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이 기자들 때문이라도 심사를 계속 진행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만약 여기서 등급 심사가 연기되면 어떤 기사가 오늘 저녁 인터넷 신문에 실릴지 모르니까요.”
마하임은 자신과 현민 팀을 포위하듯 둘러싸고 있는 기자들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미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상상치 못했다.
기자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던 여직원은 인상을 잔득 찌푸리며 내부회선으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말할 것도 없이 이 이지스 타워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마크에게 직접 보고를 할 모양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여직원은 전화를 끊고 말했다.
“상부에서 승인이 떨어졌습니다. 지금 바로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응시자분 모두 저를 따라오시죠.”
여직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방에서 카메라의 플래시가 터지며 기자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방송국에서도 도착한 모양인지 생방송 송출용 카메라까지 눈에 띄었다. 기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나와 현민 팀에게 다가와 그야말로 목숨을 건 취재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소감 한마디 해 주시죠?! 이지스 창설 이후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베타 등급 심사받는 분들이 전부 같은 헌터 회사 직원이라는데 사실인가요?!”
“모두 초인이라고 들었는데, 언제 각성하셨습니까?!”
사방에서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와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주변은 어수선하기 그지없었다.
보통 이쯤 되면 한마디 해 주는 게 일반적인 것이었지만, 마하임은 물론하며 현민 팀 모두는 한결같이 입을 닫고 굳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헌터 승급 심사에서 조금이라도 실수를 한다면 돌아갈 땐 비행기가 아니라 수영을 해서 한국까지 가야 한다고 마하임이 공언을 했기 때문이었다.
마하임은 자신이 한 말은 반드시 지켰다. 이것을 잘 아는 현민 팀인지라 태평양을 수영으로 건너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지금 현민 팀의 수준은 최소 슈퍼맨 마크 엔더슨과 동급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그동안 마하임과 함께한 수련 덕분에 초인으로서의 능력을 다루는 데 있어선 이미 마크를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실수를 한다? 그것은 방심하거나 자만심 때문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앞으로 다가올 전쟁에 있어서 실수는 곧 죽음을 뜻했다. 마하임은 부하 직원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어리석은 CEO가 될 생각은 없었다.
두 번 다시 자신의 부하 직원 중에 학렬이나 미라 같은 자가 나오지 않도록 마하임은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첫 시작이 바로 이번 헌터 라이센스 승급 심사였다.
“기자 여러분. 여기서부터는 통제 구역입니다. 신속히 철수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베타 등급 심사장이 있는 지하 7층까지 안내한 여직원은 기자들 앞에 서서 담담히 말했다. 그러나 좀처럼 보기 힘든 이런 특종 앞에서 쉽게 물러설 기자들이 아니었다.
“억지 부리지 마쇼?! 국민들도 알 권리가 있단 말입니다.”
“베타 과정 심사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합니다! UN 산하 기관에서 언론 통제라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맞아! 여기서 우릴 막는다면 오늘 저녁 인터넷 신문에 어떤 기사가 올라올지 생각해 봤어, 아가씨? 우리 이러지 맙시다.”
기자들은 도끼눈을 뜨고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 기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여직원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들어 이지스의 국장 마크에게 문자를 날렸다.
-보고 계시죠? 어떻게 할까요?
-알아서 해. 나도 저들의 능력이 궁금하니까 최대한 빨리 테스트를 진행시켜.
-네,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무력 행사에 들어갑니다.
여 안내원은 핸드폰의 화면을 끈 뒤 기자들을 노려보며 다시 한번 경고 멘트를 날렸다.
“기자 여러분. 지금 즉시 철수해 주십시오. 이번이 마지막 경고입니다. 만약 철수를 거부한다면 UN 헌터 특별 규정 5조 2항에 의거하여, 무력 행사에 들어가겠습니다.”
여직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녀의 몸 근처에서 푸르스름한 7개의 광구(光球)가 생겨났다.
겉보기에는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백인과 흑인의 혼혈, 속칭 뮬라토였지만, 그녀는 평범한 혼혈 여성이 아니었다.
그녀의 이름은 ‘레오나 발렌타인’. 마크의 수석 비서임과 동시에 헌터 서열 20위 안에 드는 매지션 계열의 초인이었다.
