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1화 〉여름의 도살자 (31/274)



〈 31화 〉여름의 도살자

나무로 된 욕조. 깊숙히 몸을 담그니 절로 입에서 으어어, 하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딱히 내고 싶어서  건 아닌데… 그냥 담그자마자 나오는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행동을 어떻게 본 건지, 내 뒤에서 다가온 여자는 맑게 웃으며 키득거렸다.


"주현성님은 목욕을 좋아하시나 보군요."


그녀는 한쪽 팔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한쪽 눈도 멀어서 감았다. 그래서 한쪽 눈만을 뜬 채로 내게 다가온 그녀는, 돌아오면 계속하게 해주겠다고 말했던 이 도시 최고의 권력자이자 검사였다.
고대의 도시의 성주, 세레나 그레이톰은 내가 몸을 담근 욕조에 다리를 밀어넣었다. 매끈하고 뽀얀 피부의 다리가 물 아래에서첨벙대고, 나는 그 다리를 물끄러미 보다가 눈을 들어올렸다.
튼실하지만 어쩐지 조금 살집이 있는 엉덩이, 그 사이의 흰색의 피부 위로 드러나있는 균열. 왠지 모를 탐구심이 들게 만드는 매혹적인 균열이었다.

 균열은, 스스로의 분비물로 축축했다.
나는 손을 뻗어 그 엉덩이를 잡아벌렸고, 세레나는 몸을 흠칫할 뿐 내 손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균열에서 애액이 끈적하게 떨어졌다. 잡아벌린 둔부 사이로 벌려진 핑크색 보지가 육욕으로 번들거렸다.


"젖어있네요."
"…으."

부끄러운지 잠시 입을 달싹거렸지만, 이내 결단을 내렸는지 그녀는 망설임 없이 욕조에 몸을 밀어넣었다. 찰랑이는 물결이 조금 높아졌다. 나는 나무 욕조의  위에 팔을 걸치고는 숨을 내뱉었다.
세레나는 그런 나를 지그시 보면서 말했다.


"…좀,기대해서 그렇습니다."

그거 좀 꼴리네.
나는 웃으면서 욕조에 몸을 기댔고, 그러자 빳빳히 선  자지가  위에서 찰박였다. 세레나는 하나 남은 눈으로 그 자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미리 말하겠습니다."

후, 하고 짙은 숨결을 뱉어낸 세레나가, 하나 뿐인 팔로 제 가슴께를 쓸며 말했다.

"전 처녀입니다."
"오."

나랑 자고 싶어하길래 아닌 줄 알았는데, 처녀라니.
 다크 판타지에서는 희귀하긴 한데,  편으로는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이 세상에 얼마 남지 않은 피난처의 리더라면, 누군가에게 강간당할 염려도 없었으니.
게다가 얘, 존나 세니까.
그럼 좀 놀려먹어도 되겠는데.


"그럼 이건 어떻게 보십니까?"


나는 보란듯이 자지를 붙잡고 흔들었고,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내게 다가왔다.
뭘 하려는지는 뻔해서, 나는 욕조에 기대고 있던 등을 떼내고서 욕조 중앙에 앉았다.
내 위에 걸터앉은 세레나는 드물게 소녀다운 얼굴로 나를 꼭 껴안았다. 껴안고 제 뺨을 내 뺨에 맞대고 몇 번 부볐다. 귀여운 년.
밀착한 탓에 보지 위에 자지가  문질러지니 그녀는 얕은 신음을 뱉어냈다.

"엄청 크네요…."
"그렇죠."
"혹시 주현성님은… 처음이십니까?"
"그래보여요?"


그녀는 내 대답에 노골적으로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핸섬한 남자가 아다일리가 없다는  눈치챈 거겠지.
괜히 으쓱해지는데, 그녀는 부루퉁한 표정으로 내게 입술을 가져왔다. 맞닿은 입술에서 은은하게 온기가 전해졌고, 세레나는 한팔로 지탱하기 위해서인지 그 팔을  목에 감고서 가까이 붙었다.
은근히 가슴이  있네, 따위를 생각하고 있자니 그녀가 혀를 밀어넣었다.

쯉, 하고 내 혀를 빨아올리면서 허리를 들썩였고, 나는 그렇게 들썩이는 그녀의 움직임마다  피부 위로 애액이 묻어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주로 포피에 묻긴 했는데.
그래도 그 흥분을 못 읽어내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서 나는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그리고허리를 조금씩 움직여 클리토리스를 기둥으로 훑었다.

