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화 〉착짱죽짱 (5/274)



〈 5화 〉착짱죽짱
늪지의 요람.
이름만 들으면 평화로운 무언가나 필드일 것 같은 이름과는 다르게, 이 보스는 가장 좆같은 외양을 가진 가장 좆밥 보스 중 하나였다.
하지만 보스전은 그 약함과는 다르게 꽤 독특한 방식이다.
보통 기거하는둥지나 거점 등에 쳐들어가서 서로 뚝배기를 까는  보통의 보스전이라면.
늪지의 요람은 이벤트씬에서 바로 보스전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 배경은 대충 이렇다.

1. 늪지의 요람은 설정상 성인 남성을 잡아 겁탈해 자신의 새끼인 고름쟁이를 늘린다.
2. 그 겁탈을 위해 늪지의 요람은 캐릭터를 촉수로 감싸, 자신의 심장이자 생식기관으로 데려간다.
3. 하지만 캐릭터는 좆까라고  심장이랑 대판 싸우고, 심장이 터진 늪지의 요람은 그 큰 크기가 무색하게 뒈진다.


즉, 심장으로 데려가는 특급 라이드를  후에는 그냥 칼 몇  박으면 끝난다는 이야기다.
거기에 존재하는 약간의 문제를 제외할 수만 있다면, 정말쉬운 보스전이 될  있을 거다.
그 문제란 바로, 게임일 때는 캐릭터에게 다소 가해지는 데미지는 무시할 수도 있지만, 지금의 내 육체는 개좆밥 일반인이라는 거다.
  눈 앞에서 흔들리는 존나 큼직한 촉수를보았다.

고름이 줄줄 흐르는 촉수.
무수하게 나있는 상어입 같은 주둥이.
 고름이 줄줄 흘러 떨어진 자리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타는 듯한 냄새.

와 씨발 고름에 왜 데미지 입나 했었는데 산성이었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촉수의 끄트머리, 뾰족한 부분이 갈라지더니 무언가 쑥 튀어나왔다.
그건 눈알이었다.
그 모든   내 이성은 이렇게 판단했다.


잡히면 심장에 도착하기 전에 뒈지겠는데?
생존은 커녕 도저히 맞서는 것조차 가능성의희박해보이는 거대한 촉수였다.

물론 플레이어블 캐릭터야 초인인데다 갑주까지 있으니 저런 거에 잡혀서 빨래마냥 쭉쭉 짜여도 멀쩡하겠지만, 난 갑옷은커녕 씨발 맨발이다.
입고 있는 티셔츠에 방어력을 기대하기엔 현대 사회의 섬유는 그정도로 먼치킨은 아니었고, 마찬가지로 입고 있는 면바지는 방어력은 커녕 독이 스며들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설령 내가 좋은 방호구를 끼고 있다고 한들, 내 육체가 저걸 버텨낼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어차피 나는 일반인이고, 저건 100% 자연산 다크 판타지 괴물새끼였으니까.


좋아, 튀자.
저거랑 싸워서 이기긴 커녕, 저 촉수에 스치기만 해도 나는 뒈진다.
 뒈지더라도  플랫폼이  무너지면 똥독에 다이빙이다.
전신 염증 끝에 쇼크사 혹은  늪지에 사는 좆같은 벌레들한테 물려 뒈지기. 선택권이라고 할 것도 없는 지극히 소극적으로 제시된 선택지에서 내가 고를 만한  없었다.

다행히  긴 생각 속에서도 촉수는 눈알을 부라리며 나를 빤히 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혹시 교감이라도 할 수 있을까?
일말의 기대를 걸고, 누운 채로 말을 붙였다.

"…친구야?"


그 오  오 오  오


아니네 씨발.
이 새끼의 촉수에 달린 입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고, 귀청이 떨어져나갈 듯 했다. 무슨 밴드 공연을  귀청에 때려박고 듣는 것만 같은 개좆같음이 나를 휘감았다.
차라리 연주를 잘한다면 모르겠는데, 존나 못하는 거인 밴드가 있다면 이정도겠거니 싶은 시끄러움이었다.
그런 탓에 귀는 미친듯이 아파오고, 내장이 진탕이 되는 기분이었다. 둥둥 울리는 속을 억지로 추스리면서 고개를 떨궜다.
염병, 토 나올 거 같네.
결국 버티지 못하고 이를 악물고 귀를 막았다.

슈우우우


"씨발."

그 사이, 나는 막고 있던 귓바퀴 너머로 들려오는 소음을 듣고 욕지거리를 뱉었다.
아주 거대한 무언가가 들어올려지는 소리.
요람이 뭔 짓을 하려는지는 알아볼 필요도 없었다. 나는 바로 바닥을 박찼다.

