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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화 〉회색의 주인 (15/274)



〈 15화 〉회색의 주인

산을 파냈다고는 믿을  없는 거대한 내부와 그런 내부에 촘촘히 장식되어 있는 무수한 구조물들.
우리는 그 구조물을 가로지르며 주변을 살폈다.
그 살피는 시선에 담긴 건 두려움이나 긴장이 아닌, 경외에 가까웠다.


"어떻게 이런…."


세네카는 그렇게 말하며 하늘에 떠있는 거대한 태양 모양의 구조물을 눈여겨 봤고.

"여기를 완전히 토벌한 이후라면 군사 시설이나 주거 시설을 이 방향으로 확충해도 좋겠군요."

세레나는 제 언니와는 달리 그렇게 말하며 도시 계획을 수립하는  했다.


"와… 멋있어."

짱깨는 그냥 놀라워 하기만 했는데 얘는 어휘 능력이 낮은 건지 멋있다던가, 그런 말 밖에 하지 못했다.
물론 나도 꽤 놀랍긴 했다.
하지만 마냥 들뜨기에는 문제가 아직 산적해 있었다.


"긴장 놓지 말고 갑시다."
"예, 물론입니다."


물론 갑작스럽게 무언가가 나타나더라도, 세레나가 데려온 세 명의 부하는 충실하게 주변을 살피고 있었으므로 끔찍한 상황으로 이어지진 않겠지만.

[현재 회차: 2회차]

1회차라면 함정은 없다. 그렇게 강력한 몬스터도 없다.
다만 이미 나는 구울이 나타난 시점에서 2회차가 1회차와는 상당히 다를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새삼 해방자의 대단함을 깨닫게 된다.


공기도 은근히 희박한데다, 사방이 어둑해서 주변을 살피기 힘들고 어지간한 도시 규모를 갖고 있는 이 유적은 인간이 단순하게 걸어서 답파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유적을 걸어서 그냥 몇 시간만에 주파하는 초인의 체력이란.
하다 못해 내게 그런 체력이 주어졌다면 쉽게 클리어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치트 정도는 주고 가지."
"예? 뭔가 필요하십니까?"

내 중얼거림에 세네카가 반응했으나, 나는 손을 내젓고는 주변을 불이 붙은 적조를 내밀어 살폈다.


"그래도 그렇게 어둡진 않으니 다행입니다."
"예, 그러게요."

물론 게임에서도 그렇게 어둡진 않았지만, 게임 내에서의 정보를 어디까지 신뢰해도 되는지 알 수 없었다.
당장에 폭군의 검 때만 하더라도 그랬다. 가볍게 붕붕 휘두르던 검이 나한테는 들지도 못하는 폐급으로 변해있을 줄은.
그래서 준비해온 횃불, 랜턴을 쓸 일은 사실상 별로 없어보였다.


"성주님! 이쪽으로 와주십시오!"

그러던 중, 성주의 부하 중 하나인 창을 든 남자가 성주를 호출했다.
성주가 우리에게 고개를 까딱하고는 먼저 장검을 뽑아든 채로 접근했다.


"왜 그러지?"
"여기 뭔가 새겨져 있습니다. 흔적을 보면  오래된 것 같지만… 이건 명확하게 문자의 형태입니다."


창을  남자가 이끈 장소에는 꽁지 머리로 머리를 묶은 소녀가 있었는데, 품에 끼고 있는 장비를 보아서는 탐색역을 맡고 있는부하인 것 같았다.
그녀가 제 쇠뇌를 품에 안은 채로 비석에 새겨진 문장을 가리켰다.


"하지만 읽을  없습니다. 그간 봐왔던 어떤 문자와도 다른 형태를 띄고 있어요."


오, 이건 예상 못했는데.
이건 내가 알고 있는 떡밥이었다.
유적에는 종종 이런 식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기둥이 있었고, 그때 겨울의 해방자로 상호작용 하면 이렇게 떴었다.

'읽을 수 없습니다.'

고대인이 세운 유적 속에 있는 고대어는 읽을 수 없었고, 게임을 언패킹해서도 그 떡밥에 대해 풀리질 않았다.
사실, 만약 이번에도 읽을 수 없었다면 정확히 예상대로일텐데.
뭔 형태인지 알 수 없는 문자가 잔뜩 새겨진 기둥을 보니, 갑자기 글자가 꾸물텅대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변화한 글자는 내가 읽을 수 있었다.


[―영원한 겨울이 찾아올 때에 다른 하늘을 가진 세계에서 진정한 겨울의 해방자가 오리라.]


