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그래, 정말 네 꿈처럼 궤도 엘리베이터를 우리 손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럼 우주까지 간단히 슉~ 하고 갈 수 있을 거 아니냐.”
“뭐, 아직은 건축공학적이나 재료공학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옛말에 이런 말이 있지. 유지처재도(有志處在道). 언제나 그렇듯이 뜻이 있는 곳에 길도 있는 법.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나는 그 길을 걸어갈 거다. 나의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마하임은 다짐이라도 하듯 다시금 힘차게 외쳤다.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적이 있으면 쓰러트리고 벽이 있으면 뛰어넘는다.
궤도 엘리베이터는 이론적으로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단지 이러한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 만한 의지가 없어서, 각자의 이익에 눈이 멀어 만들 수 없을 뿐.
인류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건설한다면 절대 불가능하지 않으리라 마하임은 생각했다.
“물론 수많은 장애가 있겠지. 궤도 엘리베이터급의 거대 건축물을 건설하려면 돈과 기술은 물론이고,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달라져야 해!
지금으로서는 궤도 엘리베이터는 고사하고 가뭄으로 죽어 가는 아프리카의 굶주린 사람조차 못 구하는 게 인류의 현실이지.”
“잘 아는구먼. 그 문젠 어떻게 해결할 건데?”
학렬은 마하임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 학렬을 향해 당연하다는 듯 마하임은 말했다.
“답은 언제나 그렇듯 ‘혁신’뿐이지.”
“아, 또 나왔다. 혁신. 이번에 들으면 천 번은 들었을 거다.”
마하임은 몽상가이면서도 철저한 혁신주의자였다. 그래서 언제나 혁신을 부르짖었고 과거의 부조리함을 가감 없이 통렬히 비판하며 더 효율적으로, 더 생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덕분에 나사에서 경고도 몇 번이나 받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거침이 없었다. 그것이 바로 마하임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었으니까.
인류는 유원인에서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한 후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발전해 왔다.
그 첫 번째 혁신은 불의 사용이었고 두 번째 혁신은 농경 생활, 세 번째 혁신은 철의 사용.
이를 통해 인류는 끊임없이 발전과 발달을 거듭해 지금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제 그 혁신은 천민자본주의와 님비 현상으로 좌초되어 멈춰 버린 지 오래였다.
부국은 더욱 부국이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더욱더 가난한 나라로 치달았다.
개인 역시 다를 게 없었다.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옛말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특히 마하이 태어났던 한국은 헬조선이라 불리우며, 4포 5포 세대로 불리우는 절망과 좌절로 점철된 젊은이로 넘쳐났다.
그 결과 OECD 회원국 중 최고의 자살률과 세계 유일의 0명대 출산율을 자랑하는 국가가 되어 버렸다.
“세계는 혁신되어야만 해! 많이 가진 나라, 많이 가진 자는 사람은 힘없고 약한 사람을 도와주고 이끌어 주어야 할 의무가 있어.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없인 인류는 조만간 자멸할 거다. 기필코 나는 그것을 막을 거야. 두고 봐, 반드시 해내고 말 테다!”
마하임은 주먹을 불끈 쥐고 다시금 외쳤다. 그리고 손에 닿을 듯 반짝이는 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언젠가 이 혁신의 끝에 다다랐을 때 나는 반드시 내 꿈을 이루고 말겠어!”
아무런 근거도 없는 황당한 이야기에 불과했지만 이를 바라보는 학렬은 자신도 모르게 그 이야기 속에 빨려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가슴은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마치 당장이라도 궤도 엘리베이터가 눈앞에 떡하니 나타날 것만 같았다. 학렬은 마하임을 향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역시 마하임답다! 그래, 한번 해보자. 그 혁신이라는 녀석을! 모두 다 바꾸는 거야! 인류건 세계건! 나 혼자서는 절대 불가능하겠지만, 너랑 함께라면 가능할 것 같다. 함께 만들어 보자. 야곱의 사다리. 궤도 엘리베터를!”
마하임과 학렬은 서로 굳게 손을 잡았다. 그렇게 한여름 밤은 깊어 갔고, 그들의 우정과 꿈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시궁창. 그들의 꿈은 깨어지고 그들의 이상은 한순간 무너졌다.
그리고 공허가 찾아왔다. 끝없는 공허. 그렇게 누구의 꿈인지조차 모를 꿈은 그렇게 끝이 났다.
* * *
“야, 셋 센다. 깨어 있는 것 다 아니까 후딱 일어나. 아님 라이덴(전격 주문)을 먹여 줄 테니까.”
갑자기 들려온 귀여운 소녀의 목소리. 학렬은 저도 모르게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지만 그의 무거운 눈꺼풀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떠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온 힘을 다해 몇 번씩이나 눈을 뜨려고 시도를 한 끝에 학렬은 눈을 떴다.
“큭!”
학렬은 눈을 뜨기가 무섭게 자신의 눈을 불태울 것처럼 강렬한 빛에 손으로 눈을 가렸다. 바로 그때였다.
퍼억-!
누군가 학렬의 뒤통수를 힘껏 내리쳤다. 그 소리가 얼마나 경쾌했던지 커다란 수박이 깨지는 소리가 날 정도였다.
갑작스러운 고통과 짜증이 뒤섞여 학렬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누구냐!!!”
화가 머리끝까지 난 학렬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학렬의 눈에 보인 것은 뭔가 수상쩍은…. 아니 너무나 아름다워 천국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아름다운 숲속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학렬 자신의 앞에는 이제 막 사춘기 소녀를 벗어난 듯한 귀여운 서양인, 정확히는 앵글로 색슨족 계열의 영국인 소녀가 서 있었다.
