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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화 〉착짱죽짱 (11/274)



〈 11화 〉착짱죽짱

"구에에엑…."

본론부터 얘기하자면, 짱깨는 도망치지 못했다.
로브 차림의 짧딸막한 새끼와 다리도 길쭉길쭉하고 핸섬한데다 키까지 큰 가죽바지 입은 놈이 추격전을 벌인다면 그 결과는 명확했다.
나는 내 앞에 배빵을 두들겨 맞고 뻗어버린 짱깨를 내려다봤다.

키는 한 150~160 언저리 되는 것 같았다. 로브 차림에 가려져서 잘 몰랐지만, 목소리와 얼굴로 미뤄보건데 여자였다.
짱깨, 핵쟁이, 여자, 뉴비. 뭐  붙일 게 있나?

"주현송씨!"
"주현성입니다."

그리고 그런 뒷골목에 아는 얼굴이 나타났다. 허리춤에 멘 검을 뽑아들고, 심각한 얼굴을 한 세네카였다.

"아, 죄송합니다."


원래라면 이름을 다소 잘못 부르더라도 그러려니 하겠는데, 지금 난 존나 짜증나 있었다.

"그보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 여자는 누구고요?"


세네카는 다가오다가 뒤늦게 배를 움켜쥐고 뻗어버린 짱깨를 눈치챘고, 나에게 당혹스러운 표정을 향했다.


"제가 여기에  이유입니다."
"…복잡한 사정이 있겠군요."

이런 오해는 나쁘지 않았다. 이 씹창 새끼가 뭐 죄인이라서 여기까지 쫓아온 야만민족의 처형인 그런 걸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이 개좆만한 새끼 때문에떨어진 건 맞으니까, 그렇게 틀린 오해도 아니긴 했다.
죄인인 건 맞지. 핵쟁이인데.


"실례가 아니라면 간략하게라도 설명해주십시오."
"죄인입니다. 제가 지저의 늪지를 거쳐  도시로 오게 된 것에는 이 여자가 얽혀있습니다."
"아…."


나는 뻗어서 부들부들 떠는 짱깨의 후드를 잡아 들췄다.


"meimeiG, 맞나?"

내 말에 고개를 들어올리는 여자의 뺨에는 토사물이 묻어있었는데, 아마 내가 배빵 할  토해낸 것인 모양이었다. 씹, 존나 더럽네.
얼굴은 반반한데,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음식물 쓰레기에 쳐박으면 구역질 나는 법이다.


"긴 말은 안 할 거다. 돌아가는 방법을 말해."


이 좆같은 판타지 세계의 모험이 싫었던 건 아니다. 나름의 스릴과 재미도 있었고.
목숨을 담보로 하지만 않았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 거다.


meimeiG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우윽, 무슨 소리야… 네가 날 여기로…."

풀썩


오히려 반문으로 내 머리를 헤집어놓더니, 그렇게 실신했다.
도대체 무슨 개소리야?
내가 데리고 왔다니?
게다가 왜 중국어가 아니라 한국어를?
풀리지 않은 의문을 곱빼기로 만들어놓고 기절한 짱깨를 보면서,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


"아, 오셨군요. 오늘도 수고 많으셨…."

겨울의 처녀는 말을 하다말고는 멈추더니 내게 다가왔다.

"손님분들을 데려오신 건가요?"
"한 명은 손님이 아니고, 한 명은 손님입니다."


표정이 보이지 않았으나, 겨울의 처녀는 심기가 좋지 않은 듯 했다.
그녀는 방 구석의 의자에 다가가 앉았고,세네카는 머쓱한 표정으로 짊어지고 있던 짱깨를 바닥에 내려놨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세네카가 질문했고 나는 고민했다.
죽이려면 간단했다. 적조를 뽑아서 목을 가르면 그만이다.
하지만 거기엔 걸리는 게 두 개가 있는데, 이 새끼가 살아갈 가치가 없는 짱깨 핵쟁이긴 하더라도 나와 같은 인격체이자 인간이라는 게 첫번째였고 두번째는  새끼가 나한테 한 말이었다.

"일어날 때까지 기다립시다. 무장은 했는지 확인해보겠지만요."

내가 다가가 무장을 수색하려고 하자, 세네카가 손을 내밀어 막았다.