"하, 하지 마십시오. 조금 더… 키스하고 싶습니다."

부끄러운지 달아오른 얼굴로 드문드문 말을 뱉어내는데, 그게 되게 귀여웠다.
카리스마 범벅 지도자인줄 알았는데.

"으, 그런 표정 짓지 마십시오."


세레나는 부루퉁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다가, 다시 입을 맞췄다.
맞대어진 입술에서 그녀의 흥분이 숨결이 되어 내 입으로 전해졌고, 나는 그렇게 달아오른 그녀의 허벅지를 쓸면서 허리를 감은 팔을 움직였다.
파고든 손이 그녀의 엉덩이를 움켜쥐자, 그녀는 헐떡이면서도 나를  껴안았다.

그녀의 보지가 흠칫거렸다.
맞닿은 기둥을 빨아내듯이 질구는 움찔거리면서 기둥을 적셨고, 나는 물과 약간의 애액, 흠뻑 흘러나오는 쿠퍼액에 젖은 자지를 한창 그녀의 질구에 문지르다 크게 허리를 빼냈다.


"아…."


아쉬운 표정을 지었던 세레나의 얼굴은 금방 달아올랐다. 그렇게 뻗었던 허리를 다시 내지르니, 그녀의 질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말, 호흡, 키스. 어느 쪽도 택하지 못한 채로 그녀가 달아오른 숨을 토했다.
나는 그렇게 신음하는 세레나의 몸을 욕조에 기대게 하고는 허리를 밀어넣었다. 푹 젖은데다 아까부터 집적댄 탓에  빡빡하긴 해도 잘만 들어갔다.


"흐윽!"


 임신공성추는 아무 문제 없이 그녀의 자궁구까지 도달했다.
엔조이에서 애정이니 뭐니 논할 정도로 병신은 아니지만, 그녀의 표정은 녹아내린 채로 내게 애정을 갈구하고 있었다.
보지도 그랬고.
 자지를 제 것인 것처럼 꽉 물고 놓아주지 않는데, 억지로 허리를 틀어내면서 빼내니 그녀는 헐떡이면서 허리를 젖히고,목을 빳빳히 세우며 가볍게 경련했다.
감도 좋은데?


"자위 자주 합니까?"
"으, 아, 조, 조금."
"조금은 무슨. 이렇게 조여대고 가버리는 거 보면 중독인데요."

내가 뱉은 노골적인 말에 그녀는 눈을 떨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은 눈에서 물줄기가 주륵 떨어졌다.
너무 놀렸나?
여자가 삐지면 무서운 법이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천천히 허리를 밀어넣고, 빼냈다.


"아, 아하으… 아…!"


빽빽하게 조여오는 보지에서는 핏방울이 흘러나와 욕조에 떠다녔는데, 나는 그걸 보면서 처녀라는 말을 확실히 신뢰할  있었다.
애초에 이 조임이면 처녀아닌 게 이상하다.
처녀답지 않은 감도로  괴물 자지를 받아들인 채로 헐떡이는 그녀의 등줄기를 쓸었다. 그녀는 그 손동작 하나에도 몸을 바르르 떨면서 내게 앵겨왔다.


"키스, 키스…."

진짜 앵겨왔다.
나는 어린애처럼 조르는 성주를 강하게 껴안고는 입술을 맞댔고, 곧 정신 없이 그녀의 혀를 탐닉했다.
혀를 얽고, 입천장을 핥아내고, 혀끼리 문대면서 그녀의 침을 마셨다.
그 키스와 더불어 내 허리는 점점 빨라졌다. 내가 밀어넣는 속도가 빨라지니 그녀는 콧소리를 흘렸다.
빼낼 때마다 귀두에 걸린 질육이 꿈틀거렸고, 기둥 때문에 넓혀진 질내가 애액을 흘려댔다.


"아, 으, 저, 그윽…."

딱 봐도 가버릴 것 같아하는  같았다. 내 허리에 감은 발이, 발가락을 오므린데다 딱 붙어있는 허벅지가 경련해대는 걸 보자면 명확했다.
평소라면 좀 더 박아댔겠는데, 양측 다 환자인데 너무 격하게 하는 것도  아니니 나는 허리를 느긋하게 눌러 자궁구에 귀두를 대고 문질러댔다.

