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왜 이리 귀가 가렵지? 누가 내 말 하나?”
오늘은 무엇 때문인지 귀가 유난히 가려웠다. 이미 마하임은 인간이 아닌 신선, 아니 레비아탄과 융합하여 그 중간의 어중간한 상태였기에 이론적으로는 귀가 가려울 리 없었다.
그런데 마치 누군가가 귀에 바람을 불어넣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귀가 가려웠다.
“뭐 됐고, 쟤네들도 정말 답이 없네, 답이 없어.”
그야 어쨌건 오늘도 마하임은 노예 1호가 현민 팀을 가지고 노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어이, 그래 가지고 헌터 일 해 먹겠어? 노예 1호에게조차도 이러면 앞으로의 전쟁에선 순살이야, 순살. 순살 치킨이라도 되고 싶어?”
마하임은 4미터 이상이나 허공에 떠올랐다가 바닥을 뒹구는 민아를 바라보고 말했다. 그러자 민아는 바짝 약이 올라 나를 향해 소리쳤다.
“노예 1호가 아니에요! ‘쓰랄’이란 말이에요. 쓰랄! 이 못 쓸 사장님아!”
민아의 양쪽 팔은 역으로 완전히 꺾여 있었다. 저 정도면 복합 골절을 넘어서 팔 관절이 완전 작살이 났을 터였다.
노예 1호의 공격을 나름 잘 막는다고 막았지만, 그 결과는 보다시피 아무런 의미 없는 방어일 뿐이었다.
“하아, 그래. 쓰랄이라고 하자. 쓰랄. 그럼 됐지? 이 워크레x트3 빠돌이야.”
민아는 마하임의 노예 1호를 유독 아꼈다. 왜냐하면 자신이 프로게이머로 활약할 때의 게임, 워크레x트3 주인공인 ‘쓰랄’과 외모가 완전 똑같았던 것이다.
물론 마하임 역시 워크레x트3를 좋아했기에 약간은 의도적이었지만.
그리고 마하임이 민아를 별의 수호자로 만든 것은 단순히 홍일점이나 만들려고 넣은 게 아니었다.
그녀는 인류 기준으로 볼 때 예전부터 이미 초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온라인’상에선 말이다.
민아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뛰어난 워크레x트3 실력으로 세계 최연소 프로게이머가 됐다. 이건 기네스북에도 오른 사실이었다.
그녀는 프로게이머가 된 이후 세계 대회든 국제 대회든 은퇴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지금껏 온라인 RTS(리얼 타임 전략 시뮬레이션) 업계에서 여성이란 그저 남성의 들러리에 불과했지만 민아의 등장으로, 아니 민아만 독식으로 승리를 했다.
2:1이든 2:2든 심지어는 3:1조차 커버하며 승리했다. 그녀의 손놀림은 이미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 있었고, 그녀의 전략은 제갈공명 뺨칠 정도로 기상천외했고 탁월했다.
민아는 그야말로 전설적인 워크레x트3 프로 선수였다.
심지어는 중국에서 있었던 워크레x트3 세계 대회 1주일 전, 오른팔이 골절되는 사고를 당해 6주 진단을 받고 오른팔에 깁스를 한 적이 있었다.
즉 왼손밖에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아는 워크레x트3 세계 대회에 출전해 왼손만으로 워크레x트3 중국 최강자를 압도적인 실력 차로 이겨 버렸다.
중국은 열광했고, 이를 본 진행자는 너무나 놀라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진행자는 어떻게 한 손만으로 중국 챔피언을 꺾을 수 있었냐고 민아에게 물었다. 그러자 민아는 유창한 중국어로 대답했다.
“에, 쉽던데요? 오른손을 사용 못 해서 좀 불편했지만, 모두 알다시피 워크레x트3에는 예약 명령 기능이 있잖아요? 그 예약 명령 기능을 사용해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해서 플레이했는데 그게 딱딱 들어맞더라고요. 덕분에 편하게 게임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역시 워크레x트3는 대단한 게임인 거 같아요. 모두 감사드립니다.”
그 말을 들은 중국 대륙은 발칵 뒤집어졌고, 이제 동일 회사 게임인 스x크x프x의 등장으로 사양길에 서 있던 워크레x트3는 단숨에 중국 최고의 인기 게임이 되었다.
