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적의 힘을 몸으로 받아낼 생각을 하지 마라. 부드러움은 강함을 이긴다! 적의 힘을 흘려 그대로 이용해라! 이렇게!!!”
그리고 유술과 태극권을 혼합한 기술, 선계의 무술을 시전했다.
마하임은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유연한 움직임으로 쓰랄의 발차기를 피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쓰랄의 발을 잡고 쓰랄이 발을 휘두를 때의 힘을 그대로 이용해 힘의 방향만 바꿔 허공으로 던져 버렸다.
“크어어어어어!”
쓰랄은 비명을 지르며 순식간에 허공으로 치솟았다. 그리고 무려 30m 위 함선의 전투 실습장 천장에 부딪힌 뒤 다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것으로 전투는 끝났다. 쓰랄은 의식을 잃어버렸고 온몸의 뼈라는 뼈는 다 부러져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솔직히 살아남은 것도 기적에 가까웠다.
“레비. 녀석을 받아 줘. 저러다 정말 죽겠다.”
“알았다, 마하임.”
마하임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레비는 쓰랄이 떨어지고 있는 바로 아래로 순식간에 이동했다.
그리고 바로 손 하나도 대지 않고 쓰랄을 멈춰 세웠다. 레비의 주특기 중 하나인 중력 제어를 사용해 쓰랄을 받아낸 것이었다.
“와우, 레비 님 그거 ‘사이코키네시스’예요?”
“아니야, 저건 포x! 제x이가 사용하는 바로 그 능력이라고!”
“역시 대단하군. 최소 알파급 헌터는 되겠어. 인정할 수밖에 없군. 레비 님의 실력은.”
“과연 형님에 최측근다운 능력이십니다. 앞으로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레비의 힘을 은근히 의심하던 현민 팀은 레비의 이능력 하나만으로 그녀를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레비의 얼굴은 여전히 무뚝뚝, 아니 오히려 어두워 보였다.
그런 레비를 바라보며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마하임은 활짝 웃으며 현민 팀을 향해 말했다.
“어때, 참 쉽지? 이렇게 쉬운 것조차 못하면 나의 동료로서 자격이 없다! 당분간 잠잘 생각은 꿈도 꾸지 마! 특훈이다!”
마하임은 여유롭게 웃으면서 말했다. 바로 그때 레비가 내 곁으로 소리 없이 다가와 말했다.
“쓰랄의 상태가 심각하다. 두개골, 척추, 갈비뼈, 정강이, 골반 등등 총 128개의 뼈가 조각나고, 뇌, 심장, 신장 등에 치명상을 입은 상태다. 앞으로 5분 후 쓰랄의 생체 반응은 소멸될 것이다. 이 상태라면 힐링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 치료실으로 옮겨서 치료하는 것을 추천한다.”
레비의 말에 마하임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 마하임이 현민 팀을 직접 가르치지 않았던 것이다. 이놈의 몸은 아직도 마하임의 마음대로 완벽하게 제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약간만 흥분하면 이런 사태가 터지는 것이다.
“하아, 또 저질렀네. 어쩔 수 없지. 치료실로 데려가. 일단은 내 식구니까 살려야겠지.”
지금 현민 팀을 단련해 줄 만한 놈은 쓰랄밖에 없었다. 마하임은 힘 조절이 어렵고, 레비는 항상 너무 진지해 융통성이라는 단어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니 말이다.
물론 나사의 가상현실 시스템을 이용해 수련도 시킬 수 있었지만, 그건 마하임이 가장 싫어하는 방법이었다.
아무리 나사의 가상현실 전투 수련 시스템이 완벽하다고 하더라도 현실의 리얼리티와 변수를 따라잡을 순 없기 때문이었다.
“쓰랄이 나을 때까지 모두 휴식이다. 한 3시간 걸릴 테니까 그때까지 푹 쉬도록.”
