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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163화 (163/194)

163화

마하임은 옛날부터 강원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강원도 하면 한국 제일의 휴양림이 위치한 설악산 국립공원이 대표적인 명소일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신선이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자력 생존 훈련을 받은 마하임으로서는 그다지 좋은 기억이 있는 곳은 아니었다.

생존 훈련의 대부분은 단순 방치였지만, 온몸의 기혈을 봉인한 상태로 먹을 것 하나 주지 않고 근 한 달 동안 이 깊은 산속에 내던져졌으니, 실로 가혹한 훈련이 아닐 수 없었다.

신선이 기혈이 봉인된다는 것은 일반인이 앞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거기다 시험이랍시고 고대의 영물까지 풀어놔, 맨몸으로 그것들과 싸워서 이겨야만 했다.

대부분의 신선 후보들은 이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죽거나 패인이 되기 일쑤였다.

마하임 역시 죽기 직전의 상황까지 몰렸지만, 운이 좋았다랄까? 아니면 운명이랄까? 그는 생존했고 결국 신선이 되었다.

“제가 여기서 뺑이를 친 거 생각하면 아직도 토가 나오네요. 전 밖에서 소변 볼 때도 이쪽 방향으로는 소변 안 봐요. 하! 또 옛날 생각나네.”

찬호는 마치 입에 모터를 단 것처럼 자신의 군대 이야기에 열을 올렸지만, 이를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마하임을 비롯한 레비, 현민 팀은 T사의 고스트 팀이 쓰던 광학미체로 도배된 수송 차량을 탈취해 이동 중이었다.

당연히 수송 차량에 설치된 추적 장치는 레비가 완벽히 제거한 상태였다.

거기다 즉석에서 차량을 개조해 적외선을 비롯한 자외선 열 감지 센서, 심지어는 나사의 중력 제어 장치를 응용해 차량이 움직인 흔적마저 지워 버리며 움직이는 중이었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개조가 너무나 완벽한 나머지 차에 탑승해 있는 모습조차 서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은 어딥니까?”

한결같이 침묵만을 지키고 있던 철광이 더는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그가 마하임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나사 출신이라는 것밖에 몰랐다. 물론 그것이 사실이라는 증거도 없었다.

지금은 마하임의 압도적인 힘에 마지못해 끌려가다시피 함께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궁금한 게 없다는 건 아니었다.

“설명하려면 엄청 길어. 게다가 지금은 때도 아니고. 때가 되면 모두에게 설명해 줄 테니 지금은 좀 기다려.”

마하임은 그렇게 말하고 묵묵히 정면을 바라보았다. 이미 이 차는 레비가 완벽하게 제어하고 있었기에 따로 운전할 필요조차 없었다.

점점 어두컴컴해지는 하늘. 어느덧 하늘을 비추던 해는 사라지고 드문드문 별이 하늘을 밝히기 시작했다.

깨끗한 강원도의 하늘은 너무나 청명했고 맑았다. 하늘에 흘러가는 은하수가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 중앙을 가득 채운 은하수는 이곳을 지구가 아닌 아득히 먼 우주 공간처럼 느끼게 해 주었다.

“저기 레비 님은 어디서 그런 기술을 익히셨어요? 저도 기계공학 쪽에 관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만져는 봤는데 레비 님처럼 대단한 분은 처음이라.”

민아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레비를 향해 말했다. 민아는 현민 팀의 차량이라든지 무기를 정비해 왔기에 조금이나마 기계에 대해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마술과 같은 레비의 지식과 기술력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금할 길이 없게 만들었다.

“너에게는 관련 정보를 획득할 권한이 없다. 알고 싶다면 마하임의 허락을 구해라.”

레비는 언제나 그렇듯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민아는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마하임을 향해 말했다.

“마하임 님….”

“기각, 어차피 지금 말해 봤자 믿지도 못할 거야. 이것도 때가 되면 이야기해 줄 테니 지금은 그냥 날 믿어라.”

