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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화 〉용의 도시 발데가리아 (103/274)



〈 103화 〉용의 도시 발데가리아

그 피는 색에 어울리는 짙은 선홍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만약  피가 아니었다면 섬뜩하다기 보다는 아름답다고 생각했을, 강렬한 색채.

나는 그 마법을 바라보면서 쭈뼛하고 일어서는 두피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전신에 소름이 돋는다. 지금껏 보았던 마법들에게서 느껴진 감촉은 이정도가 아니었다. 끽해야 모골이 송연해지는 순간의 감각이었을 뿐.


하지만  눈앞에서 펼쳐지는 저 마법 행사, 저 불길할 정도로 뒤틀린 감각은 저게 보통의 마법이 아님을 알리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시야 끄트머리에서 불쑥 튀어나온 메세지가 흔들리고 있었다.


[신을 죽이고 게임을 클리어 하십시오. 1/4]


[신을 죽이고 게임을 클리어 하십시오. 1/5]

미친 것처럼 깜빡거리며, 4에서 5로, 5에서 4로 정신 없이 변하고 있었다.

헤로디아가 뭘 하고 있는지는 쉽게 추측할  있었다.

그간 지저에서 끌어모으던 마력은, 우리를 끌어내기 위한 미끼가 아니었다.


저 아주 강력한 마법을 위한 것이었다.

저정도의 마력을 얻기 위해 영웅들을 죽이고, 시민들의 생명력을 착취하고, 실험을 거듭했다면.


"…씨발."


좆됐네.


저 마법은 지금 그레이톰의 심판을 휘두른다고 막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렇다고 뭐라도 해보자니, 나는 마법에 존나 무지하다.

괜히 달려들었다가 저 마법이 나를 집어삼켜서 뭔 개지랄이 나지 않는다는 법이 없었다.


상황을 지켜봐야 하나? 싶은데  뒤에서 마력이 하나 더 느껴졌다.


불길하지만,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보다는 한참은 나을, 어쩐지 맥이 빠지는 약소한 마력.

 마력에 사로잡힌 듯 고개를 돌리니  자리에는 메이가 있었다. 품에서 꺼낸, 어떤 낡은 양피지를 꼬나쥔 채로.


내가 대공에게 건네받은 후에 쓸 줄 몰라서 그대로 메이에게 건넸던 두루마리였다.

"메이?"

물론 자주적으로 판단하고 마법을 쓰라고는 했지만, 그걸 지금?


메이가 들고 있는 두루마리는, 대공의 말에 따르자면 마법의 경로를 꼬아버리는 마법이 적혀있노라고 했다.

아주 간단하지만, 그걸 잘만 이용하면 붉은 어머니가 사용하는 강대한 매료를 상대로 시간을 벌 수 있을 거라며, 혹여 대전사인 내가 당해버렸을 때를 대비해서 가지고 있으라고 했었다.

근데 그걸 지금? 재차 떠오르는 의문에 메이를 바라보았다. 메이의 고동색 눈동자와 내 눈이 마주쳤다.


저게 무슨 마법인지도 모르는데 괜히 경로를 꼬았다가 더 큰 참사가 일어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순간 들고 일어섰다.

괜  아

메이는 그런 나를 보고는, 어제 함께 잠들 때나 보였을  같은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결의에 찬 눈으로 헤로디아를 바라봤다. 나아가 내 옆에 나란히 섰다. 병사들은 어어, 하며 그녀를 막아서려고 했으나 풍겨오는 강대한 마력에 지레 겁을 먹고 다시 뒤로 물러섰다.


찌 지 

두루마리가 찢어졌다. 스크롤의 발동 방식은 찢거나 태우거나 하는 식으로 파손을 입히는 것.

메이가 사용하지 못하는, 복잡한 술식이 그대로 허공에 그려졌다. 뻗어져나가는 술식은 내가 좆도 알아볼 수 없었지만, 메이는 그 술식을 홀린듯이 바라보다가 손을 뻗었다.


"무슨…."

내가 당황해서 나도 모르게 음성을 흘리니, 메이는  술식을자기 식으로 뒤틀었다. 뭔지 알 수 없는 술식의 구조가 바뀌고, 자리하면서 점점 그 마력은 강대해졌다.


