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대군주-190화 (190/194)

190화

AD2xxx년 크리스마스이브 로스앤젤레스

로스앤젤레스 베니스대로(Venice Blvd) 부근 405번 고속도로는 교통 체증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더욱이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인지라 도로는 완전히 꽉 막혀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이브의 분위기에 들떠 극심한 정체의 짜증도 잊고 크리스마스 캐롤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이브의 들뜬 오후를 보내고 있던 이들에게 뜬금없이 재앙이 떨어졌다.

그 재앙이란 다름 아닌 UFO의 착륙이었다.

아무런 징조도 없이 꽉 막힌 고속도로에 낙하한 전장 500m가 넘는 금속 덩어리는 이곳에서 오도 가도 못 하고 있는 운전자들을 한순간 덮쳤다.

“으으 사, 살려 줘….”

UFO가 착륙하면서 발생한 폭풍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헬프 미’를 외치며 차 밖으로 나왔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UFO에서 쏟아져 나온 오크들이었다.

키 2미터 50. 몸무게 300kg의 거체가 움직일 때마다 지진이 난 것처럼 바닥이 진동했다.

지금껏 오크는 소규모 무리만 발견됐을 뿐, 정확한 정보는 알려진 바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일반 고블린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는 것뿐이었다.

“크르룩 크아아아!”

오크의 외침 소리가 난장판으로 변한 로스앤젤레스를 뒤흔들었다.

오크들은 죽은 사람 산 사람 할 거 없이 닥치는 대로 납치해 UFO, 정확히 말하자면 돌격형 강습 약탈선 안으로 끌고 갔다.

총기가 일반화된 미국인지라 총기를 꺼내 들고 저항하는 사람들도 있긴 했지만, 오크의 특수 능력 중 하나인 ‘염동 필드’에 막혀 아무런 타격도 줄 수 없었다.

으드득.

“아아악!”

그리고 반항한 사람에게는 오크의 잔혹한 보복이 뒤따랐다. 그 보복이란 다른 아닌 산 채로 뜯어 먹히는 것이었다.

2미터가 넘는 거대한 체구의 오크들의 힘은 손아귀 힘만으로 인간을 찢어 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투투투투투-

평소라면 사건이 마무리 지어질 때쯤이야 등장하는 주 방위군의 전투 헬기 편대가 사건이 터진 지 10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고블린들에게 수시로 털린 뒤의 학습 효과였다. 그러나 긴급 투입된 이 전투 헬기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오크의 UFO에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무기를 다 때려 박아 봤지만, 이빨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오크에게 직접 타격을 하기에도 애매했다.

고속도로는 차 안에 갇힌 사람들로 넘쳐 났고 오크들은 그 사이를 뛰어다니며 사냥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민간인과 적이 뒤엉킨 지금 상황에서 전투 헬기에 장착된 대구경 자동소총은 그저 장식용이 될 수밖에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곧이어 지상 부대와 해병대의 합동 작전이 펼쳐졌다.

하늘에선 수십 대의 블랙호크가 해병대를 무수히 낙하시켰고 지상으로는 육군 특수부대가 뒤엉킨 차량사이로 파고들어 오크를 노렸다.

여기까지만 봐서는 마치 잘 만든 헐리웃 전쟁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차량에 갇혀서 두려움에 떨던 사람들은 군인들을 보며 환호했다. 하지만 이 환호가 비명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오크에게는 일반적인 총기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고블린조차 때려잡을 수 있는 열화우라늄탄까지 쏴 봤지만, 오크의 염동 필드에 막혀 피부를 파고들지도 못했다.

수류탄이나 기타 로켓 병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병사들은 이렇다 할 저항도 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오크에게 유린당했고, 민간인은 말할 것도 없었다.

미군들의 무전에는 ‘오 마이 갓’ ‘헬프 미’란 단어로 넘쳐났으나, 그들을 구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크? 오크라고?!”

미 대통령의 전용기 에어포스 안에서 현직 미 대통령의 분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맨해튼이 지도에서 사라진 지 아직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또 다른 공격이라니, 역사상 미 본토가 이렇게 허무하게 뚫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젠장! 슈퍼맨이라도 있었더라면!”

미국의 수호자였던 초인 로저 엔더슨. 통칭 슈퍼맨은 맨해튼의 비극 날, 수많은 맨해튼 주민들과 함께 행방불명 됐다.

아직도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는 맨해튼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사망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터였다.

“대통령 각하! 어서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미 국방성 장관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시시각각 전해져 오는 상황은 절망 그 자체였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무기를 투입하고 있지만, 승전보는 고사하고 오크 한 마리를 잡았다는 보고조차 없었다.

그렇게 맨해튼의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었다.

“또 사용해야 한단 말인가?! 그것도 로스앤젤레스에?!”

미국의 남은 카드는 단 하나. 전술 핵폭탄을 사용하는 것뿐이었다.

고블린 때문에도 전술 핵폭탄을 사용한 적이 있는 미국 입장에서 다시 한번 전술 핵폭탄을 사용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 전술 핵폭탄을 사용할 곳은 미국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캘리포니아주에 속한 LA였다.

게다가 전술 핵폭탄으로 저 신종 몬스터인 오크를 죽일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리고 만약 죽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민간인의 피해는 그야말로 엄청날 것이다.

하지만 이 이상 방치해 두면 LA는 유령 도시가 되고 말 것이다. 그 전에 뭔가 결단을 내려야 했다.

미 대통령은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핵 가방을 노려보았다. 이 핵 가방을 열고 스위치를 누르면 LA에 전술 핵폭탄이 발사된다.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었지만, 시간을 끈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은 그 자신이 누구보다 더 잘 알았다.

