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화 〉착짱죽짱 (4/274)



〈 4화 〉착짱죽짱

보통 게임 속으로 들어가는 배경의 영화, 만화, 소설 심지어는 게임마저도 시작부터 주인공 혼자남진 않는다.
혼자가 된다면 그럴만한 계기가 있던가, 그럴 무력이 있던가.
적어도 둘 다 아니라면 배신이라도 쌈박하게 당하던가 하는데.

"그르르럭!"
"씨이이이발!"

난 이 꼴이었다.
전신에 고름을두르고, 거적대기를 하반신에 두른 괴물들.
혹은 거적대기마저도 없는 새끼들.
 그런 놈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삐걱 삐걱 삐걱!


훅, 후욱.


기동성에 있어서는 내가 우세한 것 같았지만, 점점 거리는 줄어들고 가까워졌다.
그래도 아직은 버틸  있었다.
나름 운동도 했고, 체력에도 자신이 있다.
내가 정신공익이긴 해도 신체공익은 아니니까.

"우왁!"

다 썩어빠진 널빤지가 내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한쪽 발이 빠지자, 그 사이에 추격해온 스태미나 개쩌는 괴물은 내게 육탄 공격을 해왔다.


터엉!

반사적으로 들어올린 타지(Targe)에 부딪힌 괴물의 몸뚱이는 경쾌한 소리를 냈다.
괴물은 밀려나지도 않은  그 방패를 타고 넘어갔고, 고름은 금속부에서 흘러내렸다.
부딪힐 때 고름덩어리 중 하나가 터진 모양이었다.


씨발, 존나 역겹네.


흘러내리는 고름에 소름이 끼친 나는, 방패를 흔들어 털어내고는 바로 발을 빼냈다.


그리고 바로 발을 박찼다. 또 무너져 발이 빠질수 있지만, 그거보다는 따라잡히는 게  두렵다.
저 고름투성이인 새끼들한테 잡히면 불쾌감은 말할 것도 없고, 목숨도 부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달려나가려는  앞에, 얼굴의 고름이 터져 하관이 명확히 드러나는 고름쟁이 새끼가 나타났다.
아까 방패에 부딪힌 놈이었다.


검을 내밀어야 하나?
아니면 방패?
게임에서 보면 씨발 검으로 대쉬 공격하면 대충 쳐낼 수 있는데.


"그르락!"


검집에 들어간 검으로 쳐내는 건 결국 효과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방패를 내밀었다.


쾅!


"윽."

체구는 겨우 130cm 정도 언저리 밖에 안되는데 돌진력은 상당했다.
부딪히자마자 팔이 존나게 저려오는 걸 보자면, 방패를 내밀어 막는 건 좋지 않아보였다.
 개새끼들 뭐 이리 묵직해?
단신들은 폭발적인 순발력을 갖느니 하고 떠들었던 반 친구가 떠올랐다.
 새끼가 했던 말을 내가 믿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새끼들을 보노라면 그게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씨이발!"


결국 난 존엄을 포기했다.
밀려나지 않는 존만이의 머리를, 방패를 거두며 발로 차고, 그렇게 바닥에 뻗어버린 존만이를 뒤로 하고 달렸다.
존만이도 곧 저 고름쟁이의 무리에 합류해 나를 향해 증오와 뚜렷한 살의 기타 등등의 좆같은 감정을 품고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이렇게 계속 토껴봐야 의미가 없다는 걸.
이 장애물 경주의 끝에는 산산히 해체된 미남의 시체 뿐임을.


지저의 늪지는 정말 심플하고 기괴한 구조로 되어있다.

도시로 이어지는 최상층에 존재하는 출구.
널빤지로 이뤄진 고름쟁이들의 생활 공간인 러브하우스.
그리고 존나 큰 늪지.
이따금씩 있는 육로에서 이어지는 바로 이전 필드인 독의 하천.


그리고 지금 내가 열심히 다리를 놀리고 있는 러브하우스는 씨발 넓다고 해봤자 맵 전체의 10분의 1도 안된다.
이 공간은 최상층으로 올라가기 위한 공간에 불과했다.
아직까지 함정에 안 걸린  다행일 정도로 비좁은 공간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이렇게 도망쳐봤자 내가 갈 수 있는 장소는 한정되어 있다.

널빤지에서 내려와서 늪지로 몸 담그고 독이 걸려 뒈지던가.
올라가서 얘네 엄마나 보던가.

