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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173화 (173/194)

173화

민아는 초등학교 시절 때부터 학교나 학원에서나 어디서든지 인기 만점의 여자였다. 그러나 지금 이 나이까지 단 한 명의 남자도 사귄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MIT에 입학할 당시엔 마하임에게 푹 빠져서라고 하지만 그 이전에도 민아는 수많은 프러포즈를 남자에게 받았다.

그중에선 소위 금수저라 불리는 재벌 2세도 있었고, 각종 스포츠 유망주도 있었다.

그러나 민아는 단 한 번도 그 프러포즈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대신 조건을 내건 것이다.

“나를 한 번 이겨 봐. 주먹으로. 나와 싸워 이기면 사귀어 주지. 원한다면 결혼도 OK야.”

민아의 선언에 너도 나도 없이 그녀에게 싸움을 걸어 왔고 심지어는 여자애들조차 도전해 왔다. 솔직히 이땐 민아 역시 당황했었다.

물론 민아는 100전 100승. 그녀를 이길 자는 아무도 없었다.

프로 복싱 선수부터 시작해서 각종 종합 격투기, 태권도 금메달리스트들까지 민아에게 도전했지만 민아는 일격 필살로 모두 한 방에 도전자들을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이건 아직도 서울 각지 학교에 회자되며 이미 도시 전설급 이야기가 되어 버린 이야기였다.

“보스, 그냥 싸우면 재미없으니 조건을 하나 걸죠.”

싸우는 도중에 뜬금없이 민아가 말을 걸었다. 마하임은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말해 봐. 들어줄 수 있으면 들어줄 테니.”

“제가 사장님을 쓰러트린다면… 음, 데이트해 주실 수 있나요?”

“…….”

마하임은 순간 멍해지고 말았다. 뜬금없이 데이트라니…. 그러나 마하임은 민아에게서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민아는 누가 봐도 아름다우면서도 귀여운 데다 능력도 출중했다. 그러나 마하임은 이미 이성에 대한 모든 감정이 사라지고 말았다.

사랑이란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고 있지만 그것을 실제 느낄 수 없는 그런 몸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난, 네게 아무것도 느낄 수 없어. 나를 좋아해 봤자 너만 힘들 뿐이다.”

“상관없어요. 사랑은 언제나 그렇듯 쟁취하는 거니까요.”

민아는 자신이 개발한 팔괘유술의 독특한 보법으로 미끄러지듯 마하임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놀라운 속도로 얼굴을 향해 찌르기 공격이 날아왔다.

그런데 이 찌르기 공격은 뭔가 이상했다. 분명 날카로웠지만, 뭔가 숨겨진…. 이른바 중국 무술에서 말하는 ‘허초’임이 분명했다.

“이런 허초에 내가 당할 것 같아?”

마하임은 가볍게 민아의 찌르기를 피한 뒤, 진짜 공격인 그녀의 로우킥을 가볍게 흘렸다.

그러자 민아는 마치 날렵한 고양이처럼 뒤로 물러서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와! 역시 대단해! 저도 이제 리미트 따윈 해제할게요! 혹시라도 제가 이기면 데이트 꼭 해 주셔야 해요!”

“…….”

이 말을 들은 마하임은 순간 섬뜩함을 느꼈다. 지금까지 그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민아를 상대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민아에게 있어선 지금 이것이 그저 탐색전에 불과했던 것이다.

마하임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솔직히 그는 조금 우쭐거리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얻은 레비의 엄청난 힘에 취해 겸손함을 잃고 마음대로 움직이며 거침없이 앞으로 돌진했을 뿐이었다.

그런 마하임에게 민아라는 존재는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비록 레비의 기술로 신체가 강화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녀는 인간.

아무리 마하임이 본래 실력을 끌어내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인간이 그와 대등하게 싸우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듀얼코어 CPU를 지닌 구닥다리 컴퓨터로 최신형 양자 컴퓨터와 연산 능력을 대결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런 악조건에서도 민아는 전혀 마하임에게 밀리지 않았다. 역시 세상은 넓고 뛰는 놈 위에는 나는 자가 있다는 말을 마하임은 그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파파팍.