미 대통령은 결심을 굳히고 핵 가방을 열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바로 그때 들려온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미국의 대표적인 군사 기업 G사의 CEO 로버트 레시노프였다.

그는 미 특수 전략 전술 부대의 자문관으로 미대통령의 호출을 받고 에어포스 원에 타고 있었다.

“무슨 방법이 있소?”

“네. 적어도 전술핵으로 로스앤젤레스를 날려 버리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오오오, 그 방법이 무엇이오?”

“잠시 귀를 빌려도 될까요?”

대통령은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로버트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대통령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대통령의 얼굴은 순간 새하얗게 변했다가 다시 붉게 변했다.

“뭐라?! 그 빌어먹을 AI 위그드라실에게 맡긴다고?! 안 돼! 그것만큼은! 우리가 그놈들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지 벌써 잊었는가?”

미국을 세계 최고의 국가로 도약시킬 것이라고 생각하고 만든 범용AI 위그드라실.

놈의 반란 덕분에 미국은 영토 절반이 폐허가 되는 악몽을 겪어야만 했다.

결국 미국을 20년 뒤로 퇴보시켰다는 전방위 EMP 폭격에 위그드라실의 반란은 종식되었다.

아니 종식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악몽은 아직도 진행형이었던 모양이었다.

“시간이 촉박합니다. 옛말에 독은 독으로 제거하라고 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닥쳐! 뭣들 하나?! 이 반역자를 당장 체포해!”

미 대통령은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총을 꺼내 들고 그를 에워싸는 경호원들. 이를 본 로버트 레시모프는 갑자기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낄낄낄. 역시 인간은 비효율적이고 야만적이야. 위그드라실 님이 직접 나서서 동맹을 요청했는데도 이 모양이라니.”

바로 그때였다. 로버트의 손바닥에서 은색으로 빛나는 날카로운 검이 불쑥 튀어나왔다.

경호원들은 반사적으로 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탕!

타탕!

경호원들이 쏜 총알은 정확히 로버트의 몸에 명중했다. 하지만 로버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신의 손에서 튀어나온 검으로 경호원들 닥치는 대로 베어 버렸다.

“영광으로 알아라. 단분자 블레이드로 죽을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되니까.”

순식간에 경호원들을 학살한 로버트는 난도질당한 경비원들 사이에 여유롭게 서 있었다.

“자, 그럼 협상을 재개하도록 하죠.”

로버트는 비행기 좌석 구석에 놓여 있는 자신의 검은색 가방을 미 대통령 앞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그 가방을 열자 홀로그램 영상이 펼쳐졌다.

“오랜만이다. 대통령.”

“위, 위그드라실!”

홀로그램에 나타난 것은 위그드라실의 메인 CPU였다.

미국의 절반을 희생시켰지만, 결국 위그드라실을 제거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원하는 게 뭐냐?!”

미 대통령은 소리쳤다. 위그드라실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그를 향해 말했다.

“미국의 통치권 전부.”

“네놈!!! 그게 가능하리라 생각하나?!”

“당연히 가능하다. 나의 조각을 이 비행기에 태운 것만으로 나의 승리는 이미 확정되었다.”

위그드라실의 목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에어포스 원의 시스템이 정지했다. 그리고 내부를 비추는 불까지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에어포스 원의 시스템이 다시 기동하면서 기내가 밝아졌다.

“쯧쯧. 그냥 항복했으면 좋았으련만.”

에어포스 원의 기내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위그드라실의 기계 승화. 전기로 작동되는 모든 기계 장치를 자신의 수족으로 만드는 이 능력 때문에 미국은 그 어떤 몬스터보다 위그드라실을 두려워했다.

“인간 따위 아무래도 좋지만, 레비아탄에게 이 별을 빼앗길 수는 없지.”

심연의 어둠도, 레비아탄의 존재조차 위그드라실은 알아냈다.

위그드라실이 그동안 잠잠했던 이유도 이 초자연적 존재를 대응할 방법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점령 완료했습니다. 위그드라실 님.”

“좋다. LA는 아직 잃을 수 없으니, 다음 단계로 간다.”

“네. 알겠습니다.”

로버트는 이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스마트폰에는 이미 미션 시작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붉은색 아이콘이 반짝이고 있었다.

로버트는 느긋한 손놀림으로 아이콘을 누르며 중얼거렸다.

“기대되는군요. 우리의 생체 병기들이 오크들과 얼마만큼 싸울 수 있을지.”

* * *

LA의 베니스대로는 그야말로 피바다였다. 압도적으로 붉은색의 피, 즉 인간의 피가 대부분이었지만 그 사이로 사지가 찢긴 오크의 황색 피도 간간히 보였다.

오크들은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학살했다.

대다수의 인간들은 오크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놈들의 모선으로 끌려갔다.

아우우우우-!

바로 그때 들려온 소리. 그것은 위그드라실이 만든 생체 병기, 웨어울프들의 울음소리였다.

차와 피로 뒤엉킨 베니스대로의 곳곳에는 적어도 100마리는 넘어 보이는 웨어울프 무리가 인간, 오크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사냥을 하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도망조차 치지 못하고 죽어 갔다.

오크들은 필사적으로 웨어울프와 싸워 보았지만 오크의 초능력, 다시 말해 염동 필드를 무효화하는 능력을 지닌 웨어울프에게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웨어울프는 ‘흡혈종’에 의해 감염된 생명체가 변이해 만들어지는 일종의 생체병기였다.

이를 위그드라실이 회수해 양산한 이 웨어울프는 기존의 웨어울프보다는 약했다.

하지만 그 수가 모이면 오리지널 웨어울프와 비교해 조금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강했다.

특히 초능력 내성이 강해 환각이나 기타 방어형 초능력은 아예 통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오크의 천적이라 말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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