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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화 〉착짱죽짱 (3/274)



〈 3화 〉착짱죽짱

씨발 머리야….

깡소주를 병나발로  병 비운 것 같은 엠창 좆되는 두통이 몰려들었다.
분명 술은 끊었던 거 같은데, 바닥은 또  이렇게 차가워? 또 비 새나?
따위의 생각을 하며 흐릿한 눈두덩을 문질러 닦았다.

축축한  엎드려  모양이다. 흐릿한 정신을 겨우 가다듬으면서 눈을 깜빡이니, 천천히 눈 앞에 흐릿한 초상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명확한 생각이 떠올랐다. 오늘은 내가 출근해야 하는 날이라는 사실이.


"출근하기 싫다."


근데 내가 출근 안 하면 내 편의점은 금세 씹창이 나버릴 거다.
곧  결산도 다가오니 내가 좀 더 손을 써야한다. 알바새끼들한테 맡겨두기에는 제대로 하는 알바생이 있어야 말이지.
지긋지긋하긴 하지만…  점포를 위해 몸을 일으키려 바닥을 짚었다.

질퍽.


불쾌 지수를 한 순간에 서너 계단은 올려놓는 불길한 감촉이 들었다.
차라리 매끈매끈 하면 바퀴벌레겠거니 하겠는데…. 이 촉감은….

존나 큰데?
그리고 끈적하고 물컹한데?
그냥 물컹하면 모르겠는데 물컹하고 질퍽거리는데 끈적하기까지 하고, 심지어 미묘한 움직임마저 느껴진다.

우주 거대 부정형 바퀴벌레 같은 애미 없는 크리처가 아니라면 이건 내가  번도 보지 못한 유형의 생물체일 가능성이 높다.
나는 지금껏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래도 뭔지는 확인해야 소녀 같은 비명을 지를 거 아닌가. 목청껏지를 비명의 음색을 떠올리면서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난 예정대로 당황했다.

"이게 뭔 씨발…?"


그런 내 눈에 들어온 건 우리 집의 곰팡이가 치고 빠지고 있는 벽도 아니고.
그렇다고 서울의 안전한 취객용 잠자리 뒷골목도 아니거니와.
애초에 씨발 현대도 아닌 것 같았다.
칙칙한 공간에서는 내 미시감을 기묘하게도 자극하는 냉혹한 판타지성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럼 이건."

끈적.

아래로 내려가려는 눈을 애써 끌어올려 정면을 봤다.
족히 놀이공원의 바이킹보다는 2, 3배는 큰 초거대 물레방아 같은 게 눈에 들어왔다.
 장엄한 모습은 무릇 인간을 주눅들게 만드는 거대함이 있었다.
인간의 손으로 만들었다기엔 너무 거대하고, 자연물이라기엔 너무도 인위적인.
 마디로 아주 웅장한 자연경관 같은 느낌이 있었다. 나는 그걸 보면서 입을 떡 벌렸고, 매캐하고 기분 나쁜 공기가 폐부로 밀려들어오자 입을 꾹 닫았다.

뭐야 씨발, 인도 공기도 이거보단 낫겠네.
그래도 눈앞의 위대함은 찬미해 마땅했다.


"좆된다. 피라미드가 이런 느낌인가?"


근데 왠지 저거 낯이 좀 익은데. 뭔가 미묘하게 익숙한데다 뭔지 알 것 같았는데, 단박에 떠오르진 않았다.
착각이겠거니 하던 나는, '그럼 여긴 도대체 어디야!'를 외치기 전에 고개를 떨궈 내 불쾌지수의 원흉을 꼬나봤다.


"우왁!"

그건 내가 표현할 수 없는 종류의 무언가였다.
진짜 씨발 '우주 거대 부정형 바퀴벌레'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부정형의 몸체 전체에 불편하게끔 이리저리 다리가 흩어져 있었고, 그 다리는 제 역할을 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꼬물거리면서 바닥을 짚어나가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손을 빼내고, 손을 바지에 격하게 문질러 닦으면서 주변을 살폈다.


다 썩어가는 목재로 되어있는 플랫폼.
부정형에 수십 개의 다리가 달린 불쾌함의 현신 같은 벌레들.
고대 도시에서 나오는 구정물을 퍼나르는 초거대 물레.
한 5m 너머가 존나어둑해지는 지저.
번뜩이는 명료함으로 좆같다는 사실을 짚어낼 수 있었다. 나는 겨우 숨을 고르면서 더듬더듬 말을 이어나갔다.

"여긴…지저의 늪지잖아."

그제서야 상황 파악이 됨과 동시에, 내가 어제 어쩌다가 의식을 잃었는지 마지막 기억을 더듬어볼 수 있었다.

폐기 날짜가  냉동 닭강정에 내  주고 산 콜라  캔을 먹으면서 게임.
결투 좀 하다가매복.
만난 게 핵쟁이였고.
그 핵쟁이를 죽이고 보니 터져나온 풀HD 섬광.

합리적인 추론에 따르자면, 나는.


"게임 속이라고?"

