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0화 〉용의 도시 발데가리아 (100/274)



〈 100화 〉용의 도시 발데가리아

입구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오히려 말하자면 상당히 가까운 곳에 있어서, 이런 곳에서 갈 수 있다고? 하고 의심이 될만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큼직한 하수구의 해치를 열어젖힌 병사는 낑낑대면서 그 해치를 옆으로  밀어 다른 사람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정작 본인은 지쳐서 잠시 움직이지 못했지만,  사이에 다른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하수구 안으로 몸을 비집어 넣었다.

어쩐지 닌자 거북이 같은 매체에서 본 듯한 미국적 하수구를 떠올리게 만드는  축축한 실내는, 막상 흘러야  구정물은 모두 말라붙은 듯 건조하고 깔끔했다.


어떤 마법사 새끼가 거점을 틀었는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나는 병사들의 맨 앞에 서서, 완갑을 조였다.

"원래 장비들만 가져왔어도…."


"양해해주시길. 지금 공간이동을 사용했다가는 대전사님의 안전을 책임질 수 없습니다."

불쑥 나타난 대공은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왼쪽 갈림길을 향해 병사들을 이끌고 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들었던 것을 떠올렸다.

이미 한  들었던 설명이었지만, 마법의 세계를 내가 좆도 모르니 저게 사실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했다.

뭐랬더라, 아마 공간이동 같은 마법을 사용하는 순간 마법의 대가인 헤로디아가 좌표를 꼬아버려서 나를 이상한데 쳐박아버리거나 심해 밑바닥에 쳐박아버릴 거라고 그랬던가.


메이는 그 말에 얼굴이 해쓱해졌고, 나는  짓거리를 해도 그걸 해결할 방법이 없음을 깨닫고는 한숨을 뱉어냈었다.


그래서 나는 본래 내가 쓰던 갑주가 아닌 은으로 만든 판금 갑주 안에 검은 사슬 갑주를 입고 하수구에 진입했다.


하다 못해 폭군의 검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무슨 생각해?"

허리춤에 메어둔 검집을 고치고, 도끼를 언제든 뽑아내기 편한지 확인하던 나는 메이가 다가와 말을 걸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메이 뿐만이 아닌 대부분의 병사들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내가 명령해야 했지.


"그냥, 어떻게 할까 싶어서."


"응, 어떻게 하려구?"

그리고 다음에 내가 이어놓을 말은 없었지만, 메이는 한참 내 눈치를 살폈다.

뭐 굳이 뭔가  있진 않은데….


투구를 뒤집어 쓰고, 칼자루에 왼손을 얹었다.


"내가 앞장설테니까, 나를 보조해."


"다른 분들은?"

"마찬가지."


병사들은  말에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생각하는지는 대충 안다. 여긴 하수구, 어떤 괴물이 나오든, 넓찍한 통로에서 밀려들어오면 나 혼자 다 상대할  없으리라는 그런 생각이겠지.

심지어 내 무력을 직접 본 놈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한숨을 뱉어내고는, 그레이톰의 심판을 뽑아들었다.

"오…!"


"저게…."


병사들의 대략적인 지휘를 맡고 있는 하사관들이  빛나는 검날을 보고는 감탄했다. 이게 어떤 검인지, 이미 들어둔 모양이었다.

"이 검은 제게서 떨어져있는 적도 베어낼 수 있습니다. 마법 역시 베어낼 수 있죠. 여러분들은 부디 저를 선두에 두고 저를 지원하는데 집중해주세요."


내 단호한 목소리에 병사들은 여전히 의아한 듯 싶었지만 이내 가볍게 수긍했다.

"좋아… 그럼 출발합시다."


*

"선택의 여지를  남겨주시네요."

넓찍한 공간, 파묻히는 어둠 속에서  개의 관이 어지럽게 내달려 벽과 기둥, 천장을 뒤덮었다.


