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9화 〉여름의 도살자 (39/274)



〈 39화 〉여름의 도살자

그 찐따 같던 부족장이 맞냐? 정말 부족장은 괴물이다.
나는 주변 도마뱀 새끼들의 표정에서 대충 그정도의 감상을 읽어냈고, 내가 자리를 피하자마자 그 자리를 부족장의 창이 휩쓸었다.
고깃조각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크  아 아  아 아!

부족장은 언어를 잊고 울부짖었다.
그 울부짖음은 파괴를 동반했고, 나와 메이는 맞지 않으려 달리면서도 녀석의 모습을 눈여겨 보았다.
전신을 뒤덮은 검은 핏줄에서는 이따금씩, 그 약품과 같은 색깔의 액체가 푸슉하고 튀어나왔다.
그 뿐만이면 모르겠는데, 녀석은 관절이 망가지는 것도 모른다는 듯 마구잡이로 무기를 휘둘러댔다.


명확하게 관절의 가역범위를 아득히 넘어서는 움직임이었다.

"미친새끼…!"

내가 씹어뱉으며 칼을 휘두르자, 칼에서 쏘아진 번쩍거림이 녀석의 팔에 칼집을 새겼다.
하지만 피가 새어나오지 않았다. 녀석은 단지 맛이 눈동자로  쪽을 보더니 창을 내리질렀다.


"구왁!"


그야말로 원숭이가 휘두르는  같은 이성이 느껴지지 않는 공격.  탓에 피하기는 쉬웠지만, 모래가 어마어마하게 탓에 눈 앞이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입에도  들어간 것 같았다.

"에페페, 씨발 입에 들―"


콰아앙!

그 순간 들려오는 폭음에 반사적으로 장검을 들어올리자 몸이 또 다시 허공을 날고 있었다.
어째 이 다크 판타지  괴물놈들은 체급 차이가 나서 그런지는 몰라도 항상 공격이 나를 공중을 날게 만들었다.

"모래라 다행이네."

그래도 등에 닿는 게 모래라서 다치기는 커녕 거의 피해도 입지 않았다. 떠내려가듯 밀려나긴 했지만, 달려온 마리암이 나를 일으켜줬다.


"귀공, 도대체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 거야?"
"그러게요, 저도 알고 있었으면 좋겠는데요."

내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는데도 그녀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살폈다.


"귀공은 죽으면 안돼. 모처럼 성전을 향해 다가가는 건데, 여기서 무릎 꿇어서야 여름의 도살자를  면목이 없지."

교회 누나도 아니고.
내가 착잡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장검을 고쳐쥐고는 부하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자유롭게 쏴라, 대전사공을 엄호해!"

그러자 그녀의 부하들이 무더기로 몰려나와 원거리 무기를 쏘기 시작했다.
근데 원래 싸우던 도마뱀은 어쩌고?
내가 주변을 둘러보니, 도마뱀들은 대부분 도망가거나 무기를 내려놓고 묶여있었다.


좋아, 이러면 망설임 없이 가담할  있지. 나는 꿋꿋히 버티고 있는 메이에게 달려가면서 장검을 크게 휘둘렀다.


카가가가각!

현란하게 튀는 불똥과 무감정한 표정으로 그걸 바라보는 부족장, 존나 놀라고 있는 메이까지.
부족장의 대가리에 틀어박힌 검기가 무슨 금속이랑 부딪힌 것처럼 흩어졌고, 메이는 그 잠깐을 놓치지 않았다.

철컥

방패가 접히고, 그러자 거기에 몸을 기대고 있었던 부족장의 몸이 기울었다.

콰앙!


그리고 다시 펼친다.
간단하지만 효율적인 궤적을 그리며 방패의 날이 녀석의 미간에 틀어박혔고, 그대로 날아가…진 않았다.

기긱
기기긱

오히려 버티고 있었다.
드래곤도 얻어맞으면 비틀거리면서밀려나는 공격을, 고작  하나 빨았다고 버티고 있었다.
씨발, 거의 권능급인데.

여름의 도살자가 내린 하사품이라는 생각은 여전히 들지 않았지만, 나머지 4신 중 하나가 개입했을 가능성은 높았다.


그리고 그 잠깐의 생각을 하는 동안, 녀석은 점점 몸을 숙였다. 방패를  메이의 몸은 그에 맞춰 점점  기울었고, 짱깨가 용쓰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친 씨발…."

이렇게 위험한 약품일 줄은 누가 알았겠으며, 그 씨발 뒷골목의 새끼는 이런 약을 어떻게 갖고 있었는지.
의구심은 커져만 가지만, 저 새끼를 무력화하고 나서 들어도 늦지 않다.
나는 바로 뛰쳐나가 칼날을 휘둘렀다.


카앙!


다리에 부딪힌 검격이 다시 산산히 흩어졌고, 나는 억지로 허리를 꺾어 다시 한  휘둘렀다.

까앙! 깡! 까아앙!


도끼질을 하는 것처럼 반동을 주어 연거푸 휘둘렀고, 방패와 힘겨루기를 하느라 메이에게 신경이 쏠려있던 놈의 다리는 천천히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부족장은 뒤늦게 나를 발견하고는 손을 뻗었지만, 내가 더 빨랐다.