이 외에도 민아의 온라인상에서 일으킨 기적과 같은 기행은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FPS, MMORPG에서도 전설적인 업적을 남겼다.
중학교 때 FPS 게임으로 갈아탄 그녀는 프로 게임단과 1:6으로 싸워 승리하는 기염을 토해냈고, 1:1 및 팀전에서는 그녀가 속한 팀은 단 한 차례도 패하지 않았다.
어디 그뿐인가? MMORPG 게임을 할 때에는 무과금으로 항상 모든 서버에서 최강자로 군림했다.
그녀는 그 어떤 MMORPG 게임이라도 단 하루면 모든 시스템을 이해하고 그 시스템의 구멍을 귀신같이 찾아내어 순식간에 그 게임을 공략해 최강자가 되어 버렸다.
물론 그 방법은 게임을 만든 프로그래머조차 찾을 수 없어서 직접 민아를 게임 회사에 초청해 방법까지 물었다고 했다.
영악한 민아는 ‘고가’의 대가를 받고 버그 및 해결책을 알려 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게임에 빠져 떼돈을 벌던 민아에게 눈에 띄는 사람이 한 명 들어왔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해커 업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전설적인 해커, ‘오페라’였다.
그의 업적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최초의 상용화 직전까지 간 인텔의 양자 컴퓨터를 해킹했음은 물론이며, 미연방 국방부 펜타곤까지 탈탈 턴 전설적인 해커였다.
그는 천재였고,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전 세계 해커 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민아는 오페라의 그 카리스마에 푹 빠져, 자신도 오페라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니 정확히는 짝사랑에 빠졌다고나 할까?
자신도 오페라에게 어울릴 만한 그런 뛰어난 해커가 되고 싶었다.
민아는 자신의 모든 해킹 실력을 동원해 오페라의 정체가 누군지 알아내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그리고 오페라의 본명이 마하임이고, 그가 나사에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민아는 어떡해서든 마하임과 만난다는 일념 하나로, 중학교를 졸업한 직후 미친 듯이 공부해 단 한 달 만에 영어를 마스터했다.
그리고 두 달 만에 미국 최고의 이과 대학 MIT에 합격하여 입학했다.
물론 마하임이 특수 임무 중에 행방불명되고 고블린의 침략으로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자 모두 물거품이 되어 버렸지만….
그런 마하임 앞에서 이런 망신을 당하고 있었으니 민아는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레비, 민아를 후딱 치료해 줘. 지금 놀 시간 없으니까.”
“알았다.”
마하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레비는 갑자기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민아의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쓰랄에게 맞아 부러진 민아의 양팔을 순식간에 다시 맞추더니 예전에 한 번 선보인 힐링 침을 민아의 정수리에 꽂아 넣었다.
“캬아악!”
끔찍한 고통에 민아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고통은 한순간이었다. 민아의 부러진 팔은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다시 붙어 버렸다.
“으으으, 반드시 쓰러트리고 말겠어!”
팔의 치료가 끝난 민아는 곧장 현민 철광 찬호가 피 터지게 쓰랄과 함께 싸우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다시 한번 말한다. 너희에게 발현된 초인으로서의 능력은 사용 금지다! 초인의 힘은 예측 불능이고 아직 익숙지도 않다. 애초에 근접 격투는 모든 전투에 있어 기본 중의 기본! 그 기본조차 안 됐는데 본론으로 넘어갈 순 없지.”
이것은 과거 선계에서 마하임이 선술을 배울 때 스승으로부터 배운 것이었다.
초인의 능력은 일종의 허상. 기본이 튼튼하지 못하면 결국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뿌리 깊은 나무가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그 뿌리가 근접 격투술인 것이다.
“난 너희에게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근접 격투술의 모든 것을 심층 의식 깊숙이 박아 놨다! 다시 말해 너흰 이미 웬만한 무술 고수 이상의 격투 실력이 있단 말이다!”
현민 팀과 마하임의 거리는 그의 중얼거리는 듯한 작은 목소리가 들릴 만한 거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현민 팀은 마하임과 ‘링크’되어 있기 때문에 지구 반대편이라도 그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것은 레비아탄과 융합하면서 마하임에게 생긴 특수 능력이었다.
