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용의 도시 발데가리아
발데가리아 대공이라고 불리우는 마법사는, 제 앞에서 느껴지는 거센 기류에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눈썹을 좁히려 시도했다.
시야는뚜렷하고 마음 역시 그러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공포가 샘솟는 걸 어쩌지 못했다.
목전에 있는 마력, 들끓는 온도, 이따금씩 들려오는 짐승들의 울음소리 따위를 들으며 그는 제 병력들이 움직이는 것을 지그시 보았다.
'불길하군.'
본래라면 그들을 맞이하러 오는 괴물들이나 방해하기 위한 병사들이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 둘 중 어떤 것도 그들을 맞이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을 반긴 건 메마르고 삭막한 하수구의 전경일 뿐이었다.
발데가리아 대공은 그 삭막함의 중심을 가로지르며 관절이 겨우 붙어있을 뿐인 깔끔한 백골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마력이 천천히 차올랐다. 그렇게 차오른 마력은 붉은 불빛으로 섬뜩하게 앞을 비추며 나아갔다.
"…어떻게 할까요?"
대공의 병사 중 하나가 그렇게 물어왔다.
그는 대공이 신임하는 병사 중 하나로, 실력이 그렇게 뛰어난 편은 아니나 상황이 최악으로 돌아가도 침착하게 유지할 수 있는 정신력을 갖추고 있어 하사관의 자리에 오른 병사였다.
그 병사가 제 소검을 허리춤에서 뽑아낸 채로 정면을 바라봤다. 어둑한 터널의 꺾이는 지점, 그 칙칙한 풍경 속에서도 튀어나오는 건 없었다.
기이할 정도로 조용하다.
그는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 점은 대공 역시 같았다.
혹시 헤로디아가 도망친 걸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여전히 그 강대한 마력이 느껴졌다. 어떤 마법을 준비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결코 좋지 못한 징조였다.
"…후우, 일단 앞으로 갑시다. 그 외에 할 수 있는 건 없으니."
하사관은 가볍게고개를 끄덕여 동의하고는 제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헤로디아가 미쳐 돌아가기 시작한 그 날의 겨울 이후로 절치부심 해온 시민군은 병장기를 꼬나쥔 채로 앞으로 나아갔다. 한 때는 구정물이 말라붙었을 흔적을 짚어나가며 중심으로 향했다.
그렇게 대공은 점점 불길한 느낌이 고조되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머릿가죽을 누군가 들어올려 뜯어내는데, 그 자신은 느낄 수 없는 듯한 감촉.
굽이진 터널을 지나 마침내 갈림길이 끝나고, 넓찍한 공동이 눈에 들어왔다.
병사들이 그 안으로 우르르 밀고 들어와 자리했다. 사각으로 된 거대한 방패를 들어 주변을 경계하고, 소검을 그 옆으로 비껴서 사방으로 겨누며 주변을 확보했다.
그들은 그제서야 눈치챌 수 있었다.
이 공간 전체를 잠식하고 있는 금속관들을.
주현성이 보았다면 파이프라고 했을 그것들은, 길고 짧게 각자 이어져 어떤 중심으로 향해있었다.
이 지저의 중심에서도 더욱이 중심.
그리고 그 위에서 상황을 살피며 지도를 들여다보던 여왕이 본다면 도시의 중심이라고 외쳤을 그 위치.
거기에 헤로디아가 있었다.
그녀는 완전한 나신이었다.
"…세상에."
병사 중 하나가 씹어뱉었다.
그녀는 완전히 나신이었다.
저 괴물의 실체를 알고 있음에도 욕망이 동하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매혹적인 몸매였다.
적당한 크기의 유륜은 선홍색이었다. 그 위에자리한 유두 역시 소심하게 자기주장을 했는데, 그 큼직한 유방의 크기와 비교하면 그걸 내놓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사내를 만족시킬 수 있을 수준이었다.