"제가 하겠습니다."

그제서야 나는 눈을 떨궈 로브를 두르고 있으나 풍만한 가슴을 여실히 드러내는 짱깨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음,알겠습니다."


보는 눈에 좋지 않다, 이런 거겠지.
세네카는 금세 짱개가 차고 있는 장검 한 자루와 방패 한 개를 꺼내  앞에 내려놓았다.
하필이면 저거네.


짱깨가 갖고 있던 장비는 내 눈에 익으면서, 한 편으로는 이 지랄이 나기 전 마지막 PVP에서 봤던 장비 그대로였다.
갑주를 입고 있지 않다는   신경 쓰이긴 했는데, 나도 폭군의 검 한 자루 밖에 안 줬으니까.
그냥 그러려니했다.
정 신경 쓰이면 일어났을 때 물어보면 되는 거고.

씹새끼가 일어나는데  시간이 들어가진 않았다.
내가 슬슬 무료해질 무렵에 짱깨의 얼굴에 물을 뿌렸거든.


"콜록, 콜록."
"깼냐."

반사적으로 일어나려던 그녀를, 세네카가 무릎으로 눌러 막았다.  검을 꺼내려는지 허리춤을 뒤지는 동작이 어색했다.
이 새끼 싸워본 적 없네.


"이거 찾냐?"

나는 이미 세네카가 거둬 내 손에 쥐어줬던 검을 꺼내들었다.

창백한 겨울이라는 이름이 붙은,  게임의 상징적인 무기이자 좆병신 무기였다.
냉기 데미지가 달려있으나  게임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몬스터는 냉기에 면역, 저항을 갖고 있어 거의 먹히지 않는 무기였다.
그래서 멸칭이지만 창백한 빠따라고 불리기도 했다.
냉기 데미지는 무시하고 검에 달려있는 물리 데미지로만 패는 무기라는 점에서는 얼추 맞았다.


"이익…."


거기에 방패 역시 아이템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이것도 병신 방패라는 점.


공격에 드는 지구력 소모를 다소 줄여주는 편이지만 방패로서의 능력은 떨어진다.
반드시 양손으로 써야하는 무기에나 좋은 효과지만 한손 무기를 강요하는 기묘한 방패였다.
하지만 룩은 그럭저럭 하는 편인데다 구하기도 쉬운 편이었다.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얻을  있는 판금 갑옷에 이 방패와 창백한 빠따.
 짱깨 새끼가 쓰던 세팅은 이른바 뉴비 세트라고 불렸다.
그리고 온갖 고인물들은 그런 룩을 한 뉴비를 보면 침을 줄줄 흘리며 사냥했다.

"무장도 없는데다 쪽수도 후달리는데, 얌전히 포기하고 취조에 응해라. 아니면 느그 정부가 으레 하듯이 조져버린다?"

내 협박에 그녀는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떨더니.

"흑…."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 그래. 울만한 상황이지.
저 새끼의 진술이 팩트라면 자기를 게임 속에 떨궈놓은 새끼가 찾아와서 조져버리고 NPC 둘 데리고 와서 협박하는 건데.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주석을… 모욕하지마…!"
"…엉?"

씨발 우는 이유가 그거 때문이었어?
어이 없어하는 나와는 다르게, 세네카는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해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고, 겨울의 처녀는 별로 관심도 없어보였다.


"하, 미치겠네. 미친 음습 중화자아 새끼. 너도 막 중화는 위대하다 그런  하냐?"

짱깨는 대답하지 않고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한국어 하는 주제에 공산당이나 빨아재낀다니, 너도 참―"
"무슨, 개소리야. 우리 말 하고 있잖아."

엉?
짱깨한테 우리 말이라면 대충 중국어일텐데.
내가 짱깨의 말을 쓸지에 대해서는 차치하더라도, 난 씨발 중국어에서 알아듣는  차오니마 밖에 없다.

"…내가 지금 중국어 하는 걸로 들린다고?"
"그, 래."

코를 훌쩍이고, 눈물을 머금은 채로 억지로 대답하려는 그녀의 표정에서는 거짓말을 하는 기색은 없었다.


"하, 씨발 미치겠네."


