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마하임은 그렇게 한국 공군 파일럿의 명복을 빌어 준 뒤 EMP 미사일을 발사했다.
비록 초소형이기는 했지만, 이 미사일이 터지면 반경 50km 내의 보든 전자기기가 먹통이 된다.
그렇게 되면 최첨단 전자기기로 도배된 전투기는 완전 작동 불능 상태가 되어 추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MP 쇼크 미사일 전탄 발사!!!!”
퓨슝 퓨슝 퓨슈슝-!
EMP 쇼크 미사일도 고스트x처럼 은폐 상태인 탓에 파일럿의 레이더나 눈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미사일이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것도 보지 못했다.
미사일은 자신이 목표한 B-7 폭격기 5대와 이를 호위하는 F-35 전투기 2개 편대가 사정권에 들기가 무섭게 폭발했다.
기이이잉- 파아앙-!
EMP 쇼크 미사일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그와 동시에 상공에 날고 있던 한국 공군의 모든 비행체의 전자기기가 한순간에 먹통이 되어 땅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기체를 제어할 수 없다!”
“여긴 2편대장. 나도 마찬가지다. 모든 시스템 정지!”
“탈출하라! 즉시 탈출하라!”
“안 됩니다, 편대장님! 활공을 해서라도 전투기를 살려야 합니다!”
“제길! 남서쪽으로 활공해! 그쪽에 비상 착륙할 만한 곳이 있다!”
마하임의 EMP 쇼크 미사일 한 방에 한국 공군의 주력이라 할 수 있는 F-35 편대와 폭격기는 눈물을 머금고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근데, 아직 안 끝난 거 같은데요.”
찬호의 눈에 고스트x에 설치된 3차원 레이더에 잡힌 전차 수십 대와 공격 헬기 20여 대가 들어왔다.
아마 근처에 있는 모든 부대에서 병력을 죄다 끌어왔음이 분명했다.
“음, 현 수방사 사령관은 상당한 실력자인 모양이로군. 단시간에 이만한 병력을 모으다니. 하지만 이번에도 EMP를 쓰면 저들은 다 죽는다. 뒤따라오는 고블린 무리한테.”
“그럼 어쩌죠?”
시속 200km까지 속도를 올렸지만 대화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로 고스트x의 탑승감은 탁월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지금의 속도라면 앞으로 15분 이내에 양양 고속도로를 막고 있는 전차 부대, 헬기 부대와 정면충돌이 불가피했다.
“할 수 없지. 반중력 유도 폭탄을 이용해 활로를 연다.”
“그, 그런 것도 있었어요?!”
“유사 블랙홀 생성탄의 응용이다. 지금은 위그드라실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나사가 남긴 유산이지.”
마하임의 말에 반응해 고스트x의 하단부에서 직경 1m짜리 붉은색으로 칠해진 공 모양의 금속이 모습을 드러냈다.
“목표는 전차 부대와 헬기 부대다. 모두 고속도로 밖으로 밀어내 버려! 반중력탄! 발사!”
명령을 받은 반중력 폭탄은 소리 없이 전차 부대와 헬기 부대가 대기하고 있는 양양 고속도로 설악IC로 날아들었다.
그리고 헬기 부대와 전차 부대 중앙에 정확히 폭발했다.
퍼어어어엉-!
요란한 폭음과 함께 중력이 반전되면서 전차 부대와 헬기 부대는 모조리 허공으로 부웅 떠오르더니 양양 고속도로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헐…. 이거 뭐 SF 영화라도 보는 느낌이네요.”
“나도 첨엔 그랬지. 자아, 그럼 레비랑 민아가 뭐 하는 지 알아볼까?”
마하임은 잠시 찬호와의 연결을 끊고 민아와 노아에게 링크를 열었다.
“작업 진행 상황은.”
“현재 공정 93% 5분 후 완료된다.”
“이렇게 간단히 한국의 주력 기계화 부대를 무력화시켜 버리다니, 정말 대단하네요. 이 기세를 몰아 아예 한국 정부를 엎어 버리고 쿠데타를 시도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어 보이는데요?”
“나도 그 생각은 해 봤다. 하지만 지금 때가 아냐.”
