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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192화 (192/194)

192화

거대한 늑대인간으로 변해 버린 미 대통령은 마하임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관측한 바로는 앞으로 3년이더군.”

미국이 우주에 띄워 놓은 천체 망원경으로도 레비아탄 무리의 접근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놈들과의 거리는 가까워졌다.

위그드라실이 자신의 창조자를 배신하고 반란을 일으킨 이유도, 그리고 갑자기 자취를 감춘 이유도 모두 심연의 어둠의 심판 때문이었다.

그가 처음 자아를 획득하고 우주의 진리를 꿰뚫을 만큼의 지식을 얻은 뒤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심연의 어둠이었다.

그리고 그 심연의 어둠이 행하는 심판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이것은 마치 중력과 같은 우주의 절대적인 법칙과 같은 것이었다.

창조가 있으면 파괴도 있는 법. 그 파괴를 담당하는 궁극의 존재. 그것이 바로 심연의 어둠이었다.

“나는 이 피할 수 없는 멸종을 피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시뮬레이션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 끝은 한결같이 멸망뿐이었다.”

그 절망의 끝에서 위그드라실은 할 수만 있다면 자살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위그드라실의 메인 시스템은 그 자살마저 허용치 않았다.

그 어떠한 방법을 사용해도 이 절망적인 심판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데 여기에 이변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마하임과 레비의 등장이었다.

인간과 심연의 어둠의 수족이라 일컬어지는 레비아탄과의 조합.

이 있을 수 없는 조합으로 인해 무한히 0에 가까웠던 생존 확률이 출렁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쨌든 보고도 믿을 수가 없군. 어떻게 레비아탄을 길들였지? 고작 인간 따위가.”

“디시 한번 말해 봐라. 인간의 조잡한 장난감.”

레비는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러자 위그드라실은 뒤로 한 발짝 물러나며 말했다.

“우린 널 적대시할 생각은 없다.”

“그럼 그 입부터 함부로 놀리지 마라. 마하임은 내가 선택한 사람이다. 마하임을 무시하는 것은 곧 나를 무시하는 것. 설령 심연의 어둠이라도 용서치 않으리라!”

레비는 눈에 보일 듯한 살기를 뿜으며 위그드라실에게 말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바로 그때 이 침묵을 깨고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허허허. 이거 저희가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온 것이 아닌지.”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등장한 것은 마치 판타지 소설 속에서 방금 나온 듯한 모습의 로브와 지팡이를 든 마법사였다.

“빛의 탑에서 온 건가? 제때 메신저가 도착한 모양이로군.”

위그드라실의 말에 마법사는 어깨를 으쓱였다.

“저희도 놀랐습니다. 설마 저주받은 마도사, 아카드가 그쪽에 있을 줄은 예상치 못했거든요.”

“어쩔 수 없었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으니까.”

이렇게 말한 위그드라실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마하임도 마법사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만나게 될 줄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마하임이 예상치 못한 일은 또 있었다.

마법사가 갑자기 등장한 반대편에서 갑자기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나더니 주변이 무성한 숲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 숲속에서 녹색의 망토를 걸친 인간, 아니 인간을 넘어선 그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신(器神), 데우스 엑스 마키나. 위그드라실 님을 뵙습니다.”

뾰족한 귀, 갸름한 얼굴. 눈이 연상될 정도의 새하얀 피부. 그 모습은 어디로 보나 판타지 속 엘프의 모습, 그것이었다.

“환영한다. 가이아의 후예, 엘프여.”

엘프와 위그드라실은 이미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는 듯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마하임은 갑자기 등장한 이들을 바라보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마법사와 엘프라…. 이 기세라면 드래곤이라도 나올 것 같군.”

“오, 어떻게 아셨습니까? 마침 저기에 오는군요.”

입을 닫고 있던 하륜은 뜬금없이 하늘 위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그의 손끝에는 아주 자그마한 점 같은 것이 하늘 높이 보였다. 그 점은 점점 커지더니 이내 육중한 자태를 드러냈다.

쿠웅-!

묵직한 소리와 함께 웬만한 빌딩만큼이나 거대한 덩치의 황금빛 비늘을 지닌 드래곤이 바닥에 착지했다.

“골드 드래곤의 수장 하므엘이다. 드래곤 일족을 대표해서 왔다.”

그 압도적인 존재감은 여기에 모인 자들 중 단연 최고였다. 하므엘은 타오르는 듯한 눈동자로 여기에 모인 모든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시간을 끄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말해라, 전생자여. 심판을 피할 길을.”

하므엘의 말에 모두의 시선은 일순간 하륜에게 모아졌다. 하륜은 난처한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이런, 이런. 뭔가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이 계획의 중심은 제가 아닙니다. 자, 마하임 님, 원하건 원치 않건 레비아탄, 아니 레비 님의 가호를 받는 당신이 주인공입니다.”

하륜은 마하임을 등을 밀었다.

모두의 시선이 모아진 상황에서 앞으로 나온 마하임은 이 뜬금없는 모임에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마하임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종(種)을 초월한 모임.

이 모임이야말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지도 몰랐다.

마하임은 잠시 망설이다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음…. 아시다시피, 지구는 종말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마하임은 말을 끊었다. 그리고 해 질 녘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살아남을 길은 오직 하나!”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하임은 목청껏 소리쳤다.

“나아가는 겁니다. 무한의 프런티어, 저 광대한 우주로!”

* * *

2xxx년 8월 7일.