물론 그녀의 존재는 1급 기밀로서, 레오나의 대한 정보는 일체 세간에 알려진 바 없었다.
하지만 레비가 이지스의 보안 시스템도 완벽하게 뚫어 버린 상황인지라 마하임은 이미 그녀에 대해 마크만큼이나 잘 알고 있었다.
“마, 맙소사! 베타급 헌터라고? 지금 베타급 헌터가 민간인을 향해 무력을 행사하려 하다니, 있을 수 없어!”
“있을 수 있습니다. UN 헌터 특별 규정에 대해 모르실 리 없을 텐데요? 다시 한번 경고합니다. 10초 이내로 철수하지 않을 시, 몬스터로 간주하고 즉결 심판에 들어갑니다.”
레오나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기자들을 향해 말했다. 그리고 전혀 망설임 없이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10, 9, 8, 7….”
“그래, 우리 한번 해보자고. 나 GGN 기자야! 나의 신상에 무슨 일이 생기면 GGN이 가만있을 것 같아?”
“우리 함께 싸웁시다. 우리는 세계인들의 알 권리를 수호해야 합니다.”
“옳소!”
기자들은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하지만 레오나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카운트다운을 계속할 뿐이었다.
“6, 5, 4, 3, 2, 1. 무력 행사 개시.”
레오나의 경고가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의 몸 주변에 두둥실 떠올라 있는 7개의 광구, 통칭 ‘매직 미사일’은 기자들이 있는 곳을 향해 내리꽂혔다.
퍼퍼펑!
“으아악!”
기자들은 기겁을 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UN 헌터 특별 규정에 의하면 베타급 이상의 라이센스를 가진 헌터의 작전에 끼어들거나 방해를 했을 때 설령 민간인이라 할지라도 즉결 심판이 가능했다.
다시 말하자면 일종의 살인 면허까지 베타급 헌터는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한번 경고합니다. 이번엔 그냥 바닥만 노렸지만, 다음번 공격은 기자 여러분의 머리를 노릴 겁니다.”
방금 전 레오나가 사용한 매직 미사일은 그녀가 사용할 수 있는 초능력, 마법 중 가장 약한 것이었지만 그 위력은 일격에 고블린의 머리를 날려 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그리고 그 위력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매직 미사일이 떨어진 지하 7층 심사장 바닥은 폭탄이라도 떨어진 양 곳곳이 움푹움푹 파여 있었다.
“UN에 정식으로 항의할 것이오!”
“마크에게 전해! 이대로 그냥 넘어간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고.”
“후회할 겁니다. 마크 씨! 아무리 당신이 ‘슈퍼맨’이라고 하더라도 정도가 있지요!”
기자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마크를 잘근잘근 씹은 뒤 7층 심사장 밖으로 우르르 몰려 나갔다.
아무리 특종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살인 면허까지 있는 베타 등급 헌터 앞에서 버틸 만한 배짱은 없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썰렁해진 지하 7층 심사장 대기실. 레오나는 기자들이 모두 밖으로 나간 것을 확인하고서는 심사장 대기실의 문을 닫은 뒤 3중 도어 록을 작동시켰다.
그러자 묵직한 소리와 함께 2m 두께의 방화벽이 출구뿐만 아니라 사방을 가로막으면서 완벽한 밀폐 공간이 완성되었다.
“죄송합니다. 언론 통제를 했어야하는데, 저희 쪽에서도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던지라…. 다시금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뇨, 아뇨. 좀 더 눈에 띄지 않게 행동했어야 하는데 저희의 잘못도 있으니 너무 그렇게 사과 안 하셔도 됩니다.”
마하임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말하는 레오나를 향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녀는 12/12 퍼스트 어택 당시, 지옥으로 변해 버린 맨해튼 자치구 중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경찰특공대 출신으로서 퍼스트 어택이 있던 바로 그날, 은행털이를 검거하기 위해 그녀의 팀은 맨해튼 자치구 중심의 로얄 엔트리오 은행으로 출동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팀은 로얄 엔트리오 은행에 도착하지 못했다. 도착하기 직전, 고블린의 대규모 습격이 시작된 것이었다.
경찰특공대는 상당한 수준의 중무장을 하고 있는 상태였지만, 고블린 놈들에게 상처조차 줄 수 없었다.