게다가 그 유방에서부터 길게 뻗어져 내려오는 허리와 다리, 비늘이 언뜻 붙어있음에도 탄력 있게 빛을 반사해대는 피부.
땀에 젖은 것인지, 아니면 습기에 젖은 것인지그녀는 빛나고 있었다.
누군가의 침을 삼키는 소리와 동시에, 헤로디아가 고혹적인 목소리를 흘렸다.
"오셨네요, 대공님."
"예, 왔습니다. 헤로디아."
그녀는 그 해골의 말에 눈을 접어서 웃었다. 그 고혹적인 미소에 깃든 치명적인 위험성을 대공이 모르진 않았다. 그 역시 그녀에게 홀렸고, 도시를 넘겼으며, 그렇게 죽어 다시 태어났다.
그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뤄왔는지.
대공은 손을 펼쳐 마력을 끌어모았다.
"당신을 죽이겠습니다."
"어머, 오랜만에 보는 아내에게 재회의 포옹은 없는 건가요?"
그 음탕한 몸을 흔들어 유혹해봤자 쓸모는 없었다.
대공에게 남은 것은 완전히 생을 잃어버린 백골 뿐이었으니.
하지만 병사들에게는 아니었다. 병사들은 흔들리는 마음을 느끼며 제 상관을 흘깃 보았고, 대공은 존재하지 않는 혀를 낮게 차고서 손을 휘둘렀다.
"…흐응, 마법은 좀 늘었나봐요?"
헤로디아의 매료를 막아내기 위해 펼친 마력은 붉은 막의 형태로 병사들을 휘감았다.
그제서야 병사들은 헤로디아의 몸이 상당히 뇌쇄적이라는 사실은 인정함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어느 정도는 달궈진 이성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그대 덕분이죠."
대공의 짧은 대답에 담긴 역사는 짧지 않았으나, 헤로디아는 관심이 없는지 가벼운 콧소리를 흘리고는 그 손가락을 휘저었다.
그러자 붉은 마력 위로 다른 마력이 겹쳤다. 짙은 선홍색의 마력이었다.
"…크윽…!"
"하지만 당신의 마법이 어디서 온 건지, 모르시는 건 아니죠?"
자애로운 미소와 함께 그녀의 손이 허공을 수놓았다. 검은색의 어둑한 배경위로 붉은색 점들이 별처럼 반짝였다.
그 반짝임은 파괴를 동반했다. 얇게 씌워진 막 위로 떨어지는 붉은색은 유성처럼 긴 꼬리를 남기며 몰려들었고, 한 편으로 그 유성우는 아름답게 빛나며 막에 구멍을 뚫었다.
"재밌는 주문이네요. 매료를 막기 위해 억지로 감정을 밀어넣거나 마법을 해제하는 게 아닌, 의식을 분할하여 대처하다니? 흥미롭지만, 한 편으로는 당신다운 방법이네요."
헤로디아는 줄줄이 설명을 늘어놓았다. 대공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려주듯.
그렇게 그녀가 성실한 해체를 계속하는 동안, 대공은 손가락 위로 파직하고 솟아오른 붉은 전류를 확인했다. 막 위로 붉은 뇌전이 내달렸다.
"이대로라면쉽고 재미없겠죠?"
성실한 교사가 그러하듯, 그녀는 제 제자이자 한 때는 자신이 물고 빨았던 남자의 백골에게 뇌전을 쏟아부었다.
홍소가 적막한 지저를 메우고, 해골은 어떻게든 그 마법에 대항하기 위해 손을 떨쳐냈다. 그 위로 붉은 구체가 떠올라 격돌했다.
파아앙!
맥 없는 소리가 나더니 구체가 뇌전과 함께 사라졌다. 낭패였다. 해골은 저런구체를 더 만들어낼 정신력이 없었다.
제부하들에게 덮쳐오는 매료를 해결하기 위한 마법 때문에 구체 하나를 만들어내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서 그는 양손을 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고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 위로 붉은색이 떨어졌다.
파지지지지직!!!!