취조의 의문 해결은 커녕, 의문이 쌓이기만 하는 상황에 나는 기가 찼다.
그래서 나는 세네카를 대신해서, 직접 짱깨를 앞에 앉혀두고 취조했다.
대화를 나눠본 결과, 대충 결론을 내리자면.


"너는 내가  여기로 밀어쳐넣은  알았고, 나는 네가 나를 이 세계로 보낸 줄 알았으며, 나는 네 말이 한국어로 들리는 반면 너는 짱깨어로 들린다?"
"짱깨라고 하지마!"
"뭘 잘했다고 소리를 질러 핵쟁이 새끼가!"

내 정리에 토를 달길래 윽박지르니까, 짱깨는 어깨를 흠칫하더니 또 다시 눈물을 흘렸다.


"소, 소리 지르지 않아도 되는 거잖아… 무섭다고…."

뭔데.


"나는 자오 메이라는 이름이 있어… 차라리 이름으로 불러…."

졸지에 이름을 알게 되었지만 별로 기쁘진 않았다. 이 게임에서 나갈 없다는 사실만  명확해지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아까의 차오니마는 어떻게 듣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씹, 머리 아프네.

그래도  세계에 떨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응."
"게임이 어려워서."
"응…."
"핵을 써서라도 깨보고 싶어서?"
"…응."
"핵을 씨발 뭔지  모르겠는 처음 보는 언어의 사이트에서 대가리 터진 빡대가리 마냥 받아서."
"…."
"그걸로 게임을 하다가 나한테 죽었는데."
"…미안."


 이상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나머지는  알고 있는 거였으니까.
이 갈리는 기분이 이건가?
그래도 다행인 게 있다면, 세계관과 스토리에 애정이 있어서 핵을 써서라도 게임을 하고 싶어하는 진성 게이머의 정신은 갖추고 있었다는  아닐까.


"에휴."

결국 원점이다. 핵쟁이를 찾으면 뭔가 좀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건만.

착잡해하고 있자니, 세네카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그럼 심문은 중단입니까?"


얼추 그런 눈치를 받은 모양이었다.

"예,  그렇게 됐네요."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잘됐군요. 야만인은 강직하고 강하다고들 했으니,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아, 그걸 잊고 있었네.
비쥬얼적으로 본다면 자오 메이가 전력이  거라는 기대를 접는 게 맞겠지만, 세네카의 냉막한 표정에서는 뭔가… 꿍꿍이가 느껴졌다. 단순하게 말리기엔 좀 그랬다.
게다가, 같은 플레이어인 이상 이것저것 가르치기 편하기도 할테고.


하지만 이건 전적으로 이 짱깨가 정할 일이었다.


"어… 그게. 저는."
"물론 아니시라면 어쩔 수 없죠. 원하시는대로 도시 밖으로 내보내드릴 생각입니다. 이렇게 예쁜 분을 괴물들 사이에 던지는 것 같아 걱정이지만, 나가기를 그렇게 희망하신다니… 역시 어쩔  없죠."

추방이란 말이었다. 그리고 추방은 다르게 말하자면 사형이었다.
자오 메이가 이 배경에 대해서 알까, 싶었는데 꽤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파리해진 안색으로 고개를 붕붕 끄덕였다.

"예, 무, 물론 도와야죠. 예."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눈가를 문질렀다.



*


"네 방패 병신이야."
"근데 예쁘잖아."
"목숨보다 룩딸이다?"
"그건 아닌데…."


나는 세네카에게 내가 알고 있는 본진의 입구를 알려줬고, 그녀는 지도를 한참간이나 들여다본 끝에 방을 나섰다.
아마 지금 쯤 자경단이 입구를 봉쇄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출발하기  마지막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적조에다 방패를 챙기고 횃불을 배낭에 끼워놓고 랜턴을 그 배낭 깊숙히 집어넣었다.
꺼내는데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못 써보고 깨지는 것보단 나았다.

"으익, 아파요! 아파! 언니!"
"아무래도 사이즈가 조금 작은 모양입니다."

아닐 건데, 저거 아이템이라 사이즈  맞게 되는데.
가슴이 낀다던가, 답답하다던가. 그렇게 징징거리는 자오 메이에게 겨울의 처녀는 충실하게 갑주를 입혀주고 있었다.
자오 메이가 갑주를 입고 있지 않았던 이유는, 내 가죽 갑옷 때와 똑같이 입을  모른다는게 그 이유였다.