"아, 아아윽! 거기, 거, 기, 좋아. 으윽."


그녀는 문장을 완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뭘 바라는지는 알 수 있어서 일부러 허리를 꾹꾹 눌러가면서 그녀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튼실한 순산형 엉덩이가 손에 감기니,그녀는 헐떡이면서 나를 껴안았다. 하나 뿐인 팔이 내 목에 감겨지고, 내 귓전에 쪽쪽대는 소리가 들렸다.

"안에, 안에…!"


나는 귀두를 자궁구에 쳐박고, 그대로 안에 싸질렀다.
요도구를 타고 뿜어져나온 정액이 벌벌 떨리는 질내를 메웠고, 곧 내 목을 껴안고 신음하던 그녀가 눈물을 줄줄 흘렸다.

"흐으… 흐으, 후… 현성님…."

그녀는 달아오른 표정으로 키스를 갈구했고, 나는 그녀의 젖은 회색 머리칼을 쓸어주면서 입맞췄다.
오랜만에 하는 사정이라 양이  많았지만, 그녀는 별 불만 없이 자지를 핥아 깨끗하게 해주었다.

*


목욕을 마치고, 안대 없이 얇은 차림만을 하고 있는 세레나가 내 말을 듣고는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반대편에 앉아있는 나의 손을 만지작대면서 홀린듯한 표정을 짓고 있긴 했는데, 뭐 어때.


"…여름의 도살자라."


방금 해댄 것 때문에 좀 피곤해보였는데, 그래도  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것 뿐만이아니라 자고 있던 제 언니 세네카까지 불러 내 얘기를 들어줬다.
세네카의 표정에서는 점차 짜증이 사라지고 당혹감과 놀라움이 감돌았고, 그건 세레나 역시 그랬다.

이 세계관 속 사람들에게 있어 4신은 그런 위치였다.
인간을 버렸지만, 언제든 다시돌아온다면 세상의 균형을 되찾을 수 있을만한 강자.
그런 강자가 이 도시를 습격하게끔 드래곤을 유도하고,  드래곤에게 힘을 줬다고 하니….
'벼락이 너를 벌하려고 네 머리에 떨어졌다.' 같은 말처럼 들리겠지.

"그래서 직접 찾아가고자 합니다."


세레나는 그 말에 눈을 크게 떴다가 걱정스럽게 바라봤고, 세네카는 제 턱을 짚은 채 침음성을 흘렸다.


"신을요?"
"예, 제가 찾아오는 기다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세레나는 어떻게든 반박할 말을 찾는지 허둥댔다.

"세레나씨도 그랬잖습니까. 제가 그 전사, 인간의 왕으로 사람들을 규합할  한 명일 거라고."
"물론 그랬습니다만…."
"저는  미래를 본 게 당신 혼자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아마 여름의 도살자도 그걸 보고 저를 끌어내려고 한 거겠죠."

물론 정말 그럴지는   없지만 내가 신을 잡아야한다는 건 사실이고, 그리고 그놈이 뭔가 흉계를 꾸몄다는  역시 사실이었다.
4신 중 하나가 적극적으로 고대의 도시를 공격한다니. 게임에서는 절대 없을 일이었다.


"그러면… 가시는 거군요. 원래의 목적은 괜찮으신 겁니까?"


아하, 노선을 거기로 트시겠다?
그녀는 내 사명 뭐 그런 걸 언급해서 신한테 가는 걸 방해하고 싶어하는 듯 했지만 애석하게도  사명이 그거였다.
정확히는 퀘스트 같은 것 같긴 한데.

"제 원래의 목적이 그겁니다."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세레나는 한참간 반응하지 않았으나 이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보급품을 챙겨드리겠습니다."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끝났고, 나는 돌아가 떠날 준비를 했다.
세레나의 말대로 왕으로 공표된 나는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고, 보급품을 준비하는데에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 준비 자체에는 며칠이나 소모되었다.
그리고 출발하는 당일, 준비한 보급품  일부를 허리춤에 메고, 가슴, 팔에 두르고는 두드렸다.


턱, 턱.


속이 꽉  흉갑과 완갑. 검집.
뼈라고 해도 믿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는 높았으나 특유의 질감이나 색감은 분명히 뼈였다.
내가 뜯어낸 드래곤의 아랫턱으로 만들어낸 장비들은 아이템은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성능으로 나를 만족시켰다.