에이 설마, 개꿈이겠지.
애써 왼손으로 눌러죽인 부정형 벌레의 촉감을 무시하고 있던 나에게, 이 세상은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올렸다.
기다렸다는 듯 나타나는, 익숙한 인터페이스.
거기에는 이렇게 써있었다.


[신을 죽이고 게임을 클리어 하십시오. 0/4]
[현재 회차: 2회차]
[보상: 귀환]

한 마디로 좆까라는 소리였다.



*


차라리 이게 진짜로 꿈이라면 깼어야만 했겠으나, 나는 깨어나지 못했다.


그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아무리 이상한 꿈이라고 하더라도 막상 꾸고 있는 동안에는 꿈이라는 생각을 아예 못하는 거.
꿈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에는 눈이 번쩍 떠지는 거.


근데 그러지 않았다.
그것 뿐이라면 좀 오래가는 꿈이라던가, 특이한 꿈이라던가 생각하겠는데.
 내 눈 앞에 있는 큼직한 대검을 보면서 상념에 잠겼다.

이걸 어떻게 인간이 들어올려서 쓰냐, 라는 것부터.
이게 이렇게 컸었나? 캐릭터랑 비율로 비교해보면 이거보단 작은 거 같았는데.
따위의 생각들을.


물론 가장 주가 되는 생각은 이거였다.

"…이게 또 씨발 어디서 난 거야. 여기 드롭도 아닌데."

이 거검은 그야말로 내가 깨어난 후에 둘러보니 가장 근처에 있던 물건이다.
그리고 난  검의 이름부터 스펙까지  알고 있다.


폭군의 검.
칼라미티 사가의 최종 보스 중 하나인 겨울의 폭군을 죽이면 얻을 수 있는 이 검은, 내 PVP 주력 무기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무기다.
게임 내 최장의 무기인데다 가장 무겁고, 동작이 그에 걸맞게 굼뜬 무기.
하지만 데미지 역시 게임 내 최고라서, 그야말로 죽창이라고 할  있을 무기다.
죽창을 폭군이 들고 있었다는 게 좀 기묘하긴 한데.


나는 칼의 손잡이를 잡았다.
차가운 암석 재질 특유의 거친 질감이 손에 감겼다.
그리고 힘을 빡 주고, 들어올리려고 해봤다.


"끄으윽… 끄륵."

입에서 거품이 줄줄 나올 정도로 힘을 주고 있음에도 들어올리는 게 고작이었다.

"후욱, 훅. 뭐가 씨발, 이렇게."


무거워.


높이 들어올린 거검은 묵직한 광택을 뽐냈다.
표면은 암석답게 미묘하게 울퉁불퉁 했으나, 날은 어느정도 존재했다.
이런 무게라면 이정도 날로도 충분히 베어낼  있을 것처럼 보였다.

쿵!


휘두를 수가 없어서 그렇지.
내려놓자마자 팔에 탈력감이 감도는  보니 휘두를 방법을 찾지 못하는 한 써먹진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빌어먹을 탈력감을 보자니.

"꿈은 아니네. 씨발."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게임 좆같이 하는 핵쟁이를 참교육한  죄라는 말인가?

"아오…."


대가리가 굴러가지 않았다.
애초에 이런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뭘 생각한단 말인가.
한숨을 내쉬면서 검을 의자 삼아 앉았다.


삐걱.


다 썩은 나무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에 기이하게도 현실감이 좀 돌아왔다.
이게 꿈이든, 아니든. 일단은 현실을 전제로 두고 움직이는  좋았다.
꿈이라면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테고, 현실이라면 목숨은 부지할 거 아닌가.

삐걱.


"엉?"

 아직 일어났는데.
나는 무의식적으로 널빤지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둑한 시야 끝.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지평.
그 너머에서 뭔가 다가오고 있었다.


삐걱
삐걱삐걱
….

"그르록."

그리고 내 눈 앞에 모습을 드러낸 씨발 이게 뭐야.


"…."
"그록?"


전신이 종기와 종양, 고름이 가득 찬 낭주머니 같은 걸로 가득한 허리가 굽은 인간.
키가 나보다 한참 작을 법한  소인은, 소위 말하자면 현지인이다.
이 지저의 늪지의 현지인.
그리고 그 현지인은, 코를 킁킁대거나 귀를 기울이며 애써 생명을 찾고 있었다.


 모습에 내 현실감각이 돌아왔다.


그렇다.
이 게임은 소위 PVE 고인물들도 삐끗하면 뒈지는 하드코어 게임.
그리고 나는 그 게임 속에 있다.
그 사실이 세찬 폭풍처럼 내 멘탈을 뒤흔들었다.

저걸 어떻게 해야하지?
와 씨발 진짜 개 좆같이 생겼네.
이 새끼도 엄마가 있겠지?
이 새끼 엄마는 한 술 더 뜨겠고.


그따위 생각을 하고 있자니 그 소인은 바닥을 더듬거렸다.


"그르르륵."

그 바닥에는, 내가 미쳐 찾지 못했던 음식이 있었다.
바로 닭강정.