이게 무슨 쌉소리야.
 기둥에 적힌 쌉소리를 읽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게임 속에 들어와서야 읽을 수 있다니? 애초에 한글이었다고?


"영원한 겨울…?"


엉?
내가 읽어낸 부분을 부르는 소리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 뿐만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그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봤다.


"어."
"읽을 줄 아십니까?"

짧달막한 키에 투구를  눌러써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시선이 몰리면 곤란해하는 모습은 분명히  한 사람을 가리켰다.

"그, 그게… 중국어로 되어있길래…."


그리고는 고개를 푹 숙이는 메이를 무시하고 기둥을 다시 보았다.
분명히 한글로 되어있었다.

"중국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야만민족의 언어라면 읽지 못할만 하군요."

나는 그렇게 얼추 넘어가고 자리를 뜨는 일행들을 천천히 살폈다.
역시 다른 이들은 아무도 읽지 못한  같았다.

"허어."

하기야, 이상하긴 했다.
만약 판타지 속 언어로 되어있다면 내가 읽을 수 없고, 의사소통 역시 불가능해야 할텐데 멀쩡하게 말이 통했고, 저기 짱깨 역시 나와 말을 주고 받을 수 있었으니.
무슨 구글 번역기라도 뇌 속에 심어진 건가?

"너어, 너도 읽을 수 있어?"


그리고 메이 역시 같은 생각을 했던 모양인지, 내 소매를 꾹꾹 잡아당기며 물었다.

"엉."
"그럼 뭐라고 적혀있는지  알려주라…."
"응? 읽지 않았냐?"
"그게…."

투구 속에서 울리는 목소리가 알려주는 사실은,  당황스러워서 나는 소리를 높였다.

"한자를 못 읽는다고."


기가 차서 웃으니, 투구 속에서 이이익 소리가 울렸다.


"아냐! 그, 내가 번체를 못 읽는  뿐이라고… 평균이란 말야…."
"네, 다음 문맹."

그녀는 한참이나 내 갑옷을 주먹으로 통통 쳤다.


여튼, 내가 그녀와 대화해보고 알아낸 사실은 이러했다.

우리에게 어쩐 이유에서인지 이 세계의 문자와 언어는 모국어로 치환되어서 들리고 보인다.
하지만  치환은 우리의 지식 수준을 고려하지 않았고, 나한테는 별 문제가 없지만 메이에게는 번체로 보이는 게 있어 읽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고 그랬다.
물론그녀가 교육을 잘  받았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게 말할 때마다.

"아니라니까!"
"아, 왜 소리를 질러! 인중 맞을래?!"
"…힝."


라고 역정을 내고는 했다.
물론 핸섬하고 키도 크고 존나 세보이는 나에게 혼나면 금세 고분고분해졌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들 하십니까?"


세네카는 자꾸 혼나는 메이가 안쓰러웠는지 다가와 그렇게 물었다.

"이 년이 자꾸 멍청하게 굴어서요."
"힝…."
"너무 그러지 않으셔도 될  같습니다. 동향 사람 아닙니까?"


내가 째려보자 세네카는 멋쩍게 웃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사실 이렇게 개소리를 하고 헛짓거리를 할 수 있는 것도 지나치게 유적이 깨끗했기 때문이었다.

보통 이 쯤 되면 언데드 한 무더기 정도는 만날  알았는데, 그때 몰려나온  엄청난 양의 언데드가 유적의 비축량 전부였는지 나타나는 게 없었다.

아무튼, 내가 짱깨한테 험하게 대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일단 내가  세계에 떨어진 계기도 얘고.
내가 지저의 늪지에서 구르면서 똥오줌 범벅이 되고 있을 때 얘는 편안하게 수중의 돈을 써서 여관에서 쉬고 있었는데다.
얜 씨발 기본적으로 짱깨에 핵쟁이다.


물론 얼굴은 꽤 귀염상에 예쁜 편이고, 가슴은 지금껏 본 적이 없는 상당한 크기지만.
나, 주현성은 성욕과 좆같음은 분리할 줄 아는 냉철한 두뇌를 가진 사내였다.

물론 구울을 잡는데 얘도 주요한 역할을 했고, 어떻게든 열심히 해보려고 하는 게 보이긴 하지만….
그래, 뭐. 너무 쫌생이처럼 구는 건 또 아니지.

"에휴, 내가 참아 넘겨야지."

일단은 NPC들보다는 비교적 동향 사람 아닌가.
나는  쯤 해서 봐주기로 하고, 메이에게 다가갔다.

"왜, 왜애! 나 아무것도 안 했어!"

