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독의 하천
"너무 조용한 거 아냐?"
졸졸 흐르는 독극물의 소리만 들렸다.
나 역시 너무 조용하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입 밖에 낼 정도로 멍청이는 아니었다.
보통 저런 대사를 치는 놈부터 죽는다.
하지만 심하게 조용한 건 신경 쓰이긴 했다.
"독의 하천은 몬스터가 많이 나오는 곳인데. 절대 적을 수가 없고."
이곳은 환경부터가 특수했다.
플레이어인 해방자는 상호작용할 수 없는 계곡 위쪽에는 몬스터의 거주지 겸 둥지가 있고, 그 둥지에서 몬스터는 끊임 없이 나와 원거리에서 돌팔매질을 해대거나 직접 내려와 독이 묻은 창으로 쑤셔댔다.
물론 정말 무한한 건 아니겠지만, 이 몬스터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거의' 무한했다.
성체가 되는데 필요한 시간은 약 1년. 하지만 한 번에 6~10마리를 낳는 아인에 가까운 종족들.
옅은 지성과 함께 도구를 사용할 줄 알고, 독에 대한 지식과 어느 정도의 내성을 갖고 있어 독의 하천에서 독을 길어다 사용한다.
그 이상은 내가 알지 못했지만, 이들은 아주 독특하기 때문에 다른 아인 계열 몬스터보단 등장했을 때 알아채는 게 쉬웠다.
개처럼 길쭉한 주둥이에 날카로운 이빨이 달려있고, 복장은 보통 둥지를 책임지는 부족장 쯤 되어야 가죽 갑옷을 입는다. 그것도 동포의 생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이들은 사냥을 시작할 때, 아주 독특한 울음 소리를 내는데. 마치 목을 긁어내는 것 같은 하울링과 같았다. 게임에서 들을 때에는 적어도 그랬다. 어떤 느낌이냐면….
그 루 우 우 우 우 우 우 우 우
그래, 저런 소리를 낸다.
…씨발.
스르릉
내가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내자, 울음소리를 듣고 굳어있던 짱깨 역시 허리춤에서 적조를 뽑아냈다.
계곡 사이로 불어오는 퀴퀴한 바람이 물에 젖은 것 같은 개냄새를 사방에 퍼트렸다.
"이, 이거 설마."
"방패나 들어, 대가리 터지기 싫으면."
나는 허리춤에 대충 메어두었던 투구를 꺼내 머리에 눌러썼다.
대장간에서 보이길래 구매했었던 쇠투구는 은근히 착용감이 답답했다.
은근히 시야도 가려먹어서 앞도 잘 안 보이고, 되게 좆같았다.
"어디서 오는지 보여?"
"…응."
계곡 위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던 나는, 메이의 말과 동시에 들려오는 발소리에 문득 앞을 바라봤다.
"아, 씨발."
창을 꼬나쥔, 좀 많아보이는 괴물들. 개의 머리를 가지고, 헐벗은 채로 혓바닥을 내밀고 있는 아인들.
실제로 보니 위화감이나 불쾌한 골짜기가 개쩔었다는 건 차치하더라도.
"진짜 '포위섬멸진'이네."
고름쟁이들이 펼치던 짜가 포위섬멸진과는 다르게, 진짜 살의가 느껴졌다.
문득 이 새끼들의 유감스러운 설정 하나가더 떠올랐다.
이놈들은식인을 한다.
그래서 나는 더 격하게 싸웠고, 상황은 좆같이 돌아갔다.
*
"크아아아!"
힘이 나지 않았다.들어올린 칼날을 내리지르기도 힘들어서, 나는 억지로 소리를 토해내며 몸의 무게로 찍어눌렀다.
괴물 새끼의 어깨 뼈가 으스러지는 느낌이 들더니 장검이 푹 들어갔다가 나왔다.
"후욱, 후욱."
어깨에서부터 칼날이 깊게 파고들어 축 늘어진 개머리 괴물에게서 칼날을 뽑아내니, 눅진하게 늘러붙은 피가 늘어졌다.
그래도 메이는 사정이 나았다. 내가 쓰고 있는 그레이톰의 심판은 마법 봉인을 제외하면 튼튼하고 잘 드는 칼일 뿐이지만.
적조는 오히려 피를 머금을 수록 강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칼날은 새 것처럼 번뜩였고, 베고 나오는 칼날에도 피 한 방울 묻어있지 않았다.
설령 묻었더래도지워졌겠지.
"윽!"
생각이 길었다. 내 사고의 중심으로 끼어드는 창날을 피해내고, 작살과 유사하게 생긴 그 창 끝에서 시선을 쭉 이어갔다. 창을 든 몬스터가 보였다.
놈의 눈에는 어떤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애초에 개새끼라서, 감정을 읽고 자시고가 없었다.
어떤 감정이 있더라도 내가 읽을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명확한 살의를 띄며 접근했다.
콱!
다행히 가까워서 그런지녀석은 창을 빼내려다 나한테 죽었다.
올려친 장검을 따라 피가 후두둑 떨어졌다.
