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대군주-179화 (179/194)

179화

“나 아무것도 안 해. 오늘은 잠만 잘 거야.”

찬호는 이벤트 호라이즌 내부의 자기 방에 처박혀 그 좋아하는 핸드폰조차 않고서 잠만 자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T사의 사건이 일어난 이후 다시 이벤트 호라이즌으로 돌아온 현민 팀은 다시 회복한 쓰랄과 함께 광란의 특훈을 다시 시작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상처가 치유된 쓰랄은 전보다 2배는 강해진 것 같았고, 현민 팀은 쓰랄의 압도적인 힘과 기술에 밀려 참패를 면치 못했다.

그 덕분에 3일이 지난 지금. 그들은 파김치가 되어 이벤트 호라이즌 내에 배정된 자신의 방에서 마하임의 명령으로 간만의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민아’는 건성으로 요리조리 눈치를 보면서 특훈을 잘 즐겼기에 최상의 컨디션이었지만 말이다.

마하임은 그렇게 축 늘어져 있는 현민 팀을 쉬게 만들어 놓고 인상을 찌푸린 채 선장석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보스~ 준비 끝나셨어요? 지금 들어가도 되죠?’

링크를 이용해 민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야흐로 데이트를 약속한 날이 바로 오늘인 것이다.

‘들어와. 약속은 약속이니까.’

마하임은 마지못해 허락했다. 이 금쪽같은 시간에 무려 24시간 동안 민아와 놀아 줘야 한다니. 참으로 비효율적이고 한심한 노릇이었지만, 약속은 약속이었다.

이런 약속조차 지키지 못할 CEO라면 CEO 자격조차도 없다는 것이 마하임 자신의 주관이었으니까.

“잘 주무셨어요? 오늘은 참 데이트하기 참 좋은 날 같아요. 그쵸?”

“네네. 여제님. 것보다 이것부터 받으시죠.”

마하임은 몸을 일으켜 미리 준비해 놓은 파워드 슈츠 한 벌을 민아에게 건네줬다.

“뭐예요? 이건?”

“일단 입어. 속옷만 입고 입으면 될 거야.”

“음. 넵, 그럼 잠시 실례.”

민아는 자신이 입고 있는 추리닝과 티셔츠를 마하임의 앞에서 훌렁 벗어 버리고 그가 건넨 파워드 슈츠를 입었다.

“야, 나도 남자라고 했을 텐데. 어디서 숙녀가 옷을 훌렁훌렁 벗어 던지냐?”

“치. 거짓말. 날 여자로 보지도 않으면서. 메롱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민아는 마하임이 준 파워드 슈츠를 입었다.

“다 입었으면 두 눈을 감고 상상을 해 봐. 니가 생각하고 있는 가장 멋지고 아름답고 실용적인 옷을.”

민아는 잠시 마하임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갸우뚱거리다가 그의 말대로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녀는 생각했다. 가장 섹시하면서 활동적인 의상을. 바로 그때였다.

민아가 입고 있던 파워드 슈트가 변형을 하더니 몸에 딱 달라붙고 배꼽까지 노출된 탱크톱 상의와 팬티가 보일 듯 말 듯한 초미니스커트에 그물 스타킹으로 변형되는 것이었다.

“와아아아아! 믿을 수 없네요. 이게 뭔가요?”

“원래는 우주복 겸 전투용이야. 내가 살짝 개조했지.”

사실 살짝 개조라고 보기보다는 전면 개조가 옳았겠지만…. 여튼 원본은 나사의 파워드 슈트였다.

마하임은 눈을 잠시 감았다 떴다. 그러자 마하임이 입고 있던 파워드 슈트도 세련된 검정색 정장으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역시 우리 보스는 고딕풍이네. 그럼 이 옷과는 좀 안 어울려 보이겠네요. 바꿔 버려야지.”

민아는 다시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하임의 옷과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떠올렸다.

그 결과 마하임의 옷과 비슷한 재질의 스커트와 상의로 구성된 절도 있는 여성용 정장으로 파워드 슈트의 모습이 바뀌었다.