콰작!


무슨 얼음 깨지는  같은 소리가 들리더니, 이상한 뿌연 액체가 뿜어져 나오면서 녀석의 다리가 잘려나갔다.
동시에 나는 뒤로 뛰어 물러났다.
씨발, 거인의 힘만 있었어도 옛저녁에 자르는 건데.

그래도 이정도면 충분하다. 녀석은 이제 움직일 수 없다. 이제 사격으로 철저히 깎아내면….
무릎을 짚고 숨을 고르고 있는데, 마리암이 중얼거렸다.


"여름이시여…."


빌어먹을 부족장놈은 다리가 잘리지 않았다는 것처럼 일어났다. 다리는 분명히 잘려있었는데도.
바닥을 짚은 단면에서는 그 액체가 연거푸뿜어져 나왔다.

나는 내 얼굴이 존나 하얗게 질렸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씨발 저게 내가 마신 약이라고 생각하니까 머리가 핑핑 돌거든.


"존나 구역질나네…."

쏠리는 광경이었다. 잘린 다리로 비척비척 일어나, 창을 바닥에 짚으며, 나에게 증오가 가득 담긴 눈빛을 보내오는 게. 누가 보면 씨발 미래에서 온 살인 기계인 줄 알겠다 싶은 광경이었다.


"귀공… 어떻게  건가?"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장검에 왼손을 가져가 검날을 훑어올렸다.

푸화아아악!

피어오르는 화염, 놀랐는지 그걸 바라보는 부족장과 도마뱀들, 용병들과 도적, 기사들.
좌중의 이목이 하나로 모인 상태에서 내가 뭔가 존나 멋있는 대사를 찾아 눈을감았다.
침묵이 감돌았고,  침묵은 누가 헛기침을 할 쯔음에 깨졌다.

"여름의 대전사이자 대리인으로서 말한다. 저 놈은 이단이다! 토벌해라!"


내 칼 끝이 부족장을 향하고, 감정이 거의 느껴지지 않던놈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심지어는 이마에 나있는 혈관에서 약물이 새어나왔다.
존나 고름 같아서 역겨웠다.

"대전사께서 말하셨다! 무기를 들어라!"

그러자 언제 전장에 합류했는지, 의수에 날붙이를 붙이고 슬림한 전신 갑주를 두른 기사단장이 외쳤다.
기사단들이 일제히 무기를 들어올려 방패에 두드렸고, 산적들도 질  없다는 듯 제 투구나 방패를 두드렸다.

아, 이 맛에 사이비 교주하는구나.
나는 차오르는 충실감으로 불타오르는 장검을 단단히 쥐었다.
물론 저 꼬라지가 됐으니 화염이 먹히지 않을까 싶어서 해본 짓거리였다.

하지만 내 휘하의 도적단이 존나 사기가 충전되었으니 좋은게 좋은 거 아닐까?
나는 어느새 내 옆에 서서 얼척 없다는 눈빛을 보내오는 메이와 눈을 마주쳤다.


"…아가리 해."
"…사이비."


투구를 쓰고 있어서 인중은 때리지 못했다. 대신 나는 메이와 함께 달려들었다.


콰앙!

창을 찔러오는 부족장을 마주보며, 우리는 피하지 않았다. 대신 메이는 내 앞에서 뛰어가다가 방패를 펼쳤다.
창이자기 머리가 스칠 때 쯤에 정확히 펼쳐서 그런지 창은 놈의 손에서 튕겨져 나갔다.

 아 아  !


놈은 분노에 차서 주먹을 휘둘렀고, 메이는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방패를 접었다.
허공을 스치는 주먹에서는 거센 바람소리가 들렸다.

"흐랴아아아!"


나는 그대로 스쳐지나가며 검을 휘둘렀고, 검기와 동시에 검날이 녀석의 피부에 닿았다.

까앙!

씹 손 존나 아프네.

하지만 살갗이 찢어지는 걸 봤다.
녀석의비늘은 공격에 쓰이는 부위나 신체말단에서 멀어질 수록 연약했고, 나는  점을 노려 찢어진 어깻죽지를 헤집었다.

크 아 아 아 아 아!

"좀 죽어라 이 개새끼야!"


진짜 존나 안 죽네.
헤집어진 어깻죽지의 굵다란 혈관에서 그 약물이 콸콸 새어나왔지만 부족장은 죽지 않았다.
녀석이 휘두른 팔이 스쳐 내 몸뚱이가 그대로 바닥을 미끄러졌고 나는 모래 바닥을 짚으며 숨을 토해냈다.

"거기 서. 이 씹새끼야!"

[거인의 힘이 발동됩니다.]

짜증을 타고 어마어마한 거력이 내 혈관을 돌아다녔다.
빡쳐야 켜진다니 진짜 개좆같은 조건이었지만, 그거 때문에 마음을 놓을 순 없었다. 화가 풀리면 꺼질 수도 있으니까.