그리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자니 화딱지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스타팅을 좆같은 지저의 늪지로 가야하는 거지?
잘못한  핵쟁이지 올바르게 게임을 즐기던 내가 아니지 않나?
그리고 왜 이 애비 없는 씹새끼들은 나를  잡아먹어 안달이지? 닭강정도 쳐먹었으면서.
배도 고프고, 숨도 차고, 씨발 개좆같았다.
방패도 무겁고, 칼도 무거웠다. 씨발 그 시체에서 벨트 가져와서 쓸 걸 그랬다.

총체적으로 말하자면, 개빡쳤다.
그래서 나는 도망을 포기했다.
하지만 개죽음을 당하겠다고는 하지 않았다.

"…개새끼들아!"

얌전히 도망치던 사냥감이 등을 돌려서 마주 달려오니, 고름쟁이들이 순간적으로 당황했는지 멈춰섰다.
그리고난 제일 앞에 있던 쩝쩝충을 알아봤다.

"내 닭강정 내놔, 씹새끼야!"

뻐억!

방패를 든 손으로 날리는 훅이라 속도는 느렸지만, 이 병신은 반응도 하지 못했다.
뼈가 부러지는 감촉이 손에 전해졌다.
방패의 모서리로 맞았는지, 녀석의 턱이 너덜너덜 해졌다.

하지만 일격이전부다.
이 새끼들이 벌써부터 다시 덤벼오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두  이상 똑같은 방법이 먹히리라고는 나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 이만!"


넘어진 쩝쩝충을 뛰어넘고, 왠지 익숙한 널빤지 위를 내달렸다.
아무리 내가 PVE를 하는 새끼가 아니라지만, 두 번 이상 지나간 길을 까먹을 정도로 금붕어 새끼는 아니다.
분명히 가까워지는 목적지에, 나는 마지막 남은 숨을 짜냈다.

내 뒤를 곧장 따라 달려오는 고름쟁이들과 존만이, 쩝쩝충.
특히나 쩝쩝충은 내게 증오를 품고 고름인지 침인지를 줄줄 흘리며 따라붙었다.

하지만 내가 더 빨랐다.
나는 내가 놓고갔던 존나 큼직한 대검을 훌쩍 뛰어넘고, 돌로 된 골목 속으로 몸을 비집어 넣었다.

스르릉

드디어 검집에서 빠져나온 검날은 미약한 불빛을 반사하여 옅은붉은색으로 빛났다.
나는 왼손에 들고 있던 방패를 놓았다.
왠지 그래야할  같았다.


"그르락!"
"아가리 닥쳐!"


콱!


나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오던 쩝쩝충이 드디어 유교의 참맛을 맛봤다.
쪼개진 두개골에서는 피보다는 고름이 더 많이 나오는 듯 보였고, 예리한 검날은 고름으로 젖어 끈적거렸다.
하지만 아직 할 수 있다.
나는 주춤대며 쓰러진 시체를 눈여겨 보는 괴물딱지들한테 외쳤다.


"덤벼, 애비 없는 씹창들아!"


입에서는 단내가 나고.
숨은 존나 거칠고.
옷은 땀으로 푹 젖어서 찝찝하고.
손은 씨발 고름이 흘러내려서 존나 기분 나쁘지만.


아직 싸울수 있다.


"덤비라고!"

여기서 수를 줄여놔야 움직이기 편할텐데,  개새끼들은 지능이 있는 건지 막무가내로 달려들지 않았다.
오히려 주춤대며 물러나더니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 모습에 이가 갈렸다. 이 씹새끼들이?

"오냐, 도발해줄게 씹새끼들아!"

도발의 국룰은 티배깅이지만, 그럴정도로 공간이 넓진 않았다. 끽해야 폭이 1m 가량 되니까.
대신 할 수 있는 도발은 있었다.
난 유교로 교화된 쩝쩝충의 뚝배기를 발로 찼다.


"느그 애미 쩔더라!"
"그르롸아악!"

효과는 만점이었다.
어느 쪽이 먹힌 건진 모르겠지만.

나는 비좁은 골목에서 달려드는 또 하나의 고름쟁이를 쪼개놨다.
영화에서 보니까 이런데에서 싸우다가 칼날이 껴서 적의 무기를 뺏고 그런 게 있었는데, 내가 들고 있는 적조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그 뒤로 방패에 부딪혔었던 하관미인, 존만이가 나타났다.


"흐럅!"

퍼억!

관자놀이로 파고든 검날이 반대쪽으로 스무스하게 빠져나오자, 하관미인이 두뇌미인이 되어 쓰러졌다.
그렇게 연달아 베고 있음에도 적조에는 흠집조차 없었다.
그 이유야 뻔했다.
적조는 명중 시 내구도 소모 없음이라는 개정신나간 특징을 갖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칼 끝은 빛나고, 칼날은 충실하게 심판을 내렸다.

