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민 비서. 미안하지만 난 여기서 끝을 낼 거다.”
“…….”
미라의 비서는 침묵을 지켰다. 미라가 지금 한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정말 그걸 사용하실 겁니까.”
“응, 죽을 땐 화끈하게 죽어야지. 그래야 지옥이란 곳이 있다면 가장 지독한 지옥에서 최악의 고통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미라는 다시금 쏟아지기 시작한 눈물을 너덜너덜하게 변한 티셔츠 소매로 훔치며 말했다.
“준비해 줘. 라이칸슬로프G를 사용하겠다.”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이 또 한, 이 또한 지나가는, 뒤돌아보면 그냥 추억일 뿐. 아무런 의미 없는 일일 뿐입니다. 같이 탈출하시죠. 지사장님. 시간이 없습니다.”
미라의 비서는 정말 간곡한 어조로 미라를 말렸다. 하지만 이미 미라의 결심은 굳혔고 전혀 바꿀 생각이 없었다.
“후후, 너무 늦었어. 네 말대로 이 또한 지나갈 일이겠지만, 난 너무 지쳤어.”
“…….”
미라의 비서는 침묵을 지켰다. 미라가 지금 한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미라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손으로 훔치며 말했다.
“준비해 줘. 라이칸슬로프G를 사용하겠다.”
“네, 지사장님. 지금 그리로 올라가겠습니다.”
인터폰의 목소리는 그것으로 잠잠해졌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짧은 단발머리의 동남아 혼혈로 보이는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여성용 정장은 미라가 입고 있는 옷과 마찬가지로 누더기가 되어 있었다.
라이칸슬로프Z가 그 난동을 피웠는데 멀쩡하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그녀의 오른손에는 은색 재질의 철제 가방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절도 있는 걸음걸이로 미라에게 다가와 그 가방을 미라 앞에 내려놓았다.
“여기 있습니다. 라이칸슬로프G 바이러스.”
“수고했다. 민 비서.”
“지사장님. 다시 한번 고려해 주시겠습니까? 이걸 사용하면 이제 돌이킬 수 없습니다.”
“이미 난 결정했다. 민 비서 넌 내 방 후문 쪽에 보면 탈출용 낙하산 팩이 있으니 즉시 탈출하도록.”
미라는 민 비서가 가져온 가방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가방에는 미라의 지문과 망막의 패턴을 인식하여 가방을 열수 있도록 설계된 보안 장치가 2중으로 걸려 있었고 마지막으로 비밀번호 12자리를 입력해야만 열릴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미라는 전혀 망설이지 않고 모든 보안 장치를 단숨에 해제시켰다.
푸쉬-
압축 공기가 빠지는 소리와 함께 가방이 자동으로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는 사람의 팔뚝만 한 주사기와 검은색 액체가 1리터 이상 담겨 있는 유리병이 보였다.
“지사장님.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그냥 저랑 함께 도망가요. 제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지사장님만은 지켜 드리겠습니다.”
“후훗, 미안. 이미 모든 게 너무 늦었단다. 나의 충실한 비서야. 넌 살아남아서, 이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끝까지 지켜봐 주었으면 좋겠어.”
미라는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유리병 속의 검은 액체를 주사기 안에 가득 채웠다. 그리고 지체 없이 자신의 팔에 주사기를 찔러 넣었다.
끔찍한 고통이 순간 엄습해 왔지만, 미라는 오히려 안도감을 느꼈다. 바로 그때 민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라 지사장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미라 지사장님을 만난 건 제가 태어난 이후 최고의 행운이었습니다. 부디 안녕히.”
민 비서는 이렇게 말한 뒤 자신의 허리춤에 차고 있던 소형 권총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입을 벌린 뒤 입 안에 총구를 집어넣은 뒤 총을 쏴 버렸다.
타앙-!
소구경 총이었지만 총알은 정확히 민 비서의 입 천장을 관통해 뇌 깊숙한 곳에 박혀 버렸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민 비서는 두 번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미, 민 비서!!!”