누가 보면 내가 겁탈이라도 하려는 줄 알겠네.

"아니, 이제  혼낼테니까 잘해보자고."
"지, 진짜?"

쭈뼛쭈뼛 내게 다가오는 모습에, 악수라도 하기 위해 손을 내미려는 순간이었다.

"적습! 언데드입니다!"
"아, 썅."


좀 괜찮게 흘러가나 싶었는데.
심지어 메이는 내 욕설에 움찔하더니 물러났다.

"씁, 나중에 얘기하자고."

나는 적조를 뽑아들며 대치하고 있는 쪽으로 향했다.

"오셨군요. 얘기는 잘 하셨습니까?"
"예, 그럭저럭이요."

세네카는 화살을 한 발 더 쏘아냈고, 다가오던 언데드가 꿰뚫려 침묵했다.


"아마 거의 다 온 모양입니다. 갑자기 솟아났다고 하는군요."

전장의 전열에서는 세레나의 부하  명과 세레나가 몰려드는 좀비를 막아내고 있었다.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세레나와는 다르게, 화염석을 넉넉하게  수 없는 병사들은 고전하고 있었다.


"메이!"
"으, 응."
"여기서 세네카씨를 도와드려."
"응?"

잘 해낼지는 알  없었으나, 나는 확인할 틈도 없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화염석을 대충 왼손에 쥐고, 칼날에 긁어 화염을 피워냈다.
피어오른 화염이 살결을 그슬릴듯 넘실댔다.

"으럅!"

쇠뇌를  부하에게 다가오던 좀비가 내 칼질에 목이 기울었고, 그 기울은 목을  옆에서 대치하고 있던 도끼를 든 병사가 떨궈냈다.

"오셨군요! 저 앞입니다!"

다시 화염석에 칼을 긁고 불을 피워내고 있으니, 쇠뇌를 든 소녀가 그렇게 외쳤다.
확실히,  앞에 딱 봐도  보스룸이요 하는 거대한 문이 있었다.
너무 거대해서 열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바로 옆에 레버가 있는 걸 보면 열리라고 있는 문 같기도했다.

문제가 있다면 여기까지 진을 치고 있었어야 할 모든 언데드가 여기에 몰린 듯, 너무 많은 수의 적이 앞에 포진해 있었다는 것이다.
문까지 나아가기엔 적의 공세가 거셌다.


그렇다고 여기에 묶여있다간 지치지 않는 망자 새끼들한테 휩쓸려 뒈지는 길 밖에 없었다.
나는 다시 한  화염석을 칼날에 긁고는 피어오른 불꽃을 다시 좀비한테 때려박았다. 칼날에 기울어진 부패한 목덜미가 내가 내지른 방패에 부딪혀 떨어졌다.


"메이, 세네카! 여기로 오십시오!"

후방에서 빠르게 몇 발의 화살을 쏘아낸 세네카는 망설임 없이 다가왔고, 투구를 벗고 있었던 메이는 장검을 뽑아든 채로 쫄랑쫄랑 달려왔다.
때마침 몸쪽으로 향한 날을 뒤집듯 휘둘러 스켈레톤의 두개골을 대각선으로 쪼갠 세레나가 내 옆에 붙었다.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돌파해야 합니다. 이대로면 밀려서  뒈질 겁니다."
"그렇군요. 좋은 계획은 있습니까?"

씨발, 있으면 진즉 썼겠지.
내  밑까지 차오른 욕지거리를 간신히 억누르고는, 찡그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없습니다. 어찌됐든 돌파해야 합니다. 다소 출혈을 감수하더라도 말이죠."
"그렇군요. 돌파만 하면 되는 겁니까?"
"…뭔가 있군요?"


외눈의 여자가  웃고는 안대를 풀었다. 풀어진 안대 속 눈동자는 흰빛에 가까웠다.


"마도서의 대가입니다."


씨발.
게임에서 마도서로 마법을 쓰면 피통이 소모되더니, 그게 이런 거였나?
불편해지는 대가지만, 다 뒈지는 거보다 낫긴 했다.
다만 대가가 크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쓰실 거라면 전력으로 엄호하겠습니다."
"결혼이나  생각해봐주세요."
"농담은 그만하시고요."


그녀는 단단하게 차려입은 흉갑 속에서 마도서를 꺼내들었다.

"농담 아닙니다."

호쾌한 미소와 함께 그녀의 왼손이 회색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펼쳐낸 마도서에서 뜯어낸 종이 한 장이 그녀의 왼손으로 흡수되고는,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기묘한 빛을 뿜어냈다.


"흐. 왼손이 대가라면 싸게 먹히는 편이군요."


