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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화 〉이방인 (82/274)



〈 82화 〉이방인

콰앙!


"무슨 속도가…!"


검은색과 검붉은색이 어지럽게 뒤섞인다. 뒤섞이는 형체는 인간 두 명분의 그림자를 그리고 있었지만 그걸 인식하기도 전에  형체가 뒤바뀐다. 공수가 바뀐다.
겨우 잡았다 싶어 쏘아낸 쇠뇌의 볼트는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 벽에 틀어박혔다. 튀어오르는 돌조각보다 빠르게 다시  번 격돌한다.


마리암은 쩔쩔 매면서 그 궤적을 눈으로 쫓았지만, 눈으로만 따라잡을 수 있을  쇠뇌를 쏠 틈은 전혀 없었다.
그건 그녀 뿐만이 아닌 그녀의 부하 둘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상황에서 대등하게 전력을 교환하고 있는   공간에서 단 두 명 뿐이었다.


"메이!"


마리암은 주현성의 목소리에 반응하는 소녀를 흘긋 보고는, 그 궤적에 맞춰 장전한 쇠뇌를 다시 쏘아냈다.

화르르륵!


메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손 위에서 띄워낸 화염을 적중시켰을 뿐이었다.
하지만 마리암의 볼트는 다시 한 번 허공을 갈랐다. 같은 경로를 그리며 날아갔으나 결과는 천차만별이었다.
화염에 얻어맞은 검은 갑주는 고개를 크게 젖히며 비틀거렸다. 그런 놈을 향해 주현성이 날아들었다.

"큭."

속도가 너무 다르다. 마리암은 수치심을 느끼기도 전에 쇠뇌를 빠르게 장전했다.


콰직, 카드드드득!

잠시간의 접전 끝에 금속음은 멎었다. 검은색 손이 주현성의 투구를 붙잡고는 바닥에 쳐박았고,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주현성이 튕겨져 나갔다.


카앙!

메이는  빈틈을 메우러 뛰쳐나갔다. 메이가 방패를 펼치자 검은색 인영의 다리가 꺾였다.
그러자 잠시지만 그 어마어마한 속도로 움직이던 놈이 멈춰섰다. 마리암은 망설이지 않았다.

퓩!

마리암의 쇠뇌가 볼트를 쏘아냈고, 그 조그만 죽음이 놈에게 달려들었다.
원래라면 괴물들도 몸을 움츠릴 위력이다. 맞는다면 멀쩡할 수 없고, 피하려고 한다면 필연적으로 무리를   밖에 없다. 그래서 마리암은  부하들에게 사격 명령을 내리려고 했지만.

기이잉―


알  없는 소리를 자아내던 그 검은 형체는 그대로 연기를 뿜어내며 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 가속했다. 몸에 힘을 가하지 않고 그대로 수평으로 기동했다.


콰드득!

볼트는 다시 허공을 가르고는 벽에 틀어박혔다.

'이게 무슨…!'

마리암은 당황했다. 저런 유물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왕국에서 유적과 유물에 대해 상당히  시간을 공부했다고 생각했지만, 저런 유물에 대해서는 듣도 보도 못했다.
공중에서조차 꺾어댈 있는 초가속 능력에 높은 방호 능력까지.
거목조차 손등으로 후려쳐 부수고, 드래곤의 거체조차 날려보내는 괴력을 지닌 주현성의 주먹과 킬질에도 멀쩡했다. 평범한 물건이 아니었다.

검은 형체는, 그렇게 수평으로 움직이더니 바닥에 발을 꽂았다. 멈추기 위해서. 그렇게 감속하는 몸뚱이를 향해 무언가 날아들었다.


"―씨이발놈아!"


주현성이었다. 주현성은 저 검은 형체가 가속 직후에 원거리 공격이 날아오지 않으면 반드시  번은 멈출 거라고 생각했다.
저 가속 능력을 이미  번의 접전 속에서 맞봤던 바, 저걸 연달아 사용할 수 없다는 걸 경험으로 체득했다. 이 세계에 떨어지고서 단련된 신체 능력으로, 그는 빠르게 놈에게 다가섰다.

뻐억!

그래서 놈은 피하지 못했다. 딱 달라붙는 검은색 갑주는 주현성이 걷어차는 궤적을 따라 날아갔다. 주현성은 돌려차기를 수습하기도 전에 외쳤다.


"마리암!"


마리암은 이런 상황이라도 정신을 놓을 정도로 어리숙한 용병이 아니었다. 그녀의 부하들도 그러했고.
그들은 한 마디로만 명령을 알아듣고는 일제히 겨누어 사격했다.

퓨퓨퓩!

한계까지 끌어진 시위가 토해내는 소리에는 죽음이 실려있었고, 그 죽음은 파공성을 내며 날아가 꽂혔다.

퍽, 퍼벅!


