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민아의 두 눈은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불. 너무나 순수한 불 그 자체였다.
그 불이 화가 나면, 지금의 마하임조차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허락해 줄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빨리 정리하자. 어쨌거나 데이트는 계속해야 될 것 아냐.”
“네, 보스. 최선을 다해 가장 확실하고 빠르게 섬멸하겠습니다!”
민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가 입고 있던 파워드 슈트는 새하얗게 변했다.
그것은 파워드 슈트의 최고의 힘을 넘어서 한정 시간 동안만 사용할 수 있는 오버클럭 모드를 가동했다는 것을 뜻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보스.”
민아는 단숨에 고스트1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그녀의 초인으로서의 특기인 공간 제어를 통해 마치 하늘 위를 날듯 라이칸슬로프G와의 거리를 순식간에 줄였다.
그리고 마치 허공 위에 정지한 듯 라이칸슬로프G 앞에 그녀는 멈춰 섰다.
그 직후 그녀의 등 뒤에는 마치 새하얀 날개와 같은 백색의 아우라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민아가 별의 수호자로서의 권능, 공간과 차원을 제어하는 능력이 발현되었음을 의미했다.
그 모습은 마치 성경에 나오는 새하얀 날개를 지닌 천사를 보는 듯했다.
“야, 이 개자식아. 감히 내 첫 키스를, 나의 첫 데이트를 방해해!?”
그러나 그 천사의 입은 거칠기 그지없었다. 미라는 자신에 비해 개미처럼 보이는 민아의 외침에 어이가 없어서 순간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크르르르, 넌 뭐냐.”
미라가 말했다. 물론 인간의 언어도 아닌 ‘사고파’라는 일종의 텔라파시였지만, 민아 역시 마하임과 마찬가지로 ‘마스터 토커’의 능력을 마하임에게서 부여받았다.
그렇기에 미라와의 대화함에 있어도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나? 우리 보스의 장래 마누라가 될 사람이다!”
물론 마하임은 승낙 안 했지만 말이다.
“큭. 크르르르 마하임. 그래. 너도 그 마하임이라는 남자에게 빠져 버린 자로군. 내 오빠처럼.”
“닥쳐라! 그리고 들어라! 나는 마하임 님을 수호하는 검, 남궁민아!”
그것은 무서울 만큼 강력한 투기였다. 멀리 떨어져 있는 마하임의 몸까지 떨릴 정도의 이 투기는 이미 투기의 수준을 넘어선 살기 그 자체였다.
민아는 자신의 양팔을 교차시키더니 단숨에 아래쪽으로 뻗었다. 그러자 새하얀 아지랑이가 폭발하듯 양손에서 붉은빛 쏟아져 나왔다.
“나의 공간단열도는 베지 못할 것이 없으리니!!!”
민아의 양손의 붉고 선명한 기운은 더욱더 찬란히 빛났다. 그리고 그에 반응이라도 하듯이 그녀의 새하얀 빛의 날개도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미라는 지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저 새하얀 여자가 보통 여자가 아님을 단숨에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저 강력한 기운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것이었다.
위험을 직감한 미라는 망설이지 않고 몸속에 남아 있는 모든 핵융합 에너지를 모아 민아를 향해 뿜어냈다.
쿠쿠쿠. 쿠아아아아!
압축된 핵융합 압축 빔은 민아를 단숨에 삼켜 버릴 듯이 뻗어져 나왔다. 그러나 이것 역시 모두 민아가 이미 상정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보아라! 빛조차 왜곡시키는 나의 공간단열참도의 저력을!”
민아는 전혀 망설임 없이 자신에게 쏟아져 오는 핵융합 압축 빔을 향해 양손에 모인 붉은 기운을 휘둘렀다.
츄아아아악!
바로 그때였다. 그것은 마치 기적과 같았다. 미라가 뿜어낸 핵융합 압축 빔은 민아의 공간단열도에 반사되어 저 하늘 높은 곳, 성층권 너머로 사라졌다.
“크르르르 이, 이건 말도 안 돼.”
미라는 경악했다. 자신의 핵융합 에너지를 모조리 쏟아부어 만들어 낸 핵융합 압축 빔을 저리 간단히 튕겨내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딴 바이러스에 의지해 날 이기려고? 백만 년은 이르다. 이년아.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것의 의미를 지금 네 뼛속 깊숙한 곳에 새겨 주마!"
민아는 자신이 제어하는 다차원 공간을 활성화시켜 하늘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미라, 아니 라이칸슬로프G에게로 다가갔다.
“건방지다! 감히 우리 보스가 보시는 앞에서 꼿꼿이 서 있어!? 꿇어라!”
날카로운 민아의 외침과 동시에 라이칸슬로프G 근처의 공간이 압축되기 시작했다.
민아의 능력은 공간의 제어. 공간 그 자체를 제어하는 이 능력은 물리 세계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적, 그 자체였다.
주변의 공간이 강제로 일그러지자 라이칸슬로프G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손끝 하나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그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민아는 그런 라이칸슬로프G를 노려보며 말했다.
“잘 어울리는군. 이것이 너와 나의 눈높이다.”
민아는 어디서 많이 본 대사를 연속으로 읊으며 말했다. 이걸 본 마하임은 한숨을 푹 내쉬며 민아에게 말했다.
“그 대사, 표절 아니냐?”
“사장님. ‘오마주’예요. 오마주! 뭐 저작권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수정하죠. 뭐.”
“어이쿠 그러세요? 네가 작가 하세요 작가.”
“농담할 시간 없구요. 빨리 해치우고 데이트나 마저 해요. 타임 이즈 골드! OK?”
