤를 따라 미라의 집무실 밖으로 사라졌다.

미라는 그런 강 팀장이 사라진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문뜩 자신이 입고 있는 검은색 미니스커트를 바라보았다.

그 스커트에는 강 팀장이 자신의 허벅지에 매달릴 때 남긴 분비물, 다시 말해 눈물과 콧물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강 팀장 새끼. 끝까지 짜증 나게 만드네.”

미라는 재차 인터폰을 거칠게 눌렀다.

“네, 지사장님.”

“강 팀장의 아내와 아들 모두 잡아 와서 라이칸슬로프로 만들어 버려!”

“민간인은 함부로 손대지 말라고 본사에서 지령이….”

“닥쳐! 강 팀장의 아내와 아들이라면 그놈들도 우리 회사 관계자야! 거기다 감히 내 말에 이의를 제기하다니, 너도 라이칸슬로프가 되고 싶은 거냐?!”

“죄송합니다. 즉각 시행하겠습니다.”

“그리고 고스트 부팀장 들어오라고 하고.”

“네, 알겠습니다.”

인터폰의 목소리는 사라졌다. 미라는 잠시 크게 숨을 내쉰 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소의 여유로운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최고급 원두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프랑스제 찻잔이라던가? 아무튼 T사 회장의 선물답게 고급스럽기 그지없는 잔이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이 잔도, 이 잔에 든 커피도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얼마 후, 닫혀 있던 문이 열리면서 고스트 팀 전용의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건장한 체격의 남자 한 명이 들어왔다.

“고스트 팀 부팀장을 맡고 있는 석유명, 지사장님께 인사 올립니다.”

20대 후반의 날카로운 눈매가 예사롭지 않은 남성이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히며 미라를 향해 인사했다.

“호호호, 긴장할 것 없어요. 강 팀장은 오늘부로 해임되셨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이 고스트 팀의 팀장이니 각오 단단히 하세요. 강 팀장처럼 되고 싶지 않으면요.”

미라의 말에 석유명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잔혹함과 잔인함은 이미 T사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게다가 T사의 특수 부대, 고스트의 팀장을 단 한 번의 실수 때문에 라이칸슬로프로 만들어 버린다니, 아무리 강심장인 석유명이라 할지라도 등골이 서늘해질 수밖에 없었다.

“넵, 알겠습니다! 반드시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좋아요. 참,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고스트 팀이 감시하던 고블린 로드를 쫒고 있던 기업이 하나 있었다던데 그 기업의 이름이 뭔가요?”

“네, 넵. ‘㈜몬스 헌터’라는 5인 이하 민간 헌터 기업입니다. 그들 역시 행방불명 상태입니다.”

“그렇군요. 혹시라도 모르니 그들도 추적해 주세요. 아무래도 뭔가 연관이 있는 것 같으니까. 나가 봐도 좋아요.”

“네, 알겠습니다.”

석유명은 단 1초도 더 여기 있기 싫다는 듯 후다닥 밖으로 나갔다.

미라 자신의 ‘감’에 의하면 저 남자도 전 팀장과 비슷한 등급의 한심한 인간인 게 틀림없었다. 뭐 그렇다 하더라도 대안은 없으니 이대로 놔두는 게 최선이었다.

“몬스 헌터라…. 뭔가 있어. 분명히!”

그것 역시 미라의 감이었다. 그리고 지금껏 이 감은 틀린 적은 없었다.

이 감 때문에 자신의 오빠 학렬이 미라 자신보다 ‘마하임’을 더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알았고, 이 감 때문에 학렬이 자신의 꾐에 넘어가 마하임을 배신했다는 죄책감으로 미라 자신을 쓰레기보다 더 못한 여자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 감 때문에 여기 이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지만…. 이제 와서는 아무래도 좋았다.

미라의 이성을 마지막까지 붙들어 주었던 유일한 존재인 오빠 학렬이 사라졌다. 자신의 감이 맞다면 오빠는 높은 확률로 죽었음이 분명했다.

지금껏 미라를 붙들어 주던 유일한 브레이크가 이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브레이크가 없는 차는 미친 듯 돌진할 수밖에 없는 법.

오히려 미라는 오빠 학렬이 사라진 것에 감사했다. 만약 오빠가 살아 있었다면, 라이칸슬로프 양산이라는 최악의 수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았을 테니까.

“크크큭, 하하하하. 캬하하하하! 그래, 이젠 내 마음대로 할 거야. 인간이든 고블린이든 상관없어! 죽이고 또 죽일 거야. 날 막을 자는 아무도 없어. 설령 신이라고 할지라도! 캬하하하!”

미칠 듯한 광기를 뿌려대는 미라. 그녀는 이제 자유였다.

미라는 그동안 미루고 또 미뤄 왔던 라이칸슬로프 양산을 마음껏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 다가올 잔혹한 전쟁의 신호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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