“아, 이제 맘에 드네. 가시죠. 보스. 오늘 하루, 보스는 제 거예요.”

“네네, 알아서 모시겠습니다. 민아 양.”

마하임은 민아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이벤트 호라이즌의 격납고로 향했다.

“이벤트 호라이즌 고스트1 기동.”

마하임의 외침과 동시에 허공에서 5m 길이의 새하얀 색의 유선형 탈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스트x와 비슷한 모양이었지만, 좀 더 크고 안전성과 은밀성이 추가된 완전 전투용 비행정이었다.

이 녀석이라면 지상뿐 아니라 하늘, 우주 공간에서까지 자유자재로 음속의 2배까지 비행 및 전투를 수행할 수 있었다.

“레이디 퍼스트.”

마하임은 정중히 민아의 손을 잡고 고스트1의 탑승석에 그녀를 앉혔다.

그와 동시에 고스트1의 좌석은 모습이 변하면서 민아의 몸에 딱 맞도록 구조가 바뀌었다. 그리고 상하좌우 안전을 위해서 벨트가 소리 없이 채워졌다.

“이, 이런 것도 있었어요?!”

민아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완전히 UFO, SF 그 자체였던 것이다.

“시제품이야. 나사의 우주 활동을 위한 2인승 표준 장비지. 뭐 오늘은 그냥 데이트용 셔틀이지만”

마하임은 고스트1의 민아 곁에 앉았다. 그러자 민아 때와 마찬가지로 고스트1의 모습이 변하면서 그의 사이즈에 딱 맞도록 좌석이 변형되었다.

[2인 탑승 완료. 전투 준비 끝.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마하임의 탑승을 확인한 고스트1은 그의 명령을 기다렸다. 마하임은 자신의 뇌신경계를 고스트1과 링크시켜 이동해야 할 좌표를 바로 입력시켰다.

그리고 그 좌표가 입력됨과 동시에 고스트1은 이벤트 호라이즌의 격납고 안에서 미끄러지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격납고의 출구가 열리면서 고스트1은 소리 없이 밖으로 사라졌다.

* * *

하늘에 쟁반처럼 둥근달이 두둥실 떠올랐다. 한국 최대의 명절 추석이 며칠 안 남은 시점이었기에 그 달은 여느 때보다 훨씬 크고 밝았다.

그리고 달빛을 옅게 반사시키며 광학미체가 풀 기동된 상태로 날아가는 비행체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마하임이 제어하는 고스트1이었다.

“와아아아아~ 정말 멋져요! 최고예요!!!”

민아는 주변에 펼쳐지는 풍경에 완전히 압도되어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고 달은 더없이 밝았다. 청량한 강원도의 공기는 민아의 머릿속까지 시원해 주게 만드는 것 같았다.

“민아, 놀라지 마. 지금부터 속도를 높일 거야. 고스트1, 관성 제어 장치 작동, 충격 최소화 모드.”

고스트1의 AI는 즉시 관성 제어 장치를 작동했다. 그 직후 마하임은 고스트1의 최고 속도인 마하3까지 단숨에 가속시켰다.

슈우우우욱 파아아아아앙-!

그야말로 엄청난 급가속이었다. 그러나 마하임과 민아에게는 아무런 압박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관성 제어 장치가 가해지는 모든 충격을 무효화시켰던 것이다.

속도는 점점 올라갔고 최고 속도에 이르자 성층권까지 순식간에 도달했다.

“…….”

민아는 더는 말을 잊지 못했다. 눈 아래로 펼쳐진 광경. 그것은 그야말로 장관 그 자체였다.

성층권에서 내려다본 한국은 마치 정교하게 세공한 보석처럼 반짝였고, 하늘은 끝없이 펼쳐진 별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대낮의 태양만큼이나 밝은 달이 이 지구를 축복이라도 하듯이 내리비추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보스. 이렇게 시간을 내어 주셔서.”