언제 그런 마력을 불어넣었나 싶어서 눈을 돌리니, 메이는  조그만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면서 양손으로 마법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마법은 내가 알 수 없는 목적을 띄고 있었다.


메이가 그 마법을 손에 담고, 나를 돌아봤다.

메이는 웃었다.

"나 믿지?"

메이가 말했다.

얘 입에서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그런 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불현듯 대답했다.

"응."

"고마워."


생기 넘치는 미소와 함께, 메이가 마법을 쏘아냈다.

그 마법은 소리 없이 나아갔다. 나아가, 한창 제 마법에 홀린듯이 집중하고 있는 헤로디아에게 닿았다.

닿고서 휘감겼다. 뱀이 제 먹이를 삼키기 위해 휘감는 것과는 다르게, 기생충이 제 살 곳을 찾기 위해 파고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뻗어진 마력은 마법의 중심으로 파고들었다. 그 중심에는 내 피를 강하게 쥔 헤로디아가 있었다.

헤로디아가 뒤늦게  마력을 눈치첐다. 눈치채고 와락 얼굴 표정을 구기며 외쳤다.

"안돼! 이건 내 신성이다! 내 신성이라고!"

헤로디아의 몸을 휘감은 마력이 강해지더니, 어마어마한 폭음을 뿜어댔다. 폭음은 열을 동반했다. 뿜어져나온 열은 명확한 광선으로  몸을 휘감았다.

그 광선에 휘감긴 채, 문득 느껴지는 온기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볼  있었다.


메이의 손이 어느덧 나를 향해있었고, 헤로디아의 마법에서훔쳐낸 무언가가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음을.

피하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을만큼 느릿했다.


하지만 피하지 않았다.

메이의 말이 떠올라서 그랬다.

'나 믿지?'

그래서 의연하게 그 빛을 받아들였다.

붉은 빛이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파아아아아아앗!!!

그 빛이 내 안에서 터져나왔다.

 몸이 빛나고 있었다. 내 피부가,  신경이, 내 혈관이 그 붉은빛과 뒤섞인 흰빛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고통스러울만도 하건만, 기이하게도 오히려 내 몸은 편안하고 안락한 기분에 휘감겨 있었다.

기분에  몸을 내려다보니, 빛이 쑥 빠져나와 퍼졌다.

파아아앗

형언하기 힘든 소리와 함께 퍼져나간 빛이 공간을 백색으로 물들이며 일그러 뜨렸다.


일그러진 공간은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이 만들어낸 마법을 도둑맞아 당황한 표정의 헤로디아도, 그런 헤로디아에게 손을 뻗은 메이도. 그 무엇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멈춘 듯한 철저한 고요.  적막감에, 불현듯 내가 멈추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폐부가 들썩이고, 심장을 따라 혈액이 흐른다. 전신으로 뻗어나간다. 심장을 따라 빛나는 것이 혈관에 도드라졌다.


나는 빛나고 있었다.

두근

맥박한다. 세상이  맥에 맞추어 꿈틀거린다.

내가 숨을 들이쉬고, 내뱉을 때마다 공간이 일렁였다.

그 일렁임에 내 몸을 뒤덮은 빛이 뻗어나갔다.


두근

마치  자신이 녹아, 이 세상에 흘러드는 듯한 기묘한 감촉.


내가 이 자리에 서있음에도, 이 세상을 손아귀에 쥔 것만 같은 전능감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주먹을 쥐었다.


콰아아아―!

내가 쥔 주먹을 중심으로 공간이 깨져나갔다. 깨진 거울처럼 일그러지고 금이 가해진 공간이 파하더니, 그 틈으로 빛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공간 속에서 알갱이 같은 것들이 날아와  눈앞에 모였다.

그 형체를 처음에는 알아보기 힘들었으나, 나는 이내 그것이 글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글자는 이렇게 생겼다.

[독자적인 신성을 손에 넣어 반신의 격에 오릅니다.]

[권능에 적응합니다.]

[신성을 손에 넣을 때마다 권능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거인의 힘에 적응합니다.]


