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여름의 도살자
쿠 구 구 구 구 구 구
콰아아아아앙!
"씨이발…!"
세상이 돈다. 균형을 잡지 못한다.
날아가는 게 이번이 몇번째인지 셀 수도 없다.
맨몸이라면 죽었을 충격이지만 좋은 갑주와 철저한 방비가 내 목숨을 부지시켰다.
겨우 연명하는 목숨으로 칼날을 휘둘러 바닥에 꽂았다. 길게 파이는 도랑이 반갑지 못했다.
그 위에 드리우는 그림자에 나는 얼굴을 일그러 뜨렸다.
난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좆됐다고.
하지만 여유롭게 말할 틈은 없었다. 놈은 바로 나에게 공격해왔고, 나는 메이의 새된 비명을 들으면서도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땀과 피로 얼룩진 손아귀를 단단히 쥐어 장검을 휘둘렀다.
"으아아아아아아!!!"
까가가가각!
금속성. 마치 쇠붙이와 부딪힌 것 같은 소리. 그리고 바닥에 쳐박히는 나.
겨우 궤도를 꺾어내는데도 전력을 쏟아야한다. 내 팔다리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닥에 쳐박힌 채로 숨을 헐떡이고 있자니, 놈은 몸을 한 차례 뒤틀더니 나를 향해 몸을 치켜올렸다. 숨 돌릴 틈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누운 그대로 있지 않았다. 빠르게 몸을 일으켜 달려나갔다. 날아갔던 메이는 투구 밖으로 피를 토해냈다.
"뛰어!!"
메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나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내 뒤에서 추격해오는 놈의 포효가 들려왔다.
그 오 오 오 오 오 오 !!!
한참을 그렇게 달리다가 녀석과의 거리가 가까워질 무렵, 메이에게 무어라 외쳤다.
나도 뭐라고 외쳤는지 몰랐지만, 녀석은 대충 알아들었는지 몸을 돌리더니 방패를 펼쳤다.
꽈아앙!
징이 울리는 소리 같은 게 들리더니, 놈은 비틀거렸고, 나는 메이를 단단히 붙잡았다. 메이가몸을 움츠리고, 고통스러워 하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메이는 방패를 놓치지 않았고, 나는 떠밀리는 충격량이 어마어마해 움직이지도 못하면서도 메이를 붙들은 채로 몸을 뒤로 날렸다.
우리는 한 덩이처럼 뒹굴었다.
나는 헐떡이면서도 숨을 토해냈다. 어둑해진 시야에는 보이는 게 없었고, 숨을 겨우 쉬자 소리와 빛이 천천히 돌아왔다.
분명히 우리가 들어왔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멀쩡했던 도시였다.
우리는 탐사를 시작했고, 쥐 새끼 한 마리 나오지 않아 의아해 하면서도 충실히 탐색했다.
그러던 중 만난'거대한 무언가'를 보고 몸을 사리는 것도 잠시, 도시 전체가 울리는가 싶더니 이 꼴이었다.
불과 몇 분전까지만 하더라도 멀쩡했던 도시는 흔적도 없었다.
저 녀석이 똬리를 틀고,
몸을 비틀며,
그렇게 쥐어짜는.
그 동작들로 인해 도시가 사라졌다.
폐도시일 뿐임에도 인간의 흔적이 태동 하나에 사라진다는 건 현실성이 없었다.
이 빌어먹을 다크 판타지에서는 현실이긴 하다지만.
내게 잔혹한 현실을 선사한 괴물을 올려다봤다.
선명한 적색을 띄는 비늘과, 그런 비늘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것 같은 거대한 지렁이.
어느 매체에서나 보았을 법한, 언뜻 그런 밋밋한 생김새였지만 실제로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압도적인 질량. 나로서는 끄트머리조차 보이지 않는 그 어마어마한 크기가 거대한 압도감으로 다가왔다.
심지어 그 지렁이의 머리 부분에는 독특한 장식이 하나 있었다.
아마 전대 기사단장이자 여름의 대전사 본인이었을, 어떤 기사의 상반신이 벌레의 눈이 있을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가리 바로 위치한 머리는 종종 고함을 지르거나 무기를 휘둘러댔다.
그 오 오 오 오 오 오
놈이 울부짖는 소리가 텅 비어버린 도시의 잔해에서 울려퍼졌다.
나는 비오듯 흐르는 땀을 닦아내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투구를 벗는그 짧은 동작조차 낭비다. 살고자 하는 동작 하나가 방해가 된다.
씨발 이딴 게 왜 있냐.
칼라미티 사가에는 거대 몬스터가 흔하지 않았었다.
