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그것이 마하임의 세계 정복의 첫 단계였다.
일단 마하임의 회사 현재는 ㈜몬스 헌터이지만, 마하임은 회사 이름을 바꿀 생각이었다. 사실 이미 상호 등록까지 마쳐 놓은 상태다. ‘이벤트 호라이즌 그룹’이라고.
아직 상장 기업은 아니지만, ㈜몬스 헌터가 주식 회사이니까, 상호만 바뀌는 셈이니 ㈜이벤트 호라이즌이라 말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일단, 레비를 제외한 현민 팀 전원은 헌터 라이센스를 갱신한다. 베타 등급, 다시 말해 초인 등급으로. 할 수 있겠지?”
“하! 껌이죠, 보스. 지금 우리의 힘이라면 알파 등급도 충분히 가능 할걸요?”
“그 정도도 못 하면 형님의 동생으로 자격 없습니다.”
“음, 그럼 미국으로 가야 하잖아요. 어떻게 하실 거죠? 전처럼 고스트 시리즈를 타고 가실 건가요? 아니면 평범하게 여객기?”
민아는 마하임을 바라보며 이미 일정까지 짜고 있었다. 역시 몸보다 항상 머리가 수십 배 앞서가는 그녀다웠다.
“당연히 여객기지. 우린 지금부터 평범한 초인이 될 것이다.”
“평범한 초인이라…. 보스 뭔가 시작부터 앞뒤가 안 맞는 거 같은데요.”
찬호는 실실 쪼개며 말했다. 지금 UN 산하 헌터 기관 ‘이지스’에 공식적으로 알파 등급 초인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단 두 명.
미국의 ‘슈퍼맨’이라는 별명을 지닌 ‘마크 알릭서’와 중국인 ‘슈 미쳉’ 둘이 전부였다.
전에 봤던 마법 소녀 멀린은 초인 등급에 신경 쓰지 않고 멋대로 움직이는 스타일이었고.
어쨌거나 알파 등급 초인은 그야말로 신의 영역에 이르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일당천의 괴물 그 자체였다.
물론 그만큼 희귀했고, 현재까지 발견된 사람은 위에서 언급한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베타 등급은 그에 비한다면 꽤 많이 발굴된 상황이었다. 사실상의 초인이라 말할 수 있는 등급이 바로 베타 등급 헌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지스에 공식 등록된 베타 등급 헌터는 약 20~30명 내외로, 베타 등급 헌터는 헌터가 소속된 해당 국가의 보호 아래 완벽하게 신분이 은폐된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비록 베타 등급이라고 할지라도 그 힘은 일당백을 가볍게 능가했으니, 국가적으로 보호하고 타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는 것은 당연한 수준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까지 단 한 명도 베타 등급 헌터를 배출해 내지 못했던 한국에서 베타 등급의 초인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최소 델타 등급 5명의 헌터가 있는 기업이어야 헌터들이 사용하는 물품을 제조 및 판매가 가능하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겠지?”
“네, 형님.”
“사장님. 무슨 걱정입니까? 델타 등급을 넘어서 베타 아니 알파급 초인 헌터가 사장님까지 포함해서 5명입니다. 그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
“어? 보스. 근데 왜 레비 님은 헌터로 안 만드시는 건가요? 도움 엄청 될 텐데.”
찬호는 마하임을 바라보며 말했다. 찬호는 레비가 마하임 다음으로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전력을 썩힌다는 게 아까운 모양이었다.
“레비는 안 돼. 너무 융통성이 없어서. 게다가 아직 암호화폐 거래소 해킹이 다 끝나지 않았다. 딱히 레비까지 헌터가 될 필요는 없지.”
“하, 하긴. 레비 누님은 뭐랄까 너무 철벽녀이시니까요. 하하하.”
찬호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일단은 말투도 문제였고, 무엇보다도 지구인이 아닌 외계인, 그것도 무려 지구를 심판할 예정인 레비아탄이였다.
그런 그녀를 헌터로 등록시키다니 언어도단이었다.
물론 비서나 사원으로서 활동하면 딱히 문제될 것도 없었기에 마하임은 레비를 헌터로 만들지 않기로 결정했다.
“자, 빨리 빨리 움직이자. 빌어먹을 고블린 놈들이 언제 또 공격해 올지 모르니까.”
“네, 보스. 이미 금일 2시간 뒤 ‘이지스’가 위치하고 있는 뉴욕 맨해튼행 여객기를 예약해 놓았습니다. 물론 퍼스트 클래스 좌석으로요.”
민아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마하임은 고개를 끄덕인 뒤 몸을 일으켰다.
“지금 즉시 움직인다. 이벤트 호라이즌에서 하선하자마자 인천국제공항까지는 달려서 간다. 초인 능력 사용 금지! 뒤처지면 죽인다!”
“너, 너무해요, 보스! 강원도 이 깡촌에서 인천국제공항까지의 거리가 얼만데!!!”
“약 223km 예상된다. 2시간 이내로 도착하려면. 시속 100km 이상 달려야 한다. 여유 있게 가려면 150km 이상 속도로 달리는 것을 추천한다.”
레비의 칼 같은 계산에 현민 팀은 절망했다. 물론 민아는 그저 웃을 뿐이었지만.
“겨우 이 정도로 우는 소리냐! 앞으로 우리가 싸울 상대완 비교조차도 안 되는 간단한 일이다. 모두 각오하고 준비하도록!!!”
마하임은 이렇게 말한 뒤 레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없는 동안 이벤트 호라이즌을 부탁한다.”
“알았다. 암호화 폐거래소 해킹도 이제 거의 끝나간다. 다녀오면 다 끝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고 좀 해 줘. 다녀올게.”