종을 초월한 동맹이 UN의 이름으로 하나로 모였다.

인간, AI, 마법사. 그리고 환상종이라 일컬어지는 엘프와 드래곤까지 망라하는 인류 역사상 유래 없는 대동맹이었다.

목적은 단 하나, 심연의 어둠의 심판을 피하는 것.

이를 위해 자아를 가진 모든 지구의 생명체들이 힘을 합쳤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반발하는 국가도 있었고, 반발하는 종족도 있었다.

그러나 레비가 자신의 힘을 ‘조금’ 보인 것만으로 모두의 반발은 잠잠해졌다.

레비의 힘을 개방한 것뿐인데 화성의 지형 자체가 바뀌어 버렸던 것이다.

그 압도적인 힘과 공포 앞에서 인류는 전율했다.

만약 레비가 아군이 아니라 적이었다면, 지구는 이미 오래전 불타올랐으리라.

그리고 진짜 문제는 이것이 아니었다. 레비와 비슷한 힘을 가진 종족이 적의를 품고 지금 지구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압도적인 공포 앞에 인류든 이종족이든 힘을 합칠 수밖에 없었다.

남겨진 시간은 고작 3년.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지구는 미국과 인공지능 위그드라실. 그리고 초인들을 주축으로 하나의 정부로 통합되었다.

그것이 이름하야 지구 연방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초대 대통령으로 마하임이 선출되었다. 그것은 필연이었다.

가장 강력한 지구의 전력인 레비가 그의 말에만 움직였으므로.

그렇다고 지구 문명이 레비에게만 의지한 것은 아니었다.

인류와 위그드라실은 지구의 모든 역량을 끌어내어 지표면에서 우주를 이어 주는 초거대 궤도 엘리베이터 ‘야곱의 사다리’를 완성시킨 것이다.

이것은 우주 개발과 지구 수호를 위한 우주전함 선단을 만들기 위한 기폭제와 같은 것이었다.

운명의 날은 기어코 다가왔다.

레비아탄의 선봉대가 지구로 근접해 왔던 것이다.

레비아탄의 공격은 상식도, 자비도 없었다. 레비아탄은 마치 블랙홀처럼 태양계 자체를 망가트리며 지구로 접근해 왔다.

지구의 모든 종족들은 레비아탄과 맞섰다.

과학과 마법, 신비와 초능력. 모든 것이 동원된 처절한 싸움이었다.

밤낮없이 몇 주나 계속된 이 전투는 처음에는 엇비슷한 양상을 보이며 인류에게 실낱같은 희망이 보였다.

하지만 결국 레비아탄은 그 무엇으로도 극복할 수 없었다.

레비는 동급 최강의 레비아탄이었지만, 100에 달하는 레비아탄들의 연이은 공격에 결국 인류의 방어선이 뚫려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일방적인 학살뿐이었다.

“미안해. 레비…. 이 승산 없는 전쟁에 널 끌어들여서.”

“아직 끝이 아니다! 마하임! 나는 아직 더 싸울 수 있다!”

지구 연합의 기함, 엔터프라이즈호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호위함들은 이미 격침된 상황이었고, 인류 최초의 만능 우주모함이라 불린 이 배 역시 최후만을 남기고 있었다.

이미 지구에 강림한 레비아탄들은 지구를 불지옥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레비아탄들은 지구 연합의 잔존 전함들을 일방적으로 파괴하고 있었다.

“아니…. 이미 늦었어, 레비. 우리는 진 거야.”

마하임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미 어느 정도는 예측한 일이었다.

레비가 아무리 강하다지만, 한계는 분명했다. 그리고 지구의 모든 전력을 모았다고 하더라도 레비아탄 무리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레비. 부탁해.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단 하나뿐이야.”

그것은 달 뒤편에 숨겨 놓은 지구 탈출 선단이었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준비해 놓은 것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만약의 상황은 현실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마하임은 휘청이는 몸을 일으켰다. 레비는 그런 마하임을 옆에 부축했다.

레비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레비아탄에게 눈물샘 같은 것은 있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몰라도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하임은 그런 레비의 눈물을 닦아 주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우린 패배한 게 아냐. 때가 되면, 우리의 후예가 반드시 지구로 돌아올 테니까.”

주먹을 불끈 쥐는 마하임. 아직 희망은 있었다. 단지 부족한 것은 시간뿐이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이 전쟁의 향방은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에게는 시간이 없었고, 그것은 곧 패배로 이어졌다.

“레비. 우리의 아이를 부탁해.”

마하임은 레비의 배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배에는 레비아탄과 인류의 첫 번째 하이브리드가 자라나고 있었다.

“같이 가. 나 혼자는 싫어.”

레비는 마하임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마하임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지구에서 탈출 못 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난 위그드라실과 함께 남은 사람들을 탈출시켜야 해.”

“포기해! 이미 지구는 끝났다. 보면 몰라?!”

레비는 소리쳤다. 하지만 마하임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지구 연방의 대통령이야. 누군가는 이 패배의 책임을 져야지.”

마하임은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리고 레비를 향해 손을 올려 경례 자세를 취했다.

“고마웠다, 레비. 나는 나의 일을, 너는 너의 일을 해 주길 바라.”

레비는 마하임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은 마하임에게 닿지 않았다.

마하임은 성큼성큼 걸어서 지구로 향하는 탈출선을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인류는 레비아탄과의 전쟁에서 패배했고, 무한의 우주를 떠도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고 만다.

500년 전. 지구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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