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착짱죽짱
칼라미티 사가.
대충 직역하자면 재앙 서사시, 재앙 전설 그런 거.
어떤 중소 게임 회사에서 내놓은 이 게임은 매니아층에게 컬트적인 인기를 끈 갓겜이다.
불합리한 몬스터의 강함.
악의적인 수준의 함정들과 지형.
불친절한 가이드.
그야말로 부조리한좆망겜의 요소를 죄다 모아놓은 듯한 이 게임은, 기묘하게도 잘 굴러가는데다 꽤 재밌기까지 하다.
물론 난이도가 뒈지게 빡세서 시작 30분만에 접는 새끼들은 존나 많지만, 그런 쌩뉴비를 내가 신경 쓸 이유는 없다.
나만 재밌으면 됐지.
아무튼 간에, 그런 갓겜에서 가장 재밌는 컨텐츠를 뽑으라면 나는 자랑스럽게 한 가지를 뽑을 수 있다.
바로 PVP다.
PVP란 무엇인가? 하고 묻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게임에 익숙하지 않다면 말이다.
PVP. Player Versus Player.
플레이어 대 플레이어를 일컫는 말로, 다른 온라인 게임에서는 PK라고도 부르는 그 컨텐츠다.
플레이어와 싸운다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템빨을 신경 쓸 수 밖에 없다.
아무렴, 다른대부분의 게임은 템차이로 지고 이기고 하는 경우도 많으니까.
하지만 칼라미티 사가에는 템빨이란 게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
컨빨과 능지. 수싸움을 하는 능력과 전투를 꾸려가는 능력이 훨씬 중요하다.
막말로 실력만 충분하다면 다른 플레이어를 국자로 뒈질 때까지 쥐어팰 수 있는 게임이 바로 칼라미티 사가다.
물론 이 게임에 PVP만 있느냐면그것도 아니다.
이 게임의 스토리는 깊은 맛이 있고, 세계관도 완성도가 높다.
다크 판타지 특유의 중후한 감성과 우중충한 배경이 잘 어우러져 보는 맛도 상당하고.
여기까지 들어줬다면, 왜 이렇게 게임에 금칠을 하는지 궁금할 수도 있다.
그건 내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다.
"아~ 짧아서 안 닿죠? 안 닿으면 맞아야죠?"
이동키를 적당히 눌러가며 거리를 재다가, 뉴비가 헛방을 지르자마자 공격을 눌러 내리찍는다. 내 캐릭터가 든 거검에 머리가 쪼개진 뉴비가 한줌 핏물로 변했다.
아마 저 뉴비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고인물 새끼가 '니가 와'는 존나 치네.'
그걸 중국어로 하던가, 아니면 일본어로 하던가, 한국어로 하던가 하고 있겠지.
솔직히 어느 언어인지는 별로 상관없지만.
이렇게 매운맛을 먹여줬으니, 저 뉴비들은 집념을 가지고 열심히 게임에 몰두해서 훌륭한 플레이어가 되어줄 것이다.
아님 접든가.
어찌됐든, 내가 뉴비를 양학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지금 내가 뉴비를 죽이는 건 장기적으로 보자면 게임에 잘하는 유저를 늘리는 일로 이어진다.
그렇고 말고.
뿌듯한 얼굴로 띄워지는 YOU WIN을 마우스를 연타해 넘기고, 보상도 대충 넘기듯 받았다.
그리고서 띄워지는 결투장 인터페이스를 물끄러미 보았다.
"오늘 결투는 충분히 한 것 같은데. 매복이나 해볼까."
이 게임의 PVP 컨텐츠는 두 개나 있다. 무려 두 개!
하나는 결투, 정정당당하게 결투를 신청한 유저와 매칭되어 서로의 뚝배기를 까고 노는 게임 모드.
또 하나는 매복으로, 신청해놓으면 PVE를 열심히 하고 있는 유저와 매칭이 되어 그 유저의 뚝배기를 까러 가는 게임 모드다.
솔직히 재미로 친다면 결투도 만만찮긴 하지만, 매복은 대놓고 엿먹이라고 있는 게임 모드라서 비교할 수가 없다.
상대가 음성채팅을 켜놨다면 매복에 당해서 빡쳐하는 유저의 비명소리도 들을 수 있다.
음, 신선한 뉴비의 비명이라.
솔직히 이건 고민할 수가 없었다.
"좋아, 매복이나 하자."
망설임 없이 패드의 이동키를 움직여 매복 담당 NPC에게 말을 걸었다.
[오]
[여]
[그렇]
[매복 하시겠습니까?]
[YES(O)/NO(X)]
NPC의 대사를 대충 버튼을 눌러 스킵하고는 바로 망설임 없이 O 버튼을 눌러 매칭을 시작했다.