마치 자신이 인간이면서도 인간이 아닌 듯한 미묘한 느낌이 들게 만드는 능력이었지만, 필요하다면 사용한다는 것이 마하임의 성격이었다.
“그 힘을 끌어내라! 그 힘에 다다르면 쓰랄 따윈 순식간에 정리할 수 있을 거다. 하다못해 쓰랄을 한 대라도 못 때리면 오늘도 잠 안 재울 거다! 각오해 두는 게 좋을 거야.”
마하임의 한마디에 현민 팀 모두의 얼굴은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악! 보스 너무해요! 벌써 3일째라고요!?”
“차라리 죽여 주십시오.”
“…이익! 반드시 쓰러트리고 말 거야.”
“알겠습니다. 저 현민, 반드시 형님의 명령 완수하겠습니다.”
각자의 반응은 달랐지만 3일 밤낮을 쓰랄과 싸우고 있는 그들에겐 오기와 독기만이 남아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4일 전. 현민 팀의 치료는 끝났다. 그리고 그들은 별의 수호자로 각성해 각자 고유의 특수 능력을 얻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초인의 능력을 단련하는 것보다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근접 격투를 대비해 단련하는 게 급선무였다.
전장에서 예측 가능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더욱이 앞으로 다가올 외계종과의 싸움에 있어서 어떠한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아무도 몰랐다.
그때를 대비해서 근접 격투술은 반드시 마스터해야 할 필수 능력이었다.
“제길, 한 방만 맞아라!!!”
“캬하하하!”
철광을 두들겨 패는 데 신이 난 쓰랄은 여유롭게 소리치며 그의 모든 공격을 모조리 피해냈다. 물론 반격하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퍽-!
“크아아악!”
강렬한 쓰랄의 훅에 턱을 맞은 철광은 방금 민아처럼 5미터 이성 떠올라서 바닥에 쓰러졌다.
이 공격으로 철광은 목뼈가 부러져 순간적으로 전신이 마비됐지만 레비는 예의 힐링 침으로 단숨에 철광을 소생시켰다.
철광이 얻은 초인으로서의 능력은 무협지에 나올 법한 내공을 이용한 기술들이었다.
물론 예전에 보았던 중국의 초인보다는 훨씬 뒤떨어지는 능력이었지만, 갈고 닦으면 얼마 안 가 중국의 초인조차도 뛰어넘을 것이다.
물론 마하임이 지금 그걸 사용하도록 내버려 둘 리 없었다. 아직 초보 단계이긴 해도 그걸 사용한다면 지금의 쓰랄은 한 방에 전투 불능 상태가 될 테니까.
그래서 지금 철광이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은 현민 일행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능력인,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10배 넘어선 육체적 능력뿐이었다.
“왜, 왜 안 맞는 거야!”
민아는 짜증 난 얼굴로 외치며 쓰랄을 향해 맹렬히 펀치를 날렸다.
그녀는 소위 말하는 악바리 체질이었다. 옛날 어렸을 때부터 무엇을 하건 남자에게든 여자에게든 지기 싫어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쓰랄은 마치 거대한 성벽을 맨손으로 두들겨 패서 부숴야 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강했다.
만약 민아 자신이 별의 수호자로 각성하면서 얻은 특수 능력, ‘공간제어’를 사용하면 쓰랄 정도야 공간을 압축시켜 단숨에 터트려 버릴 수 있었지만, 물론 그걸 허락할 마하임이 아니었다.
결국 민아도 맨주먹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민아 역시도 다른 현민 팀과 마찬가지로 육체적으로 10배 이상 강화된 상태였다.
그런데도 현민 팀이 모두 달라붙어 싸워도 쓰랄을 단 한 대도 때릴 수 없었다.
“아, 재미없어. 좀 더 힘을 내 봐. 전혀 상대가 안 되잖아.”
마하임은 미리 가져다 놓은 흔들의자에 앉아서 레비가 공수해 온 달콤한 바나나 우유를 마시며 말했다.
“여억시 우유의 제왕은 바나나 우유지! 암 그렇고말고.”
“시끄러워요. 보스! 쓰랄도 10배 이상으로 강화시켜 놨잖아요. 저걸 어떻게 이겨요! 그냥 고블린 로드도 사긴데 저건 완전 ‘치트’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