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회색의 주인
"그렇군, 너희가 침입자인가."
생각보다 멀쩡한 목소리였다.
성대가 없는 해골일텐데도 그렇게 듣기 싫은 목소리가 아니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 해골은 허공에 떠서, 나한테 딱 보기에도 꼬와보이는 눈으로 꼬라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 중 가장 문제인 건 공중에 떠있다는 사실이었다.
"씹, 때리기 힘들겠네."
게임에서는 저거 땅에 내려와서 싸웠는데.
하기야, 나라도 날아다닐 줄 알면날아다니면서 마법이나 뿅뿅 쏘지. 굳이 내려와서 지랄하진 않겠다.
"그렇다. 이 개새끼야."
다른 일행들은 지구력 포션이 없어서 숨을 고르면서 경계하고 있었고, 아가리를 털 수 있는 건 나 뿐인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한국인 종특, 아가리 파이트를 시전했다.
"흠, 이번 침입자는 어째 입이 걸걸하군."
침착하게 응수하는 걸 보자니, 내 필살기 '패드립'을 해도 별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좋아, 플랜 B다.
"세네카씨."
"예, 예…."
"저거 쏠 수 있어요? 선조라서 못 쏜다고 하면 혼납니다."
"예? 당연히 쏠 수 있습니다."
아, 여긴 유교 없지. 불행 중 다행이었다.
내가 비록 힘도 기술도 딸리는 좆병신 일반인이지만 PVP에는 도가 텄다.
세계 대회에서도 준우승했고, 뭔 자잘한 커뮤니티에서 치킨 걸고 하는 대회는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대회에서는 으레 좆같은 전법을 쓰는 새끼들이 많았는데, 이런 대가리에 칼박은 씹새끼들을 잡는 방법은 꽤 간단했다.
좆같은 짓을 하면 더 좆같게 돌려주기.
세네카는 활을 들어올려 화살을 걸었다.
그리고는 나를 흘깃 봤다.
"그냥 쏘진 마시고요. 아마 그냥 피하거나 막아낼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 특별한 화살 좀 있어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는지, 그녀는 화살을 시위에서 끌어내리고는 다른 화살을 빠르게 걸었다.
와, 손 존나빠르네.
"제가 신호하면 쏘세요."
"예."
그녀는자잘한 계획은 묻지도 않았고, 나도 답할 생각도 없었다.
바닥에 놓여진 빈 지구력 물약 병을 집어들어서, 화염석을 입구에 대고 긁었다.
되려나? 안되면 죽 쑤는 건데.
하지만 다행히 칼날을 중심적으로 긁었던 부분에서 화염석 가루가 후두둑 떨어져 물약 병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뚜껑을 닫고, 그 물약병을 세차게 흔들었다.
가열하기 시작한 화염석 가루가 하얗게 변할 때 쯤, 내가 병을 던지며 외쳤다.
"지금!"
그동안 이 행동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해골이 손을 움직였다.
까앙!
화르륵
회색의 무언가가 쏘아져 병을 격추하자, 그 자리에 폭발이 크게 일어났다.
화염석은 엄연히 공업용으로 사용하는 물건인 만큼, 굉장히 불안정하고 간단한 마찰만으로도 화염을 일으킨다.
물론 화염은 산소를 필요로 하니, 최대한 마찰 시켜서 달구고 던져서 깨트리면 화염이 일어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데….
예상보다 화력이 더 강했다.
내 계획을 완수하고도 남을 정도로.
화염 폭발은 날아가는 화살을 확실히 가렸다.
해골은화염 사이로 불쑥 튀어나온 화살을 보고 피하려고 하지만, 피하지 못했다.
물론 해골한테 화살은 잘 먹히지 않는다. 살점도 없거니와 뼈를 핀포인트로 저격해봤자 궤도가 틀어져 위력이 줄어들테니까.
하지만 저건 그냥 화살이 아니다.