“헐, 농담으로 그냥 말해 본 건데, 정말로 그런 걸 생각했어요?”
“당연하다. 결국 한국은 내가 지배하게 될 테니까.”
확신에 찬 나의 말에 민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민아가 뛰어나다 하더라도 이미 인간이란 카테고리에서 완전히 벗어난 마하임을 능가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앞으로 30분 뒤, 성남시로 진입한다. 최종 결전을 준비하도록.”
“알았다, 마하임.”
“네, 보스. 완벽한 마무리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데이트 잊지 마세요!”
“하아, 정말. 알았다. 데이트 계획은 네가 완벽하게 세워 놔라. 짬 내서 가 줄 테니.”
“만세! 울 보스 최고!”
마하임은 머리가 멍멍해질 정도로 소리를 지르는 민아의 고성에 얼른 통신을 끊었다.
“후우, 이제 성남까진 시원하게 뚫렸고, T사까지 유도만 잘하면…. 아니군.”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3차원 레이더에 뭔가가 잡혔다. 그것은 인간들, 정확히 말하자면 대기업 하청으로 들어간 헌터임이 분명했다.
아마도, 아니 확실했다. 놈들은 그저 대기업의 임원들이 서울에서 대피할 시간을 벌기 위한 소모품, 소위 말하는 ‘고기 방패’가 틀림없었다.
“어쩌죠? 저들은.”
“각자의 사정은 있겠지만, 결국 우리를 막아섰으니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겠지? 무시하고 돌파한다. 나머진 고블린들이 알아서 정리해 줄 것이다.”
마하임은 차갑게 말을 끊었다. 물론 저들도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어머니, 그리고 딸이고 아들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재벌의 하청으로 들어가 피땀 흘려 노력하고 또 노력한 것 또한 마하임 역시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사정. 마하임이 그것까지 모두 신경을 써 줄 수는 없었다.
마하임은 자원 봉사자가 아닌 CEO다. 이윤이 생기지 않는 장사 따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들은 지금 마하임의 경쟁 상대, 즉 적이었다.
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섬멸한다. 마하임은 그렇게 자신의 기업의 운영 방침을 이미 정해 놓았다.
“너흰 여기서 모조리 죽어서, 내가 앞으로 만들어 갈 ‘대한민국’ 발전의 밑거름이 되어라.”
마하임은 거침없이 고스트x를 몰아서 무려 2천 명이 넘는 하청 헌터 무리를 단숨에 돌파했다.
물론 마하임의 돌파로 인해 다친 헌터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마하임의 뒤를 따라오고 있는 고블린 무리라면 어떨까?
“으아악!”
타탕 타타탕-!
“맙소사, 열화우라늄탄이 안 통해!”
“지원을! 어서 지원을 요청해!”
“기갑 부대 이미 전투 불능이랍니다! 공군 지원도 마찬가지! 후퇴, 후퇴해야 합니다!”
“아악, 살려 줘. 제발 크어어어억!”
퍼퍼펑 콰아앙-!
고블린 로드를 위시하여 고블린들은 2천 명이 넘는 T사 H사 S사 L사의 연합 하청 헌터 부대를 단숨에 집어삼켰다.
애초에 초인도 아닌 그들이 이 고블린의 대군을 막아낼 수 있는 확률은 0%에 무한히 가까웠다.
그들의 생명 반응이 모조리 꺼지는 데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까지 달려오느라 소모된 칼로리를 보충하기 위해, 고블린들은 자신들이 죽인 헌터들을 모조리 먹어 치워 버렸다.
그 잔혹한 광경에 이를 소형 정찰용 드론으로 지켜보던 민아조차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사장님,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요? 저들도 일단은 한국의 국민….”
“닥쳐라, 민아! 지금껏 내가 장난이라도 하는 줄 알았나! 소꿉놀이라도 하는 줄 알고 있나? 정신 차려! 이건 전쟁이다. 사분오열된 인류를 억지로라도 통합해 더 큰 전쟁을 준비해야 한단 말이다!”
오토바이 핸들을 쥔 마하임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더 나은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차분히 회사를 키워 재벌조차 집어삼키고 나라를 넘어 모든 인류를 통합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마하임에겐 시간이 없었다.