마하임은 현민 팀을 향해 말했다. 하지만 대답하는 사람은 현민 팀 중에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3일 동안 한숨도 못 자고 지옥 훈련만 했다.
이미 그들은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래. 저들은 인간이었지…. 난 아니고.”
이미 피로라는 감각까지 없어져 버렸다. 성욕과 수면욕도 날아가 버렸다.
레비아탄의 신체 구조상 외부에서 얻은 에너지를 완벽하게 흡수하여 사용했기에 대변이나 소변을 볼 필요조차 없었다.
지금의 마하임은 과연 정말 인간인가? 이제 그것조차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마하임은 레비아탄과 하나가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그래도 인간이다! 모든 걸 잃더라도 반드시! 반드시! 심판에서 인류를 구해내고 말 거다!”
마하임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지금으로선 그것이 그가 인간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에.
* * *
어두운 하늘, 그 하늘에 수천수만 개의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은 꿈, 아니면 기억, 누구의 꿈인지 누구의 기억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 옛날 장자가 나비의 꿈을 꾸고 일어난 뒤, 자신이 나비가 되었는지 아니면 나비가 자신이 된 꿈을 꾼 건지 알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처럼.
“오랜만이네, 같이 이렇게 밤에 별을 보는 것도.”
“그렇지 뭐, 엄청 바빴으니까.”
마하임은 그 별들을 바라보며 마치 꿈이라도 꾸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마하임의 말에 학렬 역시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같이 연차 휴가를 낸 마하임과 학렬은 LA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그리피스 천문대에 찾아왔다.
둘은 같은 팀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최고의 라이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둘은 이제 곧 새롭게 시작될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재단에 후원 요청한 건은 어떻게 됐냐?”
“말도 마라, 무슨 SF 소설 쓰냐고 욕을 한 바가지나 먹었다.”
“뭐, 이렇게 될 거 어느 정도 알고 간 거 아니냐? 그냥 한번 찔러 본 거지 뭐. 하지만 걱정 마. 나는 우리 팀의 이론과 기술을 믿는다. 이제 머지않았어.”
마하임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금 마하임이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다이아몬드의 10배 이상의 강도를 지닌, 자가 복구가 가능한 형상 기억 합금이었다.
이론적으로도 완벽했고, 시제품까지 만들었지만, 나사의 쥐꼬리만 한 연구비로는 이 제품을 양산할 고가의 장비를 구할 곳이 없었다.
결국 다 돈으로 때워야 한다는 것인데, 최소 100억 단위가 깨지는 막대한 돈을 일개 나사의 연구원인 마하임과 학렬이 가지고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구두를 3개 이상 갈아치울 정도로 후원해 줄 만한 기업이나 재단을 찾아보았지만, 허황된 이야기라고 모조리 거절당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유일하게 마하임의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진 회사가 있다면, 미국 계열 다국적 기업 T사가 전부였다.
“내일 내가 직접 T사로 다시 쳐들어간다. 이번에야말로 담판을 짓겠어!!!”
마하임은 마치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향해 맹세라도 하듯 말했다. 그런 마하임을 지켜보던 학렬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입을 열었다.
“정말 넌 대단하다. 이번에 가면 20번째 아니냐? 그 자신감과 배짱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다 야.”
“배짱이 아니야. 반드시 이루고 싶은 꿈이 있기 때문이지. 그 꿈을 이룰 수만 있다면 난 뭐든지 하겠어!”
쏟아질 듯한 별. 눈앞에 아련히 펼쳐진 은하수를 바라보며 마하임의 눈은 저 은하를 담은 듯 반짝였다.
그의 일생일대의 소원. 자신의 모든 것을 갈아 넣어서라도 이루고 싶은 일은 단 하나.
레비아탄으로부터 지구를 지키고, 인류를 존속시키는 것.
그러기 위해서 인간은 우주로 나아가야 한다.
“나는 반드시 만들겠어. 지상과 우주를 이어 주는 초거대 궤도 엘리베이터 제작 계획 프로젝트, ‘야곱의 사다리’를!”