"크아아악!"
해골의 있을리 없는 성대에서 비명이 토해졌다. 양손에 매료의 대응책을 할당하는 순간 뇌전은 그의 뼈를 까맣게 태워버릴 기세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번개가 쏟아진 순간, 그의 집중력과 정신력은 소모되었다.
매료를 준비하던 양손은 힘 없이 떨어졌다.
마력 역시 그랬다. 공간을 메우던 붉은 장막은 거품처럼 사라졌고, 그는 사라져가는 장막 속에서 낭패감을 드러내며 주저앉았다.
죽진 않았다. 미리 로브에 걸어놓은 방어 마법 덕분이었다. 영혼이 까맣게 타버릴 정도로 강력한 뇌전이었지만 한 번은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부하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부하들의 움직임이 멎었다. 매료에 저항하느라 움직이는 것조차 고역이던 이들은 결국 이성을 잃었다.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무릎을 일제히 꿇고는, 소검, 단검, 장검을 꺼내들어 제 목이나 심장 위에 겨눴다.
그들은 있을리 없는 환상을 보며 죽었다.
전직 대공, 현직 해골인 발데가리아 대공은 그 광경을 보면서 고개를 떨궜다.
헤로디아의 가장 위험한 점은 저것이었다.
광범위한 매료 마법, 한 지성체의 기본적인 생존 욕구조차 무시할 수 있는 강력함.
그래서 이 형태를 손에 넣고, 원거리에서 무조건으로 마법을 해제할 수 있는 주현성을 데려온 것이었는데.
심지어 그 매료 마법을 제외하더라도 헤로디아는 강력한 존재다. 고대인에게 걸맞은 뛰어난 신체 능력과 그것을 뛰어넘는 강력한 마법 행사.
참담한 심정으로 대공은 헤로디아를 바라봤다. 그녀는 긴 꼬리를 제 권좌에 드리운 채로, 손으로 제 머리칼을 꼬며 턱을 괴었다. 짐짓 여유로운 태도에 그는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전사님은… 어쨌습니까."
그 말에 뒤늦게 헤로디아가 웃었다.
뛰어난 마법사인 대공이라고 한들, 같은 학파를 다루는 이상 그는 그녀를 이길 수 없었다. 한 학파의 마스터인 붉은 어머니를 이기기에는 그의 붉은 주문은 그 오리지널을 뛰어넘지 못했다.
그녀의 여유는 그 점을 잘 알고 있다는데에서 기인했다.
"간단하죠. 당신이 대전사를 데려오리란 건 뻔했으니까… 진격을 늦추게끔 제 모든 자식들을 그가 있는 방향으로 보냈답니다."
그녀는 고혹적으로 웃었다.
그 미소에 걸린 위험성에 대공이 몸을 떨었다.
대전사는 분명 강력한 존재다. 한 군대에 맞먹을 정도로.
하지만… 괴물들의 군대에도 통용될 거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대공은 그녀의 이어지는 말에 탄식했다.
"제가 엄선한 자식들도 있으니, 아무리 대전사님이라고 하더라도 멀쩡할 순 없어요. 그렇게 소모하다 여기로 오면, 저는 드디어 굴레에서 벗어납니다. 온 세상이 붉은 어머니의 탄생을 알게 되겠죠."
그녀가 한동안 그렇게 말을 하더니 권좌에 걸쳐진 제 길쭉한 다리를 뽐내듯이 쓸었다.
대공은 그제서야병력을 물리지 않은 것을 후회했고, 한 편으로는 어떻게 대전사와 자신이 오는방향을 구분해낼 수 있었는지 의아해졌다.
그래서 고개를 들어올리니, 그 자리에는 익숙한 이가 있었다.
항상 침착함을 유지해, 그가 직접 하사관의 지위를 내렸던 병사였다.
그는 목에 흐르는 타인의 피를 닦아내고서, 생긋 웃었다.
상쾌한 미소였다.
"…당신."