아마 그레이톰 일족의 마도서 조각이나 마력을 엮어낸 화살. 효과는 아마….
"크윽, 빌어먹을 잔재주를…!"
마법의 효과 해제.
내 예상이 들어맞았다.
세네카는 놀란 눈으로 나를 봤고, 나는 그 눈에 대답하기도 전에 달려나가며 적조에 화염석을 긁었다.
해골이 날아오른 자세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그 뼈다귀가 성난 소리를 뱉었다.
"얕보지 마라!"
아, 씨발. 반칙이지.
녀석의 손에서 마력이 모이더니,검의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이몸은 회색의 주인, 신대를 살아온 마법사다! 이 몸이 검술에 조예가없을 거라고 생각했느냐!"
확실히 게임에서도 검을 휘두르는 미사용 모션이 있긴 했는데, 이렇게 빨리 해금할 줄은 몰랐다.
심지어 난 방패도 없는데.
그래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봐야했다. 물러나면 마법을 쓸 기회만 늘려줄 뿐이고, 그러면 승산은 0다.
"있어서 좋겠다!"
내가 휘두른 칼날을, 뭔 조화인지 모르겠는데 마력으로 이뤄진 검이 여유롭게 밀어냈다.
반사적으로 몸을 젖히니, 내 코끝 위로 검날이스쳐지나갔다.
이제보니 세레나가 검을 쓰던 자세와 비슷한, 뭔가 그럴 듯 해보이는 자세로 해골이 검을 휘둘러대고 있었다.
씨발, 마법사면 마법만 하라고.
"윽."
피했나, 싶었는데 양손으로 잡고 있는 손잡이가 뭔가 특이하게 움직인다 싶더니 내 팔뚝을 지나갔다. 피가 울컥 솟으면서 따끔한 감각 역시 지나갔다.
"검을 다루는 게 초짜나 다름 없군, 그정도 검솜씨로 이 회색의 주인을 쓰러트릴 순 없다!"
녀석은 그렇게 호통치더니, 잘도 그 로브차림으로 복잡하게 움직였다.
녀석의 마력검이랑 내 적조가 충돌하자 실제 칼에 준하는 무게가 내 손을 내달렸다.
하지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녀석은 부딪히자마자 검날을 뒤집어 나를 향해 찔러왔다.
"씨발!"
뒤로 물러나기 무섭게 이 새끼가 해골 발로 내 보폭 안쪽까지 내딛었고, 나는 옆구리로 향해오는 검날을 볼 수 있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검술 가르쳐준다고 할 때 배워둘걸.
좆됐다 싶어 최대한 몸을 빼려는데, 그 검날에 무언가 날아오더니 겹쳤다.
까득!
그 공격의 주인은 세레나였다.
그녀는 회색의 주인이 든 검과 똑같이 생긴 강철검을 한손으로 휘둘러공격을 걷어냈다.
"시간을 벌어주셔서감사합니다. 이제부턴 함께 싸웁시다."
그녀의 제안은 나쁘지 않았다.
일단 몇 번 주고 받으니 깨달은 건, 단순히 치고받는 걸로 내가 이 새끼를 이길 가능성은 낮았다.
그렇다고 거리를 벌리면 내가 공격할 수단은 없고 이 새끼는 메인인 마법으로 나를 조져버리겠지.
솔직히 꽤 고역이다.
해방자는 이딴 걸 어떻게 잡았지?
분명 주인공 새끼는 존나게 적폐일 거다.
"좋죠. 혼자 상대하기엔 벅찼거든요."
"하하, 아직 여유로워 보이셨지만요."
"저 아까 소리지르는 거 듣지 않으셨습니까?"
세레나는 웃었고, 나는 어이 없어 웃으면서도 칼에 분주하게 화염석을 긁었다.
"호오. 내 피를 이은 이가 아직도 도시의 머리에 있을 줄이야."