명백한 치명타.
일반적이라면 싸움이 끝날 일격.
하지만 그 방에 있던 그 누구도 긴장을 풀지 못했다.


부숴진 벽에서 그 형체가, 멀쩡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몸에 꽂혀야 하는 볼트와 화살들은 바닥을 나뒹굴었다.  화살촉은 둔하게 깎여져 있거나, 화살대가 부러져 두쪽이 되어있었다.


심지어 검은 형체는  상흔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검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평범한 상황은 아니었다.
마리암은 숨을 들이켰고, 주현성은 손을 쥐었다 펴며 등에 짊어진 칼자루에 손을 가져갔다.



*

"저게 무슨 유물인지 아시겠습니까?"
"…아니, 전혀."

마리암도 저런 유물은 좆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나 역시 그랬다. 저딴 기능이 있는 갑주가 게임에 있었다며 분명 밸런스가 개박살이났을테니까.
높은 방호능력에 검은 연기를 동력으로 횡스크롤 게임처럼 입체적인 기동을  수 있는데,  기동에는 방향제한이 없었다.
공격을 맞기 전에 뒤로 가속해서 위력을 줄인다던가, 공격할 때 앞으로 가속해서 위력을 늘린다던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기 전에 위로 가속한다던가.

그딴 짓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미 현실적인 물건이 아니었다.
존나 개쩌는 아이템인  분명했다.

"씨발놈."

 새끼한테 맞은데가 은근히 얼얼한 게, 저 가속의 수준은 충격량에 비례하는 것 같았다.
아까 머리를 잡혀서 바닥에 쳐박힌 때에도, 내가 크게 훅을 꽂은 직후였던  감안하면.

나는 마리암과  일행이 쏘아낸 화살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바닥을 나뒹구는 그 화살들의 촉이 심하게 닳아있는 걸 확인했다.
원래 닳아있었나? 아니면 부식?
잔뼈 굵은 용병들이 그런 실수를 할리는 없으니, 일부러 닳게 해놓은 건 아닐 거다.
그렇다고 부식이라면 진즉 내게 유효한 피해를 주는  넘어, 이 방에 있는 모두가 죽었어야 맞다.
하지만 몸을 움직이는데 문제는 없고, 피부에 손상도 없다.

그렇다는 건.

"날붙이는   먹히나 봅니다."

마리암은 대답하지 않았고, 메이는 대신이랄 것도 없이 칼을 집어넣고는 방패를 단단히 쥐었다.
그리고 나는 등에 짊어진 폭군의 검을 끌어내려 바닥에 떨어트렸다.
일단은 폭군의 검은 칼날을 가지고 있는, 참격형 무기다.
그럼 참격이  먹히지 않는 갑주에게 휘둘러댔을 때 큰 위력을 기대할 수 없을 거 같았다.
내가 주먹을 쥐었다 펴며 마리암에게 고갯짓하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어. 보조할게."

마리암과 그 부하들은 쇠뇌와 활을 각각 집어넣고는 허리춤에 메어진 여분의 무기로 메이스를 꺼내들었다. 메이스, 워해머 등이 손에 쥐어지니 그 껌둥이 새끼가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챠르르르륵
깡! 까앙! 깡!


메이의 손에서 화염 사슬이 뿜어져 나와 지면을 달구고, 놈의양 주먹을 부딪히며  전체에 연기를 자아내기 시작했다.
역시 충격을 저장하던가 흡수해서 동력으로 쓰는  맞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생각이 있지.

깡! 깡! 깡! 깡!

나는 놈처럼 양주먹을 부딪혀댔다. 건틀릿끼리 부딪히면서 금속음을 자아냈고, 내 괴력에 갑주가 신음했다. 나는 거기에한 가지를 덧댔다.

푸화아아아아악!
화르르륵


내 전신에서 화염 부여의 불꽃이 피어오르고, 내가 주먹을 부딪힐 때마다 거센 불똥과 폭발이 흩날렸다.
저 씨발놈이 멈췄었던 순간이  두 개 있는데, 메이의 방패가  놈 다리를 가격했을 때와 화염 마법이 저놈머리에 꽂혔을  뿐이었다.
저 갑옷이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했다.

속성 데미지에 취약하다는 거.
나는 발목을 구부리며 자세를 앞으로 기울였다.

"불맛 좀 봐라, 이 씹새끼야."

콰득!


놈과 내가 동시에 바닥을 박찼다. 그러자 내가 딛고 있던 바닥이 부숴졌다.

쿵! 쿵! 쿵! 쿵!

걸음마다 바닥이 깨부숴지고, 내 망토가 거칠게 휘날렸다.
투구를 두들기는 바람이 거셌다.


콰아아앙!

그리고 나와 껌둥이는 격돌했다.
내 주먹이  씨발놈의 인중을 으깨버리겠다고 쏘아졌으며, 그 목적은 충실하게 달성했다.
내게 머리를 쳐맞은 껌둥이는 몸을 젖히면서 내게 다리를 내질렀다.