난 나를 스쳐지나가는 씹새끼가 다시 주먹을 휘두르는 걸 보고는, 바로 몸을 돌려 등을 내보였다.
내 등에는 폭군의 검이 메어져 있었고, 지금 내 다리는 이 새끼의 힘을 버틸 수 있을 터였다.

꽈아앙!


으어어 씨발.
온 몸이 울리는 것 같은 충격이 몸을 훑었고, 나는 그 주먹이 스치기 무섭게 몸을 돌리며 장검을 내질렀다.

콰자작!

두개골을 꿰뚫는 감각이 손아귀를 내달렸고, 나는 그 구역질을 간신히 참으며, 검을 밀어넣었다.


"끄르야아아아아아아악!"

나를 깨무려는 듯 아가리를 벌리던 부족장은그대로 멈췄고, 나는 그 힘에 떠밀려 쭉 미끄러지면서도 칼날로 머리를 헤집었다.

그륵… 그르륵….


그리고 놈이 마침내 침묵했을 때, 나는 그레이톰의 심판을 녀석의 뇌간에서 뽑아들었다.
존나 끈적거렸다.

"씨…발 좆밥새끼가… 깝, 치고 있어."


아, 씨발 존나 힘드네 진짜.
나는 숨을 겨우 고르면서 끈적한검날을 녀석의 비늘에 문질렀다.

떨그럭

그때 무언가 녀석의 품에서 떨어져 나왔다.


"엉? 이건  뭔…."

나는 그게 무척이나 익숙하게 생겨서, 문득 도구낭을 뒤져 비슷하게 생긴 물건을 꺼냈다.
역시, 여름의 인장이었다.


"대전사공이 놈을 쓰러트렸다!"
"귀공! 몸은 괜찮은가!"

괜히 씨발 사람들 목소리가 조금 멀게 들리는 게, 존나 힘들어서 산소가 딸리는 모양이었다. 나는 숨을 들이쉬면서 손을 대충 흔들고는, 바닥에 떨어진 인장을 집어들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승리했―"

퍼어어어어어엉!


"구아아아아악!"

나는 인장 두 개를 모두 왼손에 옮겨들어 치켜들었고,  순간 그 인장에서 좆되는 섬광이 터져나왔다.

 섬광은 나를 집어삼켰고, 내게 달려오던 모든 이들이 멀어지는 것처럼 보이더니  눈앞이 이리저리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 뒤틀림은 이내 뚜렷한 형상으로 변했고, 나는 그 형상을 두번째로 본다는 사실을 알  있었다.

타오르는 풍경 속, 심후한 분위기를 뿜어대는 미친놈.
여름의 도살자가 도끼를 등에 맨 채로 나를 꼬라보고 있었다.

뻘쭘하게 인장을 내리고는 다시 도구낭에 밀어넣었다.
이 인장을 괜히 내어주기 싫다는 것도 있었지만, 이 씨발놈이 교리를 좆같이 한 덕분에 내가 좆빠지게 고생한 게 떠올랐다.

"야이 씨―"

콰아아아!


그래서 욕이나 시원하게 해주자 싶어서 아가리를 연 순간, 이 새끼는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주먹을 뻗어 내 얼굴 옆을 가격했다.


"…발 왜 그래."

불러와서 죽일 생각인 건가?
씨발 신인데 염치도 없나?
이런 생각으로 검을 뽑으려고 칼자루에 손을 가져가는데,  씨발놈이 그걸 잡아 막고는 중얼거렸다.

"손님을 데려왔군."


손님?
뭔 개소리야 씨발.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고, 그러자  처음 보는 존나  벌레가 그 주먹에 박살나 흩어지고 있는 게 보였다.

…뭐야 이거 씨발.
 새끼가 소환해놓고 약 파는 거 아냐?
이 새끼 믿는  중에 사이비도 많은데.

"조심해라. 봄은 우리 중 가장 교활하니까."


봄?
봄의 순례자라고? 새끼가 붙인 거라고?
의아해하고 있자니, 녀석이 가까이 들이댔던 얼굴을 치웠다. 투구 속의 호박색 눈동자가 선명하게 빛냈다. 좆되게 섬뜩했다.


그리고는 자루 끝을 쥐고 있던 손을 놓고, 주먹을 벌레에게서 떼어냈다. 끈적한 체액은 뭔가 어디서  액체 같았다.
…그래, 씨발 그 약물인데?

 체액은 바닥에 닿자마자, 수십개의 작은 촉수로 분열하더니 불타 사라졌다.


이런 약이었나?


"씨발…."

나는 문득 봄의 순례자의 게임 속 모습을 떠올렸다.
수십, 수백의 개체들에게 기생하여 그 숙주의 모든 힘을 끌어내는 불길한 새끼를.

새삼 봄의 순례자의 모습을 떠올리고, 내가 방금 죽인 부족장을 떠올렸다.
그 새끼가 저지르는 짓거리와 그 영향은, 내가 마시고 부족장이 마셨던 그 약물의 능력과 같았다.


그제서야 나는 모든 게 이해가 됐다.
그 약물은 봄의 순례자의 권능이었다.
순환, 영원, 합일, 초월을 관장하는 봄의 빌어쳐먹을 수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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