그 관들은 강줄기들이 바다로 모이듯, 어떤 한 지점을 응집하고 있었다.  중심에는 어떤 여성이 있었다.

 풍만한 여체는 완전한 나신으로, 어떤 기계 위에 누워있었다.


주현성이 그 기계를 본다면, 매트리스에서 엇비슷한 보았노라고 했을테고, 메이는 본다면 어쩐지 전기의자를 떠올리게 한다면서 무서워 했을 것이 분명했다.

붉은 어머니, 헤로디아는 그간 펼쳐본 적 없는 대마법의 행사를 위해 정신을 끌어모으면서도 자신을 위해 다가오는 거대한 신성을 느낄  있었다.

"아름다운 신성이예요… 기대되네요."


그녀의 혼잣말에 답하는 이는 없었지만,  관을 뒤덮은 생명체들은 그륵 거리고 크릉 거리며  어머니를 위해 고개를 조아렸다.

헤로디아는 눈을 감고 잠시 다가오는 거대한 존재감을 느꼈다.


차가우면서, 또한 참을 수 없을만큼 뜨겁고, 한 편으로는 한 없이 불길한  신성. 복합적으로 신들의 권능이 한데 뒤섞인 인간.

정확히 뭐하는 인간인지는 알  없었다. 심지어 그는 그녀를 적대했다. 정면으로 적대하며 웬 쪼그만한 여자애한테 헤벌레 하며 자신에게 쏟아야할 정액을 남김 없이  소녀에게 쏟아부었다.

 사실에 헤로디아는 아쉬워 했다.


저정도의 영웅이라면 죽이지 않더라고 충분한 신성을 모을 수 있을테니, 살려둘 수도 있을텐데도.

이제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녀는 그를, 주현성을 죽여야만 했다.

애석함을 담아 그녀가 손짓했다.

"가세요, 그의 몸을 가져오세요. 기대하진 않겠지만."

그녀가 배아파 낳은, 신성을 실험한 실험체들은 그녀의 실망감을 눈치채지도 못한 채로 달려나갔다. 인간의 그것을 담은 발과 손을 놀려 지천을 자신들의 발소리로 뒤덮으며 뛰어나갔다.

헤로디아는 제 자식들이 죽어나가는데 어떤 유감도 느끼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대신 사방에서 타고 흘러와 자신의 권좌를 덥혀놓는 생명력과 신성에 몸서리치며 기뻐했다.

앞으로 조금.


그녀는 굴레를 벗어난다.

*

"…무슨 소리  들리십니까?"

갑자기 병사 중에 꽤 높아보이는 놈이 그렇게 말했다.


하사관이랬던 것 같다.

나는 말 없이 검을 앞으로 겨누며 병사에게 눈짓했고, 눈짓을 확인한 하사관은 뒤로 돌아가 병사들에게 합류했다.

"…진짜네, 뭐가 오고 있어."

"나도 알아."


둔중하게 터널이 울렸다. 금속으로 이뤄진 건 아니라서 소리가 그다지 울리지 않을텐데도, 울리는 것처럼 들려오는  보자면….

"수가 꽤 되는  같은데."

 말에 메이는 대답하지 않고, 양손을 그러모았다. 그러모은 손에서 불길이 치솟더니, 메이의 조막만한 손바닥 위에서 둥둥 떠다니며 주변을 밝혔다.


그 불빛이 닿는 범위의 아슬아슬한 바깥에서, 희끗한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인간의 손과 발을 달고 있는, 1m를 조금 넘기는 작은 크기.

내가 상대했던 그것과 유사하지만, 뭔가 본격적이지 않았다.

신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느껴지는 건 기묘한 한기.

소름돋는 감촉이 느껴짐과 동시에, 나는 들고 있던 장검을 등 뒤까지 젖혀서 빠르게 아래에서 위로 휘둘렀다.


끼 에 엑!