그런 우리의 모습을 틀딱 해골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와라, 이 몸의 힘이 차고 넘치니, 나의 피를 이은 반푼이와 야만인을 동시에 상대한들 문제 없다."
와, 존나 말 개너무하네.
애석해하던 순간에, 화살 한 대가 나와 세레나 사이를 가르고 뛰쳐나와 틀딱한테 날아갔다.
그리고 틀딱은 날아온 화살을 칼을 휘둘러 걷어냈다.
반사신경 좋네.
"아, 그래. 한 명 더 있었군."
"야! 난 왜 무시해!"
메이는 그런 세네카 옆에서 방패를 휘두르며 외쳤고, 틀딱은 별 흥미도 없다는 듯검을 고쳐쥐었다.
*
까앙!
휘두른 칼날을 가볍게 거둬내고.
투웅!
손 안에서 가볍게 뭉쳐진 마법이 쏘아져 칼을 휘두른 세레나를 튕겨낸다.
원래의 양손이 아닌 한손만으로검을 다루기 때문인지 세레나는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바닥을 굴렀다.
"이런 씹."
그 다음은 나였다. 나는 등골이 섬짓해지는 기분에 화염석을 칼날에 긁으려던 걸 멈추고 물러섰다.
투콰아앙!
내가 딛고 서있던 바닥에 남은 처절한 상흔에 침을 삼키는 것도 잠시, 해골이 겨눈 칼끝이 가늘게 떨렸다.
"우왁!"
뭔가 불안한 기분에 몸을 내던지니, 늘어난 칼날이 벽을 꿰뚫었다.
"호오, 잘 피하는구나."
이쪽은 목숨 걸고 피하는데, 저쪽은 즐기고 있다는 느낌 밖에는 받지 못했다.
씨발, 엿 좀 먹어봐라. 나는 내리찍어지는 검을 적조를 치켜올려 막고는 외쳤다.
"지금!"
퉁! 투웅!
세네카는 메이의 뒤에서 화살 두 대를 연달아 쏘았다. 두 발은 각기 다른 화살이었다.
하지만 해골빠가지에게는 닿지도 않았다. 회색의 주인은 여유롭게 몸을 옆으로 틀어 피했다.
"아, 좀."
밸런스 왜 이러냐? 똥망겜.
마법을 잘 쓰는데다, 검도 잘 다루고, 언데드라 공격도 잘 먹히는 편이 아니고.
하지만 그간의 주고받은 합이 마냥 무의미했던 건 아니다.
PVP를 하다보면, 처음 보는 유형의 적을 만나는 건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었으니까.
내게는 뇌내를 굴러다니는 전투 계획이 있었다.
"세레나! 시간 좀 벌어주십시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하나 남은 눈을 흉흉하게 빛내며 뛰쳐나와 장검을 휘둘렀다.
해골은 내게는 반응하지 않고 그녀의 쪽으로 고개를 홱 돌리고는 장검을 마력검으로 흘려냈다. 언제봐도 경이로운 수준의 검술이었다.
물론 나랑은 관계 없지만!
나는 가벼운걸음으로 일어나 메이와 세네카 쪽으로갔다.
"어떻게 하시려고 그럽니까? 성주님은 오래 못 버틸 겁니다."
"그래서 세네카씨한테도 동생분 좀 도와달라고 얘기하러 왔습니다. 시간만 좀 더 벌어주시면 됩니다."
이제와서 미심 쩍은 눈으로 본다고?
좀 늦지 않았나 싶었는데, 그녀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시위에 화살을 걸쳤다.
"오래는 못 끕니다. 빠르게 해주세요."
"아, 물론이죠."
세네카가 회색의 주인에게 향했고, 나는 메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응?"
"네 칼 줘봐."
"엑, 그럼 난 뭐로 싸우라고!"
"인중 맞고 줄래, 아니면 그냥 줄래?"
"이이익."
인중은 어쩔 수 없었는지, 그녀는 창백한 겨울을 내게 건넸다.