민아는 자신도 모를 감동과 고양감에 취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마하임은 그런 민아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아니야, 민아. 넌 충분히 상을 받을 자격이 있어. 이건 사장이자 동료. 그리고 전우로서의 선물이야. 자, 그럼 이제 내려간다. 궁극의 스릴을 만끽하게 해 주지.”

마하임은 고스트1을 급하강시켰다. 그리고 단 1분 만에 동해상으로 곤두박질시켰다. 민아는 깜짝 놀라 마하임의 머리를 감싸 앉았다.

눈이 민아의 가슴에 가려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어차피 상관없었다. 이 고스트1은 마하임이 생각한 대로 움직이는 그런 시스템이었으니까.

마하임은 민아의 가슴에 얼굴을 살며시 가져다 댔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가슴. 민아의 몸에서 향긋한 꽃내음이 흘러나왔다. 그 옛날 어머니에게서 맡아 본 듯한 그런 그리운 향기였다.

콰콰콰콰카-!

동해 바다에 정면으로 내리꽂히기 직전 마하임은 고스트1을 반전시켜서 해상을 스치듯 비행했다.

그와 동시에 짭짤한 바다 향이 코끝을 스쳤다. 그제야 민아는 안심이 됐는지 마하임의 얼굴을 껴안고 있던 손을 풀었다.

“죄, 죄송해요. 제가 너무 놀라서.”

“후후 여제도 놀랄 때가 있었나? 뭐 나름 신선하고 좋았어.”

“치, 날 놀리시다니 너무해요!”

민아는 도끼눈을 뜨고 마하임을 노려보았다. 마하임은 동해를 질주하며 민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인류를 혁신할 거다.”

이미 레비아탄의 심판은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레비는 마하임이 어떻게 해서든 막을 수 있었지만, 문제는 레비와 같은 레비아탄이 100마리는 더 있었다.

‘마리’라고 말하기에는 여러모로 어폐가 있었지만, 결국 레비아탄은 인류를 심판할 것이다.

이를 극복해 낼 길은 오직 혁신뿐. 레비아탄 말고도 인류를 노리는 외계 종족은 얼마든지 있었다.

혁신하지 못하면 인류에게 남은 것은 오직 죽음과 파멸뿐. 마하임은 인류의 생존을 위해 뭐든 해야만 했다. 그 역시 한 명의 인간이었기에.

“민아, 그러기 위해선 너의 천재적인 지략과 무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를 위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싸워 줘. 부탁이다. 나의 여제, 민아.”

마하임은 민아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녀는 그야말로 신의 영역에 있는 책사. 하나를 보면 백을 깨우치는 천재.

그녀의 힘이 없다면 앞으로 있을 예측조차 불가능한 수많은 난제를 해결할 길이 없을 터였다.

더욱이 지금까지 지구를 수호해 주었던 엘다가 없는 상황에서 앞으로 얼마나 많은 외계 종족들이 지구를 침략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걱정 마세요, 보스. 전 이미 보스와 한배를 탔으니까요.”

“고맙다, 민아.”

민아는 제게 눈을 맞춰 오는 마하임의 시선을 피했다.

“아참! 시간 좀 봐. 곧 콘서트 시작해요. 어서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으로 가요!”

“걱정 마. 이미 특석으로 예약해 놨으니.”

민아는 붉게 올라온 뺨을 식히며 마하임을 재촉했다. 마하임은 피식 웃으며 고스트1의 속도를 다시 높였다.

슈우욱-

순식간에 음속을 돌파한 고스트1은 서울 상공에 진입했다.

그러나 그 어떠한 레이더도 그 어떠한 관측소도 마하임의 고스트1을 감지하지 못했다.

마하임의 고스트1은 서울 예술의 전당 근처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능동 위장 시스템이 가동해 고스트1은 최신형 스포츠카 모습으로 변형됐다.

“와우, 이런 기능도 있었나 보네요. 마치 마법 같아요.”

차가 멈춰 서자 주차 안내원이 다가왔다. 마하임은 스포츠카로 변한 고스트1의 키를 주차 안내원에게 건넸다.

“자, 가 볼까?”

“네. 보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