마하임이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이미 망해 버린 나사의 극비 임무는 그렇다 치더라도 레비단의 존재는 지금 말해줘 봤자 믿지 못할 것이 뻔했다.

게다가 방금, 목표 지점에 드디어 도착했다.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 이벤트 호라이즌의 엄폐를 해제하겠다.”

이곳은 설악산 국립공원 외곽의 인적 하나 보이지 않는 숲 가장자리였다. 지금 여기에는 나사의 최첨단 외우주 탐사선, 이벤트 호라이즌이 추락해 있었다.

전장 1km에 다다르는 대형 우주선이었지만, 이곳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그저 울창한 숲뿐이었다. 하지만 분명 이벤트 호라이즌은 존재했다. 단지 이 눈으로 볼 수 없을 뿐이었다.

이벤트 호라이즌은 원래 우주에서의 전투를 대비해서 만들어진 전함이기도 하였기에, 기본적으로 자체 은폐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이벤트 호라이즌과의 교신 완료. 은폐 시스템 정지.”

차를 멈춘 레비는 이벤트 호라이즌의 은폐 시스템을 정지시켰다. 그러자 거대한 이벤트 호라이즌의 본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 엄청나군요.”

현민은 채 말을 잊지 못했다. 이벤트 호라이즌은 나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탐사선인 만큼, 그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마하임은 느긋한 목소리로 이벤트 호라이즌에게 명령했다.

“이벤트 호라이즌, 화물 적재 구역 문 열어.”

마하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벤트 호라이즌의 몸채 하단부가 묵직한 모터 음과 함께 열렸다.

그리고 마하임을 비롯한 모두에게 보인 것은 엉망진창으로 망가져 있는 거대한 창고와 같은 공간이었다.

“엉망이군.”

“원자재 부족이 원인이다. 이번에 확보한 재료가 있으면 10% 정도 수리 효율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한다.”

레비의 말에 마하임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말이 10%지, 이번 원정 아닌 원정에서 얻은 고블린 몇 마리로는 망가진 이벤트 호라이즌의 수리에 조금도 도움이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실망에 한숨을 내쉬는 마하임과는 다르게 현민의 팀은 주변의 풍경에 놀라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이벤트 호라이즌의 화물 적재 구역은 웬만한 초대형 물류 센터의 창고보다 컸고, 이 안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각종 장비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전혀 생소한 것들이었다.

“모두 환영한다. 여긴 나의 비밀 기지이자 거점인 이벤트 호라이즌이다. 우리가 새롭게 시작할 스타팅 포인트가 될 곳이지.”

“대, 대단해요. 여긴 뭐죠? 보아하니 완전 자동화된 물류 적재 구역처럼 보이는데, 여기 정말 대단해요! 비록 여기저기 많이 망가졌지만, 이런 장치들은 처음 봐요! 정말 이거 나사에서 만든 거 맞나요?”

마하임을 보며 질문을 속사포처럼 민아를 바라보며 역시 공대생은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고블린의 침략으로 졸업은 못 했지만, 민아는 MIT에 수석으로 입학할 정도의 뛰어난 공돌, 아니 공순이였던 것이다.

“지금 이런 것에 신경 쓸 시간이 없을걸. 내가 고블린과의 전투 중 너희를 치료해 준 것은 그저 임시 처방에 불과해. 너희는 지금도 급속도로 죽어 가고 있다.”

마하임은 차갑게 현민 팀을 향해 말했다. 현민의 몸은 스팀팩의 부작용으로 이미 60대의 몸이었고, 다른 대원들도 스팀팩과 열화우라늄탄에서 발생한 방사능에 의해 DNA가 심각한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이대로라면 현민 팀 전원은 길어야 1년 이상, 생존이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제 몸… 정말 치료할 수 있습니까?”