그 뿐만이 아니다.
나는 투구에 장식을 추가할 수 있는지 건의했고, 그 결과 내  체인메일을 만들어준 장인은 투구에 간단한 드래곤 뼈 장식을 달아주었다.

"힝, 나만 멋진 거 없어."
"꼬우면 드래곤 잡으시던가."
"좀 나눠주면 안돼…?"
"남은 게 없어."


메이는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가 투구를 뒤집어썼다.

"출발하자."

우리는 망설임 없이 간단히 수리된 성문 밖으로 나섰다.

*

우리는 그리 멀리 가지 못했다.
나무가 울거졌다는 것도 그 이유였는데,어째서인지 지도상에 나와있는 길의 대부분이 나무로 메꿔져 길을 찾아서 이동해야 했던 탓이었다.
아마 인간들이 도시 밖으로  나가기 시작하면서 몬스터들의 세력권이 넓어져 지형이 변하거나 나무가 자라나거나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야영지를 설치했다.
야영지라고 해봤자 모닥불 하나와 짐을 풀어헤친 게 전부였지만.


나는 내 손 안에서 장작이 불이 붙는 걸 물끄러미 보다가 모닥불 안으로 내던졌다.

그런 내 옆에는 메이와 겨울의 처녀가 있었다.
…아주 딱 붙어있었다.


"왜 그래?"

메이는 무릎을 안은 채로 나한테 그렇게 물었다.

"아니… 게임이랑 많이 달라서."
"뭐가?"
"화염 부여는 무기에만 화염을 두르게 되어있는데… 방패는 물론이고 장작에까지 사용할  있을 줄은 몰랐거든."

심지어 이 화염은 내게는 화상을 입히지 않았다.
다른 생물체에게는 어떨지  수 없었지만, 내가 그렇게 정신나간 놈은 아니니 실험해볼 요량은 없었다.
여기에 생물체는 나를 제외하고는 겨울의 처녀와 메이 밖에 없으니까.
내가 한숨을 내쉬며 하얀 김을 뿜으며 익어가는 스튜를 물끄러미 보자 겨울의 처녀는 그릇에 스튜를 가득 담아 내게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언니!"


그녀들은  다른 말 없이 내 옆에 붙어앉았다.

…좁은데 왜 이렇게 앉는 거지? 추워서 그런가?
확실히 숲은 추웠다. 바람이  때마다 이가 딱딱 소리를 내며 부딪혔고, 피부 위로 소름이 돋았다.
갑주를 충실히 두르고 있어도 그랬다.

"오늘은 여기서 쉬고 갈 거야?"
"뭐, 그래야지."

메이는 나한테 딱 붙어 스튜를 먹기 힘든 주제에 오히려 더 가까이 붙었다.
차라리 그럴 거면 무릎 위에 앉지 그러냐.
물론 그 뒤에 일어날 일은 책임질 수 없지만.


"맛있어."
"언제나 감사합니다, 겨울님."
"너무 띄워주지 않으셔도 돼요. 당신께 봉사하는 게 제 보람입니다."


그녀는 고아하게 고개를 숙여보였고, 나는 피식 웃으면서도 스튜를 입에 밀어넣었다.
우리는 한동안 그렇게 말 없이 식사했고,얼마 지나지 않아 겨울의 처녀 역시 식사 대열에 합류했다.
베일을 곱게 접어 품 속에 넣고 식사를 하는 그녀의 모습은 좀 신선하기까지 했다.

"근데 우리가 얼마나 왔지?"


메이는 그렇게 물으며 입을 오물거렸고, 나는 메이의입가에 묻은 국물을 장갑을 벗은 손으로 문질러 닦았다.
촉촉하고 말랑말랑한 입술이었다.

"글쎄, 지도를 봐야겠는데. 지도 좀 꺼내줄래?"
"알겠어."


메이는 스튜가  나무 그릇을 들어올려 자기 목구멍에 때려박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배낭에 다가갔다.

"어디보자… 지도…."
"너무 어지르지 말고."
"알고 있어! 너무 애 취급 하지마, 나도 성인…."

찾았다. 그녀는 그렇게 탄성을 내고는 지도를 끄집어내 종종 걸음으로 다가왔다.


"근데 나 지도 볼  모르는데 네가 좀 짚어―"

퍼억!