차라리 이게 게임에 한 번이라도 나왔다면 약점이라도 알 수 있을텐데, 그래서 나는 저 새끼가 뭐에 약하고 뭐에 강한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일으키려는 몸을 다시 뉘였다. 열차가 지나가는 것 같은 거친 바람이 불어왔다. 아슬아슬하게 스친 녀석의 몸뚱이가 그대로 쏘아져 그나마 남아있던 외벽에 꽂혔다.
착탄지에서 먼지가 피어오르고외벽이 산산히 부숴졌다.
"크윽!"
그리고 몸을 일으키려던 나는, 그 거대한 지렁이 새끼가 몸을 꺾는, 단순한 방향전환에 튕겨져 나갔다.
족히 지상으로부터 거리가 5m는 넘어보였고, 나는 날아가는 중에도 팔다리를 정신 없이 휘두르며 균형을 되찾으려고 애썼다.
쾅!
그 시도는 무용했다.
나는 볼품 없이 날아가 도시의 입구 인근, 왠지 낡아있는 석재 뚜껑에 부딪혔다.
"크윽…."
떨리는 손으로 내 바로 아래 있는 석재 뚜껑을 짚으니, 균열이 가해진 석재 뚜껑이 거칠게 삐걱거렸다.
"아 씹…."
콰앙!
부유감이 내 몸을 휘감더니, 나는 딱 보기에도 하수구였을 언뜻 더러운 진창에 쳐박혔다.
온 몸이 쑤신다. 숨쉬는 것조차 힘들어 입 안을 가득 메운 액체를 뱉어넀다. 후두둑 떨어지는 건 붉었다.
등이 저리고, 숨이 벅차고, 입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신물이 피와 섞여 이루 말할 수 없는 찝찝함으로 입을 가득 메웠다.
그래도 죽지 않았다는 게 다행일 뿐이었다.
고통 때문에 눈만 겨우 깜빡이고 있을 때, 부숴진 뚜껑으로 메이가 뛰어들어왔다.
"사, 살아있어?"
"…넌?"
그녀는 그 질문을 하고서 몇 번 기침을 토해냈다. 기침에 피가 은근히 섞여있어 내가 바라보자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투구가 갑옷 목보호대에 부딪혀 소리가 났다.
"입안을 씹어서… 난 괜찮아. 너는?"
"…괜찮지 않아."
대답을 하는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정통으로 맞은 탓인지 내 폐부는 숨쉴 때마다 아려왔다.
메이가 내 손을 잡아일으키자 그제야 주변이 좀 눈에 들어왔다.
부숴진 뚜껑에서 새어나오는 빛으로 보건데, 여긴 확실히 하수구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밖의 거대 지렁이 새끼는 나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이따금씩 석재 가루가 내 머리 바로위를 덮어놓은 석재 뚜껑이나 구조물 등에서 후두둑 떨어지고, 거센 진동이 느껴졌다.
겨우 숨은 돌릴 수 있었지만, 오래 있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나는 메이가 건네는 물약 두 개를 받아들어 삼켰다. 지구력과 생명력 물약이었다.
"으윽… 존나 아파…."
쓰고 아프고, 좆같은 다크 판타지 알보칠을 겨우 삼키자, 메이도 괴로운 표정으로 투구를 벗었다.
녀석의 찢어진 이마에서는 피가 줄줄 흘렀다.
메이가 붕대를 두르고, 내가 칼날을 점검하는 그 잠깐에도 지렁이는 미친 듯이 날뛰었다.
생각해봐야 한다.
단순히 맞서는 걸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마치 늪지의 요람을 정면 승부로 상대하는 것만 같은, 그런 유형의 몬스터지만 난이도는 비교할 수도 없다.
엄폐물은 없고, 압도적인 질량은 그 망할놈의 강간마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심지어 피해는 잘 들어가는 늪지의 요람과는 다르게 이 새끼는 좆같게도 물리 피해가 거의 들어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나마 피해가 들어간다면 머리 위에서 고함을 지르고 있는 인간의 형상이겠지만, 그걸 노리기 쉽다면 진작에 잡아냈을 거다.
나는 내 오른손에 들려진 장검을 흘긋 보았다.
그리고 떠올렸다. 비늘에 부딪히는 순간, 사방으로 퍼지더니 꺼져버린 불꽃을.
화염 면역에 물리 면역.
누가 보면 나 저격하려고 만들어진 보스몹인 줄 알겠다.
좆같은 다크 판타지 진짜.
머리를 하수구 벽에 쳐박으니 메마른 벽에서 먼지가 훅 피어올랐다. 그 먼지를 물끄러미 보던 나는 문득 허리를 세웠다.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아주 명확한 의문이었다.
저 빌어먹을 지렁이 새끼가 언데드 드래곤과는 다르게 화염을 뿜어대지 않는다는 것.