내가 만류하기도 전에, 세레나의 왼손이 언데드들을 향했다.


파창!
콰가가가가가!

소리는 경쾌하기 짝이 없었으나, 그 결과만은 그렇지 않았다.
쏘아진 마력은 회색의 짙은 궤적을 남기며 전방을 휩쓸었고, 휩쓸린 언데드들은 한꺼번에 밀려나거나 심하면 넘어져 부숴지기까지 했다.
개중에서는 깔려 죽은 언데드도 있었다.


"크윽."


그와 동시에 그녀의 왼손이 타오르는  하더니 툭 떨어졌다.
씨발, 주문쟁이도 할 짓은 못되네. 좆같은 다크 판타지 세상.

나는 오른손으로 장검을 고쳐쥐는 세레나를 흘깃 보고는 외쳤다.


"전원 돌격! 길이 뚫렸습니다!"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었다.
충격파에 밀려난 언데드는 분명 많았지만, 언데드는 포기를 모르니까.
나는 왼손에 든 화염석을 두 번, 칼날에 긁고서 달려나갔다.

촤악!

그래도 충격파는 단순히 물리 피해만 주는 게 아닌지, 언데드의 움직임은 생각보다 굼떴다.
내가 휘두른 칼날에 좀비의 목이 날아갔다.
오, 씨발 이게 되네.

텅!


내 왼쪽으로 파고드는 좀비를, 따라붙은 메이가 방패로 밀쳐내고는 허우적 장검을 휘둘렀다.

"내가 막을테니, 가서 레버 당겨!"


그래도 언데드가 너무 많았다.
심지어 일어나지 못하는 놈들이 발목을 잡으려고 드는 통에, 나는 바쁘게 발을 움직여 죽은 놈들을 완전 죽게 만들어야 했다.
메이는 대답하지 않고 오도도 달려나갔다.
도망치는 거 보고 생각했지만, 달리는 거 하나는 일류였다.

"진짜 당겨?!"
"잔말말고 당겨 짱깨새끼야!"
"이익…!"


드드드…!


레버가 당겨지자, 열리지 않을 것만 같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나는 헐떡대면서도 외쳤다.

"달려!"

어느새 우리의 뒤편을 점하고 긴박감을 선사하는 언데드 무리를 곁눈질로 일별하고, 나는 달렸다.
세레나의 부하들이 좀비에게 붙들려 그 무리로 사라졌지만, 신경 쓰지 않고 달렸다.


"그아아아악!"

부하의 찢어지는 비명에 세레나의 발이 멈췄고, 나는 그 등을 떠밀었다.

"멈추지 말고 가, 멍청아!"

세레나가 그 말에 다시 달리기 시작했고, 나는 바로 뒤까지 따라붙은 스켈레톤에게 방패 스트레이트를 꽂았다.


깡!

그때 다시금 귓전을 울리는 묵직한 소리가 있었다.

드드드드드…

문이 닫히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간 일행들이 당황해서 나를 바라봤고, 나는 방패를 흘깃 보았다.


바이바이 내 예쁜 방패야.

나는 망설임 없이 방패를 집어던졌고, 방패는 바닥을 미끄러지더니 완벽하게 문과 문 사이에서 멈췄다.
방패가 버티는 그 잠깐이 골든타임이었다.


"으아아아아!"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달리자, 뒤에서 언데드 새끼들이 따라붙는 소리가 들렸다.

방패는 점차 소름끼치는 쇳소리를 내며 쪼그라들었고, 내가 안으로 들어갈 시간도 점차 줄었다.

"씨이발!"

내 머리칼에 스켈레톤의 손이 스친 순간.
나는 완벽한 포즈로 몸을 내던졌고 내 몸뚱이는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문틈을 통과하고서 바닥을 죽 미끄러졌다.


꽈득!


그와 동시에 내 방패도 방패였던 것이 되었다.

"…허억, 허억."


앵간해서는 일반인보다 체력이 많은 NPC들조차 숨을 고르고, 나는 거의 탈진 직전이었다.
나는 주머니를 뒤져 지구력 물약을 꺼내 마시면서 몸을 일으켰다.

"다들 준비하세요. 선객이 있는 거 같습니다."

내가 비워낸 지구력 물약을 떨어트리자, 어둑했던 공간이 회색의 불빛이 내걸리며 밝아졌다.
 중심에는 내게는 익숙하지만  편으로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을 해골이 있었다.
허공에 뜬 채로, 내게 냉막하고 광오한 시선을 보내는 해골.

나는 그 시선을 마주하면서, 적조에 화염석을 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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