나는 눈을 크게 떴고, 메이 역시 눈을 크게 떴다.
메이가 든 지도에 구멍이 뚫려있었다.
그리고 지도에서 직선 방향으로 바로 아래, 거기에는 구멍을 뚫어낸 장본인으로 보이는 거대한 가시가 있었다.


"으갸아아아아악!"

메이가 비명을 지르면서도 착실하게 방패를 꺼내들었고, 나는 오른손으로 장검을 끄집어냈다. 그 끄집어낸 장검의 위로 날아오는 궤적이 겹쳤다.


까앙!


와, 씨발.
운이 좋았다.
가시는 빗나가 볼품 없이 바닥을 굴렀다.
그래도 두번째 역시 빗나간다고 장담할 순 없다. 나는 투구를 황급히 집어들어 뒤집어썼다.


"씨발…."

몰려드는 괴물의 수가 만만치 않았다.
게임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불에 이끌려서 몰려드는   짐승의 기본적인 행동 방식을 거스르는  아닌가?


사자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미간의 인간의 얼굴이 박혀있는 기이한 짐승이 나를 보고 낮게 울었다.


"겨울님, 제 뒤에 계세요."
"예, 부디 다치지 마세요."
"가능하면요."


수가 너무 많았다.
겨울의 처녀도 지키고, 나 자신도 지키면서 전부 일소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거인의 힘이라도 내 마음대로 키고  수 있다면 가능할텐데.

"메이, 알지?"
"응."

하지만 한 편으로는 잘되기도 했다. 화염 부여를 실험해보고 싶었는데, 그걸 실험해볼만한 적은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게임에서의 화염 부여는 단순히 무기 데미지에 비례하는 화염 피해를 추가할 뿐이었지만, 이 세상에서는 어떨지 모른다.
나는 드래곤의 뼈로 만든 칼집에서 그레이톰의 심판을 뽑았다.

검날이 검집을 빠져나올 수록, 회색의 영롱한 빛은 주변에 흩뿌려졌고  탓에 짐승들은 주춤하더니 조금 물러섰다.
완전히 뽑혀져나온 검날은 어둑한 숲에서는 더욱 밝게 빛났다.
이제 여기에….

장갑을 도로 낀 왼손으로 검날을 가볍게 쥐었다. 베이지는 않도록 칼몸을 잡은 내 손가락은, 빠르게 훑어올라갔다.
나는 동시에 화염 부여에 대해서 생각했다. 정확히는 칼날에 화염을 두르는 이미지를.

푸화아아악!


그러자 화염석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렬한 화염이 검날을 타고 흘렀다.
검날을 짚고 있던 내  역시 화상을 입어야 했을테지만, 기이하게도 이 화염은 내게 영향을 주지 않았다. 다른 곳에 번져서 타오른다면 모를까.
나는 괜히 멋져보이려고 손목을 움직여 검을 한 바퀴 돌렸다. 그리고는 양손으로 쥐었다.

역시 썩어도 짐승들.
몬스터들은 화염이 두려운지 선뜻 내게 다가서지 못했다.


"좋아, 덤…벼?"


괴물들은 더 크게 물러났다. 아예 등을 돌려서 도망치는 놈들도 있었다.
뭔데 씨발?
의아해하던 나와는 다르게 메이는 말을 잊은 것처럼 어,  하는 소리 밖에내지 못했다.


"뭔데?  그래?"
"…불, 불!"


불?
아니 뭐 그야 불타고 있긴 한데, 이건 내게 피해를 안 주니 걱정할 필요가….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위화감 하나를 깨달았다.
등이 존나게 뜨거웠다.
무슨 불이라도  것처럼.

씨발 이 천천히 뒤로 도는 거 맨날 병신같다고 깠었는데….
그따위 생각을 하며 뒤를 도니, 불타고 있었다.


뭐가?
나무가.


한 그루가?
아니 존나 많아서 셀 수도 없는 나무가.


나는 그제서야 이해가 됐다.
괴물들은 내 존나 불타는 칼이 아니라, 그 칼에 질러진 불길이 번지는 걸 두려워해서 도망간 거였다.
이제  불은 숲에 번질테고, 그렇게 되면 우리도 안전하지 않았다. 한시 빨리 숲을 벗어나야 했다.

나는 처음 보는 표정으로 얼척 없다는 티를 내는 메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가방 챙겨, 튀자."

그래서 나는 일부러 불을 지른  했다.
전부 다 계획대로인 척, 예상했던대로 인 척.
그런 표정으로 일행을 이끌어 숲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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