만약 이게 내 머리 위로 내리찍는 거면 이렇게 피하는  의미가 없는데.
씨발 실수하면 뒈지는데.
근데 어떤 방향이 실수가 아닌지  수가 없었다.
그냥 운에 맡기고 몸을 내던졌다.
차라리 뒈진다면 즉사해서 고통을 느낄 것도 없이 뒈지기를 희망하면서 눈을질끈 감았다.


콰드드득!


그 순간, 내 다리 바로 아래에서 나무 파편이 어지럽게 튀었다. 튀어오른 나무 조각들이 다리를 긁었으나, 입고 있는 바지를 겨우 스치고 지나가는  전부라 고통은 없었다.
관성적으로 몸을 돌려서 뒤를 보니 존나 가관이었다.
폭군의 검이랑 시체 몇 구, 돌로 된 골목이 있던 자리는 마치 포토샵 지우개로 쓱 지워낸 것처럼 깔끔했다.

아니, 사실 그렇게 깔끔하진 않았다.
맞으면 진짜 곱게 뒈지진 못하겠구나 싶을 정도로 개박살이었다.
돌은 파편이 어지럽게 흩어져있고, 플랫폼은  쪽이 부숴―

"으아악!"


떨어진다!
저쪽에 지지하는 기둥이 있었는지, 플랫폼이 기울기 시작했다.
다행히 검집을 씌워놓지 않은 적조는 썩은 플랫폼을 두부 찌르듯이 꿰뚫었고 그걸 붙잡은 나는 간신히 몸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만약 칼날을 아래로 하고 찔렀으면 그대로 플랫폼을 찢어버리면서 독에 반신욕을 했겠지만, 대충 찌른 칼날이 옆으로 되어있었던 탓에 겨우 목숨을 건졌다.

"운동하길, 후욱, 잘했네."

하마터면 그대로 떨어져 똥독 올라 뒈질 뻔 했다.
퇴근하고 짧게 1시간 정도만 운동했던  도움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이런 꼬라지가 될 줄 알았으면 헬스라도 끊고 열심히 운동할 걸 그랬는데.

허탈하게 웃으며 숨을 몰아쉬고 있으니까, 부숴진 플랫폼 사이로 무언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뭔가 단단한 눈꺼풀에 덮인 존나  눈알이었다.
그 플랫폼 전체를 때려부수면서 내리꽂혔던 촉수에는 흠집 몇 개만이 추가된  전부였고, 데미지라고 할 것은 전혀 없어보였다.

그 눈동자가 눈을 번쩍 뜨더니  내 눈높이보다 높게 올라갔다.
마치 촉수가 대가리인 생물처럼 꼿꼿이 선 촉수에는 무수한 아가리가 있었는데,  아가리 중 하나가 열리더니 나를 향해 겨눠졌다.
그러자 머릿 속으로 커뮤니티에서 봤던 늪지의 요람 이상성욕 글이 떠올랐다.


'꼴린다.'
'졸라 음탕하게 생겼네. 이빨만 좀 빼면 씹가능일듯.'
'산란플도 가능하겠지?'
'늪지 마망 나 주거어어엇!'

씨발, 저게 가능이라고? 미친 개새끼들.
아가리 속에서는 무슨 내장 속에서나 볼 법한 꾸물꾸물한 주름이 잔뜩 새겨져있는데, 그 주름마다 수십, 수백의 이빨이 자라있었다.

'늪지의 마망 촉수로  발 빼면 극락감. 고름쟁이 존나 많은 거 보면 모름?'


정신나간 새끼들.
그 새끼들이 이걸 보고도 가능하다고 할까?
가능은 커녕 씨발 살아남는 게 가능이나 할지 알  없는 비쥬얼이었다.
나는 아니었으므로, 밀려오는 좆같음과 토악질을 겨우 참으면서 뒤로 물러났다.




아오 씨발.
심지어 막다른 길이었다.
차라리 여기가 무너진 거면 돌벽을 따라서 토낄 수라도 있겠는데,  등 뒤는 존나 큼직한 나무 첨탑이었다.
 와중에 촉수는 착실하게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무슨 유기견한테 접근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혹시 나와 친구가 되고 싶은데 너무 거친 스킨쉽을 택한 게 아닐까?


쩌어억


아니네.
아가리들이 열리고 그 안의 이빨이 불쑥 튀어나와 입 밖까지 튀어나왔다.
내가 두 번이나 촉수를 피한 것 때문에 큰 공격은 안 먹힌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꿀꺽.

발악이라도 해봐야하지 않을까?
근데 어케 발악하냐?


보통 영화나 그런 거 보면 주마등 떠오르면서 방법이 보이던데.
애석하게도 난 주인공이 아니고, 이 세계는 영화나 만화도 아닌 모양이었다.


"하, 좆같네."