씨발, 슬슬 안 베이기 시작한다.
두들겨 팬 느낌이 가까웠고, 녀석의 상흔은 베였다기 보다는 도끼 같은 무거운 무기로 찍어내린 것처럼 보였다.
"컹!"
"으억!"
덜그럭
씨발, 옆에 한 마리 더 있었나?
창을 놓고 나에게 뛰어든 개새끼가 나를 물려고 턱을 열고 이빨을 세차게 부딪혔다.
나는 그 목을 붙잡고, 눈을 손으로 강하게 짓눌렀다.
"그르륵, 컹컹!"
그런데도 이 개새끼는 물러서지 않았다. 완전히 뭉게진 눈알이 장갑 아래에서 선명하게 느껴졌다.
씨발, 칼을 집어야…!
이 개새끼와 부딪혔을 때 떨어트린 장검과의 거리가 너무도 멀게 느껴졌다.
"크아악!"
심지어 이 개새끼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내 장딴지를 긁어내고 있었다.
좆됐네, 피가 줄줄 흐르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가죽 각반이 보호하지 못하는 장딴지라서 그런지 아무런 보호도 없이 긁어지고 있었다.
내가 붙잡은 개새끼의 아랫턱이 덜덜 떨렸고, 그 이상으로 내 복부나 어깨가 격하게 떨렸다.
검을 못 쓴다면 맨손으로라도 죽여야 한다. 나는 이 새끼의 짓눌러진 눈구멍에 손가락을 깊숙히 찔러넣었다.
손 아래에서 선명하게 뇌간의 촉감이 전해지고, 나는 그게 뇌라는 걸 본능적으로알아채면서도 좆같아져서 오만상을 찌푸리며 손을 강하게 눌렀다.
"그륵, 그르륵, 긁…."
개새끼는 점차 조용해지더니 죽었다.
나는 시체를 옆에 내던지고 장검을 집어들며 옆으로 굴렀다.
쾅!
돌덩이가 날아와 바닥에 내리꽂혔다.
독은 없는 공격이지만 그래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였다.
돌팔매 잘못 맞으면 뒈지니까.
숨을 고르면서 주변을 살피는데, 짱깨가 보이지 않았다.
괜히 조급해져서 소리쳤다.
"메이! 살아있냐!"
"이이익…!"
용쓰는 소리가 들려서, 나는재빨리 몸을 일으키고는 메이가 대치중인 괴물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콰득하는 소리와 그에 걸맞는 타격감이 손잡이를 타고 흘렀다. 머리가 뭉게진 괴물이 쓰러졌다.
"이것 좀…."
"알아, 빨리 일어나. 돌 날아온다."
내가 괴물을 발로 밀어 치우자, 그녀가 재빨리 일어나 방패를 치켜올렸다.
텅!
날아온 돌맹이에 메이가 억누른 침음성을 흘렸다.
다행히 막아냈지만, 언제까지고 이렇게 있을 수는 없었다.
내 체력도 한계고, 메이는 그야말로 서있는 게 고작이었다.
지구력 물약 같은 건 더 이상 갖고 있지도 않았다. 씨발, 다소 돈을 내서라도 사오는 건데.
"겨울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예, 예! 당신께서는 괜찮으신가요!"
그녀의 목소리에 서린 걱정과 울분이 느껴졌다. 자신이 함께 싸우지 못한다는 사실이 침통한 것 같았다.
물론 그녀의 근력이나 인지능력이 좆되는 건 사실이지만, 싸움에서 시각이 없다는 건 철저한 불리에 속했다.
설령 싸울 수 있더래도, 그녀의 칼질 한 번이 잘못되면 우리는 다 죽는다.
계곡 위에서 애미 뒈진 개새끼들이 컹컹 짖었다.
"전 아직 괜찮습니다. 아직은요."
씹어뱉은 말에 대답은 없었다.
나라도 그랬을 거다.
"메이."
"…응."
"좋은 생각 있냐?"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
"어."
"…."
메이가 조용해졌다. 내가 물어볼 거라고 생각을 못했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겨우 숨을 고르면서 큼직한 원형 방패를 대각선으로 들고 있었다.
"도, 도망갈까?"
"…."
"아냐, 역시 도망은…."
"좋은생각이야."
메이가 잠시 머뭇거렸다.
"진짜? 따라오지 않을까?"
"그게 내가 노리는 거야."
"응?"
텅
그녀는 겨우 숨을 고르고는 자신에게 쏘아지는 돌덩이를 방패로 빗겨냈다.
"잔말 말고, 내가 신호하면 도망쳐. 하지만 뒤를 보이면서 도망치면 안돼. 목표는 지저의 늪지 입구까지야."
지저의 늪지는 거대하다. 도시 외곽에 세워졌다고 한들, 산을 들어내고 만들어진 도시의 지하 절반 가량을 삼키고 있을 정도다.
그런만큼 지저의 늪지와 독의 하천으로 이어지는 계곡은, 지저의 늪지에 이르러서는 아주 거대한 암산이 되어 어떤 생명의 등반이든 차단한다.