그리고 잘데워진 냉동 닭강정을 이쑤시개로 찝어 입에 밀어넣고, 김이 빠지기 시작하는 콜라를 마셨다.
"할인 시즌이니까 뉴비가 좀 있겠지?"
이 게임은 무려 패키지 게임이다.
그래서 할인 시즌이 되면 뉴비는 엄청난 수로 늘어났다가 다시 줄었다. 그 유입 중 일부는 고인물이 되어서 게임풀을 확장시켰고, 접은 놈들은 이 게임의 아성을높여놓는 역할만 했다.
"쯥, 요즘 뉴비들은 근성이 없어. 유저들도 친절하고 게임도 개꿀잼인데."
그렇게 푸념하는 내 눈 앞 화면이 빠르게 바뀌었다.
로딩 화면이 몇 개 지나가고, 방금 전까지 내가 있던 장소와는 다른 모습의 필드가 눈에 들어왔다.
"아, 씨발 하필이면 지저의 늪지네."
결투장으로 바로 직행하게 되어있는 결투와는 달리, 매복은 내가 직접 상대의 게임으로 쳐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상대의 필드에서 상대를 직접 찾아내서 조져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지저의늪지가 걸리면 랜선을 뽑아 접속을 끊거나, 게임을 강종해 빤스런을 치는 경우가 많다.
[독에 걸렸습니다.]
하, 좆같네.
이게 사람들이 지저의 늪지를 좆같아하는 이유다.
늪지 바닥은 전체가 독을 걸어버리고, 몹은 좆같이 생겼는데다 기습을 걸어오고, 안 그래도 우중충한 게임에서 과하게 어두운 광원 탓에 공포 분위기까지 조성한다.
PVE 빡고인물이라는 사람들도 '늪지는 좀ㅎㅎ' 이라고 할 정도이니 오죽할까.
"좋아, 잡으면 고통스럽게 죽여주지."
감히 나를 지저의 늪지로 이끈 벌을 줘야겠지.
나는 캐릭터를 조작해 칙칙한 색의 늪을 가로질렀다.
기형적인 외양의 나무.
그런 나무보다 더 기형적인 몬스터.
그리고 그 몬스터보다 더 기형적인 구조의 맵을 가로지르면서, 나는 천천히 흔적을 쫓았다.
"이걸 때려서부숴놨네. 여기서 몹 잡았고… 저긴가?"
울타리 조각은검에 맞아서 부숴진듯 절단되어 있었다.
카메라를 움직여 몬스터 시체를 본 후에 가장 합리적으로 갈만한 방향을 추리했다.
늪에 닿아있으면 독뎀이 들어오는 건 알고 있을테고, 그렇다면 최대한 늪에 닿지 않게 움직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 그렇지!"
그 추리를 따라늪지가 없는 육로를 따라 움직이니, 금세 저만치서 꿈틀대는 형상이 보였다.
휘두르는 동작을 보건데 사용하는 무기는 한손검. 거기에 방패를 차고 있는 것 같았다.
정확히 무슨 무기인진 가까이 가봐야 알겠지만. 지금의 느낌으로는.
"…뉴비다!"
내 플레이 타임은 4천시간을 조금 넘긴다.
당연히 뉴비의 숫자는 차고 넘치도록 봤고, 그런만큼 동선과 움직임만으로 뉴비를 간파해내는 능력은 이미 경지에 이르렀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방심하지 않아야 한다.
저게 뉴비인 척 하는 미끼고, 근처에 팬티만 입고 몽둥이를 든 고인물 조력자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니까.
나는 카메라 방향에 들어가지 않게끔 나무를 끼고 접근했다.
[meimeiG]
금방 닉네임이 눈에 들어왔다. 메이메이G라.
이 경우에는 실력을 기대할 수 없다.
보통 이런 닉네임을 가진 경우에는 셋 중 하나인데.
일본인이거나.
한국 씹덕이거나.
짱깨거나.
하지만 나의 단련된 고인물 센스는 저 눈 앞의 뉴비를 이렇게 규정했다.
씹덕 짱깨라고.
"아, 꽁승이구만."
뉴비에게 카메라를 맞추고, 무장 버튼을 눌러 비스듬히 들고 있던 무기를 제대로 들었다.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
애초에 나더라도 눈치도 못 채겠지만.
그렇게 접근한 나는 카메라에 적절하게 들지 않는 범위에서 공격 버튼을 꾹 눌렀다.
슈욱
콰앙!
몸을 젖혀 힘을 끌어모은 캐릭터가 쏘아낸 강격이 복부에 꽂히자 짱깨의 캐릭터는 볼품 없이 나동그라졌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돌이라도 던지고 좀 싸워볼걸 그랬…나?"
뭐야 씨발, 왜 일어나?
분명히 반으로 갈라져서 죽어야 할 짱깨 뉴비의 캐릭터가 일어나는 진풍경에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핵쟁이다.