열린 아가리 중 하나에서 거친 숨이 토해졌다.
냄새가 역겨운 건 고사하고, 이 새끼가 날 먹으려고 흥분해있다는 건 느껴졌다.
아니면 날 따먹으려고 흥분했던지.

그 순간  머리에 기책이 스쳐지나갔다.
 손에 들려있는 옅은 붉은색으로 빛나는 외날검.
설정상 피를 먹고 스스로를 단련한다는 이 검은, 명중한다면 내구도가 소모되지 않는 무기였다.


그렇다면 존나게 크고 강력한 공격을 맞더라도, 부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설정이 그대로 적용된다는 걸 전제로 하긴 하지만.

어차피 뒈지는 건 매한가지라면,가만히있다가 뒈지는 거보다는 빅엿이라도 먹여주고 뒈져야지.
그게 내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누가 알까?
이 도박으로목숨을 건질지.


"씨이발, 해보자고."

몸을 가까스로 일으키고, 적조를 양손으로 잡았다.

해보자, 주현성.


촉수는 이빨을 내밀고 천천히 다가오던 그대로 멈춰섰다.
눈알이 희번득하게 나를 꼬라보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저 새끼가 짤짤이만 오질나게 털겠고, 그럼 난 저항할 것도 없이 뒈질 거다.
어떻게든 큰 공격을 끌어내야 한다.


적조의 칼날은 별로 길지 않아서, 딱 봐도 휘둘러봤자 이빨에 막힐 것 같았다.
하지만 마침 내게 근접해있는 아가리는 닿을 것 같았다.


푹!

그래서 난 아가리를 찔렀다가.


푸슉―

빠르게 칼을 빼냈다.
촉수는 몸을 크게 뒤틀었다.

그 오 오 오 오 오  오 오 오  오 오!


지금 늪지의 요람이 느끼는 기분은 어떨까?
분명 존나 빡쳤겠지.
그리고 그건 내가 노리는 바였다.


크게 뒤틀더니 보이지 않는 어둠 너머로 사라지는 촉수.
나는 무엇이 올지  수 있었다. 분명 존나 큼직한 공격을  것이다.
개빡쳤다면 크게 한 방 쳐야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씨발 크게 맞받아칠 준비가 되어있었다. 숨을 고르며 칼을 들어올렸다.


"후우… 후우."


내게 특별한 부분은 없었다.
동체시력도, 근력도, 민첩함도 다 평균 정도 밖에는 되지 않았다.
특히  하드코어 게임 속에서는 평균 이하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내게도 잘난 게 하나있고, 그걸 당당하게 말하자면.
난 이 빌어쳐먹을 세계에서 가장 사람을 잘 죽이는 새끼였다.


그리고 그 PVP 빡고인물로서 말하건데, 가장 강하게 틀어박히는 공격이 있다면.

"으아아아아!"


반격이다.
숨을 토해내며 고함을 지르자,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내게 날아오는 육중한 촉수. 그 말단조차 보이지 않는 거대한 위압감에 움츠러들 뻔 했지만, 나는 악과 깡으로 검을 내리질렀다.

후우우우우웅

팔에는 이미 통증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끔찍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칼날은 몇 번이고 촉수에서 엇나가려고 덜그럭 거렸고, 그 촉수와 칼날이 부딪히는 짧은 순간이 영원처럼 길었다.
욕지거리가 치솟고, 빈 뱃속에서는 위산이 솟아오르고, 잇몸에서는 피가 줄줄 새는 것 같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칼날을 몇 번이고 고쳐쥐고, 팔에 힘을 주었다.
베는 건 나같은 초짜가 할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그저 이 육중한 돌격에 맞서는 정도로 충분하다.
칼날은 설정대로라면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버틸 수 있다면, 촉수는 제 풀에 잘려나갈 것이다.


"끄으으아아아아아아!"


뱃속을 비워내는 포효와 함께 감기려는 눈꺼풀을부여잡고 팔을 유지하니.


촤아아아악!
콰아아아

격한 해방감이팔을 감싸고, 동시에 아까보다 더 심각한 통증이 밀려들어왔다.
하지만 난 비명을 지르지 못했다.
멀어지는 시야로 잘려나간 촉수가 꿈틀대는 게 보였다.

"씨…."

칼은 버텼지만,  몸은 버티지 못한 것 같았다.
어느새 엄청나게 작아진 촉수는 격한 부유감과 함께 작아지고 있었다.


그제서야 난 내가 간과한 걸   있었다.
잘라내는  좋지만, 그렇다면 충격이 그대로 내 몸을 덮쳐 저 멀리로 날아가리란 걸.

나는 눈을 감으면서, 생각했다.
만약 내 방에서 깨어난다면, 뭔가 맛있는  먹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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