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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187화 (187/194)

187화

“도와주십시오.”

마크는 마하임의 앞에 머리를 숙였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의 자존심보다 조국이 훨씬 더 중요했으므로….

“이번만입니다.”

마하임은 짧게 답했다. 예정에 없는 전투였지만, 지금 마크에게 빚을 지워 둬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류에게는 아직 미국이라는 국가가 필요했다.

마하임이 지금 이 사태를 무시한다면 미국은 필시 큰 타격을 입을 것이고 두 번 다시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마하임이 구상한 세계 정부 수립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 틀림없었다.

마크와 함께 마하임 일행은 곧장 사무실 옥상 쪽으로 향했다. 옥상에는 이미 헬기가 대기하고 있었다.

“타십시오. 전 날아가면 되니까.”

마크는 짧게 말하고는 뿌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맨해튼 중심가로 날아갔다.

마하임은 마크의 뒷모습을 잠깐 바라보다 현민을 비롯한 모두에게 말했다.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아. 이런 대규모 공세는 모두 처음이니 최대한 조심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차례차례로 대기하고 있던 헬기에 오르는 마하임 일행들. 하지만 마하임은 헬기에 타지 않았다.

“난 따로 갈 테니까 무리하지 말고 매뉴얼에 따라 행동해 줘.”

“걱정 마십시오. 고블린 로드 정도야 저희 선에서 간단히 제압 가능하니까요.”

현민은 근심 가득한 얼굴의 마하임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하임은 긴 한숨을 쉰 뒤 고개를 끄덕였다.

헬기는 곧바로 이륙하여 맨해튼 중심가로 향했다.

“뭐지, 이 불안감은? 좋지 않아. 매우.”

근거는 없었지만, 불길한 예감이 강렬하게 들었다. 마하임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레비와 대화를 시도했다.

‘레비 들려?’

‘들린다. 그렇지 않아도 연락하려 했다. 알 수 없는 파동이 네가 있는 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알 수 없는?’

‘나도 확실치는 않다. 가능하면 그곳에서 빨리 이탈하는 것을 추천한다.’

‘지금은 무리야. 해야 할 일이 있거든.’

‘알았다. 무언가 알게 되면 바로 알려 주겠다.’

레비와의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지금의 이 불안감은 레비 역시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불안감만을 이유로 떠날 수는 없었다.

“속전속결 뒤 이탈하는 수밖에.”

마하임은 그렇게 마음먹고 불길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맨해튼을 노려보았다.

* * *

미국 맨해튼 오후 1시 30분.

맨해튼이 지옥으로 변하는 데에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지금껏 보지 못한 엄청난 규모의 포털이 동시에 열리면서 수백에 달하는 고블린 로드를 토해냈던 것이다.

하지만 맨해튼을 수비하는 미군 역시 허수아비는 아니었다.

더욱이 맨해튼은 헌터들의 성지 이지스가 있는 곳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많은 헌터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유일의 알파 등급 헌터, ‘슈퍼맨’이 선두에 서서 군과 헌터들을 지휘하자 전황은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탄막을 펼쳐라! 어차피 일반 무기로는 고블린 로드를 쓰러트릴 수 없다!”

공중을 종횡무진 누비는 슈퍼맨은 미군과 헌터들을 독려했다.

고블린 로드는 레일건과 핵폭탄 말고는 현존하는 그 어떤 무기로도 죽일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군은 탄막을 펼쳐 고블린 로드의 진행 경로를 막고, 레일건이 장착된 전차 부대 쪽으로 고블린 로드를 유인하는 작전을 펼쳤다.

물론 탄막을 아무리 펼쳐도 고블린 로드의 경로를 완전히 차단할 수 없었다.

희생은 나올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이 지금 미군이 펼칠 수 있는 유일한 작전이었다.

지이이잉. 츄하학!

슈퍼맨의 눈에서 이글거리는 광선이 쏟아져 나왔다. 그 광선은 고블린 로드 3마리를 동시에 꿰뚫어 버렸다.