쏘아진 회백색 검기에 터널에 크게 검상이 새겨지고,  괴물이 반으로 토막나 내 양옆으로 후두둑 데워진 내장을 떨어트렸다.


나뒹구는 시체가 제 추진력을 못 이기고 빙빙 돌다가, 어떤 병사가 내밀고 있던 창에 부딪히고 나서야 멈췄다.

"뭐, 뭐야… 고작 한…."

"아냐, 한 놈이 아냐! 온다!"

 병사가 얼빠진 소리를 내기 무섭게, 하사관이 윽박지르더니 무기를 뽑아들었다.


"전원! 진형 유지!"

좁은 공간에서 쓰기 좋을 소검이 일제히 뽑아지더니, 방패 위로 삐죽 튀어나와 존재감을 과시한다.


훈련이 잘된 자칭 시민군, 타칭 반란군의 병사들은 밀려들어오는 기척에 쭈뼛쭈뼛 하면서도 진형을 유지했다.


숨을 크게 들이키고는 검을 양손으로 붙들었다.

밀려들고 있었다.

강을 가득 메우고 넘쳐흘러 인간을 휩쓸어가는 홍수처럼, 어마어마한 양의 괴물들이 밀려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정확한 기준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쩐지 그렇게 느꼈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는 것만 같은 기분과 함께.

[거인의 힘이 발동됩니다.]


간단한 기계음과 함께 전신에 활력이 솟아났다.

 활력은 화염처럼  몸을 불사르며 뿜어져 나와, 내 전신을 뒤덮었다. 삽시간에 제 속을 가득 채운거력이, 뿌득 하는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나를 밀어붙였다.

그리고 진짜 화염이 내 몸과 검을 뒤덮었다.


그때 지하실에서 상대했던 놈들과는 다르게 이 새끼에게는 지성이랄  없어보였다.

그렇다면 불타오르는 남자가 있다면, 그걸 제일 먼저 노릴 공산이 높았다.

탱커의 본분은 어그로다.


 전신을 뒤덮은 화염에도 앞이 또렷하게 보였다. 정확히는 목까지 사용한 화염 부여라서 시야를 그다지 가리지 않았다.

"메이."


"응."

"나 지나치는 놈들부터 조져. 앞으로 좀 나갈테니까."


메이는 말대꾸를 하지 않았다. 이제 나를확실하게 신뢰하는 모양인지 손 위에서 맴돌던 화염을 응축시켰다.

투두두두두

투두두두두두두두!

투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존나 많네."

저 앞, 어둑한 터널의 끄트머리에서 끊기는 시야 너머에서 무언가 몰려들었다.  존재감만으로도 수를 짐작할 수 있었지만, 금방 그 괴물들은 내게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의 손과 발을 가지고, 인간의 구강 조직을 모방한 기괴한 파충류식 아가리를 가진 괴물새끼들.


1m를 조금 넘는, 지금도 이상한 비명을 내지르면서 몰려들어오는 괴물들.

나는 검을 단단히 쥐고 발목을 기울였다.

"간다."

콰아아앙!

지면을 강하게 걷어차면서, 박차를 바닥에 튕겨냈다. 곧 내  아래, 내가 딛고 서야할 땅 아래에서 화염마가 솟아났다.

히히히히힝!!!!

쩌억!

그렇게 생겨난 화염마는, 내 생각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다가 다리를 놀려 가장 앞열의 괴물을 걷어찼다.

묵직한 철퇴로 찍힌 것처럼 찌그러진 괴물의 얼굴을 밟고, 화염마가 뛰어올랐다.


그 단단한 지지 속에서 검을 휘둘렀다. 화염이 회백색 검기를 타고 강하게 번졌다가 사라졌다.

공중에서 휘둘렀음에도 위력이 충분한 검기에, 그 일직선상으로 늘어서있던 괴물들 다섯이 동시에 토막나 불타올랐다. 익어버린 상처에서는 피  방울 나오지 않았다.