머리가 새하얗게 세어 버린 현민이 마하임을 바라보며 말했다. 스팀팩의 부작용으로 노화가 진행되어 잔주름이 가득한 현민의 눈은 의심과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물론. 치료할 수 없다면 데려오지도 않았을 거야. 나사의 최첨단 치료 시술의 정수를 보여 주지.”

이벤트 호라이즌은 전장 1km에 다다르는 대형 함선이었다. 그래서 내부에서 이동하는 시간도 많이 걸렸다.

그렇게 한 20분 걸었을까? 이벤트 호라이즌의 의료 구역에 마하임 일행은 도착했다.

“여, 여긴 또 어딥니까?”

갑작스럽게 달라진 풍경에 철광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곳 역시 많은 손상을 입은 상태였지만 현민의 팀을 한꺼번에 수용할 정도의 시설은 남아 있었다.

“입고 있던 옷 다 벗고 눈앞에 보이는 유리관 안으로 들어가도록.”

“먼저 설명을 해 주십시오! 도저히 전 이해도 안 가고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처음부터 약간의 반항 기질이 있었던 철광은 발끈해 말했다. 한때 UDU에서 탑 클래스였던 자신이 이렇게 맹목적으로 끌려다닌 적은 몬스 헌터에 입사한 이후로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저 마하임, 물론 그의 능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이건 너무한 처사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그래, 지금은 혼란스럽겠지. 하지만 믿어 주었으면 한다. 너희와 한 팀이 되기 위해 나는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너희를 여기까지 불렀거든. 지금이라도 싫다면 보내 줄게.”

마하임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 타오르는 듯한 열정은 아무리 무딘 감각의 철광이라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후우, 할 수 없군요. 이미 전 마하임 님께 은혜를 입은 몸. 끝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철광은 마하임을 향해 고개를 가볍게 숙인 후, 입고 있던 전투복을 벗기 시작했다. 이미 지난 전투 속에 넝마가 되어서 굳이 벗을 필요도 없이 엉망이었지만.

“아, 속옷은 안 벗어도 돼.”

팬티를 막 벗으려는 철광을 향해 마하임은 애써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철광은 마하임의 말을 들은 순간 인상을 팍 구긴 뒤 원통 안으로 들어갔다.

현민과 민아, 찬호 역시도 그를 뒤따라 그 옆에 죽 늘어서 있는 다른 원통 안으로 들어갔다.

모두가 원통 안으로 들어가자 마하임은 레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레비, 치료를 시작해. 최대한 자연 치유만 촉진시켜. 그래야 강력한 별의 수호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알았다, 즉시 명령을 수행하겠다.”

별의 수호자 이론에 대해서는 레비아탄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마하임에게는 생소한 이론이 아니었다.

지구의 별의 수호자, 다시 말해 ‘초인’이 되기 위해서는 완벽한 인간이어야 했으며, 또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타 인간보다 뛰어나야만 했다.

그래야 하나의 생명체나 마찬가지인 지구가 그를 선택해 자신의 원초적인 힘을 부여해 주는 것이다.

“한숨 푹 자고 나면 모든 것이 달라져 있을 거야. 그때 다시 보자.”

마하임은 휙 뒤돌아서 치료실 밖으로 향했다. 그런 마하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레비는 고개를 휙 돌려 현민 팀 모두가 들어가 있는 원통, ‘하이브’를 작동시켰다.

‘우우웅.’

기묘한 울림과 함께 하이브는 서서히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통 안은 푸르스름한 액체, ‘창조의 물’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 창조의 물은 겉보기에는 그냥 액체처럼 보였지만, 실은 수조 개의 나노머신의 집합체였다.

이 나노머신은 나사의 비밀 발명품으로, 일종의 생체 분자 구조 재조합기였다.

설령 신체의 20% 이상 소실되었다 하더라도 5분 이내에 이 하이브 안에만 넣을 수 있다면 생명체로 분류되는 그 어떠한 존재라도 완벽한 소생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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