얼음으로 이뤄진 검신이 물결치는 것처럼 냉기를 주변에 뿌렸다.
"내 계획은 간단해. 내가 기회를 만들면, 달려들어서 한 대 막고 물고 늘어져."
"그게 다야?"
"응, 근데 네가 잘 안 붙잡으면 내가 반갈죽이야."
"반갈죽이 뭔데."
"반으로 갈라져서 죽는다고 빡머야."
"빡머는 뭔데."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화염석을 적조를 쥔 오른손으로 옮겼다.
"됐고, 믿는다."
메이는 불퉁스럽게 입술을 삐죽 내밀었으나, 내가 손가락을 말아쥐자 다시 입술을 집어넣고는 방패를 양손으로 쥐었다.
카가각!
창백한 겨울은 분명 얼음으로 된 무기다. 나도 뉴비일 때는 간지난다고 써보고 싶어해서 잘 안다.
그리고 게임에서도 나오는, 창백한 겨울만의 특별한 기능이 있다.
고인물들은 이걸 종종 도망갈 때 쓰고는 했고, 나는 마법사한테 많이 썼다.
그기능은 바로.
투화아아악!
연막이다.
화염석으로 일으킨 불꽃에 창백한 겨울이 빠르게 녹으면서, 주변에 그 검신만큼 창백한 연막을 흩뿌렸다.
*
카앙!
소검을 꺼내들고 덤비던 후손이 빠르게 떨어져 나갔고, 다른 후손이 든 장검은 허공을 갈랐다.
그야말로 촌극이나 다름 없는 풍경이었다. 공경해야 할 제 선조에게 칼날을 겨누는 풍경이란.
나는 한심한 꼴을비웃으며 손을 흩뿌려 마력을 떨쳐냈다.
"커헉!"
그에 장검을 든 후손이 밀려났고, 마찬가지로 소검을 든 후손이 부들부들 떨면서 몸을 바닥에 가깝게 몸을 눕혔다.
"미련한 것들. 나를 조금이라도 즐겁게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건만, 실망이구나."
나는 혀를 차고서, 마력의 검을 높이 들어올렸다. 내 혈육이라고 한들 내가 목을 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그때, 나는 겨울의 마력을 느끼고 멈춰섰다.
"무슨?"
눈 여겨 볼 필요도 없던 야만인 둘이 있었던 방향에서 피어오른 겨울 안개는 어느덧 내 주변을 빼곡히 감싸고 있었다.
무슨 잡술인지는 몰라도, 이정도로는 나는 위축되지 않는다. 자세를 굳히고, 달려드는 불나방을 요격할 뿐이다.
검을 위에서 아래로 겨누고, 몸을비스듬히 위치시켰다.
"와라! 너의 간계를 보여봐라, 야만인이여!"
내 부름이 지나고, 조금 지루해질 무렵 분연히 연막을 떨치고 무언가 튀어나왔다.
나는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으악!"
키가 작은 야만인이었다. 야만인의 방패가 두쪽으로 쪼개졌다.
그럼 이 뒤에 있는 기척이 키가 큰 야만인일 터. 나는 왼손을 칼자루에서 놓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읊조리는 주문을 따라 형성되는 건 죽음의 표식이었다.
맞은 이를 반드시 죽게 만드는, 나의 비전 마법. 그 어리숙한 야만인은 피할 수 없다.
나는 일부러 빈틈을 내보이듯 가만히 서있었고, 그러자 너무도 쉽게 야만인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으랴아아아!"
기습의 기본도 되어있지 않군.
소리를 지르며 검을 휘두르는 꼴에, 내가 한숨을 내쉬고 손을 뻗었다. 이미 살거죽조차 남아있지 않은 나의 손에서 마력이 발했다.
그 마법은 결코 요란하지 않다. 껍데기는 남은 채, 영혼만이 죽음을 맞이한다.
그래서 야만인은 마법의 불빛이 거둬지자 피어오르는 연기와 함께 바닥에 몸을 눕혔다.