괴물들은 내가 허공에 체류하는 시간을 노렸는지 튀어올랐고, 화염마는 뒷다리를 뻗었다.

말이라고 보기 힘든 움직임으로 아크로바틱하게 움직이더니, 그 타오르는 말발굽으로  다른 괴물의 머리를 으깨면서 재도약했다.

그르르락!

"씨발."

단순한 괴물만 있는 게 아닌지, 괴물 중 하나가 눈에서 빛을 뿜어내더니 말의 머리가 사라졌다.


그 뿐만이 아니라, 평소라면 머리가 잘리던 뭐하던 행동을 계속했을 화염마가 푸스스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져갔다.

이거 좋지 않은데.

나는가까워지는 지면과 나를 향해 손을 뻗는 괴물들을 봤다.


[영원의 정신이 발동됩니다.]

그리고 세상이 감속했다.


너무도 느려져 내 자신의 호흡조차 수초가 걸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지극한 감속 하에서, 정확히 발밑을 파악하고는 몸을 뒤집었다.

가히 수십초에 달하는 움직임으로 굼뜨게 몸을 뒤집고는, 나를 향해 뛰어오르는 괴물의 안면을 짓밟았다.


그 뒤에 뛰어오를 생각이었는데, 내 생각보다 빠르게 눈높이는 떨어져갔다.


이렇다면 차선책이다.


나는 떨어지면서 왼쪽 허리춤의 도끼를 뽑아들었다. 뽑아든 도끼를 단단히 쥐고, 영원의 정신을 해제했다.


쿠우웅!

육중한 지면과의 격돌 직후,나는 도끼를 쥔 왼팔을 젖혀 가까이 다가오던 괴물을 겨눴다.


다른 손으로는 그레이톰의 심판을 몸 가까이 붙였다.


괴물들은 내가 뭘 하려는지 알지 못했고, 저만치에 있는 메이와 병사들 역시 그랬다.

하지만 동료를 토막내지 않기 위해서, 나는 검을 더더욱  몸 가까이 붙였다.


그리고 회전했다.

본래 회전하면서 때리는 기술은 그다지 실용성이 좋지 못하다.  사이에 적이 밀려들어오면 게임 끝이니까.


하지만 거인의 힘이 있다면 얘기는 달랐다.

 체중을 현격하게 넘어서는 근력, 그리고 어째선지 제 힘에 파괴되지 않는 육신.

그 두 가지는 무기가 되어 내 회전에 힘을 더했고, 그렇게 나는 달려드는 괴물들이 쪼개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회백색의 타오르는 검기가 저만치 터널 끄트머리까지 갈라내고, 가까이 접근한 괴물들의 내장, 척추뼈 따위를 어지럽게 흩뿌리면서 불태웠다.




그르아아아아악!

인간의 비명과도 같은 괴물 새끼들의 공포와 고통이 터널에 울려퍼지는 때에, 왼발을 바깥으로 뻗어 멈추면서 가장 가까이에 있던 생존 괴물에게 도끼를 내리찍었다.




콰득!



파충류 특유의 얄팍한 두개골 위로 도끼가 파고들더니 멈췄다. 내 회전력이 실린 도끼는 놈의 머리를 비스듬하게 잘라내어 내팽겨쳤다.

피가 흩뿌려진 바닥 위로 죽 미끄러진 괴물이 벽에 통 부딪혔고, 정적이 찾아왔다.


갑자기 찾아온 적막에도 나는 충실히 경계하며 주변을 둘러보면서도 피가 덕지덕지 묻은 검날을 도끼로 긁어 닦아냈다.


나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몰려든 괴물들은 모두 하반신이나 상반신을 잃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생존한 괴물은 아무도 없었으며, 나를 넘어간 괴물도 없었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곧장 어둑한 지평을 바라봤다.

"옵니다."


어쩐지 입을 떡 벌리고 있는 하사관에게 말하자, 하사관은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괴물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 수는 방금 처치한 것에 절대 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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