슈퍼맨의 사실상 유일한 원거리 공격인 빔 공격이었지만, 그 위력은 확실했다.

고블린 로드는 스치기만 해도 뼈와 살이 녹아내렸다.

하지만 고블린 로드는 두려워하지 않고 꾸역꾸역 몰려나와 맨해튼의 인간들을 미친 듯 사냥했다.

“대장! 뭔가 달라. 저놈들 무작정 죽이고 있어!”

저격총을 들고 상황을 확인하던 찬호가 소리 질렀다.

지금껏 대다수의 고블린들의 목표는 인간을 학살하는 것이 아니라 생포해 포탈 안으로 납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 나타난 고블린 로드들은 일방적으로 사람들을 학살할 뿐이었다.

“칫. 뭔가 달라졌다. 이건 보통 일이 아냐!”

현민은 고블린 로드의 머리를 양손으로 단숨에 뜯어 버리며 소리쳤다.

제아무리 고블린 로드가 튼튼한 몸을 지니고 있다하더라도 현민의 비상식적인 힘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고블린 로드의 수는 이미 백을 훨씬 넘기고 있었다.

맨해튼 시가지는 순식간에 지옥으로 뒤바뀌었다.

“보스, 어쩌죠?! 이대로는 너무 희생이 커요!”

민아는 미군과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공간제어 능력으로 보호막을 펼쳤다. 하지만 민아의 능력 역시 한계는 있었다.

다급해진 민아는 마하임을 호출해 보았지만, 마하임에게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사장님. 응답해 주십시오. 사장님?!”

철광은 다시 한번 마하임을 호출해 보았지만, 역시나 응답은 없었다.

마하임과 현민 팀은 양자 통신기로 교신을 하고 있었기에 일반적인 방해 전파 같은 것으로는 통신이 끊기지 않는다.

그러나 통신이 완벽히 두절됐다. 이것은 곧 양자 통신마저 방해할 뭔가가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 맙소사! 공간이 일그러지고 있어!”

다른 사람은 아무도 느끼지 못했지만, 공간을 다루는 민아는 느낄 수 있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거대한 힘을 가진 무언가가 이곳에 나타나려 하고 있었다.

키에에에엑-!

귀가 찢어질 듯한 소음이 충격파를 뿜어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것은 공간과 공간이 찢어지면서 생긴 비가역적이자 시공을 초월하는 끔찍한 울림이었다.

공간이란 건 연속적이어서 블랙홀 급 중력이 아니라면 간섭할 수 없다는 것이 통념이었지만, 그 통념은 지금 이곳에는 통하지 않았다.

우우우웅-!

그리고 공간이 기어코 찢어지면서 차원의 단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단면은 평범한 사람이 보아서는 비정상적으로 어두운 구역으로 보일 뿐이었지만, 민아는 그 단면에서 모습을 드러낸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서, 설마…. 저건 천사?”

공간과 공간 사이에서 나타난 것은 사람의 형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의 몸은 붉은색 날개로 뒤덮여 있었다.

하지만 저것을 천사라 부르기에는 어폐가 있었다. 천사는 문자 그대로 천계의 사람이라는 뜻이었지만, 저것은 아무리 보아도 사람이 아니었다.

붉은 날개 수십 개가 온몸에 돋아나 있는 인외의 무언가였다.

“아, 안 돼! 모두 내게로 뭉쳐! 빨리!”

민아가 소리쳤다. 하지만 그 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 저 붉은 인외의 무언가가 울부짖었다.

우우우우우웅!

인간의 가청 범위를 훨씬 능가하는 것의 울부짖음에 다시 한번 공간이 찢어졌다.

그리고 그 여파로 생긴 공간의 울렁임은 마치 원자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수만 도의 열기와 함께 사방 모든 것을 집어 삼켰다.

“믿을 수 없어. 내 공간제어 필드가!”

금빛으로 일렁이는 화염은 민아의 공간제어 필드까지 갉아 먹으며 민아를 향해 다가왔다.

사방은 불바다였고, 도망칠 곳은 그 어디도 없었다.