"쯧, 이런 야만인에게 내 마력을 낭비할 줄이야."
하지만 계획에 방해되는 이상, 착실히청소해야 한다. 나는 칼날을 작은 야만인에게 겨눴다.
파지직
그 칼을 들어올린 순간, 칼날이 지직거리더니 사라졌다.
뭐지? 마법 방해? 아니다. 이건 좀 더 순수한 종류의방해다.
마치 마법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불결한 금속이나 할 수 있을 종류의 방해.
나는 불현듯 모골이 송연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올리자 나는 볼 수 있었다.
허공을 날아다니는, 은의 가루를.
"네놈…!"
콰득!
*
장인은 세네카를 통해 내게 그렇게 전했다.
이 물건은 한 번 밖에 버틸 수 없다고.
그래서 나는 세네카에게 물었고, 세네카는 장인에게 다시 물었다.
혹시 한 번 밖에 못 버틴다면, 버틴 뒤에는 어떻게 되느냐고.
그는 말했다.
분명 도금해놨던 것들이, 가루가 되어 흩날릴 거라고.
나는 대답했다.
그거 존나 멋있겠다고.
그리고 나는 역시 생각했다.
이거, 뒈지게 멋있다.
나는 흩날리는 은의 가루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내 몸을 따라, 마법에 대한 아주 높은 저항력을 가지고 있는 은의 가루가 흩날렸다.
처음 이 도시에 왔을 때부터 생각했다. 회색의 주인이 마법사라면, 마법에 높은 저항능력을 가지는 은으로 체인메일을 만들면 좋은 서프라이즈가 될거라고.
그리고 회색의 주인과 싸우면서 생각한 건, 정말 마법도 검도 못하는 게 없는 밸런스 붕괴 보스몹이지만, 한 가지 존나 다행인 게 있다는 점이었다.
보스몹일 때는 정직하게 패턴에 따라싸우던 새끼가, 현실이 되니 마치 사람처럼 생각하고 움직였다.
심리전이 가능했고, 그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하,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그럼 이새끼도 방심할 수 있겠다고.
내게는 정직하게 패턴을 따라 움직이는보스몹이, 사람보다 까다로웠다.
나는 PVP 고인물이니까.
그래서 속아넘어가, 검을 들어올렸다가 대경실색하며 뒤를 돌아보는 회색의 주인을 보면서 실소를 금치 못했다.
나는 쪼개면서 왼손을 뻗었다.
콰득!
화염석이 녀석의 목을 파고들었다. 그러자 녀석은 당황하면서도 다시 나를 공격할 준비를 금방 끝마쳤다.
이렇게 자존심이 강하고, 지는 걸 싫어하는 놈은 막상 빠져야할 때에 빠지지 못했다. 그 자존심이 사슬처럼 이 새끼를 끌어당기니까. 관성처럼 공격해버리는 거다.
그게 실수인 줄도 모르고.
나와 녀석이 동시에 자세를 잡았고, 마지막 한 합을 앞둔 순간.
메이는 이 놈이 뻗으려는 오른팔을 잡아챘다.
해골의 표정에 일순 당황이 감도는 것처럼 보였다. 표정이 보일리가 없을텐데도.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었다.
"GG."
그리고 적조를 크게 휘둘러 녀석의 목에 박힌 화염석에.
까앙!
때려박았다.
기이이
나는 적조를 놓고 뒤로 뛰었고, 메이도 그리했다.
기이이이이!
달아오른 화염석이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타올랐고, 이내 그화염은.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거대한 폭발이 되었다.
불길은 살아있는 것처럼 주변에 넘실댔고, 그 중심에서 불타오르는 틀딱이 허우적 거렸다.
허우적 거리며 아우성쳤다.
그 거대한 존재감은 불타올라 금세 꺼졌고.
꺼진 자리에는 잿더미 하나만 남아있었다.
신대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어느 대마법사의 말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