붉은색을 띄는 화염 면역의 비늘과 여름의 도살자를 섬겼던 전적을 감안하면 화염을 뿜어대더라도 이상하지 않는데, 그러지 않았다.
화염은 아주 강력한 공격 수단이다.
생명인 이상 화염에는 저항하지 못하고, 방사형이라 공격에 실리는 질량이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공격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근데 저 망할놈은 그러지 않았다. 내가 버텨가면서 싸울 수 있는 건 저 씹새가 화염을 안 뿜어낸다는 사실에서 기원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럴 수 없는 건지, 그러지 않는 건지.
그래서 내가 추측하기로는 둘 중 하나였다.
발화 기관이 있지만 내부에는 화염 내성이 없어 쓰지 못하거나.
발화 기관이 없거나.
어느 쪽이든, 내부에 화염 저항이나 내성이 없다는 쪽으로 걸어볼 수 있었다.
내장이 단단하다거나 하는 좆같은 생태를 가지고 있는 몬스터가 아니라면, 그 내부에서의 공격은 충분히 먹힐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가능성이다. 실제로 그럴지는 알 수 없다.
실상 도박이다.
하지만 이런 승부수를 걸지 않으면 지지부진한 방어전이나 펼치다가 몰살당할 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병사들도 다 데리고 오는 건데, 하고 생각했다가 머리 위로 석재 가루들이 떨어지고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자 생각을 거두었다.
병력은 의미가 없다. 당장에 저게 돌진해서 몸을 휘돌기만 해도 둘러싼 병사들이 모조리 쳐죽어버릴 거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피지도 않는 담배가 땡기는 기분으로 메이에게 계획을 설명했다.
그 계획을 들은 녀석은 눈물을 머금고 외쳤다.
"미쳤어, 죽으려는 거야?!"
합당한 반응이었다.
"안 하면 뒈지는 건 똑같아."
"어떻게 그렇게 목숨을…!"
메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가를 문질러 닦고는 나에게 걱정 어린 눈빛을 보냈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같긴 한데, 정정할 마음은 없었다. 그럴 기력도 없고.
나는 지구력 물약을 고쳐쥐고는 아가리에 때려박았다.
"그거 아냐?"
"어?"
"이 다크 판타지는 살고 싶어하는 놈부터 뒈진다는 거."
"…."
나는 장검을 고쳐쥐고, 하수구를 나서려고 했다.
"죽지마."
메이는 그런 내 손을 붙잡고는 중얼거렸다. 뒤이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투구 위로 흙먼지가 후두둑 떨어졌다.
"안 죽어. 내가 성공하면 방패로 도와주기나 해."
다 생각이 있으니까. 메이는 멍청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코를 훌쩍이고는 방패를 고쳐멨다.
착하네. 새끼.
솔직히 별로 나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저딴 거랑 싸우는데 두렵지 않은 새끼가 어딨겠냐고.
근데 난 싸우기 싫은 것 이상으로 저 새끼가 싫었고, 한 편으로는 죽고 싶지 않았다.
존나 역설적이네 씨발.
싸우기 싫지만 죽기는 싫으니 억지로 싸워야 한다니. 나는 어줍잖은 자기암시를 비웃고는 부숴진 석재 조각을 딛고 손을 밖으로 걸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하수구 밖으로 나섰다.
그러자 길게 늘어진 녀석의 몸뚱이가 보였다. 주름마다 새겨진 무수한 비늘이 녀석의 움직임마다 자각거리는소리를 자아냈다.
솔직히 극혐이었다.
하지만 움직임을 놓치면 좆된다.
녀석의 내부가 화염 내성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해서, 곧이곧대로 실천할 수 있는 건아니다.
녀석의 아가리로 뛰어드는 건 상상 이상으로 어렵고,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설령 나를 향해 달려들 때,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형태를 취한다면 나는 도망갈 수도 막을 수도 없다.
그저 녀석의 한 끼 식사가 되는 게 고작이다.
바닥에서 몸을 끌고 다니면서 나한테 달려드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위험 부담은 여전했다.
점프의 타이밍을 놓친다면 녀석의 아가리에 달린 수천개의 이빨에 발목부터 잘려나가 씹힐 거다.
심지어 궤도가 잘못 된다면, 나는 피할 수도 없이 저 거대한 질량에 맞부딪혀 죽는 거다.
정확히 저 아가리 속으로, 한 치의 오차나 실수 없이, 이빨에 닿지 않게 뛰어들어야 한다.
모든 수단을 가용해야 했다.
나는 억누르고 있었던, 저 씹새끼에 대한 분노를 풀어줬다.
[거인의 힘이 발동됩니다.]
그러자 분노는 목줄이 풀려난 개새끼처럼 날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