"그렇게 됐습니다, 대공님."
그 눈동자에는 마법에 걸린 듯한 기색이 없었다.
자의적인 배신이었다.
"왭니까."
"…신이 될 분에 대한 마땅한 경의죠."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언제 가져왔는지 워해머를 높이 들었다. 저 둔기에는 마법이 걸려있었다. 백골 뿐인 육신에서 영혼을 영원히 쫓아낼 수 있을 마법이.
대공은 눈을 감았다. 도시의 자유는 커녕, 제 명예조차 되찾지 못한 채 죽는 것을 한탄하며 존재할리 없는 눈꺼풀을 닫아 시야를 검게 물들였다.
이제부터 다가올 죽음은 부드럽기를 바라며.
…하지만 죽음은 찾아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죽음이 이렇게 고요한 것인가 착각했으나, 곧 그의 청각에 밀려들어오는 폭음에 반강제적으로 눈을 떠버렸다. 그는 제 백골손이 멀쩡함에, 제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에 자신의 처형인을 바라봤다.
그 처형인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헤로디아 역시 그랬다.
항상 여유로운 표정이었던 헤로디아는 권좌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떻게?"
―쿠웅
둔중한 소리였다.
대포를 쏘는 소리가, 강철 벽에 울리고 울려서 전해지는 듯한 소리. 그게 아주 멀리서 들려 작게 줄어들은 듯한 기묘한 소리.
헤로디아도, 하사관도, 대공도 떠올리는데 한참이 걸리는 소리였다.
하사관이 침을 삼키고는 망치를 단단히 쥐었고, 그 후에 헤로디아는 마력을 끌어모았다.
붉은 뇌전이 파이프와 시체들을 까맣게 태우며 지면을 긁었다. 소리가 몰려들어오는 통로에서 튀어나오자마자 구워버릴 생각으로, 화염으로 타오르는 번개를 끌어모았다.
대공은 그 번개가 자신에게쏘아졌던 것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출력임을 깨달았다.
아무리 신이라고 할지라도 저 번개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대공은 앞으로 일어날 참상에 긴장했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앙!
무언가 튕겨져 나왔다.
현대에서 살던 누군가가 보았다면, 생일날에 터트리는 폭죽을 닮았노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 현대인이 감성이 삭막하다 못해 건조하며, 시체를 보더라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라면.
튀어나오는 시체들은 각기 머리나 가슴팍, 하반신을 잃은 채로 뜻 모를 비행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나아간 시체들이 넓찍한 공동을 메우고, 헤로디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앞으로 향하려는 순간.
투콰아아아앙!
대포를 쏘는 것만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의 중심에서 무언가가, 시체의 산을 부수며 쏘아졌다.
대공은 보지 못했다.
하사관 역시 그랬다.
그들은 단지 무언가 날아와 헤로디아의 안면을 으깨버리는 것만을 보았다.
그 속도는 화살보다 빨랐고, 그 움직임은 파괴적이었다.
헤로디아가 끌어모은 뇌전을 고작 따위로 만드는 절대적인 압력.
그 압력이 실린 주먹이 방어막 17장을 한꺼번에 깨부수며 매혹적이며 뇌쇄적인 얼굴을 으깼다.
으깨진 얼굴에서 뇌수와 눈알, 피륙이 어지럽게 튀고, 튀어올라 주먹을 휘두른 주현성은 발을 바꾸며 주먹을 뻗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 움직임 하나에, 헤로디아는 한 번 죽었다.
콰아아아아아아!!!
억눌린 공기가 어지럽게 터져나가며 떨려왔다. 그 탓에 직선상의 모든 것을 날려버리며 불어온 폭풍은 대공과 하사관을 벽으로 떠밀었다.
주현성이 날아온 궤적을 따라 시체들이 다시 한 번 날았다.
흩날리며 내리는 시체의 비 속에서, 주현성은 두 주먹을 세워 부딪혔다.
쿠우우우웅!
그러자 천둥이 지저에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