이 게임은 일단은 패키지 게임이다.
멀티플레이를 지원하긴 하지만 핵의 접근성으로 보자면 온라인 게임과는 비교도 안된다.
심지어 난이도도 하드코어.
굳이 이 갓겜을 핵까지 쓰면서 농락할 이유가 어딨는지는 나는 이해할 수가 없지만, 중요한 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저 짱깨가 핵쟁이라는 거다.
아마 생명력 무한 핵에다가 지구력 무한 핵… 경우에 따라서는 데미지 무한 핵 같은 악질적인 것도 쓸 가능성이 높다.
나는 뉴비가 휘둘러오는 칼을 뒤로 움직여 피했다.
공격을 피하니 열에 뻗친 건지, 아니면 한 번 더 공격하면 닿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뉴비는 몇 번 더 칼을 휘적였다.
"지구력 확정~"
무기 별 지구력 소모 정도를 꿰고 있는 나에게는 보인다. 저 무기는 8번 휘두르면 지구력이 떨어져 움직이지도 못한다.
하지만 저 뉴비는 그 8번을 넘기고도 계속 휘두르고 있었다.
"생명력은 아까 확인했고."
무거운 중장갑을 입혀도 피통이 못 버티는 거검 풀차지 공격을 맞고도 체력 하나 닳지 않았으니 생명력은 떠볼 이유도 없다.
단순하게 본다면 난공불락.
물론 단순하게 본다면 그렇단 얘기다.
4천 시간 플레이에 빛나는 고인물인 나에게는 그정도는 난제 축에도 못 낀다.
[윽, 윽, 윽.]
난 일부러 아까부터 하고 있던 움직임을 포기하고 앞으로 다가가 맞아줬다.
짱깨는 이제야 맞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신났는지 이상한 점을 모르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게 내가 의도한 바였다.
맞고 있던 캐릭터가 굴러서 빠져나가고, 등을 보인 채로 도망간다.
물론 지구력이 무한인 놈과 지구력이 한정된 캐릭터가 달리기 시합을 한다면 당연히 무한인 놈이 이길 수 밖에 없지만, 내가의도한 바는 거기에 있는 게 아니다.
예상한대로 미친 듯이 추격해오는 짱깨. 내가 이끄는 곳이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것도 모르고 달려오면서 이따금씩 칼을 휘두른다.
"그래, 계속 따라와라!"
그렇게 캐릭터가 달리고, 짱깨도 달려서 도착한 곳은 절벽.
몰아넣었다고 생각했는지 짱깨의 캐릭터는 성실하게 제스쳐 창을 열어 야유하는 제스쳐를 취했다.
"인성질까지 탑재되어있고, 이건 짱깨라고 밖에는 못 보겠네."
하지만나는 궁지에 몰린 잡졸을 연기해야 한다. 그래서 일부러 제스쳐에 맞대응하지 않고 좌우 스텝을 밟으며 경계하는 듯한 모습을 취했다.
그 모습에 감복했는지, 짱깨가 그대로 달려들었다.
"걸렸다!"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캐릭터에게 돌진 공격을 가하는 짱깨와 그걸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굴러 피하는 내 캐릭터.
그리고 올려쳐지는 거검.
날아올라 절벽 너머로 떨어지는 짱깨.
그 모든 것이 몇 프레임 안에 일어났다.
나는 재빠르게 음성 채팅을 켜고, 나직하게 마이크에 읊조렸다.
"착한 짱깨는 죽은 짱깨 뿐이다. 기억해라 핵쟁이야."
[meimeiG가 죽었습니다.]
[매복에 성공했습니다. 10초 뒤 귀환합니다.]
칼라미티 사가에서는 핵을 쓰더라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낙사.
낙사는 무조건 죽음 판정을 띄우기 때문에, 체력이 설령 수십만에 달하더라도 즉사한다.
그래서 칼라미티 사가에서 핵쟁이를 만날 경우 낙사를 유도해서 잡는다는 건, PVP를 좀 한다 싶은 놈들 사이에서는 국룰처럼 흐르는 이야기였다.
"크, 이거 오늘 잠은 꿀잠 예약이구만."
나에게 상을 줘야겠다. 그렇게 생각해서 닭강정을 집어들며 화면을 바라보자, 기이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뭐야. 왜 귀환 안돼?"
10초 뒤 귀환이라며.
그런데 귀환은 커녕 카메라가 좀 낮아진 듯한 기분이 드는 거 같다.
"카메라가 좀… 절벽을 비추고 있는 거 같은데."
설마하니 공중부양 핵 같은 건 아니겠지?
싶어서 절벽에 다가가 카메라를 내리는 순간.
화면에서 내 사정이라고는 좆도 봐주지 않는 양심 없는 섬광이 터져나왔다.
"구와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