콰득!

쌓이기 시작하는 시체를 뛰어넘으려고 수를 쓰던 새끼한테는 칼날을 찔러넣고 손목을 비틀어 죽였고.


서걱!


 좋게도 대충 내지른칼날에 목이 잘려나간 놈도 있었다.

하지만 심판도 점점 더뎌지고 있었다.
내 체력 문제도 있었지만,이 새끼들이 점점 간을 보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뭐, 뭐야 씨, 후욱, 발놈들아."

콱! 콱!

체력이 딸려 완전히 죽이지 못한 놈이 꿈틀대서, 칼날로 머리를 찍어 죽였다.
아까까지라면  사이에 밀고 들어오려고 했을 놈들이 오히려 물러나고 있었다.

씨발, 이렇게 힘든  훈련소 외엔 없었던 거 같은데.


내가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자, 놈들이 잇몸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점점 더 물러났다.
어둑한 시야 밖까지.


"엉…?"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나는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했다.
내려놨던 방패를 집어들고, 왼쪽을 방어하면서 오른쪽을 검으로 겨눈다.
그 상태로 쌓여있는 시체를 꾹꾹 눌러 밟아 밖으로 나왔다.

"옆에 기습도 없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양 옆은 깨끗했다.
오히려 이 새끼들은 너무 멀리 있었다.
이 새끼들이달려든데도 다시 구멍에 들어가서 배수진을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뭔가 존나게 섬뜩했다.
시야 끝에서, 겨우 보이는 거리에서 전부 잇몸을 드러낸 채로 하늘을 보고 있었다.
아니지, 씨발 하늘이 어딨어 여기에.

대충 천장이라고 할만한 무언가를 바라보던 새끼들은 손을 맞잡았다.
그정도로 존나 많았다.


이대로 '포위섬멸진'이라도 펼치려는 건가?
다시 구멍으로 들어가?


그렇게 생각하는 나에게 엿이라도 먹이려는 거처럼 놈들은 소리 높여 하늘을 향해 외쳤다.

그  로 로  록!
 로  로 로 로 록!

"뭐, 뭐야 씨발."


왠지 존나게 익숙한데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도 좆같은 방향으로 익숙했다.
마치 지역 보스 컷씬이라도 나올  같은….


…씨발 설마?

"아, 아니지 씨발놈들아? 장소도 다르잖아.  씨발 좆도  했다고. 씨발 이벤트 트리거는 아무것도  건드렸다니까?"


그 로 로 로 로  로 록!

"야! 야 시발놈들아! 말 좀 들어줘 씨발!"




그렇게 하울링하던 고름쟁이들이 일제히 침묵했다.
그러니까 좆되게 섬뜩했다.


"…미안한데 소리 좀만 더 질러주면 안될까? 오줌 지릴 거 같은데."

그때였다.


그 오 오 오  오  오 오 오 오   


존나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씨발, 드럼 연주처럼 몸 안까지 울렸다.
 거지 같은 감각에 내가 이를 악물었고, 고름쟁이 놈들도 이를 악물었다.

…콰아앙


아득한 멀리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파괴음.
나도, 고름쟁이들도 일제히 그 파괴음에 고개를 돌렸다.
인간이 만들 수 없을 것만 같은 거대한 크기의 물레가 무너지고 있었다.

마치 종잇장을 찢어내듯이 무너지는 풍경에 내가 입을 떡벌리고 있자,  어둠 너머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보이지 않지만, 무언가 아주 거대한 것이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바닥에 눕혔다.
고름이나 오물 따위가 티셔츠에 깊이 스며드는 건 좆도 신경  쓰고.


슈우우우


콰과가가가가가가가각!


엎드린  몸 위로 거센 바람이 지나가고, 눈을 들어올리니 아무것도 없었다.
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다른 걸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고름쟁이들도.
썩은 널빤지 플랫폼도.
군데군데 널빤지를 비집고 올라온 나무들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 삭막한 풍경에 내가 고개를 들어올리자, 그건 거기에 있었다.


거대한, 인간을 '따위'로 보이게 하는 촉수.
고름으로 덮이고,  촉수 표면에 무수한 입이 달린 거대한 무언가.
지저의 늪지의 보스이자, '도시'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필수로 잡아야 하는 몬스터.
늪지의 요람.


그게 나타났다는 사실보다  최악인 건.


"씨발, 엄마한테 이르기 있냐?"


그게 나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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