그래서 겨울의 처녀는 그때처럼 자오 메이에게 갑주를 입혀주고 있었는데, 왠지 미묘하게 미시감이 들었다. 좀 세게 입히는 거 같고.


"다음엔 제 갑주를 부탁드릴  있을까요?"

안에 사슬갑옷, 갬비슨을 입는 것까진 좋았는데 여전히 난 가죽 갑옷을 어떻게 입는지 모르는 모지리였다.


"아, 물론이죠. 당신께 봉사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뭔데 온도차.
아무래도 겨울의 처녀는 자오 메이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뭐, 핵쟁이니까. 그러려니 해야지.

그러거나 말거나, 자오 메이는 툴툴대면서도 원래 갖고 있던 방패가 아닌 급하게 구해온 나무 방패를 들었고, 강력한 주장 끝에 돌려받은 창백한 겨울을 검집에 끼웠다.


"물약은 챙기셨나요?"
"아, 까먹을 뻔 했네요."

겨울의 처녀는 그럴  알았다며, 웃는 소리를 내고는 다시 내 손에 물약병들을 쥐어주었다. 그 중에는 내가 사지 않은 것 역시 섞여있었다.


"근데 나 진짜  같이 싸워야 하는 거야? 그, 나도 입구 봉쇄 그런  하면 안돼? 도움도 안될 거구."

겨울의 처녀가 능숙하게 내게 갑주를 입혀주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자오 메이가 그렇게 말했다.
아, 물론 나랑 같이 싸워본 적도 없고 날 좆도 모르는데다 이 도시도 좆도모르니까, 저렇게 말해도 이상하진 않지.
맞는 말이었다.


따악!

"악!"

쳐맞는 말.


"그래서, 같이 안 싸우면 뭐하게? 입구 봉쇄에서 뭘  수나 있겠냐? 돌입할 때 훈련된 병사들 사이에서  든 깡패놈들 처리하는 건 할 줄 아냐?"
"…."
"아니면 나랑 세네카씨랑 같이 유적 돌입해서 괴물들 잡는 게  편할걸."

NPC라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못할 것도 아니지만, 너무 현실적인 게임 속 세상은 나나 메이에게 NPC 살해에 대한 거부감을 쥐어주고 있었다.

"그, 근데 나 싸울 줄 몰라."
"그래? 나도 그랬는데 이 세상은 그렇게 안 두더라고."

사실, 세네카는 나에게 넌지시 검술이나 궁술등을 배우겠냐고 물어오기도 했다. 내가 칼을  자세를 보고 초심자인 걸 알았다고 했던가.
하지만 검술을 깔짝 몇 시간 배우는 걸로는 검술의 달인이  수도 없다.
오히려 어중간한 가르침은 독이 될 수도 있고.
내가 이 세계에서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런 장기적인 안목의 성장 수단은 나중에 선택해야 했다.

"걱정마, 메인은 나랑 세네카씨가 알아서 할 거니까. 넌 보조야. 보고 배우기나 하라고."

하지만 단기적인 성장 수단 대신, 어느 정도 싸우는 방법은 자오 메이도 배울  있다.
괴물이 어디가 약하고, 어떤 동작이 굼뜨고, 어떤 행동이 적합한지 같은 상식이라면 문제될 것도 없다.

"준비는 다 하셨습니까?"


그때, 숙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세네카가 안으로 들어섰다.
활을 하나 들고, 허리춤에는 내 적조보다도 짧은 검이 있었다.
복장 역시 기존에 보았던 딱딱한 자경단 활동복이 아닌 제대로 된 사슬과 가죽 갑주였다.
심지어 가장 바깥에는 문양이 그려진 망토를 같은 걸 어깨 전체를 감싸는 형태로 걸치고 있었다.

"그 물건도 왔나보군요. 장인이 말하길,  번 쓰면  쓴다고 했으니 염두하시길 바랍니다."


그녀는  차림을보더니 고맙게도 그렇게 별첨했다.
 번이라, 기억해둬야겠다.
나는 가슴팍을 두드려 사슬 소리와 가죽이 두드려지는 소리를 들었고, 겨울의 처녀는 내 뺨을 어루어 만졌다.


"조심하세요, 당신께 행운이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그말대로, 나는 행운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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