퍼퍽 퍽 퍼퍼퍽.

팍 파팍.

탁 타탁.

격렬한 공방이 오갔다. 마하임은 선술과 레비의 능력으로 맞섰고 민아는 자신의 창시한 시현류 팔쾌유술을 거침없이 사용했다.

둘의 공격 방식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개념이었다. 이미 인류의 전투 기술의 범위를 넘어선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운 것이었다.

특히 민아는 자신의 약한 하드웨어를 보충하기 위해 그야말로 자신의 생명을 걸고 마하임에게 맞섰다.

솔직히 갑작스럽게 10배 이상 강화된 몸은 컨트롤이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민아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한 번 자기가 가지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라면 반드시 쟁취하고 마는 그런 여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민아의 목표는 단 하나. 자신의 눈앞에 있는 저 기적과 같은 남자 마하임뿐이었다.

“보스를 반드시 제 것으로 만들고 말겠어요!”

“야, 그 대사 너무하지 않냐? 난 물건이 아니거든?!”

“닥치고 승부!”

맹렬히 날아오는 민아의 찌르기 공격. 저건 분명 ‘철x’의 가장 강력한 기술 중 하나인 ‘붕권’이 분명했다.

크리티컬 히트가 나면 단 두 방에 상대를 쓰러트릴 수 있는 바로 그 기술! 마하임은 본능적으로 양손을 교차시켜 민아의 붕권을 막았다.

“크윽!”

그것은 레비와 융합된 이후 처음으로 느껴 보는 고통이었다. 팔이 부러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마하임은 민아의 이 일격에 3m 이상이 뒤로 밀려 나갔다.

그야말로 현재 민아가 지닌 스펙을 완전히 넘어서는 엄청난 공격력이었다.

“에효, 역시 붕권도 안 되는구나. 졌어요. 보스, 그렇게 저랑 데이트하기 싫으세요?”

“…어떻게 하면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가는데?”

마하임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민아에게 반문했다. 하지만 민아는 전혀 그 말에 지지 않고 도끼눈을 뜨고선 말했다.

“사실이 그렇잖아요.”

“애초에 데이트해 준다고 이야기한 적도 없거든?”

“쳇, 보스는 너무해. 사원의 마음을 하나도 모른다니까.”

한순간에 삐짐 모드로 들어가 버리는 민아를 보고 마하임은 웃어야 할지 찡그려야 할지 망설여야 했다.

바로 그때였다. 평소엔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을 하는 레비의 다급해 보이는 목소리가 링크를 통해 마하임을 비롯한 모두에게 들려왔다.

“긴급 상황이 발생했다. 마하임을 포함한 모든 인원은 즉시 주조종실로 집합하길 바란다.”

“무슨 일이야, 레비?”

깜짝 놀라 마하임은 레비에게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긴급 상황’씩이나 된단 말인가?

설마 다른 레비아탄이라도 나타났다는 이야기일까? 마하임은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다수의 고블린 무리가 차원 좌표 xx11xxx-xxx에 출몰했다. 자세한 건 주조종실에서 브리핑하겠다.”

고블린 무리라…. 뭐 큰일이긴 했지만 레비아탄 무리와 비교한다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레비는 레비아탄 무리 중 가장 강력한 개체였지만, 레비아탄 무리가 본격적으로 지구를 공략해 온다면 레비가 인류의 편으로 돌아선다고 하더라도 승산은 희박했다.

마하임은 그제야 긴장을 풀고 주조종실로 향했다.

“모두들 잘 쉬었나?”

주조종실에는 아직도 피곤에 절어 보이는 현민 팀이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선장석 옆에는 레비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마하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 민아 누님, 보스랑 어디 갔다 온 거야?”

찬호은 마하임 곁에 선 민아를 바라보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민아는 짜증 섞인 듯 도끼눈을 뜨고선 찬호를 째려보며 소리쳤다.