카앙!

어림도 없지, 씨발놈아.
나는 내게 쏘아진 다리를 붙잡고는 몸을 젖혔다.

튀는 바닥의파편과 내게 붙들린 채로 바닥에 내리꽂히는 씨발놈.
나는 그 씨발놈이 몸을 일으키려고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걸 보았고, 더 없이 강하게  발목을 붙잡았다.

으지지지직

내가 발을 내리꽂은 바닥이 가속을 이기지 못하고 들썩거렸으나 나는 내게 붙잡힌 채 공중에 떠있는 그 씨발놈의 발목을 주먹으로 내리찍었다.

쾅! 쾅! 콰직!


마침내 으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통을 느끼는지, 안 느끼는지는 모르겠지만  씨발놈은  이상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챠르르르르륵!

거기에 쏘아진 메이의 화염 사슬이 놈의 양쪽 발목을 묶었다. 이놈은 움직일 수 없다. 사실, 그보다 더 나아가 내가 어떤 기술을 쓰기 적합한 상태였다.

어디  번 날아봐라.
나는 이를 악물고는 몸을 틀었다. 내 괴력에 이끌린 공기가 거센 소리를 내며 찢어졌다. 그렇게 나는 허리를 틀고, 다리를 움직이고, 몸을 회전시키면서 놈을 쏘아냈다.


콰아아아아앙!

자이언트 스윙, 레슬링 볼 때에나 가끔 봤었던 간판격인 기술이었다.
놈은 볼품 없이 날아가 벽에 쳐박혔고, 나는 어지러워 메슥거리는 속을 애써 다잡았다.
토하고 그러면 좀 볼품 없지.

내 상념을 가르고 껌둥이가 그 잔해 속에서 비틀거리며걸어나왔다. 아예 데미지가 없진 않아보였으니, 충격 흡수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럼 충격 저장인가?
어쨌든 주먹질은 꽤 먹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주먹을 다시 맞부딪혔다. 치솟은 화염이 탐욕스럽게 일렁거렸다.


그 아 아 아!!!

그걸 바라보던 껌둥이의 주둥이가 갑자기 벌어지는가 싶더니,  속에서 억누른 비명이 쏟아져 나왔다.
하, 빡친다 이거지?
나는  비명에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달려갔다. 내 걸음마다 거세게 바람이 울었다.

쾅!


놈이 내지른 손톱을 몸을 틀어 피하면서 왼주먹을 놈의 복부에 때려박았고.

으직!

그 뒤에 껌둥이가 휘두르는 주먹을 내 주먹으로 내려쳐 으깼다.
놈의 갑주가 아무리 좋다고 한들 신도 죽이는  근력을 상대할 수는 없다.

나와 녀석이 주고받는 공방이 점점 격해지더니 나중에는 내가 일방적으로 놈을 두들겨 패고 있는 형국이 되었다.

퍼억! 퍼억!

아래에서 밀어올리듯 내지른 주먹에 공세를 유지하던 놈이 처음 수세로 돌아섰다. 놈은 내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어떻게든 반격의 기회를 노려댔다.
그래서 일부러 나는 크게 주먹을 휘둘렀다.


쿠와아아아!


내 주먹이 허공을 가르고, 놈의 쪼개진 대가리가 환하게 웃었다.
왜? 좋냐?
난 초보적인 노림수에 당한 놈에게 비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놈이 눈치채기도 전에 내질러지는 팔을 옆구리에 끼우고 주먹을 단단히 쥐었다.


콰아아아앙!

그리고 어퍼컷.
가격당한 놈의 턱은 검은 연기를 뿜어내면서 크게 젖혀졌다. 다소의 살점이 그 연기에 뒤섞여 크게 날고 있었다.
나는  크게 열린 복부에 발을 꽂았다.

투콰아아앙!


대포를 쏘는 것만 같은 소리가 들리고, 놈이 바닥을 마구잡이로 굴러댔다.
놈은 이제 더 이상 울어대지 못했다. 대신 삐걱거리는 소리를 울리면서 몸을 비틀었다.

박살나고, 너덜너덜한데다 연기가 치솟다 말고 푸쉭대는 걸 보자면 놈은 한계였다.
나는 그놈한테 다가가 발을  머리에 걸쳤고, 이빨이 잔뜩 달려있는  아가리가 흉포하게 철장화를 갉아댔다.
놈은 공포로 몸을 흠칫거렸다.
아니면 그냥 너무 맞아서 그러는 걸지도.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승자가 누군지는 명확했으니.

나는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내뱉었다.

"GG다, 이 씹새끼야."

으직!

그리고 놈은 팔다리를 경련하면서 늘어뜨렸다.
퍼석한 질감이 발 밑에서 느껴지더니, 먼지가 피어오르면서  갑주에서 빠르게 부산물이 쏟아져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발이딛고 있는 자리에는 검은색 슈트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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