이쑤씨개에 꽂힌 채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닭강정은 썩은 널빤지 위의 오물을 듬뿍 먹어 식어있는데다 좆같은 게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하수구보다 더 심각한 환경에서 유년기를 보낸 이 현지인은 MSG와 온갖 양념이 버무려진 냉동 닭강정을 환장하게 좋아라 하고 있었다.
이 현지인은 무릎을 꿇어 바닥을 킁킁 거리더니 닭강정을 집어들어 입에 쑤셔넣었다.


쩝쩝
으직


쩝쩝충 씹극혐이네.
마음 같아서는  현지인한테 유교의 참맛을 보여주고 싶지만, 지금의 내게는 쓰지 못하는 무기 한 자루와 맨몸 뿐이라 그럴 수 없는 게 한이었다.
사실 고름이 묻을까봐 그러는 것도 있지만.


나는 폭군의 검에 앉은 채로 이 쩝쩝충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고, 쩝쩝충은 한참이나 바닥을 핥고는 다시 일어나 어둑한 지평 너머로 사라졌다.

"…무기를 찾아야겠다."


삐걱.

폭군의 검에서 일어난 나는, 무기의 필요성을 절실히 체감했다.


*

물론 내가 극한의 PVP충이긴 하지만, 그게 PVE를 아예  했다는 얘기가 되는  아니다.
PVP를 하기 위해서는 결국 자기가 쓸 컨셉이나 스타일에 맞는 무기를 파밍해야 하니까.
그런 이유로, PVP 고인물들은 한정적으로 PVE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자기가원하는 물건이 어디서나오는지.
1회차 엔딩은 봐야하니 엔딩까지는 어떻게 가야하는지.
가는 길에 특별히 좆같은 건 없는지.


다행인지 아닌지, 지저의 늪지는 많은 아이템이 나오는 편에 속했다.
그 아이템 중에 필수로 파밍해야 하는  없었고, 실상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없이도 충분히 PVP를 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PVP 고인물들은 몇몇 아이템 정도는 지저의 늪지에서 건져갔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이템  하나를 찾고 있었다.

삐걱


"그륵?"



"그르륵."

난 손 안의 널빤지 조각을 멀찍이 던졌고, 눈 앞이 보이지않는 현지인은 그 소리에 이끌려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게임과 똑같이 이들의 인식 능력은 씹창나 있었다.
바로 눈앞에서 내 냄새를 맡거나 내가 달리지 않는 한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은신 플레이라도 하는 양 신중히 움직였다.


분명  근처였는데.
어둑하다보니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막연하게 물레 밑이라는 기억만이 있을 뿐이었다.


어둑한 지평 너머를 가까스로 다리로 더듬어가며 전진하길 몇십분.
등은 땀으로 범벅이고, 숨은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뭐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경계를 한 채로 움직이는 건 존나 빡셌다.

차라리 군대라도 다녀왔다면 덜 빡셌을 건데.


오랜만에 과거의 실수를 되새기며 감정을 추스리고 있자니, 감았다 뜨는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어? 씨발 저거?"


내 눈에 들어온 건 반짝이는 물체.
나는 그게 뭔지 알고 있다.
게임에서의 설정이 얼마나 적용되는지는 알  없지만, 이것까지 적용된다면.


헐레벌떡 뛰어가는 내 걸음 소리가 삐걱거리며 울렸다.

"역시."


내가 본 반짝이는 건 내가 찾고 있던 물건이었다.
정확히는 내가찾고 있는 아이템을 쥐고 있는 시체라고 해야할까.
배설물을 나르는 물레의 바로 아래, 한 구의 시체가 처참히 부패한 채 널부러져 있었다.
그 시체가  물건이내가 찾고 있던 검이었다.

옅은 붉은색 검신을 가진 한손검.
어느 유명한 용병이 쓸데 없는 싸움에 가담한 끝에 죽어 내버려진 결과.
한손검  탑티어라고 불리는 무기, 적조였다.
…꽤 배설물이 묻어있지만.

"2회차에서는 방패도 주는구나."


용병의 왼팔에 끼워진 방패는 분명 1회차에서는 볼  없던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이 방패 역시…. 똥오줌 범벅이라는 점이었다.
더러움을 감수하고 목숨을 건질까, 목숨을 감수하고 존엄을 건질까.
고민하던 나의 상념을 가르고 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삐걱


"…."


조용히 뒤를 도니, 익숙한 얼굴…이랄지 고름이 나를 보고 있었다.
입에 묻어있는 닭강정 양념을 보건데,  새끼는 쩝쩝충이었다.

"…그륵."

이제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방패를 슬그머니 빼내 왼손에 잡고, 한손검을 검집째로 꺼내 오른손에 쥐었다.


그 사이에, 쩝쩝충은 내 쪽을 보더니 잇몸을 드러냈다.
씨발 세상에, 저렇게 더러운 이빨은 본 적이 없었다.


"그로로로로로로록!"


"우와아아아아악!"

녀석이 고함을 지르자, 나도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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