지금은 어린아이조차 알고 있는 정보였지만, 당시엔 고블린에게 통하는 무기는 오직 열화우라늄탄뿐이라는 것을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게다가 정식 군인도 아닌 경찰특공대에게 전면전에서 가끔 쓰이는 열화우라늄탄이 지급될 리 없었다.
상황은 절망적이었지만 레오나가 이끄는 경찰특공대는 최후의 최후까지 맨해튼 자치구의 주민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그들이 지니고 있는 화기가 통하지 않는 이상, 그들의 운명 역시 다른 주민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자치구의 주민들과 함께 마비침으로 생포당해 포탈 안으로 끌려들어 갔다.
만약 그때 레오나가 초인으로 각성하지 않았다면, 그녀 역시 그들과 같은 운명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의외군요. 무려 베타 라이센스를 가지신 초인분이 카운터에서 안내를 하시다니, 솔직히 놀랐습니다.”
“최근 구조 조정 중이라서요. 저희 이지스는 신생 UN 부서이기 때문에 아직도 여러 가지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력이 많이 부족하거든요.”
레오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마하임은 그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 이지스는 사실상 한계에 부딪혀 있었다.
퍼스트 어택이 있은 지 3년이 지났다. 그리고 이지스가 창설된 것은 만 2년 전. 그러나 그동안 이지스가 한 것이라고는 신출귀몰한 고블린이 저지른 참극의 뒷수습이 고작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고블린이 언제 어느 때 어디서 출몰할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녀석들이 출구로 사용하는 포탈에 대해 인류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것이 어딘가로 연결되어 있는 통로라는 것뿐이었다.
어떤 방식으로 언제 열리는지 어디로 연결되는지 밝혀내야만 하는 것이 이지스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었지만, 포탈의 샘플조차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이지스의 평판은 갈수록 나빠졌고, UN은 이지스의 올해 예산을 절반 이상이나 감축시켜 버렸다.
그래서 마크의 심복이자 초인인 레오나라 할지라도 이렇게 이지스의 카운터에 앉아 안내 업무를 맡고 있었던 것이다.
“자, 그럼 지금부터 베타 등급 라이센스 심사를 시작하겠습니다.”
레오나의 조금은 딱딱한 목소리와 함께 지하 7층 대기실 정중앙에 정사각형의 거대한 금속 덩어리가 바닥에서 올라왔다. 대략의 크기는 가로세로 2m의 정도. 정확한 재질은….
“타이타늄 합금(titanium alloys)이군요. 베타상의 합금으로 보이는데.”
“이걸 한눈에 구분하다니, 의외네요. ‘이쪽’ 계열의 초인이신가 봐요?”
그녀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놀라고 있음이 분명했다.
아무런 가공 처리를 하지 않았다하지만, 이 타이타늄 큐브는 일반인이 보아선 그저 평범한 쇳덩이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솔직히 마하임이 레비와 하나가 되지 않았다면 육안으로 이를 구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그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인외의 존재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능력은 그저 사소한 옵션에 불과했다.
“하하, 그냥 전공이 이쪽이라.”
마하임은 어색하게 웃으며 레오나를 향해 말했다.
저 금속으로 말할 것 같으면 지금껏 인류가 개발한 야금학적 기술의 최종 결정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노테크놀로지가 적용된 금속을 제외하고.
타이타늄을 주체로 하는 이 합금은 높은 인장 강도와 굳기, 가벼운 무게, 뛰어난 내부식성, 상식을 넘어선 초고온에 견디는 능력이 탁월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각종 군수 장비, 항공기, 우주선, 의학 장비, 스포츠 장비 등 거의 모든 현대 산업에 이용되고 있는 만능의 금속이라 불려도 과언은 아니었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제조 시 필요한 바나듐, 크롬, 알루미늄 등 첨가물의 가격이 비싸 생산 단가가 자체가 강철의 10배가 넘었다.
또한 대량 생산이 어려워 돈이 아무리 많이 있다 하더라도 구하기가 만만치 않은 금속이기도 했다.
“좋습니다. 심사 기준에 대해서부터 간단히 알려 드리죠. 심사 자체는 아주 심플합니다. 여러분의 눈앞에 있는 타이타늄 큐브를 5분 안에 10% 이상 파괴하십시오. 물론 초인의 능력을 사용해서 말이죠. 참고로 전 3분 정도 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