[거인의 힘이 항시 유지되며, 자의적으로 끄고 켤  있습니다.]


[분노하는 정도에 따라 근력이 추가 상승합니다.]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더 친절한 것처럼 보이는 시스템 메세지.


그 메세지를 헤아리는 순간, 나는 전신을 감도는 어마어마한 근력을 느낄 수 있었다.


거인의 힘을 발동하거나, 발동되었을 때와는 다른, 위태롭지 않은 안정적인 근력. 서서히 빠져나가는 게 아닌, 충만하게 내 전신을 메우는 감각.


나는 한참을  근력을 느낀 끝에, 그것이 내 힘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글자들이 산산히 분해되어  안으로 스며들고, 그제서야 빛이 걷혔다. 밤이 찾아오는 것처럼, 빛이 내 몸으로 빨려들었다.

빛이 걷히자, 세상이 다시 움직인다.

걷힌 빛 너머로, 조금 지친 듯한 메이와 우리를 바라보고만 있는 대공과 헤로디아가 보였다.

특히 헤로디아가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무한한 악의가 느껴졌다.

그녀의 요염한 표정이 붕괴한다. 여유로움이 무너져 그 자리에 깊은 절망과 슬픔, 체념이 자리했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은 분노라는 이름 하에 모여서 뒤엉켰다.


하지만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낙천적일 정도의 안도감이 몸을 휘감았다.

어느새 꿇은 무릎을 펴고, 바닥을 단단히 딛었다.

"…죽으세요."


 표정과 함께 공기가 떨려온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


헤로디아가 뻗은 손가락 끝에서맺힌 검붉은 화염이, 지천을 메울듯 거대한 모습으로 내게 쇄도했다.

피하거나 막을 수는 없다. 저건 이 공간 전체를 부숴버릴 수준이다.

마법의 대상을 나로 바꿨던 탓에, 헤로디아의 마력은 전혀 낭비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나와 메이, 그리고 그 뒤 터널까지 잠식할 기세로 밀려들어오는 화마의 파도에서, 나는 뒤섞인 무기 하나를 볼 수 있었다.


낙인, 여름의 도살자가 남긴 유품.


왠지 붕뜬, 꿈을 꾸는 것만 같은 전능감 속에서 나는다리를 뻗었다.


그리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달리는 힘은 평소와 비교해도 꿇리지 않았다. 오히려, 출력이 안정적이라는 점에서는 나쁠 게 없었다.


앞으로 쏠린 몸을 다리를 박차 띄워낸다.

도약으로 인해 공중에 뜬 채로, 화염의 홍수에 휩쓸렸던 무기를 낚아챘다. 도끼는 내 손에 가볍게 감기면서, 화염을 일으켰다.

권능에 적응한 탓인지, 화염 부여는 평소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강맹하게 도끼를 살라먹으며 타올랐다.

황소만한 크기로 커져버린 화염을 손에 쥔 채로, 크게 젖혔던 팔을 앞으로 내질렀다. 그러며 가속했다.


도끼날이 화염과 충돌하는 순간, 주변이 무음으로 물들었다. 공기가 굉음으로 터져나갔다.


쩌어어어어엉!!!!!


파도가 부숴지면서, 주변에 어지럽게 제 파편을 쏘아냈다. 쏘아지는 불똥 사이에서 바닥에 고였던 습기가 떠올랐다.


나는  중심에서 도끼를 다른 손으로 바꿔쥐었다. 쥔 도끼날이 금속성으로 비명을 질렀다.


재차 바닥을 걷어찬다. 힘에서 큰 차이는 없었다.하지만 이번엔 지치지도, 멈추지도 않는다. 나는 두번째로 밀려오는 불꽃의 산맥을 갈라버렸다.

바로 뒤이어 나를 향해 뻗어치는 화염의 창, 그건 거들떠볼 필요도 없었다. 도끼를 휘두르느라 기울었던 자세 그대로, 주먹을 휘둘러 터트렸다.

주먹을 휘둘러 흐트러진 자세가 되돌아오기 무섭게, 다시 뛰어올랐다. 뛰며 내 아래로 내달리는 화염을 바라봤다. 화염은 아슬아슬하게 메이에게 닿지 않았다. 나는 안심하고 공중에서 몸을 틀었다.