그 옛날 인간이 대홍수와 같은 재앙을 피하기 위해 하늘에 닿을 정도의 거대한 탑을 만든 이야기는 무척 흥미진진했다.
당시 고대 바벨로니아인들이 만든 탑 흔히 말하는 ‘바벨탑’은 인간이 그저 재앙이 두려워서 일종의 대피소로 만든 것에 불과했지만.
마하임이 보기에는 이 탑이야말로, SF 소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지상과 우주를 이어 주는 ‘궤도 엘리베이터의’ 원형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성경에는 궤도 엘리베이터에 대한 이야기는 또 나온다.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야곱이 자신의 아버지를 속이고 장남의 축복을 받은 후 형의 보복을 피하기 위해 도망자가 되어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서 노숙을 하게 된다.
돌을 베개 삼아 청승맞게 잠을 자던 야곱은 꿈을 꾸게 되는데 지상에서 시작해서 하늘에 닿아 있는 거대한 사다리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사다리를 통해 신의 사자인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는 장면을 보고 잠을 깬 야곱은 그곳을 벧엘(하나님의 집)이라 이름 지었다.
그리고 나중에 성공해서 돌아온 야곱은 그곳에서 자신을 지켜 주시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신께 감사의 제사를 드렸다 전해진다.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지구는 좁디좁은 먼지와도 같다. 그럼에도 그곳엔 인류가 번성했다.
어쩔 수 없이 찾아올 심연의 심판을, 마하임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고 싶었다.
만에 하나 막지 못한다면,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지구를 떠나 우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못하면 인류의 앞에는 멸종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만은 아니었다. 마하임의 눈에 깊게 박힌 수많은 별빛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저 하늘을 봐. 수천, 수만 수억 개의 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그야말로 무한의 프런티어! 인류는 언젠가 반드시 우주로 나가야만 해.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궤도 엘리베이터가 필요해!”
현대의 과학 기술로 우주를 나가려면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비효율적인 로켓을 통해 지구 중력을 힘겹게 뚫고 나아가야만 했다.
그 비용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이었고 위험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궤도 엘리베이터만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지상으로부터 시작해 지구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까지 이르는 초거대 탑, 즉 궤도 엘리베이터가 만들어진다면 우주 여행은 지금의 해외 여행과 마찬가지로 저렴한 가격에 가능해진다.
물론 지금의 과학 기술로는 어림도 없는, 그야말로 SF의 영역이었지만 말이다.
“또, 또 SF 쓴다. 그것보다도 당장 연구비용 만들 궁리부터 해.”
“SF?! 50년 전만 해도 인류가 달에 가는 것은 생각도 못 했어. 그야말로 SF지. 하지만 인류는 달에 갔어. 어디 그뿐이야?
지금의 스마트 폰을 봐. 10년 전만 해도 이런 다목적 소형 휴대 컴퓨터는 생각조차도 못 했지. 하지만 지금은 너나 나나 할 거 없이 다 가지고 다니는 필수품이 되어 버렸잖아? 요즘은 멍멍이도 휴대폰 기능을 이용해 GPS를 달고 다닌다 하더라.”
마하임은 마치 머나먼 과거를 회상하듯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학렬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마하임을 향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아 네, 그러세요. 그런데 이걸 어쩌나, 지금 우리 수중엔 단돈 천만 원도 없는데. 돈이 있어야 양산을 해서 돈을 벌지. 시제품만으로는 아무것도 안 돼. 이대로라면 우린 동시에 실업자가 된다고.”
마하임이 몽상가였다면 학렬은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 그런데도 어찌 된 일인지 학렬은 단 한 번도 마하임을 이길 수 없었다.
나사에서의 인사 평가에서도 그랬고, 주먹질도 마찬가지였다.
“걱정 말라니까. 이번에는 정말 느낌이 좋아. 분명 후원을 얻을 수 있을 거야.”
마하임은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