미라는 울부짖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부질없는 짓. 민 비서는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떠났다. 그리고 미라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으…. 으아아아아아!!”
온몸이 뭔가 거대한 힘에 짓눌려 뜯겨 나가는 듯한 고통이 미라의 모든 감각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이 격렬한 고통 속에 미라의 DNA는 그 근본까지 변이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구에 존재하는 그 어떤 DNA와도 비교 할 수 없는 이질적인 것이었다.
애초에 이 라이칸슬로프G 바이러스는 지구의 것이 아닌 외계의 것. 그것을 생명 공학 기술로 가공해 괴물 중의 괴물로 만들어 낸 것이 바로 라이칸슬로프G 바이러스였다.
이 바이러스는 전염성은 없었지만 일단 직접 감염되면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인체에는 감히 두려워 실험조차 못했다.
조그만 벼룩에게 시험 감염을 시켜 본 적이 있는데, 순식간에 곰만큼이나 커진 벼룩은 가장 사나운 육식 동물이라는 시베리아 호랑이를 단숨에 찢어 죽여 버렸다.
그 실험 직후 벼룩은 완전 소각시켰는데 5만 도의 열에서도 죽지 않고 재생을 계속했다고 한다.
바로 그 라이칸슬로프G 바이러스 원액을, 미라는 자신의 몸에 투여한 것이다.
첫 실험체 벼룩이 그랬던 것처럼 미라의 몸도 순식간에 증식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라이칸슬로프G 바이러스를 희석도 하지 않은 원액이었기에 그 변이는 너무나 극적이고 빠르게 변이했다.
미라의 몸은 갈기갈기 찢어져 순식간에 형체마저 사라졌다. 그리고 이윽고 거대화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3m 10m 100m. 정확히 118m에서 미라…. 아니 라이칸슬로프G의 성장은 멈췄다.
말할 것도 없이 T사의 건물은 형체도 없이 사라졌고 그곳에는 T사 크기만큼이나 거대한 늑대인간 ‘라이칸슬로프G’가 우뚝 서 있었다.
‘이것이 나?’
성장이 멈추자 미라의 잠든 의식이 깨어났다. 놀랍게도 의식이 회복되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도 있었다.
이미 T사 인근의 건물들은 모조리 박살 난 뒤였지만, 근처에 있는 거대한 빌딩들이 모두 장난감처럼 작게 보였다.
“하, 하하하하하. 좋아.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이 개 같은 헬조선에 빅엿을 날려 주겠어!”
미라는 울부짖었다. 이놈의 개 같은 나라에서는 양심도 도덕도 다 필요 없었다.
오직 돈을 가진 자가 최고였고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쓰레기 같은 천민자본주의 국가의 극치였다.
미라는 이 나라가 싫었다. 돈이 없으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이 개 같은 나라가 정말 정말 싫었다.
그래서 미라는 결정했다. 오늘 바로 지금 이 그지 같은 나라를 지도상에서 지워 버리기로.
크르르르르 크아아아아아!
미라 아니 라이칸슬로프G는 입을 벌리고 울부짖었다. 그러자 라이칸슬로프G의 등에 수없이 튀어나와 있는 날카로운 돌기에서 새하얀 빛이 방출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라이칸슬로프G는 스스로 핵융합 에너지를 생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천문학적인 에너지를 입으로 단숨에 뿜어냈다.
콰아아아앙-
라이칸슬로프G의 행융합 압축 빔은 단숨에 서울을 가로질러 ‘국회의사당’ 건물을 증발시킨 뒤 대폭발을 일으켰다.
국회의사당 건물에선 새천지당의 국회의원들이 국회의사당을 점거한 채 부자 증세를 반대하며 철야 농성 중이었는데 미라의 핵융합 빔에 직격당하면서 국회의사당 및 새천지당 국회의원 전원은 일시에 증기로 변하여 증발해 버리고 말았다.
“하하하하! 이 썩을 국개의원들아! 꼴좋다. 너희들 우리 T사를 협박해 매년 수십억씩 뜯어 갔지?! 이건 너희들을 위한 천벌이다”
미라는 다음 목표를 찾기 위해 천천히 움직였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지상이 뒤틀렸고 아스팔트는 내려앉았다.