민아는 마지막 힘까지 다 짜내어 공간제어 필드를 안정시키려 했지만, 이 열기는 단순한 열기를 넘어서 공간 그 자체를 갉아먹어 갔다.

그리고 그녀가 펼친 공간제어 필드까지 순식간에 침식해 들어왔다.

압도적인 절망감에 민아는 망연자실하게 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포기하지 마! 민아야!”

바로 그때 들려온 목소리. 그 목소리는 다름 아닌 마하임의 목소리였다. 마하임은 순간 민아의 앞에 나타나 침식해 들어오는 열기를 막아섰다.

“정신을 집중해! 네 힘이라면 이 침식을 멈출 수 있을 거다!”

“네, 넵!”

민아는 마하임의 말을 듣고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다시금 힘을 모아 공간제어 필드를 펼치기 시작했다.

“무작정 막으려 하면 안 돼. 흐름을 타! 모든 걸 다 막을 필요는 없어. 흘려버릴 수 있는 것은 흘려버려. 그리고 자신을 믿어. 너라면 할 수 있어!”

마하임은 민아의 단전에 자신의 기를 흘려 넣으며 말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벌어진 사태라 마하임 그 역시도 모든 것을 파악할 수는 없었다.

갑작스러운 폭발, 그리고 공간마저 불태우는 이 불길은 마하임으로서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것이었다.

“무, 무리예요. 이건 절대 막을 수 없는….”

붉은 열기가 민아의 손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민아는 극심한 고통에 미칠 것만 같았지만, 지금 자신이 공간제어 필드를 해제한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마하임까지 죽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만큼은 막아내야만 했다.

“젠장! 젠장할!”

민아의 손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마하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공간 계열의 이 파괴적인 기술은 인류의 인식을 넘어서는 가볍게 넘어서는 것이었다.

“죄송…해요. 지켜 드리고 싶었는데….”

“민아야. 정신 차려! 민아야!”

“안녕…히.”

민아는 의식을 잃었다. 하지만 그녀의 공간제어 필드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민아의 공간제어 필드마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후, 이렇게 끝나다니…. 하하하!”

마하임은 허탈하게 웃었다. 민아는 잿더미로 변해 눈 녹듯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남은 것은 모든 것을 불태울 기세로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이 불길뿐. 이 절대적인 힘 앞에 모든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사라져라!”

바로 그때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레비의 것이었다.

레비의 단 한 마디의 외침과 동시에 공간마저 불태우던 이 열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것은 맨틀까지 녹아 시뻘건 용암으로 뒤덮인 광대한 대지뿐이었다.

“미안, 늦어 버렸다. 생각보다 강력한 결계였다.”

마하임을 바라보며 말하는 레비. 그러나 마하임은 그런 레비를 보고서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죽어 버렸어…. 모두가!”

“예상치 못했다. 내 자매가 지구로 전이해 올 줄은.”

레비아탄은 분신이라 할 수 있는 개체가 존재했다. 그리고 그 분신 중 하나가 시공을 넘어 이곳으로 전이한 것이다.

레비는 본체, 즉 레비아탄과 떨어져 활동한 지 오래되었고 교류마저 끊겨 각자의 삶을 살아갈 뿐이었다.

“어째서지? 네가 왜 지구에 온 거냐!”

분노한 레비의 외침에 대지마저 진동했다.

붉은 날개는 잠시 꿈틀거리더니 모습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공간을 울리며 레비를 향해 자신의 의사를 전해 왔다.

“그것은 내가 묻고 싶은 거다, 자매여. 넌 이곳을 심판하기 위해 강림한 게 아니던가?”

“맞다. 하지만 그건 나의 고유 사명. 왜 간섭한 거지? 이건 내 일이다!”

레비의 분노에 찬 외침이 붉은 날개를 뒤흔들었다. 붉은 날개는 꿈틀거리다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레비를 향해 다시금 의지를 전했다.

“상황이 바뀌었다. 심연의 어둠이 즉시 말살을 명하셨다. 그리고 다음 명령….”

“닥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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