민아는 마하임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금 꼼짝도 못 하고 꿇어 앉아 있는 미라를 향해 눈을 돌렸다.
“네년 때문에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신을 대신해서 내가 널 벌하겠다.”
“크르르르. 신 크크큭! 신 따위는 없다!”
미라는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민아의 공간 압축에 일그러지고 뼈와 내장까지 튀어나와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이 세상에 만약 신이 있다면, 어찌 이렇게 부조리하고 비합리적이고 처절한 세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
절규하듯 미라는 외쳤다. 그녀는 이 세상을 증오했다. 자신을 버린 학렬을 증오했다. 그리고 그런 학렬을 증오하는 자신마저도 증오했다.
그녀는…. 미라는…. 이 세상이 멸망했으면, 그냥 아무것도 없는 무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이 라이칸슬로프G라면 못 할 것도 없었다.
“크르르르, 보여 주마. 이 라이칸슬로프G의 최대 필살기를.”
미라는 온몸의 핵융합 에너지를 다시금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방식은 전과 완전히 달렸다.
이 핵육합 에너지는 플러스 에너지의 극치. 하지만 미라가 지금 만들고 있는 에너지는 플러스가 아닌 마이너스 에너지, 즉 ‘반물질’ 에너지였다.
하지만 그것 역시 민아는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
“하! 스스로 반물질 폭탄이 되어 지구를 날려 버리시겠다? 내가 그걸 내버려 둘 성싶냐?”
민아는 다시금 자신의 손에 공간단열도를 생성시켰다. 그 공간단열도는 이전보다 더 크고 더욱더 붉었다. 마치 죽음을 알리는 핏빛처럼.
“죽기 전에 새겨들어. 난 널 이 세상에서 멸할 자. 마하임 님의 검이다!”
민아는 자신의 공간단열도를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크르르르 어림도 없다. 나는, 이 지구와 함께…. 모두 소멸…. 크르르르르. 모든 것을 무로….”
“닥쳐라! 그리고 들어라! 나는! 나는!!! 모든 사악함을 베는 명예로운 검, 남궁민아. 네년을 베겠다!!”
그리고 민아는 자신의 별의 수호자로서의 모든 능력을 완전 개방하며 외쳤다.
“죽어라!!”
눈부신 붉고 붉은 섬광이 서울의 하늘을 순식간에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붉은 섬광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것은 몸의 정중앙이 절단되어 양쪽으로 나누어져 버린, 문자 그대로 일도양단된 라이칸슬로프G의 시신밖에 없었다.
그리고 눈부시게 빛나는 새하얀 천사와 같은 민아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가 뿜어내던 붉은빛 역시 사라졌다.
그리고 그 빛이 사라짐과 동시에 라이칸슬로프G 역시 여느 라이칸슬로프들과 마찬가지로 시커먼 재로 변해 흔적도 없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AD 20xx년 9월의 어느 늦은 밤, 그렇게 T사의 한국지사는 괴멸했다.
* * *
라이칸슬로프G와의 격렬한 싸움은 끝났다.
그러나 민아는 자신의 목표, 다시 말해 마하임과의 데이트를 이어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T사 주변에 널린 고블린과 고블린 로드의 시체를 회수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고블린과 고블린 로드는 그 자체로도 상당한 값어치가 있었고, 무엇보다도 이 녀석들을 레비가 알려 준 방법으로 가공하면 부서진 이벤트 호라이즌의 부품으로서 재활용이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말이 쉬워 회수지, 그냥 고블린만 1000마리였고, 고블린 로드만 해도 90마리가 넘었다.
물론 고블린들은 완전 떡이 되어 별로 건질 게 없었지만, 그에 비해 압도적으로 튼튼한 고블린 로드의 시체는 거의 훼손이 없었다.
이 고블린 로드의 시신을 눈에 안 띄게 회수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이 수도권 한복판 성남시에서.
결국 민아와 레비뿐만 아니라 대기하고 있던 현민 팀까지 모두 투입되어 고블린 로드 공수 작전을 하는 데 밤을 꼬박 세고 말았다.
말할 것도 없이 민아의 데이트도 그것으로 끝나 버렸다.
“보스. 이거 너무한 거 아닌가요?!”
“미안, 상황이 그렇잖아. 상황이.”
“좋아요. 다음에 다시 시간 잡죠. 이번엔 2일 자유 이용권입니다?!”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살기를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하는 민아의 말에 마하임은 무조건 그녀의 말을 허락했다.
그렇게 회수한 고블린 로드의 시체는 모두 이벤트 호라이즌 수리에 사용됐다. 물론 개조도 했다.
이 배는 원래 외우주 탐사선이었기에 튼튼하게 만들어지긴 했지만, 전투 능력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어차피 수리하는 거 암시장에서 구한 잡다한 무기, 뿐만 아니라 레비아탄으로서의 기억을 바탕으로 인류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는 오버 테크놀로지로 만들어진 병기도 장착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의 재원으로는 겨우 5% 정도밖에 수리할 수 없었다. 이래선 언제 이 배를 복구하여 실전에 사용할 수 있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에효, 어쩔 수 없지. 인간을 재료로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눈 딱 감고 한 10억 명쯤 이벤트 호라이즌에 갈아 넣으면 수리를 완벽하게 끝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마하임은 인간이었다. 인간으로서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으랴.
마하임은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다음 계획에 착수했다.
“자, 나도 이제 슬슬 헌터 라이센스를 받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아직 암호화폐 거래소 해킹은 끝나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미라가 죽으며 선물해 준 1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거금이 있었다.
이 돈이라면 현민의 회사 ㈜몬스 헌터의 빚을 모조리 청산한다 하더라도 사용한 흔적조차 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회사를 키워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