그야말로 움직이는 재앙 그 자체였다.
* * *
서울 수도방위 사령부 21:10분
수도방위 사령관 권태랑은 TV로 실시간으로 전해져 오는 T사에 나타난 괴물을 보고 경악했다.
“뭐, 뭐야?! 지금 영화 찍냐?!”
“아닙니다, 사령관님. 저기 LIVE라는 글귀 안 보이십니까? 현장 생방송입니다!”
“…야 이 개새끼들아. 그럼 얼른 몽땅 출동해서 저 괴물을 때려잡아야 할 것 아니냐!”
“넵. 이미 출격했습니다. 움직일 수 있는 헬기 전부와 탱크 부대 몽땅 다 투입했습니다.”
“그런데 왜 저놈이 멀쩡한데! 왜?!”
“어떤 무기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철갑탄, 및 열화우라늄탄, 네이팜,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무기를 다 사용해 보았지만, 흠집도 낼 수 없었습니다.”
“…….”
이 말을 들은 권 사령관은 무너지듯 자신의 의자에 주저앉았다. TV에서는 방금 국회의사당 건물이 통째로 증발했다는 속보가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저 괴물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적어도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세계 통틀어 ‘초인’이라 불리는 존재가 전부 와도 저 녀석만은 막을 수 없을 터였다.
그렇게 권 사령관이 절망의 나락에 떨어져 내릴 무렵, ‘기적’이 TV로 생방송되기 시작했다.
* * *
“저희가 조금 늦었군요.”
“그렇군. 그보다도 엄청난걸. 핵융합 압축 빔이라니. 국회의사당 건물이 단숨에 증발해 버렸잖아.
“훗. 노리신 거 아니신가요? 저 꼴통 보수 국회의원들을 단숨에 쓸어 버리려고 일부러 늦게 오신 거 맞죠?”
“…넌 너무 눈치가 빨라서 싫어.”
“헷.”
민아는 윙크를 하며 자신의 머리를 살짝 때렸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거죠.”
“더는 피해가 확산되는 것을 막아야지. 서울은 한국의 심장이다. 심장이 멈추게 놔둘 순 없지. 내가 직접 싸운다.”
마하임은 입고 있던 파워드 슈트를 전투 모드로 바꿨다. 바로 그때 민아가 마하임의 손을 붙들며 말했다.
“저 라이칸슬로프G를 저에게 맡겨 주실 수 있을런지요.”
민아는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마하임은 단칼에 그녀의 요청을 거절했다.
“아직 네겐 무리야.”
지금 눈앞에서 날뛰는 저 거대한 라이칸슬로프G의 위용은 마치 미 해군 최신의 구축함을 보는 듯했다.
그런 엄청난 힘을 지닌 저것을 민아 혼자 맡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무리수가 있었다.
마하임의 말을 들은 민아는 차가운 살기를 흐리며 천천히 또박또박 마하임의 말을 반박했다.
“아뇨. 전 자신 있어요. 저 라이칸슬로프G의 정보는 모두 분석이 끝난 상황입니다. 레비 님의 힘이 컸죠. 약점 및 모든 공략 방법은 완성된 상황입니다.”
하나를 보면 백을 아는 천재는 이런 일이 있을 것 역시 예견하고 있었던 것이고, 이미 공략까지 완성해 놓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 라이칸슬로프G의 숙주인 미라는 보스의 지인이시라죠? 학렬이란 분 때와 마찬가지로 사장님께서는 지인분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여 주려고 힘을 아끼지 않고 사용할 것입니다.
현재 보스의 몸 상태는 레비 님에게 물어본 결과 정상적인 상태와 거리가 멀다고 들었습니다. 부디 저에게 기회를 주시길.”
민아의 말에 마하임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져 버렸다. 민아의 말은 단 한마디도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허락만 해 주세요. 제가 최단시간에 깔끔하게 놈을 처리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