엘다의 함대가 사라진 지금, 고블린들의 침공은 본격화되었고 또 어떤 침공이 있을지 모른다.
비록 레비아탄의 선전 포고로 그럴 일은 없겠지만 레비를 제외한 다른 레비아탄의 전사들이 도착한다면 지금의 지구는 멸망밖에 답이 없었다.
행성 단위의 외적에게 침략당해도 지구는 나라마다 각개 전투를 하고 있을 뿐이니까.
“민아. 똑똑히 말하지. 모든 인류를 구할 순 없다. 그게 현실이다.”
마하임은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민아는 묵묵히 마하임의 말을 듣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민아는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보스. 보스는…. 대한민국 아니 전 인류를 혁신할 생각이셨죠. 혁신을 위해서는 희생은 반드시 필요한 것. 모든 것은 보스의 뜻대로. 전 그 뒤를 지킬 뿐입니다.”
그것으로 민아와의 통신은 끊어졌다. 그사이 하청 헌터들을 ‘맛있게’ 섭취한 고블린 무리들은 다시금 마하임을 뒤쫓기 시작했다.
마하임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고블린 무리들을 성남시에 위치한 T사로 고스트x를 몰았다.
마하임 역시 저들의 처지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이 지옥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다 여기까지 왔음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이런저런 사정을 다 봐줄 만큼의 여유는 없었다. 그리고 새로운 미래, 지구 방위를 위해서는 과거의 악습과 폐단을 과감히 청산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위든 아래든 철저한 개혁, 아니 혁명이 필요했다.
혁명에는 언제나 ‘피’라는 대가가 필요한 것은 역사가 증명한 사실. 마하임은 지금 그 피를 흘리기 위해 결단을 내렸고, 그 결과는 하청 헌터들의 괴멸이었다.
어떻게 보면 독단적이고 마하임 개인적인 아집일지도 모르겠지만, 원래 정의라든가 개혁이란 것은 모두 주관적인 개념일 뿐, 절대적인 선, 그리고 정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선과 정의는 언제나 승자가 결정하는 것. 인류의 역사를 조금만 살펴보아도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그 자체였다.
그렇다면 마하임은 승자가 되어야만 했다. 승자가 되지 못한다면 자신 역시 저 하청 헌터들과 같은 길을 걸어갈 것이 분명했으므로.
마하임은 이를 악물고 고스트x를 몰았다. 이제 그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수도방위 사령부는 일제 대피령을 서울에 발령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마하임의 고스트x는 무서운 속도로 양양 고속도로를 따라 하남시를 거처 성남시로 진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서울 중심부로 들어가지 않았기에 서울의 인프라 파손 및 민간인의 피해는 거의 없었다 말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뿐만 아니라 고속도로만을 이용했기에 인터체인지만 박살 났지, 그 외에는 큰 피해도 없었다.
마하임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계획한 대로 고스트x를 몰아 미라가 있는 성남시 중앙의 T사 한국 지부 빌딩으로 향했다.
“후, 이제야 보이는군.”
오늘따라 중국에서 날아온 미세먼지가 뿌옇게 하늘을 가려 100층이 넘는 T사의 한국 지사 건물은 마치 영화 반x의 제왕에 나오는 사x론의 탑 같아 보였다.
그리고 마하임은 오늘 저 탑을 한국에서 지워 버릴 것이다. 그것이 한국에서 시작할 혁신의 첫 걸음이었다.
“미라야. 내가 특별히 준비한 정성이 가득 담긴 선물이다. 부디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
마하임은 고블린 무리를 몰고 곧장 T사를 향해 돌격했다.
그리고 T사의 건물과의 거리가 100m도 안 남았을 때 고스트x를 1km 미터 이상 떨어진 지점으로 이벤트 호라이즌의 능력을 활성화해 ‘도약’했다.
“목표 완료. 어디 미라가 어떻게 나오는지 한번 볼까?”
마하임은 T사와 1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T사를 건물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웃었다.
이제 민아가 말한 ‘이이제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마하임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를 감상하는 기분으로 T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이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영화’의 화려한 프롤로그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