그 소녀는 마치 일본의 마법 소녀 만화에서나 볼 법한 화려한 숏 스커트에, 이상한 문자가 수놓아진 망토를 걸친 채 학렬 자신을 날카롭게 쏘아보고 있다.
“흐음, 보아하니 ‘리제네레이션(재생)’은 완벽한 것 같네. 뭐 가이아가 직접 개입했으니 당연하겠지. 어휴, 또 이런 짐 덩이를 나한테 떠맡기다니 정말 짜증 나 죽겠네!”
그녀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자신의 머리보다 조금 작은 붉은 보석이 박힌 지팡이로 바닥을 연신 내리치며 투덜거렸다.
“인간이었을 때의 이름이 학렬이라 했던가? 지금 기분이 어때? 황당하고 어처구니없고 정신없고 뭐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겠지?”
소녀는 학렬을 빤히 보며 말했다. 학렬은 소녀의 압도적인 무언가에 홀린 듯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학렬을 바라보며 소녀는 자신의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배배 꼬며 말했다.
“일단 옷부터 입어. 네 뒤에 하나 가져다 놨으니까.”
소녀의 말에 학렬은 그제야 자신이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학렬은 자신의 공개하고 싶지 않은 부분을 얼른 가리고선 그녀가 준비한 옷을 허겁지겁 입었다.
“볼 것 다 봤으니 그냥 입어. 거기도 조그마한 게, 쯧쯧.”
소녀의 핀잔에 학렬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빨개져 버렸다. 소녀가 준비한 옷은 마치 학렬 자신의 몸에 딱 맞춘 듯한 사이즈의 옷이었다.
새하얀 티셔츠에 깔끔한 반바지. 옷에선 향긋한 꽃냄새가 흘러나와 학렬의 머릿속까지 상쾌하게 만들어 줬다.
“그 옷엔 정신과 몸을 항상 최적의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 마법을 인첸트해 놨어. 거기다 그 옷은 가이아의 잎으로 만든 거라 웬만한 충격엔 찢어지지도 않고 더럽혀지지도 않을 거야. 물론 세탁도 필요 없지. 어때? 편리하지? 이게 바로 마나를 제어하는 힘, 마법이란 거야.”
소녀는 이렇게 말하고선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의식을 회복한 학렬은 지금 이 상황 자체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기, 여긴 어딥니까? 그리고 전 어떻게 된 거죠? 죽은 거 아닙니까?”
학렬은 한참이 지나서야 자신이 기억하는 마지막 전투를 떠올렸다.
학렬은 마하임에게 죽임을 당했다. 분명 라이칸슬로프화된 자신의 몸이 시커먼 재로 변해 사라지는 것까지 학렬은 두 눈으로 분명 보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자신은 아직 살아 있었던 것이다.
“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그래, 너 간x라는 일본 만화 본 적 있지?”
소녀는 뜬금없이 일본 만화에 대해 말했다. 물론 학렬 역시 본 적이 있었다. 솔직히 학렬 나이 때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안 본 사람은 없을 터였다.
한 번 죽은 사람을 외계 기술로 부활(복제)시켜서 지구를 침략하는 외계인과 싸우게 만든다는 그런 스토리였다.
“네, 본 적 있는 것 같은데요.”
“그거랑 비슷해. 넌 완벽히 죽었어. 하지만 지구의 영혼 즉 ‘가이아’에게 선택받은 넌 다시 소생해 영원과 순간이 교차하는 곳, 전설의 섬 ‘아발론’에서 다시 부활한 거지.”
“아, 아발론?!”
아발론. 한때 아서와 전설에 심취해 있었던 학렬에게 있어선 절대 낯선 단어가 아니었다.
아서왕은 영국을 수호하는 수호신 같은 존재였다. 한국으로 말하자면 불패의 장군 이순신, 아니 그 이상으로 칭송받는 기사 중의 기사이자 왕이었다.
아서왕 전설에 따르면, 아발론은 아서왕의 시신이 잠들어 있는 장소였다.
캄란 전투에서 사생아 모드레드에 의해 치명상을 입은 아서왕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전설 속의 불멸자의 섬 아발론으로 향한다.
유리엔 왕의 왕비 모르간, 북 갤리스의 왕비, 그리고 호수의 왕비 등 자신의 3명의 왕비들에 의해 아서 왕은 아발론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치료의 때를 놓친 아서 왕은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아서왕은 아발론에서 죽지 않았다고 한다.
아서왕은 이 불멸의 섬에서 치료를 받은 후 먼 미래에 영국에 다가올 피할 수 없는 크나큰 위기를 대비해, 그저 쉬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위기의 순간에 아서왕은 다시금 귀환해, 그 옛날 그랬듯이 영국을 구원할 것이라고 지금도 수많은 영국인들은 이를 믿고 있었다.
“너도 알고 있구나? 아서왕의 전설. 그래, 그 전설대로야. 물론 왜곡되고 변질된 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진실은 전설상의 이야기와 큰 차이는 없어.”
소녀는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돌변해 말했다.
학렬은 지금 이 모든 것이 그저 의심스럽고 현실감조차 느껴지지 않았지만, 지금으로서는 저 소녀가 자신이 처해 있는 이 상황을 설명해 줄 유일한 인물이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아서란 말이지, 단순히 영국의 전설적인 왕을 뜻하는 게 아니야. 아서는 일종의 상징. 지금껏 인류가 최악의 위기로 몰렸을 때 가이아의 수호령, ‘아서’는 몇 번이나 모습을 드러내어 인류를 멸종에서 지켜냈었지.
다시 말해 아서란 지구의 영혼인 ‘가이아’가 선택한 최종 병기를 뜻해. 요즘으로 말하면, 그래. 초인, 초인이 맞겠다. 이제 알아듣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