헤로디아는 내가 뛰어오른 걸 보고는 손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들어올려지는 손에는 그저 성실하게 나를 죽이기 위한 강력한 마법이 있었다.


그레이톰의 심판을 휘두르기엔 자세가 불안정하다.


하지만 던지는 것 정도라면 충분히  수 있다. 나는 낙인을 든 손을 뒤로뻗었다.







천장에 닿을 정도로 높이 뛰었던 탓인지 천장이 내 도끼 끝에 걸렸다.


일부러  팔을 최대한 밀어내고, 도끼를 내던졌다.


내 도끼 투척은 하나의 열선이 되어 쇄도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

촤아아아아악!!!


쏘아진 도끼는 헤로디아가 시전한 마법과 그녀의 부드러운 살결, 단단한 비늘까지 전부 쪼개며 나아가 바닥에 쳐박혔다.

쳐박힌 궤적을 따라 달궈진 공기가, 잘려나간 팔이 일렁였다.

헤로디아는 멈추지 않았다. 다른 손으로 바꿔 나를 겨눴다. 그 끄트머리에 맺히는 마법에 나는 떨어지면서 그레이톰의 심판을 쥐었다.


단순히 떨어져 베는 걸로는 부족하다. 헤로디아는 쉽게 죽지 않는다.


[영원의 정신이 발동됩니다.]

세상이 감속한다.


지극히 감속한 세상 속에서 떨어져 내리며, 나는 나를 향해 손을 뻗고 마법을 만들어내고 있는 헤로디아를 바라봤다.

낙인에게 베여진 팔은 더디게 재생하고 있다. 아직도 더운 피를 바닥에 떨어트리고 있다.

화염에 약하다는 점은, 그녀의 실험체들과 다르지 않았다.

기회는 한 번 뿐.

푸화아아아악!

화염 부여가 치솟아 검날을 뒤덮는다. 불꽃으로 타오르는 검날이 너울거린다.

그리고.

영원의 정신을 꺼트림과 동시에, 몸을 뒤집어 천장을 박찬다.


카앙!

금속으로 이뤄진 천장이 낮게 울고, 전신에 둘러진 사슬갑주로 가속한다. 검은 연기가 줄기줄기 뿜어져나와  정신이 아득하도록 밀어붙인다.


거인의 힘, 가속. 한계까지 끌어올려진 내 근력으로 떨어지며 검을 휘두른다.

검명은 섬뜩하게 울려퍼지고, 화염은 검로를 따라 퍼지며 어둠을 수놓는다.

촤아아아아악!!!

베어나간 살점이 바닥에 떨어지고, 헤로디아의표정이 굳는다. 굳다 못해 무너진다. 헤로디아는 명확히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었다.

역시 한 번 베는 걸로는 충분하지 않다. 낙인과 다르게, 장검에 둘러진 화염은 충분히 뜨겁지 않았다.


그렇다면 죽을 때까지 베면 그만이다.

나는 검을 몸 뒤로 젖혔다. 그리고 파고들었다. 헤로디아가 뻗어낸 손을 어깨로 밀어낸다. 궤도를 잃은 마법이 바닥을 부순다.


"…대전사아아!!!"


선명하게 퍼지는 여성의 경악과 공포, 분노가 담긴 음성.


나는 그걸 억지로 씹어삼킨다. 검을 휘두른다.


퍼억!


베어진 손날이 흩어지고, 다시 뒤로 발을 반 보 물리면서 올려친다. 어깨에서 피가 울컥 솟는다. 생명이 흩어진다. 헤로디아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진다. 동공이 흔들린다.

파지지직…!

정처를 잃은 벼락이 그녀의  끝에서 흩어지고, 입에서피가 울컥 솟는다. 그녀는 그제서야 나를 보았다.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닌, 나를. 그녀의 눈동자에는 원망과 체념이 담겨있었다.

나는 참고 있었던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헤로디아의 몸이 쓰러지려다 내게 부딪혀왔지만, 밀어내지 않았다.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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