즉, 놈들이 아무리 계곡에서 돌을 던지려고 하더라도 우리가 지저의 늪지 철창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면 원거리 공격 수단으로 우리를 노릴 수 없었다.
그때까지 녀석들이 얌전히 있을지, 아니면 술수를 눈치채고 본격적으로 내려오기 시작할지는 알 수 없었을 뿐.
하지만 이대로 얌전히 뒈지기 보다는 뭐라도 하는 게 나았다.
나는 피로 얼룩진 장검을 치켜들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지금이야!"
그와 동시에, 돌무더기가 날아왔다.
나는 검으로 내 머리를 필사적으로 보호했다. 머리에 딱 붙이다시피 검을 옆으로 들었다.
영화나 게임에서처럼 화살을 쳐내는 기예는 평범한 일반인인 내가 해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래도 몇 개의 돌덩이는 내 머리를 맞추려다 검날에 맞아 튕겨났고, 나는갑옷 속에몇 개의 멍이 생기게 되겠지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나는 비처럼 쏟아지는 돌덩이들을 애써 무시했다.
"겨울님! 뒤를 향해 뛰십시오!"
저 새끼들이 어중간한 지능이 아닌, 거의 인간에 준하는 지능을 갖고 있어서 좋은 점이 하나 있었다.
무장을 갖추고 있는 나와 메이를 먼저 공격하고 말지, 비무장에 약해보이는 겨울의 처녀를 노리진 않았다는 거.
그래서 겨울의 처녀는 바위 뒤에서 빠져나와 뛰어갔다. 여전히 돌은 나와 메이를 겨냥했다.
"윽!"
돌덩이 하나가 메이의 머리에 맞았고, 투구 덕인지 목숨은 부지했지만 메이는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씨발, 좋지 않은데.
심지어 피곤해서 머리도 안 돌아가기 시작했다.
업고 뛰어야 하나? 갑옷 때문에 무거울텐데.
다행히 나는 금방 걱정을 덜어버릴 수 있었다.
돌이 떨어진 건지, 아니면 더 이상의 원거리 공격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건지 개새끼들이 계곡을 포기하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돌로 된 비탈을 짐승의 발을 놀려 내려온 괴물들은 우리를 꼬라보기만 했다.
"하… 씹새끼들."
한 명이 쓰러졌으니 그 사이에 나를 죽이고 여자 두 명은 아껴먹겠다, 이런 뜻인 것 같았다.
아니면 씨발, 빌어먹을 놈의 피해망상이던가.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이상하게 괴물들이 조용했다.
지금 쯤 달려들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왠지 소름끼칠 정도로 조용했다.
뭘 하고 싶은 거지? 무기도 안 꺼내고?
뭔가, 위화감이 들었다. 이런 장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어디서 본 것 같다는 느낌을 얼추 받았다.
다른 게임에서 본 거였나? 아니면 영상을?
아니다,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마치 같은 패턴인 것만 같은….
"…아."
내가 내뱉는 숨소리와 함께, 세상이 느려졌다.
내 가장 앞에 있던 괴물의 뱃가죽이 기묘하게 늘어나더니, 그대로 찢어내며 무언가 튀어나왔다.
그건 무척이나 익숙한 무기였다.
방금 전까지 지상에서 우리랑 싸우던 괴물이 쓰던 작살과 비슷했다.
하지만 모양새를 읽어낼 수만 있을 뿐, 나는 그 속도와 움직임을 읽을 수 없었다.
죽는 건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내 손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귀청이 떨어지는 것 같은 쇳소리와 함께, 격렬한 부유감이 나를 덮쳤다.
그리고.
…그리고 뭐지?
나는 뭐 어떻게…?
흐릿해져 가는 시야가 강제로 밝아졌다.
갑자기 저만치서 다가오던 괴물이 밝게, 가깝게 보였다.
2m가 조금 더 넘는 것 같은 거대한 체구.
그에 걸맞는 근육질의 팔과 다리.
돌덩이를 던지던 괴물들이 겁에 질려 물러나게 하는 위압감.
양손에 든 도끼와 창.
등 뒤에서 흔들리는, 잘린 꼬리.
길쭉한 주둥이는 그 체구에 맞게거대했다.
그제서야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내 반응 속도로는 읽어낼 수 없는 속도로 쏘아진 투창. 그걸 내 무의식적으로 막아낸 것.
그 사이를 노린 듯이, 비이성적으로 움직인 괴물들과 연출, 위압감.
칼라미티 사가의 모든 보스는 컷씬을 동반한다.
그리고 컷씬은, 반드시 하기로 되어있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의지와 능력과는 별개로 녀석의 투창을 막아낸 것은, 컷씬이라고 한다면 들어맞는다.
그럼 설마 이 새끼가?
크 르 르 르 르
내 의문에 대답이라도 해주는 것처럼 녀석이 낮게 울었고, 다른 잡졸 괴물들이 일제히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크 오 오 오 오 오 !
좆됐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