“야, 너 말이 짧다. 내가 누구랑 어딜 가든 니가 무슨 상관이야?”

“쳇. 민아 누님은 항상 나만 미워해.”

투덜거리는 찬호. 하지만 민아는 찬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잡담은 그만. 레비. 브리핑해 봐.”

“알았다. 현재 상황을 메인 모니터에 재구성하겠다.”

레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조종실 중앙에 위치한 원탁 위 모니터에 영상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영상은 다름 아닌 고블린들이 출몰한 차원 좌표 xx11xxx-xxx. 다시 말해 마하임이 고블린 무리와 T사의 고스트들을 박살 냈던 바로 그 장소였다.

“현재 이곳에 100개 이상의 포탈이 동시에 열렸다. 출몰한 고블린 수는 대략 1000마리. 고블린 로드가 100마리 정도로 예상된다.”

이 말을 들은 현민 팀은, 아니 정확하게는 ‘민아’를 제외한 모두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했다.

“드디어 전면전인가? 예상은 했지만 너무 빠르군.”

철광은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말했다. 언젠가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그 역시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나 빨리 저 정도 대규모의 공격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레비, 저놈들을 어떻게 처리하면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어떤 방식을 원하나?”

“음, 어디 보자. 저놈들을 적당히 사로잡아, 이벤트 호라이즌의 수리에 사용함과 동시에 T사 한국 지부에 치명타를 먹일 수 있는 방향으로. 거기다 옵션을 더해 우리의 존재는 최대한 숨긴 채 작전을 진행시킨다. 이 정도?”

“알겠다. 해당 조건을 기준으로 검색해 보겠다.”

레비의 금발은 순식간에 예전처럼 은색으로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전투 모드, 즉 연산 모드로 진입한 것이다. 그렇게 10분이 흘렀다.

“네가 말한 모든 조건을 만족할 만한 방법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레비의 말에 마하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하임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무리한 조건임이 분명했다.

특히 마하임을 비롯하여 현민 팀 전체의 존재를 최대한 숨긴다는 조건은 너무나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하지만 여제라 불렸던 전설적인 게임 천재, 민아라면 어떨까?

‘어때, 여제. 너라면 가능하겠어?’

마하임은 민아에게 링크를 열어 민아에게만 들리도록 말했다. 민아는 잠시 생각을 하다 입을 열었다.

‘레비의 말이 맞아요. 모든 조건을 만족시킬 계책은 존재하지 않아요.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요. 하지만 일부 조건을 완화한다면 불가능하진 않죠.’

‘말해 봐.’

마하임은 민아의 말에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여제였다. 무패의 전설적인 책사! 아마 삼국 시대 때 태어났다면, 제갈공명조차 간단히 꺾을 수 있는 천재 그 자체였다.

‘고블린 생포를 포기하면 가능합니다.’

‘구체적인 방법을 이야기해 봐.’

마하임은 이해가 가지 않아 민아에게 다시 설명을 요구했다.

단순히 고블린 생포만 포기한다면 자신들의 존재를 최대한 숨기면서도 T사에게 빅 엿을 먹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휴, 우리 보스도 참. 제가 이렇게나 힌트를 드렸으면 알아채셔야죠.’

‘난… 여제가 아니다.’

민아의 말에 솔직히 마하임은 자존심이 상했다. 대체 저 민아라는 여자의 머릿속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민아의 지력은 인간의 범주를 이미 오래전에 벗어나 있는 것이 분명했다.

‘좋아요. 한 가지 힌트를 더 드리죠. 사장님이시라면 분명 해답을 찾으실 거예요. 단지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데이트냐?’

‘정답. 해 주실 거죠? 하루 종일 놀이공원에서 1일 보스 이용권을 강력히 요구하는 바입니다.’

“…….”

민아의 말에 마하임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정말 무서운 여자, 아니 여제가 아닐 수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물러선다는 것은 마하임의 자존심이 허락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민아의 말을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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