마하임은 레비에게 다가가 그녀의 이마에 살짝 키스해 줬다. 레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고, 찬호는 휘바람을 휘이익- 불었다.
물론 민아의 얼굴은 벌레라도 씹은 듯 일그러졌지만.
“가자, 미국으로! 전 세계 ‘초인’의 기준을 단숨에 갈아 치워 버리자!”
“네! 보스!”
현민 팀은 한목소리로 일제히 복창했다.
미국에는 슈퍼맨이라는 별칭을 지닌 초인이 있었다. 그것도 UN산하 헌터 연맹 ‘이지스’의 회장으로 말이다.
마하임은 그와의 만남을 사뭇 기대하며 레비를 제외한 모두는 이벤트 호라이즌 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무려 마라톤 경기 거리의 5배 이상의 거리를 2시간 내에 주파하는 특훈을 현민 팀에게 주문했다.
물론 마하임이 최하위에서 뒤처지는 녀석의 엉덩이를 뻥뻥 차 가면서 말이다. 그렇게 마하임의 미국 여행은 시작되었다.
* * *
마하임 및 현민 팀은 미국행 여객기 출발 30분 전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초인의 능력을 봉인한 채 자신의 강화된 체력만으로 여기까지 오는 데는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일단 다른 사람들의 눈에 걸리면 안 되었음은 물론, 체력 안배까지 철저히 계산해야 뒤처지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솔직히 이건 일반적인 ‘초인’이라도 힘든 미션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하임이 뒤에서 무시무시한 살기를 뿜어 대며 쫓아오자 현민 팀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인천국제공항까지 달려야만 했다.
그리고 그 결과 비행기 도착 30분 전에 무사히 도착했던 것이다.
“후, 이제 좀 쓸 만해졌군. 예약해 놓은 호텔에서 모두 씻고 5분 뒤에 집합. 비행기에 탑승한다. 실시!”
“네, 보스!”
현민팀은 일사불란하게 민아가 미리 예약해 놓은 호텔에서 땀을 씻은 뒤 준비해 놓은 정장으로 모두 갈아입었다.
그리고 5분 뒤. 모습을 드러낸 현민 팀은 이전과는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들의 헤어스타일은 이미 민아의 웬만한 프로 헤어 디자이너 못지않은 실력으로 다듬어져 있었고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은 이전에 선보였던 마하임와 민아가 입던 가변형 파워드 슈트였다.
그러했기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고 핏이 사는 정장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각자에게 모두 잘 어울렸다.
“자, 이제 가 보자. ㈜이벤트 호라이즌의 역사는 지금부터 시작된다. 반드시 세계를 변혁시켜 우리가 세계를 제패한다. 알아들었나?!”
“네, 보스! 반드시 보스의 염원을 이루어 드리겠습니다!”
현민 팀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한목소리로 마하임의 말에 대답했다.
호텔을 나선 마하임의 팀은 미국행 여객기에 무사히 올랐다.
그들이 탄 여객기는 에어버스 A380 기종이었는데 이제는 슬슬 구형이 되어 가는 시점이었지만, 그래도 한국에선 아직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기종이었다.
이 거대 여객기의 퍼스트 클래스는 그야말로 굉장했다.
샤워 시설은 물론하며 무제한 와인 제공에 내부 시설은 웬만한 5성급 호텔 특실 뺨칠 정도로 좋았다.
하지만 현민 팀은 이 모든 시설을 전혀 이용하지 못하고 탑승하자마자 의식을 잃듯 깊숙한 잠에 빠져들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무려 200km가 넘는 거리를 초인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인천국제공항까지 달렸으니 아무리 그들의 체력이 강해졌다하더라도 한계까지 다 써 버렸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민아는 예외였지만 말이다.
“저기 사장님, 옆에…. 앉아도 될까요?”
수줍게 말하며 마하임의 좌석으로 다가오는 민아. 그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민아에 대한 악감정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마하임은 이성에 대한 감정이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그래서 민아가 유혹을 해도,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정말 괴롭고 힘들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현실이었다.
“미안, 민아야. 난…. 이미 인간이 아니야. 네가 아무리 나랑 가까워지고 싶어 해도….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어.”
마하임은 담담하게 말했다. 레비와 융합하면서 신선을 능가하는 엄청난 힘을 얻었지만, 인간으로서의 모든 감정과 모든 생리적 현상이 사라지고 있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라져서 이제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자신이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매일 밤마다 마하임은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잠조차 잘 수 없는 기나긴 밤을 나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새우고 있었던 것이다.
“알아요, 사장님. 저도 알고 있어요. 사장님의 마음을.”
민아는 마하임의 머리를 감싸 안은 채 말을 흐렸다.
“하지만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사장님은 인간이 확실하니까. 옛말에 이르기를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고 했어요.”
민아는 마하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눈은 열정과 집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민아는 마하임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같이 찾아보기로 해요. 마하임 님이 인간으로서 회복할 수 있는 길을.”
마하임의 입에 살짝 키스한 민아는 씽긋 웃었다. 그는 아무 말도 않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잃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마하임은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비행기 창밖으로 펼쳐진 푸른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비행기는 예전에도 몇 번 타 보았지만, 탈 때마다 신기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류는 고작 반세기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하늘을 점령하고 그 하늘을 넘어 우주에까지 발을 디뎠다.
그리고 기어코 지옥의 문까지 열어 버렸으니…. 이것 또한 운명이리라.
마하임은 잡생각을 지우고 천천히 운기조식을 했다. 그렇게 그들은 국제 헌터 연맹 ‘이지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